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뉴욕 작업실의 모습

웃음꽃 피는 창신동 새명소 ‘백남준기념관’

세계적인 아티스트이자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모습 “문화도 경제처럼 수입보다는 수출이 필요해요. 나는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서 세상을 떠도는 문화상인입니다” 이 말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이 1984년에 “왜 한국 무대를 놔두고 외국 무대에서만 활동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 말이다. 그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본으로 출국해 독일과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다가 34년만인 1984년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한류의 영향력으로 전 세계에 한국 문화를 수출하고, 경제적으로도 큰 이익을 창출해 낸다는 점에서는 그는 정확하게 미래를 예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백남준기념관의 옆모습 ©민정기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백남준은 퍼포먼스 예술을 했던 시절이나 비디오 아트를 개척한 이후에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위대한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주로 해외에서 예술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의 독창성이나 예술적 가치관이 해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사실 그렇지 않다. 백남준은 현대판 글로벌 유목민으로서 세계 각지를 누비며 살았지만,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자신의 예술적 모태이자 사상적 기원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서울시는 2015년에 창신동에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의 성장기를 보낸 창신동 197번지 일대 집터에 작은 한옥을 매입해 ‘백남준기념관'을 오픈했다. 백남준기념관의 모습 ©민정기 백남준기념관은 백남준의 옛 집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과 도시 개발을 거치며 파편화된 집터에 자리 잡은 가옥들 중 하나에 새롭게 조성됐다. 원본의 발굴 대신에 가본의 재구성에서 출발한 백남준기념관은 이러한 태생적 역설에 착안하여 완성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백남준을 만들어가는 '기억의 집'이 되고자 한다. 현재 백남준기념관에서는 두 가지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하나는 개관전인 로 1984년 삼십여 년 만에 모국을 방...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성장기를 보낸 한옥, ‘백남준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백남준기념관부터 봉제역사관까지…창신동 골목탐방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성장기를 보낸 한옥, ‘백남준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창신동에 살았던 시절 얘기다.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3번 출구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 나오는 골목시장에서 자주 떡볶이를 먹었다. 도시재생으로 새롭게 단장한 창신동을 다시 찾은 마음이 작게 설렌 것도 그 때문이다. 한때 창신동 주민이었지만, 세계적 거장 백남준이 창신동에 살았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창신동 197번지. 이곳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다시 찾고 싶어 하는 그리운 지역이었다.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창신동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창신동 집을 마당이 넓고 뒤쪽에 동산이 있는 거대한 한옥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 파괴된 그 자리에 다시 아담한 한옥이 지어졌고, 서울시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한옥을 매입, 2017년 ‘백남준기념관’으로 문을 열었으며 이는 지역 주민과 소통을 통해 이루어졌다. 백남준기념관에 전시된 백남준 책상 백남준이라는 예술가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도록 리모델링한 기념관에 들어서면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작품과 백남준의 어린 시절 영감을 얻었다는 작품을 볼 수 있다. 내부에 들어서면 백남준의 일대기를 비롯해 ‘백남준의 책상’이 등장하는데, 의자에 앉아 직접 아날로그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서 시대별로 방영되는 그의 전시와 어록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다른 작가들이 백남준을 기억하며 제작한 작품으로 구성됐다. 또한, 기념관 내부에는 백남준 카페도 자리하고 있어 작품 감상 후 이곳에서 쉬어가도 좋다. 비록 그는 창신동을 다시 찾지 못했지만, 도시재생은 그를 이곳에 다시 소환해 사람들의 가슴에 기억하도록 했다. 창신골목시장 입구 안내판 백남준 기념관을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창신골목시장’을 향해 걸었다. 오래된 분식집과 떡집, 족발집과 반찬집 등, 도시재생의 개발에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시장골목에는 여전히 일상이 흐르고...
이음피움봉제역사관 4층에서 내려다본 창신동 봉제거리전경

