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수 미술관은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다

하나의 작품! 가을, 서촌, 그리고 ‘박노수 미술관’

박노수 미술관 전경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52) 박노수 미술관 통인시장을 지나 서촌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올라가다보면 박노수 미술관과 만나게 된다. 박노수 화백은 광복 후 활동한 한국화 1세대 화가로 오랜 기간 독창적인 화법으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이곳은 그가 1973년부터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곳으로 현재는 그의 작품과 수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다. 원래 이곳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부인이었던 순종효황후의 큰 아버지인 윤덕영이 자신의 딸과 사위를 위해 지어준 집이다. 1937년경에 지어진 이 집은 근대 주택의 여러 가지 특징과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언덕 위쪽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한 눈에도 다른 주택들과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2층 건물인데 위 아래층의 재료도 틀리고 형태도 다르다. 벽돌로 만든 1층은 현관의 지붕인 포치부터 벽면 전체가 전형적인 서양식 주택의 형태를 띠고 있다. 반면 하얀색으로 칠해진 2층은 목재로 만들어졌고, 일본식 주택의 특징인 돌출된 창문이 보인다. 그리고 돌출된 창문 아래에 노출된 목재는 한옥의 둥근 서까래를 연상케 한다. 내부 역시 벽난로부터 온돌방까지 여러 양식이 섞여있다. 이 집을 설계한 사람은 총독부의 건축과에서 일하던 조선인 건축기사 박길룡이었다. 조선인 중에 드물게 기사까지 역임한 그는 다양한 건축물들을 설계 했는데 박노수 미술관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박노수 화백의 미술작품이 있는 내부도 볼거리가 많지만 정원 역시 눈에 띈다. 일본식 정원으로 꾸며져서 작은 석등을 비롯한 조각품들이 정원 곳곳에 보인다. 옆으로 돌아가면 장독대로 쓰는 작은 창고 옆에는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수조도 있다. 뒤쪽에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일종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곳이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아래에서는 볼 수 없는 박노수 가옥의 지붕과 굴뚝들이 보인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박노수 미술관의 뒤편에는 벽수산장이 있었다. 뾰족집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기괴한 ...
박노수 미술관은 박노수 화백이 기거했던 집을 미술관으로 만든 곳이다

누구의 집이길래? 미술관이 된 예술가의 집 2곳

박노수 미술관은 박노수 화백이 기거했던 집을 미술관으로 만든 곳이다 분주하고 바쁜 일상 가운데 쉼표를 찍고 싶은 순간이 있다. 넘쳐나는 정보와 SNS의 울림 속에서 잠시나마 고요히 있고 싶을 때 떠오르는 곳이 있다. 화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특별한 공간인 ‘박노수 미술관’과 ‘고희동 가옥’이 그곳이다. 그림뿐만 아니라 화가가 살았던 그 곳이 주는 정취는 남다르다. 특별한 공간 속 더 특별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서촌과 북촌에 나란히 있는 박노수 미술관과 고희동 가옥을 함께 거닐다 보면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두 지역을 마음껏 걸으며 여유 있게 산책할 수 있어 좋다. 박노수 미술관은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다 한국화 1세대 화백의 집 ‘박노수 미술관’ 되다 남정 박노수 화백의 집을 찾기 위해서는 경복궁역에서 내려 통인시장을 찾아 가다보면 마주할 수 있다. 마을버스 9번을 타면 바로 박노수 미술관 앞에서 내릴 수 있다.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1호인 박노수 가옥은 1930년대 건축된 문화주택이다. 특히 서양의 입식생활과 전통적인 온돌을 함께 사용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집은 박노수 화백이 40년 동안 살면서 그가 가꾼 정원과 함께 그의 작품세계까지 녹아져 흐르는 듯하다. 1층 벽돌구조, 2층 목구조가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현관 옆 벽난로가 있는 응접실과 대청, 입식부엌을 갖춘 집이다. 2층의 박노수 화백의 작업실은 원래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2011년 종로구에서 인수해 현재는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노수 화백은 한국화 1세대 화가로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박노수 화백은 2011년 그의 작품 500여 점과 수백 점의 고가구와 고미술을 종로구에 기증했다. 그렇게 비밀의 정원이라 불리던 아름다운 집이 미술관으로 재탄생되었다. 박노수 화백은 한국화 1세대로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었다. 박노수 미술관에서는 정기적으로 전시작품을 교체하는데 그때마다 다양하고 독특한 그의 화풍에 놀라게 된다. 미술관은 그림을 감상할...
박노수 미술관

