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에서 ‘만세’를 외치다!

독립문이 우뚝 세워져 있는 서대문독립공원은 필자가 1년에 한 번 이상 방문하는 곳이다. 서대문형무소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매번 독립문을 지나쳐 서대문형무소만 보고 돌아왔는데, 공원 안에도 서대문형무소 못지않게 한국의 근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조형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대문구에서 운영하는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다. 지난 주말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에 참여했다. ⓒ김수정 사전예약을 한 후 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독립공원 방문자센터를 향했다. 서대문 독립공원 역사탐방을 시작하기 전 독립문이 생기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 강사가 설명해주었다.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왕이 된 태종은 자신을 왕으로 적합한지 보러 온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서대문 밖에 '모화루'를 세웠다. 이후 세종은 모화루의 규모를 확장해 '모화관'으로 개칭하고, 그 앞에 환영한다는 의미로 화강암 위에 홍살문을 세웠다. 이 문이 독립문이 생기게 된 배경이다. 탐방에 앞서 독립문 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김수정 설명이 끝나고 독립문으로 향했다. 이복형인 연산군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자신의 정통성을 명나라에 설득하기 위해 문을 개축해 청기와를 입히고 '영조문'이라는 액자를 내걸었다. 그러나 명나라 사신은 ‘조’라는 글자는 황제가 있는 나라에서 써야 한다며 '영은문'으로 고치게 했다. 이렇듯 영은문은 조선이 중국에 휘둘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이 개국하고 500년이 흐른 후 고종 때 우리도 청나라와 대등한 나라로 자주독립을 해야 한다고 외친 이들이 생겨난다. 그 중 한 명이 독립운동가 서재필이다. 그는 자주독립을 위해서는 백성들이 깨우쳐야 한다며 한글로 된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한다. 또한, 치욕의 문이라 생각된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만들도록 한다. 청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당당함을 드러내고자 한 상징물이 된 것이다. 과거를 반면교사 삼기 위해 영은문의 화강암 기둥은 남겨두었다. ...
안국역은 무더운 여름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청색 100계단이 있어서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일상 공간에서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역사와 만나는 역이다.

안국역, 전시관 못지 않은 볼거리 ‘청색 100계단’

박물관 관람이나 문화재 답사를 좋아한다면 오래 걸은 후 쉴 만한 곳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특히 여름에는 폭염을 피할 곳이 절실하다. 개인적으로 하루종일 머물기에도 좋은, 볼거리와 휴식 공간이 잘 갖춰진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꼽고 싶다. 대한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돈의문역사박물관, 서울기록관 역시 좋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역사 내 '청색 100년 계단'은 필자가 가장 최근에 발견한 역사 명소이자 도심 속 쉼터다. 안국역 내 청색 100계단, 계단에 오르면 왼쪽에 100년 강물, 오른쪽에 '3·1운동 청색지도’와 기미독립선언서, 조선독립운동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영남 청색 벽면에 기미독립선언서를 순우리말로 해석한 자음과 모음이 새겨져 있다. ©이영남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100주년을 기념한 의미있는 해였다. 1919년 3·1운동은 만인의 함성으로 독립의지를 온 세상에 알린 일이었고, 이는 1919년 4월 11일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우리 겨레는 3·1운동 과정을 통해 민족사 100년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서울시는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민주공화정, 독립운동의 가치를 일상의 공간에서 생동감 있게 호흡하고자 이를 안국역 곳곳에 담아냈다. 2019년 3월 1일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계단이다. ©이영남 기념공간과 일상공간이 구분없이 이어진 100년 계단 ©이영남  기미독립선언문을 풀이한 한글이 청색 벽면을 채우고 있다.  ©이영남 100년 역사 흐름이 강물로 흐르다 청색계단 위쪽 지하2층에는 '100년 강물'이 설치돼 있다. 1905년 을사늑약 현장,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설립,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1960년 제헌헌법 공포 기념우표, 1964년 6·3 한일협정 반대 운동, 1979년 부산·마산 항쟁,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등의 모습이 담겨 있다. ...
효창공원 의열문

