LED장미ⓒ시민작가 박서영

공원묘지 `14-31` 번호의 주인공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9) 몇 해 전, 한 국제 구호단체에 아주 특별한 기부자가 나타났다. 굶주림과 병마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리며 기부자가 맡긴 성금은 모두 6,429만 6,358원. 그것은 남자의 전 재산이라고 했다. 구호단체 측은 이 기부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 싶은데, 부산에 사는 58세의 김모씨라는 이름과 주소는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럴수록 그가 어떤 마음으로 전 재산을 기부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취재진은 구호단체가 적어준 주소 하나를 들고 부산을 찾아갔다. 김씨가 살고 있는 집은 주택가의 허름한 옥탑방이었고 문은 잠겨있었다. 집주인은 그가 이 옥탑 방에서 10년을 살았어도 늘 말이 없이 조용히 일터를 오가서 제대로 말 한마디 걸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집주인이 알고 있는 건 김씨가 멀지 않은 동네의 목욕탕에서 일한다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근처 대중목욕탕을 찾아다니며 김씨를 수소문했다. 열군데 넘게 허탕을 치다가 마침내 그가 일하는 목욕탕을 찾아냈다. “여기서 손님들 구두도 닦고, 탕이랑 탈의실 관리도 하고, 샴푸도 팔고 그랬어요. 그런데 몇 달 전에 갑자기 일을 그만뒀죠. 요새 구두 닦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장사가 잘 안돼서 그런지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목욕탕만 찾으면 김씨를 만날 줄 알았는데, 그가 몇 달 전 그만뒀다는 것이다. 그 목욕탕에서만 10년 가까이 일했다지만, 그의 속사정에 대해 아는 이는 없었다. 다만. “장애인이었어요. 다리가 성치 않아서 날씨가 안 좋고 그러면 아주 고통스러워했죠. 술이라도 같이 한잔 하면서 속 얘기를 할만도 한데, 그런 걸 일절 안하는 사람이니까 지금 어디 가서 뭘 하고 사는지 우리도 몰라요.” 하지관절장애 4급이었다는 김씨. 시계처럼 정확하게 아침 7시면 골목을 나서 출근을 했고, 저녁 8시면 어김없이 퇴근을 했다던 그를 어느 날 부턴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가 사라진지 20여일...
눈길ⓒ뉴시스

노모의 첫사랑을 당신은 아십니까?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8)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 누구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져’ 버린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만약 사랑 따윈 빛바랜 단어로 여길 것만 같은 연로한 부모님이 첫사랑에 대한 소식을 알고 싶어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중년의 딸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다. 몇 달 전, 팔순이 가까운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겨진 어머니가 부쩍 옛날이야기를 봇물처럼 쏟아놓는다는 것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늘 익숙하게 들어왔던 터라 그냥 귀를 열고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 헛헛해하는 노모를 위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난생처음 노모의 오래된 첫사랑, 딸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어색한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까지 들었을 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배움이 흔치 않던 시절, 당시로선 드물게 여자는 대학을 다녔다. 남녀 간의 우정도 쉽지 않던 그때, 같은 대학생이던 청년이 바로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맏이었던 여자에게는 동생들이 많았고, 장남이었던 그 남자 역시 어린 동생들이 많았으며, 어렵게 대학을 다니긴 했어도 가난이 일상이던 그 시절 미래에 대한 보장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때가 되면 여자는 응당 시집을 가야하고, 때가 되면 남자는 응당 취직을 해야 사람구실을 하는 것이라 여겼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남자는 장교시험을 봐 군대를 가게 됐고, 그 즈음 여자가 처음으로 물었다고 한다. “내가 기다릴까?...” 요즘 같으면 돌직구로 물었을 텐데, 그 옛날 여자가 마음을 겨우 드러내며 물었다는 것이 고작 이런 것이다. “... 아니, 기다리지 마.” 남자는 자신이 어떤 길을 가게 될지, 군대에 다녀와서 또 무엇으로 밥벌이를 하며 살게 될지, 어린 동생들 공부는 또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어깨가 무거웠을 것이다.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20대 중반이 돼가는 여자를 무작정...
ⓒ시민작가 김유경

