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근린공원 안의 정자모습

도심 속 숨은 정원, 역사를 품은 ‘정동근린공원’

덕수궁 돌담길에서 이어지는 정동길 ⓒ김은주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마주하는 ‘정동길’은 역사적 흔적과 마주하게 한다. 역사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몇 줄의 기록은 현실에서 버젓이 존재하고 있으며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기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정동길을 걷던 중 구 러시아 공사관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무심코 지나친다면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표지판은 도심 속 숨겨져 있는 역사의 지시등 같다. 좁은 골목길에서 만난 구 러시아공사관 표지판 ⓒ김은주 이 곳, 러시아 공사관은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을 가진 곳이다. 공사관은 공사가 주재지에서 사무를 보는 공간이다. 미국공사관, 러시아공사관, 영국공사관, 프랑스공사관, 독일공사관, 벨기에영사관 등 구한말 정동 일대는 여러 공사관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 터만 존재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구 러시아 공사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정동근린공원이었다. 정동 지역 거주자의 보건과 휴양, 정서 생활의 향상을 위해 조성된 정동근린공원 일대는 옛 러시아공사관의 부지였기에 공원 안에는 러시아공사관이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공원 산책과 함께 역사를 배워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해준다. 중구에 있는 정동근린공원의 모습 ⓒ김은주 공원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서양식 르네상스식 풍의 건물을 볼 수 있다. 마치 유럽의 어느 건물을 연상시켰던 구 러시아 공사관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고, 지금은 3층 석탑만이 남아 이곳이 구 러시아 공사관이었음을 알려준다. 3층 석탑은 흰색 칠로 마감되어 복원되었으며 3층의 전망대에서는 서울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고 한다. 3층 석탑은 사적 제25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현재는 보수 공사 중이어서 천막에 가려져 있다. 보수 중인 구 러시아공사관의 3층 석탑 ⓒ김은주 러시아 공사관이 우리의 역사책에 많은 부분 거론되었던 이유는 ‘아관파천’이라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러...
지난 8월 한시적으로 개방한 `고종의 길`

미리 걸어본 ‘고종의 길’…결코 짧지 않은 120미터

지난 8월 한시적으로 개방한 `고종의 길`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2) 고종의 길 ‘길’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 자동차 등이 다닐 수 있는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뜻한다. 길을 통해 사람들과 상품들이 오가면서 새로운 문물이 전파된다. 그 밖에도 길은 누가 언제 걸었고,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따라서 기억되거나 되살아나기도 한다. 서울시가 8월에 한시적으로 개방한 ‘고종의 길’이 그렇다. 이 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걸었던 길이다. 그리고 고종이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대한제국을 둘러싼 정세와 일본의 야심 때문이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고종은 개인적으로도 큰 아픔을 겪었는데 1895년,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으로 쳐들어와서 부인인 명성왕후를 시해한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고종은 다음해인 1896년, 경복궁을 탈출해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다. 당시 러시아를 아라사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 사건은 아관파천이라고 불린다. 1년의 피신 기간이 끝나고 고종은 환궁을 하면서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하지만 고종이 돌아간 곳은 경복궁이 아니라 당시에는 경운궁으로 불린 덕수궁이었다. 고종에게 경복궁은 너무 커서 지키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내가 피살되었다는 고통의 장소였다. 반면 덕수궁은 주변인 정동 일대에 외국 공사관과 학교, 교회 등이 밀집해 있어서 일본이 섣불리 손을 쓸 수 없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덕수궁과 정동은 대한제국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탑만 남아 있는 러시아공사관 지금은 탑 밖에 남지 않은 구 러시아 공사관은 덕수궁의 선원전과 붙어있었고, 작은 길이 중간에 있었다. 선원전은 임금의 어전과 신주를 보관하던 곳으로 지금의 신문로를 가로질러 경희궁과 연결된 홍교로 연결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길 중간에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탑만 남은 러시아 공사관의 본관 뒤편에는 비밀 통로가 난 흔적이 남아있다고 전해진다. 아마 고...
오는 10월 정식 개방하는 '고종의 길' 입구

