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권 선생이 개발한 한옥집단지구를 천조각에 마을 이름을 써서 표현했다

한옥을 지킨 건축왕 ‘정세권’ 그리고 북촌

 정세권 선생이 개발한 한옥집단지구의 마을이름을 천 조각에 써놓았다 경복궁과 창덕궁, 두 궁궐 사이에 자리한 북촌은 조선 시대 고관대작들의 거주지로 알려진 곳이다. 세월이 흘러 현재 북촌은 서울에서 근대한옥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누구든 한번쯤은 방문하고픈 마을로 자리 잡게 됐다. 북촌이 서울 도심 속 아담한 한옥마을로 자리 잡은 데는 일제 강점기에 대형 필지를 사들여 개량 한옥을 지어 분양한 기농(基農) 정세권 선생(1888~1965)의 역할이 크다. 정세권 선생이 서울 전역에 'ㅅ'자 방파제 모양으로 조성한 한옥집단지구에서 착안해 'ㅅ'자에 모티브를 둔 전시실 전경 때마침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북촌 한옥청에서 정세권 선생을 기리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찾아가 보았다. ‘북촌, 민족문화 방파제-정세권과 조선집’ 전시는 일제에 맞서 한옥과 한글을 지켜낸 ‘조선의 건축왕’ 기농(基農) 정세권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전시회이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정세권 선생의 삶을 연대기별로 조명하고 있다. 그가 서울 전역에 ‘ㅅ’자 방파제 모양으로 조성한 한옥집단지구에서 착안해 ‘ㅅ’자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 ‘ㅅ’자는 한옥의 지붕을 나타내기도 한다. 전시는 일본인들이 조선인보다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일본식 집이 늘어가는 현실에 위기의식을 느꼈던 선생이 ‘조선집’이라 불린 근대 한옥을 대량 공급하는 과정과 조선어학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다 고초를 겪은 선생의 행적을 차례로 되짚는다. 전통한옥과 조선집을 생생하게 담은 흑백영화 10편을 전시기간 동안 보여주는 영화상영실 모습 정세권 선생은 1930년대 조선물산장려회와 신간회 활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기도하다. 조선어학회 회관을 지어 기증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급기야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돼 심한 고문을 당하고, 재산도 일제에 몰수당했다. 집 한 채 남기지 않고 떠난 그의 유품은 놋주발 한 벌과 ‘조선말 큰 사전’책과 쌀을 퍼 담는 쌀되 정도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