“그냥 용서하는 과정에 있는 거지요”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7) 용서 :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우리는 쉽게 ‘용서’를 말한다. 추악하고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선 절대로 용서해선 안 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역사적인 국가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게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발뺌을 하거나 축소 왜곡하면서 유감을 표하며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선 이제 그만 용서해야 하는 거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것. 그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용서를 하는 피해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함부로 ‘이 정도면 용서해야 마땅하다’고 강요하거나, ‘왜 이런 놈을 용서해주나?’라며 비난할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한 할아버지의 가슴 아픈 ‘용서’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어느 날, 퇴근해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일가족이 모두 살해된 채 발견됐다. 노모와 아내, 그리고 4대 독자인 아들이었다. 몇 달 동안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살면서 누구에게 원한 산 일도 없었고, 누가 왜 가족을 살해했는지 이유도 단서도, 목격자도 없었다. 졸지에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된 그는 살인범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매일 자살 충동을 느끼며 살아있어도 산 것 같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다.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강 다리에까지 찾아갔던 그는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 살인범만 잡히고 나면, 그 때 자신도 모든 삶을 접고 가족들을 만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야만 지옥 같은 시간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달 만에 범인이 잡혔다. 그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이었다. 살해 이유는 없었다. 그야말로 싸이코패스의 묻지마 살인이었다. 살인범이 밝혀진 뒤에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지옥이었다. 아무리 분노하고 증오해도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더 절망하게 했다. 이대로 치유의 길은 멀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
그림자ⓒ뉴시스

바퀴벌레 소굴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6) 내게는 오랜 습관이 하나 있다.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아이템들을 메모지에 적어두는 것이다. 해마다 수첩이 바뀌어도, 그 메모들을 늘 수첩 첫 장에 붙여놓곤 한다. 책을 읽다가, 뉴스를 보다가 혹은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다가 뭔가 더 알고 싶은 것이 생기면 아이템 리스트에 하나둘씩 써놓곤 했다. 어느 날, 기사를 훑어보다 눈에 들어온 기사 하나, 그것은 ‘미혼부가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지만, 아빠는 나 몰라라 가버리고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이야기는 많았어도, 그 반대로 아빠 혼자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키우는 미혼부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낯설지만 당시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는 미혼부들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어김없이 나의 아이템 후보리스트에 올라있었다. 아홉 살 준이를 알게 된 것은 메모에 있던 미혼부 아이템을 꺼내들고 프로그램 제작을 하면서였다. 제보의 내용은 단칸방에서 아빠 혼자 키우는 어린 사내아이가 있는데, 늘 혼자서 지낸다는 것이었고, 제작진은 곧바로 확인에 나섰다. 저녁 무렵 서울의 어느 주택가 반지하 방에 도착했을 때, 진짜로 사내아이 혼자 단칸방을 지키고 있었다. 바퀴벌레가 사방을 기어 다니는 지저분한 방안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TV를 켜놓고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 밥은 제대로 먹었는지 힘들지 않은지 걱정이 앞섰다. 아이는 태연하게 말했다. “당연히 힘든게 한 개 있죠. 배고파서 울었던 적 있어요.” 아이는 끼니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역시나 굶고 있었다. 이렇다 할 살림살이가 거의 없는 방안 한쪽엔 작고 낡은 냉장고 하나가 덩그마니 놓여있었다. 제작진이 냉장고 안에 먹을 것이 없냐며 물어보니, 준이는 질겁하며 말했다. “문 열면 진짜 많아요. 열면 큰일 나요.” “뭐가 있는데? 한번 열어볼래?” “진짜 많은데,,,” 망설이던 준이가 열어 보인 냉장고 안은 그야말로 바퀴벌레 소굴이었다...
성탄ⓒ뉴시스

“누구든 가야하는 길, 슬프지 않아요”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5) 그 겨울, 한 사람이 병원 침상에서 나지막이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다. 그 곁에 귓속말로 다정하게 마지막 기도와 작별인사를 건네는 외국인 수녀 한 분. 그이는 70년대 초부터 한국에 들어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의료 활동을 해온 의사이자 성직자, 메리 수녀였다. 지금이야 ‘호스피스’가 어떤 뜻인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때만 해도 낯선 단어였다. 당시 환갑을 넘긴 메리수녀는 바로 임종을 앞둔 말기환자들이 편안한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가정방문 호스피스 의사 1호였다. 낡은 왕진가방 하나를 들고 매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찾아가는 메리수녀는 말기환자들에게 치료가 아닌, 극심한 고통을 줄여주는 강력진통제를 처방했다. 생명이 다하는 시간까지 환자가 주변을 정리할 수 있고, 가족들과 작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죽음 역시 인생의 중요한 과정이며, 누구나 편안하게 생을 마칠 권리가 있다는 것이 바로 호스피스의 출발이기도 하다. 나는 메리수녀를 취재하면서 여러 말기 환자들을 보았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호스피스 의사 메리수녀가 일주일에 한 번씩 빼놓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영등포 뒷골목, 행려자들을 위해 무료진료를 하는 작은 병원이었다. 의사의 손이 늘 모자라는 이곳에서 그이는 가난하고 기댈 곳 하나 없는 환자들을 진료해오고 있었다. 40대 후반의 김씨도 메리수녀의 진찰순서를 기다리는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한눈에 봐도 김씨의 상태는 나빠 보였다. 오래전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는 김씨는 가쁘게 숨을 쉬었고, 배는 복수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엑스레이 검사결과를 보며 진찰을 하던 메리수녀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김씨는 뭔가 심상치 않은 걸 느낀 듯 울먹이기 시작했다. 메리수녀는 황급히 자리를 옮겨 전화를 찾았다. 좀 더 큰 병원에 김씨의 입원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김씨는 어쩐 일인지 병원에 입원하는 걸 내켜하지 않았다. 이런...
꽃ⓒ뉴시스