미로(迷路) 속 미로(美路)를 걷다! ‘서촌 골목 여행’

박노수 미술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나와 자하문로를 따라 걸으면 미로 같은 골목길이 펼쳐진다. 세종대왕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라고 하여 ‘세종마을’로 알려진 이 지역은 언제부턴지 서촌으로도 불리고 있다. 경복궁을 통해 궁궐로 입궐하던 조선시대 관리들이 궁궐의 서쪽 지역에 모여 살면서 ‘서촌’으로 불리게 됐다고도 한다. ‘서촌’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청운효자동, 사직동 일대의 마을을 이른다. 통인동·체부동·옥인동·사직동 등도 법정동으로 남아 서촌으로 불린다. 이 일대를 걷다보면 한국 근현대에 지어진 개량한옥들이 남아 있는 골목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조선왕조는 사라졌지만 서촌 풍경은 남아 여전히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서촌의 골목길 서촌의 골목길은 북촌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북촌만큼 반듯하고 널찍하지가 않다. 좁다랗고 구부정한데다 가로막힌 골목길도 많아 되돌아 나와야 한다. 하지만 서촌 골목길을 걷다보면 어릴 적 보았던 정겨운 모습들이 스친다. 처마 밑의 구멍 숭숭 난 빗물받이 홈통, 창틀 아래 갈라진 벽에 회칠을 해 덧바른 흔적 등이 문득 지나온 세월을 묻는다. 청와대 인접 지역이라 개발 제한이 있어 서울 도심 한복판임에도 높은 건물이 없는 것도 서촌만의 매력이다. 상촌재에서 진행 중인 기획전시 ‘쎄울레이디’ 서촌 골목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전시 옥인로에 들어서면 소담한 한옥 한 채가 나타난다. 종로구가 조성한 한옥문화공간인 ‘상촌재’다. 안채, 사랑채, 별채 등 3개동으로 나뉜 이곳에서는 세시풍속에 맞춘 절기행사와 한복, 전통공예 등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방문한 날, 상촌재에서는 전통한복과 개화기를 주제로 한 기획전시 ‘쎄울레이디’를 열고 있었다. 전통한복과 신한복, 그리고 미디어아트와 접목한 한복 전시이다. 쎄울레이디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 사랑채와 별채에서는 전통한복과 개화기 때의 신한복이 영상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선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수도이자 ...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서울사랑] 누가 사는 집일까? 알아맞혀 보세요!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모든 집은 집주인이 일궈낸 행복을 이야기한다. 의도하지 않아도 세월이 흐를수록 집과 주인의 모습은 닮아간다.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삶을 온전히 담아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생각할 때 물리적 장소 뿐 아니라 심리적 의미로도 집을 떠올리는 이유다. 밖에서 휘둘리고 떠밀려 피폐해진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피난처 같은 곳. 근대의 예술가들에게도 그런 집이 있었다. 멋 부리지 않았지만 멋스럽고, 풍경과 잘 어우러지면서도 풍경을 돋보이게 하며, 겸손하지만 우아한 집에 예술가들의 평범한 일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심우장(尋牛莊)은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내다가 광복을 1년 앞두고 타계한 집이다. 일반적으로 한옥을 남향으로 짓는 것과 반대로 이곳이 북향에 자리 잡은 이유는 조선총독부를 등지기 위해서였다. 대문 왼쪽에는 소나무, 오른쪽 에는 은행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다. 집 구성 또한 소박하고 검소해 가운데 대청을 놓고 양옆으로 온돌방과 부엌 그리고 찬마루방 하나만을 두었다. 만해는 이 집에서 장편소설 을 집필했으며, 조국의 독립운동을 이끌다 일제 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일송 김동삼의 주검을 수습해 5일장을 치르기도 했다. ○ 위치 : 성북구 성북로29길 24 심우장이 북향에 자리 잡은 이유는 조선총독부를 등지기 위해서였다 춘곡 고희동 가옥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직접 지은 집이다. 1908년 한국 최초의 미술 유학생이 되어 도쿄로 건너간 춘곡은 1915년 귀국해 서울의 학생들에게 서양화를 가르쳤다. 서화협회를 창립해 새로운 미술 운동을 전개하며 서양화풍을 조국에 알리고 동양화와 접목하고자 힘쓰기도 했다. 제자를 양성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생전에 안채보다 사랑채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고 전해진다. 춘곡의 화실이기도 했던 사랑...
박노수 종로구립미술관

