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 낭독하는 ‘3.1독립선언서

‘100년전 그날처럼’ 어린이들이 안국역에 모인 이유

여기는 역사가 살아 숨쉬는 3호선 안국역 2019년 2월 15일 내친구서울 어린이기자단 안국역에 모이다 이들이 안국역에 모인 까닭은? “안국역에 이런 테마 역사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3.1절을 기념하는 곳이 전철역에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많은 흔적들이 남아있어서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 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하나, 오늘 우리의 독립 선언은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한 민족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로운 정신을 드날릴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뜻을 마음껏 드러내라. 하나,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을 세운 지 4252년 3월 1일 “독립운동가님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독립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좋은 나라에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숨걸고 우리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
명민호가 그리는 서울 이야기_3.1운동 100주년

3·1운동 100주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야기

명민호가 그리는 서울 이야기_3.1운동 100주년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 3.1독립선언서 중 오늘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시내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기념행사와 공연‧전시는 물론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 등을 묶어 뉴스레터 특별판을 만들어봤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준 ‘100년 그 날’을 기억하며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새로운 100년을 기약해 봅니다! 1. 함께 읽어봐요 #세가지_독립선언서 사실 3.1운동만 100주년이 아니고, 2.1 독립선언도 100주년이고, 2.8 독립선언도 100주년입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1일, 우리 민족 첫 독립선언서 초고를 공개하는 행사에 이어 2월 8일, ‘2.8독립선언서’를 서울시교육청, 사이버외교관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와 공동으로 총 5개 언어로 번역해 전 세계에 배포했습니다. ‘2.8독립선언서’는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공식 홈페이지와 반크가 운영하는 ‘독립운동가의 꿈’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3.1독립선언서’까지, 이번 기회에 한 자 한 자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서울 3·1운동 당시의 종로 일대 2. 100년 전 그 날의 함성이 다시 울리는 서울광장 #삼일운동_100주년_기념행사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지난 2016년부터 3.1운동 100주년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해왔습니다. 시가 이번에 추진하는 ‘2019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은 지난 3년간 추진해온 사업을 완성하는 동시에 다가올 미래 100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시민과 함께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나누기 위해 3.1절 당일 서울광장 일대에서 오후 2시 ‘100년 만세행진’을 시작으로 ...
조소앙 선생의 여권사진

우리 겨레 첫 독립선언서 초고, 2월1일 시청에서 공개

조소앙 선생의 여권사진 말에도 씨앗이 있다. 대한독립선언은 독립선언의 씨앗이다. 이 씨앗이 퍼져 우리네 산천은 이윽고 ‘독립’과 ‘선언’의 대지를 이루었다. ‘민주’도 ‘공화’도 다 여기에 뿌리를 두고 태어날 수 있었다. 선언서에 서명한 39명은 39씨앗으로 밀알이 되었다. 광복을 맞아 돌아온 이는 고작 11명. 우리는 이번 대한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그 선언의 길을 섬기고 말씀을 새로 벼리고자 한다.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 서울시가 2월 1일 ‘대한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을 열고, 조소앙 선생(1887~1958)이 기초한 ‘대한독립선언서’ 초고를 공개한다. 조소앙 선생은 정치‧경제‧교육의 균형을 통하여 개인‧민족‧국가 간의 평등을 이루는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제창, 이를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제정 당시 국가이념으로 삼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다. 2월 1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최되는 이번 행사는 (사)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와 삼균학회의 주관으로 대한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그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알리고자 마련됐다. 조소앙 선생을 비롯, 만주와 러시아 지역의 독립운동가 39명이 조국의 독립을 요구하며 1919년 2월 1일 중국 동북부 길림성에서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는 이후 2‧8 독립선언서와 3‧1운동 독립선언서에도 영향을 끼쳤다. 대한독립선언서는 우리 겨레의 첫번째 독립선언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을 비롯하여 광복군 포고문과 대일본 선전포고문 등 우리 역사의 중요한 문서에 기초가 됐다. (사)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는 기념식 직후 당일 정오부터 서울광장에서 ‘밀씨 나눠주기’ 행사를 30분 간 진행한다. 밀 씨앗은 대한독립선언서가 2‧8독립선언서와 3‧1운동 독립선언서의 씨앗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조소앙 선생의 대한독립선언서 육필초고는 이후 서울시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기...
3.1운동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탑골공원 정문에는 `삼일문`이라는 명판이 붙어있다. ⓒ최용수

3.1독립선언서 길 따라 ‘100년의 시간여행’