벌집방에 갇힌 아이와 ‘은빛 나비’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4)그해 초겨울, 철지난 여름 미니스커트 차림의 두 여학생이 멀리서 건널목을 건너오고 있었다. 카메라 앵글에 우연히 들어온 10대 소녀 둘. 그런데 한 중년의 아저씨와 말다툼을 벌이는 중이었다. 아침부터 한잔 했는지 중년 아저씨는 불콰해진 얼굴로 아슬아슬하게 짧은 치마를 입은 아이들을 향해 욕을 퍼부었고, 두 여학생도 이에 질세라 거칠게 받아치고 있는 듯 했다. 정말 우연히 거리를 스케치하고 있었을 뿐인데, 실랑이가 붙은 세 사람은 바로 카메라 코앞까지 와서 서로 으르렁거렸다. 그러다 한 여학생이 제작진을 향해, 경찰서에 증인으로 함께 가 달라고 부탁했다. 두 10대 소녀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제작진은 어떤 요구도 하지 않고 아무 편견 없이 생활을 담겠다는 약속을 하고 아이들을 촬영할 수 있었다.열여섯 살 동갑내기라는 두 아이는 서울 변두리, 예전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소위 벌집방이라고 부르는 단칸 쪽방에서 살고 있었다. 한 아이는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이런저런 말썽을 일으켜 징계를 받은 뒤 집을 뛰쳐나왔고, 또 한 아이는 바닷가 시골마을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살다가, 대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겨우 열여섯 살 나이에 대책 없이 거리로 나온 두 아이가 갈 수 있는 곳,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고, 당장 하루를 버틸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찌어찌 흘러간 곳이 성매매업소였다. 그곳에서 동갑내기 두 아이가 만났고, 포주가 당초 약속했던 돈을 주지 않자, 새벽에 몰래 뛰쳐나와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벌집방을 구했다는 것이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 맨 다리로 철지난 여름옷을 입고 있었던 것도, 업소에서 맨몸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렇게 1년 가까이 가출생활을 이어가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을 아이들, 그래서인지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이룰 수도 없는 꿈 따윈 잊은 지 오래라고 했다. 사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냐고 푸석푸석해진 얼굴로 세상 다 산 듯 심...
기초보장제ⓒ뉴시스

‘구두쇠’ 장경자 할머니의 전 재산 1억 원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3)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의 몸속엔 긴 세월을 버텨낸 비장함이 흐른다. 유독 부침이 많은 시절을 살아낸 이 땅의 할머니들은 한분 한분이 살아있는 근현대사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할머니를 소재로 다루는 건 주로 소외된 노인문제, 예컨대 학대나 복지 사각지대, 고독사 같은 부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시사관련 다큐멘터리를 꽤 오래 집필해왔던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할머니는 앞서 말한 그런 비운의 주인공이 아니다.16년 전, 한 대학교 앞과 캠퍼스 안을 오가며 폐지와 빈병을 주우러 다니던 팔순의 장경자 할머니는 어느 날, 자신이 매일 고물을 수집하러 오가던 그 대학교에 1억 원을 기부했다. 이북출신인 할머니는 19살에 서울로 시집을 왔지만, 이듬해 남편을 여의고 자식도 없이 평생을 홀로 살면서 가장 밑바닥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고물을 모으며 살아왔노라고 했다. 그런 할머니에게 1억 원이라는 돈은 일생동안 그야말로 한푼 두푼 모아온 전 재산이었다.당시 대학교와 병원 등에 전 재산을 기부하는 할머니들의 미담이 간간이 들려올 때였다. 대부분 삯바느질로, 콩나물장사로, 김밥장사로 혹은 젓갈장사로 악착같이 돈을 모은 구두쇠 할머니들이었다. 우리는 이 구두쇠 할머니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렇게 아껴 모은 전 재산을 어떻게 그렇게 선뜻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건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분명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이 할머니들에게는 뭔가 공통분모가 있을 것 같았다.그중에서도 제작진이 가장 먼저 만나보고 싶었던 분이 장경자 할머니였는데, 정작 찾아갔을 때, 손수레를 끌며 고물을 줍는 할머니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고물상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손에서 빈 깡통과, 신문지들을 놓지 않았고, 그 때문에 할머니의 열손가락은 온통 갈라지고 마디마디 휘어있다고들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김없이 찾아와 고물을 팔던 할머니가 일대에서 사라진 건, 방광암 수술 때문이었다. 수술을 받고 깨어난 할머니에게 제작진은 정말 궁금했던...
어린왕자

