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있는 대형태극기 조형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애국지사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다

광복절에 기억해야 될 ‘파란 눈의 애국지사’ 4인방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있는 대형태극기 조형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애국지사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8월이면 부르는 광복절 노랫말이다. 최근 일본을 보노라면 임진왜란, 일제강점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광복은 어느 날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애국지사들의 피나는 투쟁 결과물이다. 광복절이 다가오면 우리는 애국지사들을 되새긴다. 그런데 독립을 위해 노력한 사람 중에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파란 눈의 애국지사’들이 있다. 광복절만이라도 이들을 기억하는 날이 되었으면 싶다. 기억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고 작은 보답이기 때문이다. 기억해야 될 외국인 독립운동가 4인을 소개한다. 월암근린공원 ① 고종이 한국명을 하사한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 “나는 죽지만 신보(申報)는 영생케 하여 대한민국 동포를 구하시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들어 있는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의 유언이다 . 광화문에서 경교장을 지나 10여분 인왕산 성곽길을 따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월암근린공원’이 나온다 . 이곳에 베델이 살던 집이 있었고, 지금은 공원 한켠에 ‘베델의 집터’라는 표석(標石)이 남아있다. 델집터 표석 베델은 언론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친 영국 출신의 애국자이다. 32세 때인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특파원으로 한국에 온다. 이미 국운이 기운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양기탁과 함께 국·한문 및 한글판 와 등 3개의 신문을 발행한다. 일제는 언론에 대해 엄격하게 통제했으나 영국인이란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베델의 신문에는 손 댈 수가 없었다. 헤이그 특사파견, 국채보상운동, 시일야방성대곡, 황무지 개간권 반대, 고종 밀서 등을 보도하며,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운다. 결국 ‘공안을 해친다는 죄’로 체포되어 근신형과 금고형을 받는다.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909년 5월 37세로 사망, 유언에 ...
3월 1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앨버트 테일러의 집 딜쿠샤(Dilkusha) 임시개방됐다.

“붉은 벽돌집에 다녀오다” 딜쿠샤 가옥 임시개방

3월 1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앨버트 테일러의 집 딜쿠샤(Dilkusha)가 임시개방됐다. 3.1운동을 세계에 처음 알린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의 집 ‘딜쿠샤(Dilkusha)’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임시개방됐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을 가진 딜쿠샤 가옥이 안 그래도 궁금했던 터라 딜쿠샤로 향하는 발걸음이 기대에 찼다. 딜쿠샤의 붉은 벽돌과 아치형 창문 경교장, 한양도성 성곽길을 따라 동네 길을 걷다 보니 평범한 골목길 안에 커다란 붉은 벽돌집이 눈에 들어왔다. 가림막으로 가려놓고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붉은 벽돌과 아치형 창문, 그 옆에 아름드리 은행나무까지 이 집이 딜쿠샤란 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서울시가 마련한 시민참여 장소에는 사전 신청자와 관계자 등 70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중에는 의미있는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려고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이 특히 많았다. 딜쿠샤와 앨버트 테일러, 메리 테일러에 대해 소개한 전시물 그곳에 가보니 이 집을 왜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 불렀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광산업을 하며 조선의 독립을 돕던 테일러 부부가 한국에서 추방 당한 후 딜쿠샤는 오랜 세월 방치됐다. 그러는 사이에 17가구에 달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불법건축물을 짓고 살았다. 딜쿠샤는 심하게 망가지고 훼손됐다. 빌라와 주택들이 이어진 좁은 골목에 낡고 음산한 딜쿠샤가 주민들에게 어떻게 비쳤는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아 보였다. 딜쿠샤 시민참여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이 집은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집을 찾아나선 후에야 딜쿠샤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2017년에는 등록문화재 제687호 ‘서울 앨버트 가옥’으로 등록됐다. 집 주변을 돌다가 돌에 새겨진 딜쿠샤라는 글씨를 보았다. 해설사와 현장 관계자에게 딜쿠샤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공사현황을 듣고 주변을 자유롭게 둘러보...
1929년 딜쿠샤 전경