8월엔 여기! 독립지사들 숨결 깃든 효창공원

※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에 따라 8월 16일부터 별도 안내 시까지 백범김구기념관은 임시휴관합니다. 용산에는 도심 속 시민들의 휴식처인 효창공원이 자리해 있다. 빽빽한 나무숲 사이로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무더운 여름철에도 걷기에 무리가 없다. 맥문동이 피어난 숲길과 소나무가 낮게 가지를 드리운 고즈넉한 산책로는 운치를 자아낸다.  효창공원은 도심 속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애국선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박분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등 애국선열들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가 있는 효창공원은 아주 특별한 공원이다. 산책로를 따라 효창공원을 한 바퀴 돌다보면 이곳이 공원보다는 묘원에 가까운 곳임을 곧 알게 된다. 효창공원이 초행길이라면 공원 곳곳에 산재한 묘소들이 한국인이면 익히 알고 있는 애국지사들의 묘소라는 사실에 또 한 차례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효창공원은 조선시대 왕실묘원인 효창원(孝昌園)이 그 효시이다. 효창원은 조선 22대 왕 정조의 아들인 문효세자와 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의 묘원이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은 이 왕실묘원을 훼손해 그들의 주둔지로 이용하면서 공원화 했다. 해방과 함께 일본군이 물러난 뒤, 백범 김구는 이곳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등 독립운동가 3인의 묘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1949년, 김구도 동지들이 잠든 이곳 효창공원에 함께 잠들었다. 효창공원의 정문에서 보면 푸른빛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박분효창공원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연못가로 높이 솟은 푸른빛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 조형물을 중심으로 ‘3의사묘역’과 ‘김구묘역’, ‘임시정부요인묘역’으로 구분지어 차례로 돌아보면 더욱 효율적이다. 공원 중심에 위치한 ‘3의사묘역’으로 먼저 발길을 뗐다. 항일투쟁을 하다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3의사묘(三義士墓)’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假墓)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안중국 의사 가묘 앞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박분그런데 묘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중근 의...
근현대사기념관이 7월 22일부터 재개관하였다

광복절 가볼 만한 명소…근현대사기념관

근현대사기념관이 7월 22일부터 재개관하였다. Ⓒ박세호 곧 8월 15일 광복절을 맞는다. 일제강점기 혹독한 식민통치 아래 신음하던 우리 민족에게 그 날은 정말 최고의 감격적인 날이었다. 그 기쁨과 감격을 오늘날에 되살려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가까이 있는 '근현대사기념관'에 가면 국권회복을 위해 피흘려 싸운 애국지사 선열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가까운 국립4.19민주묘지와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박세호 기념관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지난 한 세기동안 투쟁해 온 우리민족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개관할 수 있는 전시물들이 잘 갖춰져 있다. 일회성이 아니라, 언제고 다시 가서 본다면 역사 연표와 세계사적 배경, 그리고 현대적 분석 등 좀 더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는 등 큰 도움이 된다. 옥외 기념비와 흉상들의 전시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역사적 인물들을 내 눈앞에서 모두 만나 뵌다고 생각하니 무척 흥분이 됐다. 옥외 전시공간에 민족지도자와 우국지사들의 흉상이 자리잡고 있다. Ⓒ박세호 근현대사기념관은 ’자유’, ’평등’, ’민주’의 이념이 단순히 외래의 소산이 아니라 선열들이 피땀 흘려 체득하고 축적해 온 소중한 가치임을 강조하고 있다. 시대와 주제에 따라 다양한 전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참신한 디자인과 도표로 특징을 발휘하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저 강 건너엔 기필코 되찾을 조국이 있다' 비장함이 느껴지는 전시실 Ⓒ박세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대한민국은 근대 여명기 동학농민전쟁의 평등주의적인 인본사상에서부터 3·1만세운동의 민주공화주의, 항일투쟁과정의 자주독립정신에서 그 전통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동학사상이 독립운동과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었다. Ⓒ박세호 기념관 전시실에서는 자료를 많이 갖추고 사진 설명을 통해 동학운동과 의병운동 등 활동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개항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이 많아지자 나라 안팎의 위기...
서울의 주산 북한산 정상 삼각산 백운봉에 오르면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서울을 품은 ‘북한산’, 본래 산 이름이 뭐냐면…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야 /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나고쟈 하랴마난 / 시절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청나라로 끌려가던 김상헌이 보았을 삼각산(북한산) 3봉 ⓒ최용수 우리 귀에도 익숙한 이 시조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을 주창한 척화파 김상헌(1570~1652)이 지은 시조이다. 1640년(인조 18) 11월 반청 활동의 댓가로 노령의 나이에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충심과 슬픔이 절절하게 담겨있는 시조이다. 가파른 백운봉 암릉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모습 ⓒ최용수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에 따르면 올해 북한산을 찾은 탐방객은 3월 67만5,900명, 4월 71만4,633명으로 작년보다 무려 45%가 늘었다. 누구나 쉽게 나설 수 있는 만만한 산이 아닌데도 탐방객이 대폭 증가한 걸 보니 실로 놀랍다. 지속되는 코로나19 상황에 누적된 스트레스와 갑갑함을 해소하기에는 등산만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된 까닭일까.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니 북한산이야말로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산인 것 같다. 북한산성 성곽길에서 바라본 삼각산 3봉(좌로부터 백운봉, 만경봉, 인수봉)  ⓒ최용수 품 넓게 펼쳐진 산자락을 오르면서 내뿜는 들숨과 날숨에서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어가는 북한산, 이 곳에 수 백 년 동안 불리어왔던 고유의 이름이 있었다는 걸 아시는가. 북한산을 찾는 탐방객이라면 옛 이름과 삼각산을 이루는 3개의 주봉쯤은 기억하는 것이 서울의 진산(鎭山)에 대한 겸손이 아닐까 싶다. 오랜 세월 우리와 운명을 함께 하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삼각산의 주봉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위치를 알 수 있는 안내판 ⓒ최용수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한반도 오악의 하나인 북한산의 본래 이름은 삼각산이다. 백운봉(836.5m) · 인수봉(810.5m) · 만경봉(799.5m)이 뿔처럼 각산(角山)을 이루어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사' 등의 기록에서 대부분 삼각...
3·1독립선언광장을 밝힌 330개의 빛