찰나에 떠오른 그 남자의 숙제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 절체절명의 순간이 닥치면,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지나온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고들 한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한때 나는 전국을 다니며 각종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만나 취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119 구조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난 사람들이었다. 건물 공사장에서 일하던 이씨 할아버지는 건물 2층에서 떨어지면서 아래쪽에 세워져 있던 굵은 철근에 몸이 관통하는 엄청난 사고를 당했다. 왼쪽 옆구리를 뚫고 들어간 철근이 목 오른쪽으로 삐져나온 상태였다. 119 구조대가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을 때, 그는 철근이 몸을 관통한 채로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몸에서 철근을 바로 빼낼 수 없다고 판단한 대원들은 일단 철근 아래쪽을 잘라내 곧바로 병원으로 내달렸다.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의사들도 이씨의 몸을 뚫은 철근을 빼내기가 힘들었다. 옆구리 쪽으로 철근을 잡아 빼려 해도, 또 반대쪽인 목 쪽으로 잡아 빼려 해도, 철근이 꿈쩍도 하지 않을뿐더러 자칫, 무리한 힘을 가했다가는 장기를 다쳐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고를 당한 이씨 할아버지였다. 그는 사고를 당하는 그 순간부터 병원에 이송되는 전 과정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119 대원들이 사고현장에서 의식이 있는지 확인할 때에도 자신의 이름은 물론이고 어쩌다 사고를 당했는지 똑똑하게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엑스레이로 이씨의 몸을 촬영해보니, 철근이 기적처럼 모든 장기를 피해 순간적으로 관통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몸에서 철근을 어떻게 빼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결국 병원의 요청으로 119구조대가 이번에는 응급실로 다시 출동을 했다. 긴 철근을 한쪽으로 빼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한 의료진이 목 부분을 절개해 그 사이의 철근을 자르고 옆구리와 목 양쪽에서 철근을 잡아 ...
ⓒ호호

별이 된 작은 소녀가 남긴 메시지

〈SBS스페셜〉, 〈그것이 알고 싶다〉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26년 동안 TV 다큐멘터리작가로 활동해 오신 최경 작가가 그 26년의 이야기를 ‘내 손안에 서울’에서 들려주십니다. 작가로 26년을 지내오는 동안, 알게 된 사람들의 사연과 세상을 보는 시선을 감성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으시다는 최경 작가의 글은 매주 목요일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나씩 들어보실까요?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 사무실에 툭하면 전화를 걸어오는 소녀가 있었다. 마치 당연히 해야 할 일상인 것처럼 소녀는 전화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통화를 원하곤 했다. 늘 코앞에 닥친 다음 방송 때문에 바빴던 우리는 되도록 간단하게 소녀와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끊곤 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소녀의 전화공세에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 소녀는 우리에게 소중한 출연자였다. 사실 소녀를 알게 된 건,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아와 가족들의 지속적인 솔루션을 생각하며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였다. 당위와 열망만 있었을 뿐 허허벌판처럼 아무 것도 없었던 그때, 나는 후배와 함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하나만 챙겨들고 지방의 도시로 향했었다. 몇 명의 환아와 그 가족들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환우회로부터 추천을 받아 한 집을 찾아갔을 때, 꼬마 여자아이가 뒤뚱거리면서 달려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줬었다. 14살, 중학생이었지만 키가 몹시 작았고, 생김새도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뮤코다당증이라는 희귀질환을 갖고 태어난 소녀는 병 때문에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갈라지는 목소리도 거친 피부도 독특한 외모도 모두, 앓고 있는 희귀질환 때문에 나타나는 특성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잠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방으로 사라졌던 소녀가 중학생 교복으로 갈아입고 배시시 웃으며 다시 나타났다. 자신이 중학생이라는 걸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카메라 레코드 버튼을 누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