3월 1일 ‘딜쿠샤’ 복원현장 시민 공개…선착순 모집

1929년 딜쿠샤 전경 3월 1일 3·1운동을 해외에 처음으로 보도한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가 거주했던 가옥 ‘딜쿠샤’가 시민에게 최초 공개된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딜쿠샤’ 복원공사 현장을 시민들에게 최초로 공개하고, 시민 참여행사를 진행한다. 복원공사 현장 개방시간은 3월 1일 오후 2시~오후 4시 20분으로, 시민 참여행사는 선착순으로 참가자를 모집한다. ‘딜쿠샤’ 내부는 안전을 위해 개방되지 않는다. 딜쿠샤 외부전경 이번 시민 참여행사는 딜쿠샤를 포함한 덕수궁, 정동, 경교장 등 독립운동 유적 답사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딜쿠샤'와 ‘앨버트 테일러’에 대한 이야기부터 현재 진행 중인 복원공사 설명까지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으로 준비했다. 답사 프로그램은 덕수궁→정동→경교장→딜쿠샤 등 4개소를 방문하는 약 한 시간 반(14:00~15:30) 코스로 진행되며, 현장교육 전문강사가 대한제국시기~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설명할 예정이다. 딜쿠샤의 주인이자 AP통신사의 한국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부인 ‘메리 테일러’ 또 딜쿠샤의 주인이자 AP통신사의 한국 특파원으로 3·1운동 독립선언서와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외신에 처음으로 보도한 ‘앨버트 테일러’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답사의 마지막 코스 '딜쿠샤'에 도착하면 현재 진행 중인 원형 복원 공사와 '딜쿠샤'의 건축적 의의에 대해 알아보고,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돌아 본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향후 일제강점기 외국인의 생활상과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전시관으로 조성될 '딜쿠샤'에 대한 설명을 듣고, 행촌동의 상징 은행나무 앞에서 포토타임을 가진 후 행사를 마무리한다. 시민 참여행사 답사프로그램 참가자는 초~고등학생 자녀를 둔 최대 4인 가족을 대상으로 하며, 2월 20일 오전 10시부터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에서 ‘딜쿠샤’ 검색 후 참여할 수 있다. ...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삼일절 되기 전에 ‘여기’는 꼭 가보세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역사유적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딜쿠샤 가옥을 복원 중이다. 딜쿠샤 가옥은,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세계에 알린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살았던 집으로, 서양 근대기술이 도입된 서울의 몇 안 되는 서양식 가옥이기도 하다. 주인을 잃고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 불린 만큼 낡고 음산해진 딜쿠샤 가옥을, 3.1운동 100주년에 맞춰 복원을 한 다음 시민들에게 개방하려고 했다. 그러나 개방이 연기되어 3·1운동 10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시기에 원형으로 복원된 가옥을 직접 볼 수는 없게 되었다. 앨버트 테일러 부부 그 아쉬움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으로 달래보자. 호박목걸이는 앨버트 테일러의 아내 메리가 남편에게 받은 결혼선물이자, 25년 간 그들의 서울살이를 기록한 자서전이기도 하다. ‘호박목걸이’ 영문판과 한글판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당시 딜쿠샤 가옥 내부를 재현해 놓은 모습과 테일러 부부가 사용하던 식기와 생활용품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테일러의 아내 메리가 쓴 의 초고도 보인다. 메리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 한국에서 겪었던 일을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 결과 영문판이 먼저 세상에 나오고 한국어판까지 니오게 되었다. 딜쿠샤에서 테일러 부부가 사용했던 식기(좌), 메리가 남편한테 결혼선물로 받은 호박목걸이(우) 앨버트 테일러가 당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과 얼마나 깊이 연관돼 있었는가 전시장에 와보면 알 수 있다. 테일러는 세브란스병원에서 갓 태어난 아들의 요람 밑에서 독립선언서를 발견했다. 일본경찰이 병원을 수색할 것을 염려하여 외국인인 테일러의 병실에 숨겨둔 것이다. AP통신 기자를 겸하고 있던 테일러는 독립선언서와 3.1운동에 관한 기사를 써서 한국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널리 알렸...
내년 3월 10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가 계속된다.