3.1운동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탑골공원 정문에는 `삼일문`이라는 명판이 붙어있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지난 15일 오후 종로구 수송공원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1919년 3·1운동 ‘선언서(宣言書)’가 어떻게 작성, 인쇄, 운반, 낭독되어 전국적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는지, 그 날 이동 경로를 답사하는 ‘선언서의 길’ 행사였다. 오는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서울시는 3.1운동 정신이 우리 삶과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가 될 수 있도록 시민들과 함께 하는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행사를 기획했다. ‘선언서의 길’ 행사도 그 중 하나이다. 보성사 사장 이정일 동상 앞에서 답사단은 잠시 묵념 시간을 가졌다. 은죽(銀竹)처럼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시민위원 310’ 50여 명이 종로구 수송공원에 모였다. 100년 답사 첫 번째 길, 3·1 독립 ‘선언서의 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답사행사는 3·1운동 100주년 서울기념사업 총감독 서해성 교수 설명과 함께 3시부터 2시간여 동안 보성사 터 ~ 태화관 옛터 ~ 탑골공원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진행됐다. 첫 번째 장소는 조계사 후문 골목 건너편 수송공원에 있는 보성사 터이다. 공원 규모는 작았지만 3·1 독립운동 역사적 의미에서 보면 이렇게 넉넉한 공원도 드물다. 보성사(普成社)는 3·1운동 당시 를 인쇄했던 최초의 근대식 인쇄소였다. 보성사 소유주 손병희(천도교 교주)의 특명으로 최남선이 초안을 쓰고,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선언서를 넘겨받은 보성사 이종일 사장은 1919년 2월 27일 밤 3만5,000매를 인쇄한다. 운반 중 일본 측 형사에게 발각되는 위기도 있었으나 족보 책이라 위장하여 위기를 넘긴다. 또 3월 1일에는 지하신문인 1만 부도 발행한다. 이에 일경(日警)은 보성사를 폐쇄하고, 급기야 6월 28일 밤 불을 질러 태워버린다. 보성사 터에는 6.35m 높이 ‘3인의 군상과 민족정기’라...
태화빌딩 정문 앞에 세워진 `삼일독립선언유적지` 표지석ⓒ방주희

인사동에서 되새기는 3·1운동의 흔적

태화빌딩 정문 앞에 세워진 `삼일독립선언유적지` 표지석 태화빌딩이 위치한 종로구 인사동 5길 29번지를 찾았다. 인사동 한복판을 걷는 길이 낯설기도 하면서 설렜다. 태화빌딩의 자리는 3·1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에 우리 민족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태화관이 있던 곳이다. 태화관은 당시 음식집이었는데, 지금은 지하 3층과 지상 12층의 건물이 들어섰다. 현재 태학기독교사회복지관의 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신식 건물만 놓고 본다면, 이곳에서 독립만세를 제창하기까지의 긴박했던 순간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건물의 정문 앞쪽에 ‘삼일독립선언유적지’라는 표지석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 ‘기미독립선언문’이 새겨져 있다. 표지석을 보지 않았다면, 도심 속에 있는 태화빌딩이 역사 속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았다. `삼일독립선언유적지` 표지석과 `기미독립선언문`이 새겨진 벽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했을까. 33인의 민족 대표단은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 등 종교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돼 독립운동을 준비해 왔다. 1919년 1월, 고종이 갑자기 승하하자 거사일을 3월 1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2월 초 최린, 송진우, 현상윤, 최남선 등 여러 독립투사들은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하되 손병희가 제시한 원칙에 충실하도록 협의했다. 최남선이 작성한 ‘3·1 선언서’는 천도교 지도자의 주관 하에 작성된 것으로써 밖으로는 ‘인도주의’를 표방하며, 특히 제국주의인 일본 정부와 협의해 독립을 달성하려는 독립 청원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한 ‘공약 3장(公約三章)’을 첨가함으로써 독립선언서로서의 외형을 갖췄다. 조선 독립의 선언과 민족적 결의 촉구라는 주제로 쓰인 논설문이자 실용문이다. 천도교가 경영하던 보성사에서 이종일의 책임 아래 선언서 2만여 장을 인쇄해, 2월 28일부터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배포했다. 독립선언서는 3·1운동의 정신적 지침이 되었고, 전 세계로 전파돼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천명하...
`3·1독립선언서` 전문

1919년 ‘3·1독립선언서’ 문화재 등록 추진

`3·1독립선언서` 전문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3·1독립선언서> 중, ※한글풀이: 이희승 박사서울시가 ‘3·1독립선언서’의 등록문화재 등록을 추진합니다.‘3·1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 당시,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이 작성해 서울 태화관 앞에서 발표한 독립선언문입니다. 총 2만 1,000장이 인쇄돼 전국에 배포했으나,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당시 출판사 신문관과 인쇄사 보성사에서 인쇄하였으며, 이번에 등록을 추진하는 선언문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보성사판'입니다.등록문화재란 1876년 개항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의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 가치가 높은 자료를 등록, 관리하는 문화재로서 현재 총 666점이 등록되어 있습니다.시는 우리 민족이 전 세계를 향해 독립의 정당성과 결의를 표명했던 ‘3·1독립선언서’가 민족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인 만큼 등록문화재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또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를 대표해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백용성 스님의 ‘조선글화엄경’, ‘조선어능엄경’도 등록문화재 신청 목록에 포함됐습니다.시는 백용성 스님의 불경이 우리말과 글의 사용이 자유롭지 못했던 일제강점기에 민족독립의식의 고취는 물론, 불교경전의 현대화와 함께 국문 번역의 초석이 되었으며, 당시 한글의 변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 여겨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백용성 스님이 펴낸 `조선글화엄경`이밖에도 서울시는 성북구 흥천사가 소장하고 있는 경판 및 불화 등 4건과 ‘의령남씨가전화첩’ 등을 ‘서울시 유형문화재·문화재자료’로 지정 및 지정예고 합니다.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의 말사인 흥천사는 각종 불상과 불화, 경판 등 다량의 불교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절입니다. 소장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