3·1운동의 역사 밝히는 330개의 빛

‘빛으로 그리는 독립운동’이라니 참 어여쁜 말이다. 빛일 수 없었던 백 년 전 독립운동이 오늘 빛으로 돌아왔다. 민족의 빛, 나라의 빛이었던 독립운동이 이제 마땅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지난 8월 15일 인사동 태화관터에 ‘3.1독립선언광장’을 조성했다. 바로 이곳에서 1919년 3월 1일 33인의 민족대표가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마침내 3.1독립운동의 포문을 열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독립운동이 전국 각지에 퍼지고 해외에까지 널리 확산되었기에 더욱 뜻깊은 장소였다. 태화빌딩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민족대표 33인 ⓒ이선미 서울시는 이를 기억하며, 독립운동이 펼쳐졌던 국내외 10개 지역, 즉 하얼빈과 사할린, 쿠바와 카자흐스탄 등 해외와 백두산과 한라산에서 돌을 옮겨와 광장을 조성했다. 또한 백두산과 한라산을 상징하는 우물과 수로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33인의 민족대표를 상징하는 330개의 조명을 설치해 23일 오후 점등식을 갖게 되었다. 점등식을 축하하는 공연이 펼쳐졌다 ⓒ이선미 서해성(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은 "3.1운동은 우리 역사의 빛이고, 오늘은 3.1독립선언광장이 캔버스가 되어 시민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날"이라고 강조했다. 서해성 총감독이 광장에 배치된 돌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선미 광장 조성에 애쓴 이들도 무엇보다 이 공간이 시민들에게 친숙한 곳이 되기를 바랐다. 강맹훈(서울시 도시재생실장)과 김영종(종로구청장)의 인사도 다르지 않았다. 기존의 주차장을 광장으로 조성하는 데 많은 수고를 한 종로구 김영종 구청장과 관계자들도 이곳이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되기를 기원했다 ⓒ이선미 점등식을 축하하는 공연도 이어졌다. 퍼포먼스 그룹 ‘오’는 안중근을 주제로 한 뮤지컬 '영웅'을 보여주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영웅이지만 그저 우리와 같았던 그 시대의 사람들. 그들의 고뇌가 짧은 공연으로...
애국선열들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의 문 '의열문'

효창공원이 아닌 ‘효창원’으로 기억해주세요!