우리가 몰랐던 ‘딜쿠샤와 호박목걸이’에 얽힌 이야기

내년 3월 10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가 계속된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내년 3월 10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딜쿠샤’라는 낯선 이름만큼이나 알려진 바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06년 오랫동안 ‘귀신 나오는 집’이라고 불릴 만큼 방치되었던 종로구 행촌동의 한 서양식 건물이 그 역사를 되찾았다. 오래전 이 집에서 태어난 미국인 브루스 T. 테일러가 자신의 부모님이 짓고 자신이 태어난 집의 행방을 찾은 것이다. 그의 부탁으로 집을 수소문했던 서일대학교 김익상 교수는 브루스가 전해준 어머니 메리의 자서전 를 정독하며 단서들을 찾아 두 달 만에 드디어 딜쿠샤의 신원을 밝혀냈다.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이라는 부제의 이 책에는 그들의 서울생활이 그림 그리듯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듬해 브루스는 66년 만에 서울을 찾았고, 비로소 은행나무골 붉은 벽돌집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살았던 역사적인 집 ‘딜쿠샤’에 자리한 500년 된 은행나무(좌)와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의 ‘딜쿠샤’라 쓰인 정초석(우) 2006년 아버지 브루스 테일러와 동행했던 제니퍼 린리 테일러는 2015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다시 서울을 찾아 딜쿠샤 관련 자료 30여 건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테일러 가문 자료를 포함한 1,026건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번 전시는 그 가운데 310점이 공개되는 것이다. 4개의 주제로 구성된 전시는 테일러 가문 유물 기증과 테일러 부부의 서울생활(1917-1922),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1923-1942), 그리고 일제에 의한 강제추방(1942-1948)으로 이어지는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딜쿠샤의 안주인 메리 테일러가 남편 앨버트 테일러에게 결혼선물로 받은 호박목걸이가 전시돼 있다. 평안북도 운산금광을 운영하던 아버지와 함께 조선에 온 앨...
종로구 행촌동의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불리던 집은 사실은 ‘딜쿠샤’란 이름의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거주했던 역사적인 집이다

3·1운동 알린 ‘앨버트 테일러와 딜쿠샤’ 유물 최초 공개

종로구 행촌동의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불리던 집은 사실은 ‘딜쿠샤’란 이름의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거주했던 역사적인 집이다 종로구 행촌동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500년 된 은행나무가 보인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준 은행나무 맞은 편엔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 불리웠던 붉은 벽돌의 서양식 가옥이 있다. 언뜻 봐도 특별한 외관에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이 집은 오랜 시간 동안 누구의 집이었는지 알 수 없어 많은 이들의 추측만 난무했었다. 2005년 베일에 쌓여있던 붉은 벽돌집의 정체가 알려졌다. 미국인 브루스 티켈 테일러는 그가 어릴 적 살던 집을 찾는 작업을 김익상 교수에게 의뢰했고, 김교수는 그 집이 바로 행촌동의 ‘귀신이 나오는 집’임을 2개월에 걸쳐 밝혀냈다. 이 집은 특이하게도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딜쿠샤(DILKUSHA)란 이름의 붉은 벽돌집은 미국인 부부 앨버트 W.테일러와 메리 L.테일러가 거주했던 곳이었고, 브루스 T.테일러는 어릴 적 살았던 그의 집을 찾았다.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중이다 딜쿠샤의 집주인인 앨버트와 메리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린리 테일러는 딜쿠샤와 가문 자료 1,026건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그녀의 기증을 통해 앨버트 W.테일러 부부의 행적과 딜쿠샤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며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3일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는 2019년 3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를 통해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서울에 살았던 앨버트 W.테일러와 메리 L.테일러 부부의 유물인 은그릇, 호박목걸이, 장신구, 편지, 그 당시 경성사진들이 담겨있는 사진첩, 풍경화, 태극기, 공예품 그리고 그들이 거주했던 딜쿠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앨버트 W.테일러는 AP통신사 임시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취재해 전세계에 전했다. 앨버트 W. 테일러는 1875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당시 조선에서 금광사업을 했...
정상에서 내려본 인왕곡성(오늘쪽 돌출부 성곽)과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 성곽 모습