‘미스터 션샤인’ 보고 한번 가보고 싶었던 길

오는 10월 정식 개방하는 '고종의 길' 입구 요즘 TV드라마 을 즐겨보고 있다. 1900년대 초반, 일본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우리나라에서 힘겨루기를 하며 침략의지를 드러내는 격변기에 조선최고 명문가 애기씨 고애신(김태리 분)과 그녀를 둘러싼 세 남자의 순정적 사랑이 몰입감을 높여준다.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갖은 고생 끝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군인이 되어 돌아온 유진초이(이병헌 분)와 조선을 돈으로 지배한 할아버지에 반감을 사고 룸펜으로 살다가 고애신을 위해 고애신의 그림자가 되어 주길 약속하는 정혼자 김희성(변요한 분), 백정의 아들로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일본에서 자객이 되어 돌아와 애신 곁에서 맴도는 구동매(유연석 분)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지키기에 안달했던 부역자들과 달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민중들의 편에 조금씩 다가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의병활동에 깊숙이 관여하는 고애신과, 아슬아슬 펼쳐지는 로맨스도 보기 좋지만 이들이 근무하고 공부하며 걸었던 정동거리를 상상해 보는 건 더 즐겁다. 드라마를 보고 나면 그 당시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정동길을 걷고 싶어진다. 특히나 고종황제가 일본의 암살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던 그날 황제의 가마가 지났다고 짐작되는 ‘고종의 길’이 8월말까지 시범 개방 중이라니 길을 나섰다. ‘고종의 길’은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공관까지 이어지는 120미터 길로, 8월 한 달 간 시범 공개 후 10월 정식 개방한다. ‘고종의 길’을 걸어보기 위해 13년 간 대한제국의 궁궐로 쓰던 덕수궁으로 들어섰다. 고종이 승하하면서 전각들이 훼손되고 궁궐이 잘려나가 규모가 축소되는 등 심하게 훼손된 덕수궁은 지금 복원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 길을 걸어 석조전 뒤로 가니 ‘고종의 길’을 안내하는 배너가 보였다. 새로 개방된 '고종의 길'은 120미터이다 120미터의 돌담길은 좁고 짧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미대사관으로 넘어갔던 토지 소유권이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
환구단에서 황궁우로 가는 황제의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한 답사단 ⓒ최용수

정동에서 ‘대한제국의 길’을 걷다

환구단에서 황궁우로 가는 황제의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한 답사단‘대한제국(大韓帝國)’, 반만년 역사 중에 유일하게 황제를 모시며 살았던 우리의 나라 이름이다. 아관파천에서 환궁한 고종은 1897년 10월 12일 환구단(圜丘壇)에서 천제를 올리는 의례로 황제에 즉위했다. 당시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니시-로젠 협정’의 체결로 한반도에서 국제세력이 힘의 균형을 이루자 자주독립국을 선포한 것이다. 이후 국치일인 1910년 8월 29일까지 대한제국의 13년, 그 이야기를 정동길에서 되짚어봤다.지난 21일 오후 3시, ‘310인 시민위원회’ 위원 60여 명이 ‘환구단’에 모였다. ‘3.1운동 100주년 및 대한민국 100주년 기념사업’의 마지막 답사 코스로 선정된 ‘대한제국의 길’을 걷기 위해서이다. 국권 회복과 국민국가를 태동시킨 제국의 역사를 상기하고 재조명하기 위한 답사였다. 안내와 그날의 이야기는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총감독(서해성)이 스토리텔링 해 주었다.답사의 시작은 대한제국을 선포한 ‘환구단’에서 시작되었다. 이어 근대국가로의 꿈과 희망이 담겼던 ‘덕수궁’, 매국적인 협정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 ‘중명전’, 대한제국 중립외교의 거점이었던 ‘손탁호텔(Sontag Hotel)’ 그리고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장소 ‘구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지는 총 2.6km 구간으로 구성되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120년이 흐른 오늘날 옛 역사의 흔적에서 ‘대한제국의 이야기’를 더듬어보았다. 팔각형 황궁우를 둘러보는 답사단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환구단((圜丘壇, 사적 제157호)은 역대 왕조에서 유교적인 의례에 따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단(祭天壇)이었다. 고려 성종 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화했으나, 고려 말 배원친명(排元親明) 정책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조선 세조 때 몇 차례 거행된 바 있으나 본격적인 제사는 1897년 환구단을 건립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식민지배...
정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구러시아공사관에선 정동일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최은주