효창원 독립평화축제 모습 ⓒ구자운 선선해진 가을 날씨에 산책하기 딱 좋은 효창원이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제 1회 ‘효창원 독립평화축제’가 진행됐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주최로 기획된 이번 축제는 ‘새로고침 F5’라는 테마로 진행되었다. 5개의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을 포함한 미래세대에게 효창원의 의미를 ‘새로고침’하기 위한 축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애국선열들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의 문 '의열문' ⓒ구자운 사실 많은 이들에게는 '효창원'이라 이름보다 ‘효창공원’이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효창공원’이란 이름은 일제가 '효창원'을 바꿔 부른 이름이다. 과거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의 묘지였던 이곳은 일제에 의해 묘지가 강제 이전되면서 ‘효창공원’으로 조성됐다고 한다. 해방 이후 김구 선생이 민족의 정기를 모으기 위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묘역을 효창원에 조성했고, 같은 해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선생)의 유해 역시 이곳으로 안치했다고 한다. 효창원은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을 포함하여 총 8인의 독립운동가가 잠들어있는 독립운동의 성지로서 역사적으로 의미있고 상징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시민이 티셔츠에 그린 차리석 선생의 모습 ⓒ구자운 이동녕 선생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아이 ⓒ구자운 축제는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안장된 효창원의 의미를 되새기고, 독립운동의 역사적 순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가득했다. ‘독립운동 Playground’는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놀이들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직접 체험하는 부스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많은 시민들이 가족들 또는 친구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었다. 임시정부의 기둥이었던 차리석 선생의 생애를 담은 티셔츠 제작하기, 북로군정서의 숨은 영웅 조성환 선생의 군사 훈련 체험하기, 백정기 의사의 육삼정 의거를 테마로 한 방탈출 등을 통해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생애...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단체 300여 명이 선보이는 ‘극장 앞 독립군’ 공연 쇼케이스 현장

스케일이 달라! ‘극장앞독립군’을 봐야할 이유 6가지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단체 300여 명이 선보이는 ‘극장 앞 독립군’ 공연 쇼케이스 현장 강제 이주된 머나먼 이국땅 카자흐스탄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일제강점기,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항일무장독립운동의 영웅 ‘홍범도’의 이야기다. ‘날으는 홍범도’라 칭송받던 그의 영웅적 순간보다, 카자흐스탄에서 극장 수위로 일하던 그의 노년의 삶에 마음이 가는 건 왜일까? 세종문화회관이 야심차게 준비한 공연 ‘극장 앞 독립군’은 바로 노년의 ‘인간 홍범도’에 주목한다. 인생의 뒤안길, 쓸쓸하다 못해 초라했을 그에게 극장은 지난 삶의 의미를 일깨웠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극장은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지난 23일, ‘극장 앞 독립군’ 쇼케이스 현장에선 새로운 시도와 색다른 감동을 미리 맛볼 수 있었다. 본 공연은 오는 9월 20~2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는데, ​9월 공연이 기대되는 이유 6가지를 꼽아보았다. ①세종이라 가능한, 세종다운, 세종의 첫 통합 브랜딩 공연 ‘서울시국악관현악단·청소년국악단, 서울시무용단, 서울시합창단·소년소녀합창단​, 서울시뮤지컬단, 서울시극단, 서울시오페라단,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 이들은 모두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단체다. ‘극장 앞 독립군’은 바로 이들 예술단이 세종문화회관 개관 41년 만에 한 무대에 서는 첫 공연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산하 예술단을 보유한 제작극장이 정체성을 살려 예술단 통합 브랜딩 공연을 선보인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연출 및 출연진(좌), 총연출을 맡은 김광보 서울시극단장(우) “앞으로 세종문화회관이 나아가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은 했는데, 사실 가능할지 계속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문제점이 계속 나왔고, 일정 조절도 안 되고, 극장도 안 비워 있고... 산하 단체가 함께 하는 것이 무모한 짓이었다 생각했지만, 모두가 한자리에 처음으로 모였던 쇼케이스 리허...
효창독립 100년 공원 조성 업무협약식