한양도성 인왕산구간 구석구석 탐방 포인트 10

정상에서 내려본 인왕곡성(오늘쪽 돌출부 성곽)과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 성곽 모습 국보 216호인 ‘인왕제색도’는 조선 영조 때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이다. 한여름 소나기에 젖은 인왕산 바위의 모습을 묵중한 필체와 대담한 배치를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낸 겸재의 대표적 수작이란 평가이다. 조선 개국 초기까지 서산(西山)이라 불리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仁王)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서산을 개칭했다고 한다. 일제는 인왕산의 표기를 인왕산(仁旺山)으로 바꿨으나, 1995년 본래 지명인 인왕산(仁王山)으로 환원했다. 인왕산은 한양도성 18.6km 중 풍수지리상 경복궁의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진산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군 특수요원들의 청와대 습격 사건 이후 경비 강화를 위해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다가 1993년에야 재개방되었다. 앞서 소개했던 한양도성 낙산구간과 백악구간에 이어 세 번째로 인왕산구간을 소개한다. 특히 탐방로 곳곳에는 역사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있고 능선마다에는 도심조망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이번 탐방의 시작점은 ‘돈의문터’에서부터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도보 5분이면 ‘돈의문 터’에 도착한다. 인왕산 구간으로 진입하면 화장실이 없으므로 출발 전 미리 다녀오는 것이 좋다. 쉬엄쉬엄 걸으며 살펴볼 인왕산구간 탐방 포인트 10개를 모아본다. ① 보이지 않은 문 ‘돈의문 터(敦義門)’ 돈의문 터는 강북삼성병원 입구 정동사거리에 표지석으로 남아 있다. 태조 때 만든 돈의문은 도성의 서쪽 대문(大門) 역할을 하다가 태종 13년(1413)에 세운 서전문(西箭門)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1422년 세종(4년)이 대대적인 도성 수축(修築)을 하면서 새로운 돈의문을 세웠는데 그 위치가 바로 지금의 ‘돈의문 터’이다. 새 돈의문은 신문(新門)이라 불리면서 우리가 부르고 있는 도로명 ‘신문로’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
딜쿠샤 현재 모습

종로 행촌동 붉은 벽돌집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고색창연한 붉은색 벽돌로 만들어진 딜쿠샤 모습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6) 딜쿠샤 월암 근린공원에서 서대문역 방향으로 쭉 가다보면 왼쪽으로 휘어진 골목길이 나온다. 그리고 골목길이 꺾어지자마자 2층 주택이 마치 터주 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다. 빌라와 아파트 사이에서 고색창연한 붉은색 벽돌로 만들어진 이 집의 이름은 딜쿠샤(Dilkusha)로 힌두어로 이상향 혹은 기쁨을 뜻한다. 장독대로 사용되던 공간 안쪽에 딜쿠샤와 1923년이라는 숫자가 화강암에 새겨져있다. 이 저택의 주인은 앨버트 테일러로서 원래는 광산업과 무역업을 하던 사업가였다. 앨버트 테일러와 우리의 인연은 그의 아버지인 조지 테일러부터 시작된다. 금광 기술자였던 그는 대한제국 정부가 미국에 불하한 운산금광에서 일하기 위해 입국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앨버트 테일러 역시 아버지와 함께 금광에서 일을 하면서 무역업에 종사했다. 그에게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이 땅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남의 나라 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1919년 3월 1일, 그는 남의 나라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일본경찰이 찾아다니던 독립선언서를 앨버트 테일러의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가 입원한 세브란스 병원의 병실에 숨겨둔 것을 우연찮게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입수한 독립선언서를 동생을 통해 일본으로 가져가게 해서 전 세계에 알리도록 했다. 아울러 일본이 3.1만세 운동을 일으킨 보복으로 군대를 동원해 제암리 마을과 교회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앨버트 테일러는 스코필드 목사와 더불어 제암리 학살 사건을 취재하고 이를 세계에 알리는 한편, 조선 총독부에 엄중하게 항의했다. 덕분에 그는 몇 달 동안 감옥에 갇혀야만 했다. 딜쿠샤는 그런 앨버트 테일러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이다. 옥고를 치른 앨버트 테일러가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1923년 지은 이 저택이 딜쿠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영국인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 때문으로 추측된다. 일반적인 서양식 주...
시민들이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렀던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있다.