느린 걸음으로 떠나는 창신동 골목 여행

이음피움봉제역사관 4층에서 내려다본 창신동 봉제거리전경 호호의 유쾌한 여행 (91) 창신동 골목 서울의 골목에는 수많은 풍경이 깃들어 있습니다. 종로구 창신동 골목도 예외는 아닙니다. 종로거리는 수없이 많이 지나 다녔지만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날씨 좋은 5월. 창신동 골목을 따라 산책을 했습니다. 창신동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동대문 패션타운, 평화시장과 가까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봉제 산업이 들어섰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 완구 도매 시장도 창신동에 있고요. 예술가 백남준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이기도 합니다. 쪽방촌이 남아있는 자리에는 예술전시가 열리기도 합니다. 백남준 기념관 종로구민회관으로 올라가는 골목 모퉁이에 아담한 한옥 한 채가 있습니다. 마당에는 현대적 감각의 조형물이 우뚝 서있습니다. 이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어린시절을 보냈던 장소입니다. 지난해 3월, 음식점으로 쓰였던 단층 한옥을 리모델링해 백남준 기념관으로 재탄생 되었어요. 백남준 기념관 전시작품 ‘백남준 아카이브를 찾아서’ 백남준 기념관은 서울 시립미술관 분관 중 하나입니다. 백남준의 삶과 예술을 기억하고, 새롭게 조명하는 곳이지요. 규모는 작지만 백남준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백남준의 책상’이라는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책장을 넘기면서 감상하는 미디어 전시입니다. 의자에 앉아 직접 아날로그 TV채널을 돌리면 시대별로 그의 전시와 어록 등이 상영되는 미디어월 전시도 독특합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전시관과 이어진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습니다. 창신동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전시관 내부 창신골목시장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곳곳에서 미싱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연기의 정체는 스팀다리미가 내뿜는 수증기입니다. 좁은 골목마다 원단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가 요리조리 지나다닙니다. 창신동 봉제공장은 대부분 다세대 주택에 자라집고 있는...
종로구 창신동에 `백남준기념관`이 개관했다. ⓒ박혜민

창신동에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 개관

종로구 창신동에 `백남준기념관`이 개관했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기리는 ‘백남준기념관’이 3월 10일 개관했다. 기념관은 그가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성장기를 보낸 창신동 197번지 일대 옛 집터에 들어섰다. 지하철 1·6호선 동묘앞역에서 대로변 상가를 지나 낮은 주택이 늘어선 주거지로 조금만 꺾어 올라가면 둥그런 담벼락의 한옥을 찾을 수 있다.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이라는 이름을 걸고 입구에 불을 밝힌 것이다. 백남준기념관 전경(좌),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 입구 모습(우) 백남준기념관은 창신·숭인 도시재생 선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으로 조성이 결정되었다. 옛 집터의 전체 면적은 10,000㎡가량으로 대로변에 큰 대문을 둔 저택이었으나, 개관한 기념관은 그 가운데 일부(154.4㎡)에 해당한다. 2015년에 서울시가 옛 집터에 들어선 한옥을 매입했고, 지금의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거쳤다. 조성과 운영은 서울시립미술관이 맡았다. 백남준의 삶을 회고하는 개관전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가 전시 중이다. 지난 10일 오후 3시, 기념관 중정에서 열린 개관식은 김영종 종로구청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지역 주민과 여러 인사들이 기념관의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내부에서는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라는 주제로 개관 전시가 열렸다. 이는 단순히 백남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예술을 복합적으로 풀어낸 협력전이다. 관람자가 직접 채널을 돌려 콘텐츠를 선택하거나 책장을 넘기며 감상하도록 구상된 작품이 능동적인 관람을 유도한다. 작품 하나하나가 백남준에 대한 기억이자, 아카이빙이었다.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백남준의 옛 집터에 그를 기억하는 기념관을 조성했다.  ⓒ박혜민 길과 터, 사람이 가진 기억을 중시하는 기조 위해 행해지는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어느 예술작가의 삶을 기억하는 집이 만들어졌다. 47평 남짓한 기념관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기념관 내부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