“아는 만큼 보여요” 정동 한바퀴 해설 프로그램

정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구러시아공사관에선 정동일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서울 정동은 대한제국의 가슴 아픈 역사가 배어있는 곳이자 근대 역사의 문화유산이 모여 있는 곳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물을 편안하게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그곳에 있는 문화유산에 깃든 역사를 알면 더욱 뜻깊은 곳이다. 이 같은 이유로 주말에 정동 일대를 돌아보는 문화관광 해설 프로그램인 ‘정동 한바퀴’는 인기가 많다. 얼마 전까지는 주말에만 해설사의 해설을 들을 수 있었지만, 더 많은 시민이 접할 수 있도록 규모를 확대해 평일에도 역사 해설을 들으며 정동 일대를 돌아볼 수 있게 됐다. 해설사가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인 중명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좌), 경청 중인 참가자들(우). ‘정동 한바퀴’ 참여를 위해 중구청 홈페이지에 예약하고, 약속장소인 정동극장 앞으로 갔다. 봄나들이하기 좋은 날씨여서인지 평일 낮인데도 20명이나 모였다. 참가자들은 두 명의 해설자와 함께 두 팀으로 나뉘어 정동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탐방코스는 정동극장부터 덕수궁 중명전, 구러시아공사관, 이화백주년기념관,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을 거쳐 시립미술관까지 총 1.5㎞ 1시간 코스였다. 러시아공사관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고 현재는 탑만 남아있다. 을사늑약의 현장인 중명전을 지나 언덕길을 오르니 아관파천의 슬픈 역사가 깃든 구러시아공사관 탑이 보였다. 대한제국 당시 해외공관 중 가장 규모가 컸다는 러시아 공사관은 정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시야가 탁 트여 경운궁은 물론 멀리 남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위치였다. 한 참가자는 “현장에 와 보니 당시 러시아의 힘이 어느 정도 컸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며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유관순 열사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정동제일교회 3.1운동 때 파이프오르간 속에 몰래 들어가 독립선언서를 등사했고, 유관순 열사의 장례식이 치러진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 정동제일교회에서는 그 역사에 대...
대한문

근현대사 100년의 발자취, 정동길을 걷다

정동길은 서울시민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든 공통의 기억이자 감성이 녹아 있다. 근대 외교사 100년의 흔적과 현재, 그리고 미래 100년이 교차하는 정동길을 걷는다 정동길 코스 성공회성당 서울에서 보기 드문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면서도 한국적 정서의 처마장식, 기와지붕 등을 적용한 아름다운 건물이다. 1978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돼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 성당 뒤편에는 전통적인 한옥 양식 건물이자 왕족과 귀족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하던 양이재가 있다. 주소 중구 세종대로19길 16 서울특별시의회(옛 부민관) 서울특별시의회는 원래 근대사의 굴곡을 함께한 경성부 부립 부민관이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전쟁을 독려하는 정치 집회 장소였고 광복 후에는 미군이 사령부, 한국전쟁 중에는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별관 등으로 사용했다. 현재는 시의회 의사당과 사무처, 기자실 등이 들어서 있다. 주소 중구 세종대로 125 환구단 고종의 황제 선포식이 열리고 명성황후의 장례식이 열린 환구단의 부속 건물 황궁우.중국, 일본과 대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고종은 왕이 아닌 황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조선도 황제의 나라임을 선포함으로써 자주독립 국가의 면모를 갖추기로 했다. 그 황제 즉위식을 위해 만든 제단이 환구단이다. 주소 중구 소공로 106 덕수궁 덕수궁은 조선 시대의 궁궐로 원래의 명칭은 경운궁(慶運宮)이지만,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뒤 이곳에 살면서 명칭을 덕수궁(德壽宮)으로 바꾸었다. 덕수궁 주변의 정동길은 서울 미래 유산이 대거 몰려 있는 문화 역사의 보고(寶庫)이자 근대 열강들의 외교 각축장이었다. 정동길 덕수궁 돌담길은 한국 근대사를 이해하기에 맞춤인 공간이다.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일제의 경성법원 건물이나 구한말 신식 교육의 산실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그리고 러시아공사관 첨탑과 프랑스공사관 유구 등 덕수궁 돌담길 곳곳에는 지난 시대 이 땅에서 벌어진 격동의 역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