[여행스토리 호호] 화가 문인들이 사랑한 동네 하루 여행 코스

서촌은 조선시대부터 화가, 문인들이 사랑한 동네입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산 그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인왕산이 둘러싼 아름다운 풍광과 화가, 문인들이 어울려 그들만의 소통을 즐겼던 분위기는 여러 흔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주요 여정은 박노수미술관에서 시작해 수성동 계곡과 이상의 집까지 이어집니다. 호호의 유쾌한 여행 (45)서촌 박노수 종로구립미술관, 수성동계곡, 이상의 집 박노수 종로구립미술관 서촌에 살았던 화가의 흔적 이곳은 서촌에 살았던 동양화가 남정 박노수를 기념하는 미술관이다. 남정 박노수 화백은 청전 이상범 화백의 문하생으로 초기에는 산수화를 그리다가 후기로 갈수록 인물화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60년대 후반부터는 산수화에 집중했는데 밝은 색채감, 비움으로 의미를 더하는 공간감, 산수화에서 드물게 색채를 화려하게 써 개성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산수화가 고즈넉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그는 서촌에 위치하고 있는 한옥과 중국 서양식 기법이 혼재한 가옥에서 40여간 거주해왔습니다. 복고적이면서도 단아한 건물은 일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입니다. 크지 않아도 다양한 수종을 갖춘 정원과도 매우 잘 어우러집니다. 그의 타계 후 소장품 1000여점을 종로구에서 기증 받아 종로구청에서 직접 가옥을 관리하며 미술관으로 변신시켰습니다. 고풍스러운 집 분위기와 정원은 화가가 직접 사용해오던 모습을 가급적 그대로 보존하면서 미술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2층 규모의 내부에 8개 전시실을 뒀습니다. 각 방과 복도 등이 모두 전시공간입니다. 무엇보다도 욕실도 전시실로 바꾼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변기와 욕조 옆에 작품 도록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다른 주제로 매번 기획전이나 특별전을 열고 있습니다. 정원을 한 바퀴 돌며 조각 작품도 감상하고 옆 언덕 위 전망대로 올라가 주변 일대를 내려다 볼 수도 있습니다. 정원은 넓지는 않지만 단아합니다. 미술관 부근에 까페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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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비밀정원`엔 누가 살까?

서울 종로구 옥인동길을 따라 15분가량 걷다 보면 도심 속 보물 같은 계곡, 수성동 계곡을 만날 수 있다. 수성동 계곡은 인왕산 바로 아래를 흐르는 계곡으로 겸재 정선의 <수성동> 회화에도 등장한다. 실제 겸재 그림과 비교해보면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낸다. 계곡을 빙 둘러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옥인 1길로 들어서면 이곳 동네 주민들이 '비밀의 정원'이라고 부르는 집이 나온다. 바로 9월 11일에 개관한 박노수 미술관이다. 박노수 화백은 한국의 전통 방식을 취하면서도 간결한 색감과 대담한 터치 등 독자적인 화풍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 사회 환원에 뜻을 가지고 종로구와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 설립을 위한 기증협약을 맺었다. 2013년 2월 박노수 화백은 타계하였으며, 2013년 9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2층 건물의 붉은 벽돌과 마당에 있는 수석은 잔잔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실제 박노수 화백이 살았던 집으로 안방, 서재 등 화백님의 손길이 남아있는 장소는 <달과 소년>展 이 전시 중이다. 실제 거주하던 집을 전시관으로 꾸며 신발을 벗고 들어가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고아한 품격과 파격적 구도와 색감으로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표현했던 박노수 선생님의 대표작품을 3개의 전시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첫 번째 전시실에는 총 7점의 대표작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가 거실과 안방으로 썼던 공간으로 마루, 장판지로 마감되어 개인의 주거공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투명한 쪽빛과 과감한 구도는 시원함을 전해주고, 홀로 달을 등지고 서 있는 소년의 뒷모습은 외로움을 말해주는 듯하다. 두 번째 전시실에는 70~80년대 초 산수화를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화면을 주제에 8할 이상 할애하던 이전의 산수화 기법과 달리 박노수 선생님만의 독특한 산수화의 시작을 보여준다. 이 전시실은 작가가 화실 겸 서재로 쓰던 곳으로 마루와 베란다, 벽난로가 이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세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