3.1운동 100주년 6대 랜드마크는?

시민들이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렀던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있다. 9일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는 삼일대로를 3.1운동 대표가로로 조성하기 위한 ‘삼일대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3.1운동 대표가로로 조성계획 및 향후 추진계획을 공유하고, 주민대표 33인이 참여하는 토론 및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시는 전문가 및 지역주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3.1운동 100주년기념 대표가로 조성사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서울시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6대 랜드마크로 ▲3.1운동 대표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항일 독립운동 테마 역사 ▲만인보의 방 ▲딜쿠샤 복원 ▲남산 예장자락 역사 탐방로를 조성한다. 특히 삼일대로는 3·1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3·1운동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66년에 명명된 도로이지만, 지역 주민과 상인들마저도 그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실정. 시는 삼일대로와 그 주변지역을 3·1운동 대표가로로 조성하여, 3·1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할 계획이다. 100주년기념 대표가로 조성사업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건립, 탑골공원 원형 회복, 천도교중앙 대교당 기념공간 조성 등이 포함돼 있다. 3.1운동 독립선언서,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외신으로 최초 보도한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미 AP통신사 임시 특파원(special correspondent) 앨버트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 1875~1948)의 가옥 딜쿠샤가 70년 만에 복원된다. ‘딜쿠샤(Dil Kusha)’는 힌두어로 ‘이상향’, ‘희망의 궁전’이란 뜻으로, 앨버트 테일러가 조선의 독립을 꿈꾸며 1923년 지어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약 20년간 아내와 함께 머문 집이다. 임시정부 기념관 조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은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지하1층~지상4층 규모로...
행촌성곽마을의 현재 모습. 과거 이곳에는 뽕나무가 많아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였다. ⓒ최용수

우리가 몰랐던 행촌성곽마을 이야기

행촌성곽마을의 현재 모습. 과거 이곳에는 뽕나무가 많아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였다. 광화문에서 경교장~서울교육청을 지나 10여분 올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교남동, 행촌성곽마을’이라는 안내간판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행촌권 성곽마을의 시작점인 ‘월암근린공원’ 입구이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성곽마을을 7개 권역으로 나누어 역사, 도시형태 및 생활문화자료조사, 주민인터뷰 등을 실시하여 최근 『성곽마을 생활문화기록집』을 발간하였다. 그중 ‘행촌성곽마을’은 한양도성 서쪽 인왕산 성곽아래 자리한 행촌동과 교남동 일대를 말한다. 이곳은 조선 후기에 자생적으로 생겨난 성곽 바깥마을로,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이자 한국 커피 문화의 발상지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였으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투사들의 옥바라지 마을이었다. 행촌권 성곽마을을 안내하는 입간판과 성곽이 보이는 교남동 월암근린공원 입구 1884년 고종황제는 부국강병의 일환으로 일종의 관영회사인 ‘잠상공사(蠶桑公司)’를 설립한다. 잠상공사는 중국 상해로부터 뽕나무 100만 그루를 수입하여 서울·인천·부평에 심었고, 급기야 경희궁 후원에도 수천 그루의 뽕나무를 심었다. 경희궁과 인접한 행촌권 성곽마을 일대에도 자연스럽게 수많은 뽕나무가 재배되었고, 이에 근대 서울 실크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행촌동에선 만난 주민 장충래(76세) 어르신은 “60여년 넘게 행촌동에서 살고 있는데 어릴 때는 동네 곳곳에 대추나무, 유자나무 등이 많았고 특히 뽕나무는 앞마당, 뒤뜰 할 것 없이 없는 집이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개발로 인해 동네에서 더 이상 뽕나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토질과 기후조건이 좋아 지금은 다른 종의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근린공원 개화기에 접어들자 조선에도 커피가 전래되었다. 조선에서 최초로 커피향을 맡은 사람은 고종이다. 초대 러시아 공사였던 웨베르가 그에게 커피를 선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