‘효창독립 100년 공원 조성을 위해’ 공론화 시작

효창독립 100년 공원 조성 업무협약식 서울시가 효창공원의 위상을 바로 세워 오는 2024년 ‘독립운동 기념공원’으로 조성한다고 밝힌 가운데, 유족, 보훈, 체육‧축구계와 지역주민부터 일반시민까지 집단지성을 통해 새로운 효창공원의 밑그림 그리기를 본격화한다. 시는 ‘효창독립 100년공원(가칭)’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갈 144인의 거버넌스인 ‘효창독립 100년포럼’(이하 ‘포럼’)를 구성 완료하고, 본격적인 대시민 공론화 작업에 착수한다고 2일 밝혔다. 포럼은 독립운동가 묘역과 효창운동장을 비롯해 효창공원 일대 기본계획 수립을 주도, 조성방향을 결정하고 주요내용을 논의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해커톤, 심포지엄, 엑스포, 토론회 등 다양한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도 나선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7월 2일 서울시청 본관 대회의실(3층)에서 박원순 시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정재숙 문화재청장, 성장현 용산구청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식 및 효창독립 100년포럼 발대식’을 개최한다. 축사 중인 박원순 시장 우선 1부 협약식 및 포럼발대식에서는 사업주체인 서울시와 국가보훈처, 토지소유주인 문화재청, 공원관리주체인 용산구가 상호 협력하는 내용으로 4개 기관 간 업무협약을 체결, 사업실행 기틀을 확고히 한다. 협약의 주요내용은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을 위해 ①독립운동장 묘역과 축구장이 공존하되 하나의 공간으로 조성 ②단절된 공원을 주변과 연계, 항상 쉽게 이용하는 열린 명소 ③운동장 일부 철거 및 축구장 존치, 역사·장소 가치 존중’, 크게 3가지 조성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위한 각 기관별 협력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효창독립 100년포럼’은 ▴43인의 포럼위원과 ▴101인의 시민참여단으로 구성된다. 포럼위원은 유족, 보훈, 축구․체육계, 지역주민 등 주요인사 33인과 관련기관 당연직 10인으로 구성된다. 시민참여단은 공...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경

“독립운동가들의 고통 전해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경 기자는 서울시립대학교 평생교육원 특화교양과정 중 ‘역사교실 4기’에 참여하고 있다. 강좌 3일차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견학을 다녀왔다. 교육생들은 해설사의 안내로 오전 10시~11시 40분까지 전시실을 시작으로 옥사, 사형장, 격벽장 등 여러 시설을 견학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선열한 독립운동가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08년~1945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수감하는 장소로 쓰였다. 그리고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라는 이름으로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이 수감되었던 장소다. 3.1독립만세운동과 함께한 태극기 모습 서대문형무소 전시관을 관람하는 사람들 이곳은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되면서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재탄생됐다. 사형장과 제 10·11·12옥사는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아 1988년 국가사적 제324호로 지정됐다. 서대문형무소 수감자들. 유관순의 모습도 보인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옛 서대문형무소 건물들을 복원해 전시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관람 동선은 ‘1전시관(보안과 청사) – 2중앙사 – 3옥사 12동 – 4옥사11동 – 5공작사 – 6추모비 – 7통곡의 미루나무 – 8사형장과 시구문 – 9옥사 터와 붉은 벽돌 – 10격벽장 – 11여옥사- 12망루와 담장(입구)’ 이 순서로 참관하면 쉽게 둘러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 유관순이 수감됐던 8호 감방 전시관 1층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다양한 정보 검색실, 탄압실체자료전시와 기록영상이 있는 형무소 역사실과 영상실이 있다. 2층에는 독립운동과 일제의 탄압 실상이 전시된 민족저항실Ⅰ, 독립운동가의 수형기록표가 전시된 민족저항실Ⅱ, 사형장 지하 시신 수습실 모형이 있는 민족저항실Ⅲ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서대문형무소에 있던 기존 지하고문실을 복원해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고통을 짐작해볼 수 있다. 야외전시물로는 격벽장, 여옥사, 취사장, 망루, 담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