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이 활성화 되길 바란다.

남영동 먹자골목이 활기를 찾은 이유는?

"저기 서울사랑상품권(제로페이)이  된다고 써 있는데 들어가 볼까?" “서울사랑상품권으로 결제되나요?” 확실히 썰렁했던 가게마다 손님들이 늘었다. 길거리에서도 어느 가게에서 서울사랑상품권이 사용 가능한지 묻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필자는 서울시에서 서울사랑상품권 10% 할인 이벤트를 진행할 때, 용산사랑상품권과 중구사랑상품권을 구매해 두었다. 지난 4월 사두었던 서울사랑상품권을 사용할까 싶어,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남영동 먹자골목 입구, 아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김윤경 집에서 조금 걸어야해 자주 다니지 않았던 골목을 찾았다. 용산구 숙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남영동 먹자골목이다. 원래 남영동 먹자골목은 한강대로 84길 일대를 지칭하는데, 요즘은 남영동 인쇄 골목이 바뀐 '열정도'와 맛집과 핫플레이스가 늘어난 '숙대 정문 입'구 등을 함께 일컫기도 한다.  오랜만에 찾은 골목은 달라져 있었다. 입구에는 멀리서도 보이는 새로운 아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고, 먹자골목 안내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었다. 지난해 말, 동주민 참여 사업(동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한 조형물이었다. 키오스크를 통해 다양한 식당과 카페 등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어서 좋다 ©김윤경 키오스크에는 남영동 먹자골목을 중심으로 음식과 즐길거리, 카페, 편의시설까지 나와 있다. 음식에는 한식, 양식, 일식, 퓨전, 중식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한식을 선택하자 가게 사진과 이름이 나왔고, 그중 맛있어 보이는 가게를 누르자 지도에 위치와 함께 가격 정보나 주요 메뉴 등을 알려줬다. 뿐만 아니다. 디저트와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카페가 나와 있고 병·의원과 잡화, 뷰티 같이 필요한 편의 시설도 나와 있어 찾기 수월했다. 특히 스마트폰보다 큰 화면으로 자세히 안내를 해주니 이곳을 처음 찾는 시민들에게 더욱 유용할 듯싶다. 이 먹자골목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온 한식집이나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대포집도 있으니 유명 맛집을 찾고 싶을 때도 사용하면 좋겠다. 최신 키오스크는 외...
해방촌에 위치한 카페의 루프탑에 앉으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해방촌과 신흥시장…야외승강기 타고 골목여행

서울에서 가장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요즘 뜨고 있는 거리가 있다. 바로 해방촌 오거리와 신흥시장이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용산구 해방촌 오거리와 신흥시장에는 젊은 남녀 데이트족은 물론 지긋한 중년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남산타워 아래에 위치한 해방촌은 개성 넘치는 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김재형 필자는 해방촌 바로 아래 용산구 후암동에서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최근 변화된 모습이 너무 흥미롭다. 해방촌은 1945년 8·15 해방 후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남산 기슭에 임시 거주처를 마련하고 살게 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됐다. 이후 서울지역 대부분이 초고속 성장을 이뤘지만 해방촌은 소위 달동네로 남는 듯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일부 유명인들이 이곳에 점포를 오픈하면서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서울의 개성 넘치는 뜨거운 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해방촌과 신흥시장은 남산의 골목에 위치해 있어 주차공간이 없다. 자가용을 끌고 가기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산자락 아래에 위치해 있어 찾아가는 게 쉽지 않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지하철 1호선 '남영역'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 걸은 후 마을버스 '용산 2번'을 타는 것이다. 4호선 '숙명여대역' 5번 출구에서 '용산 2번' 마을버스를 타도된다. 마을버스로 15분가량 이동 후 '해방촌 오거리'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마니아라면 자전거를 타고 용산중학교 앞 거치대에 세워두고 108계단을 통해 해방촌을 가면 더욱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시간을 잊은 듯한 골목길을 지나가는 시간 탐험이 기다린다. 108계단에 야외 승강기가 생겼는데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 들 정도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해방촌을 갈 때는 대중교통 이용, 도보, 따릉이 등을 이용해 근처까지 간 후 108계단을 경험하는 걸 추천한다 ©김재형 신흥시장은 서울형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되었...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외관, 빨갛게 표시한 공간이 고문을 자행한 5층 취조실이다.

6월엔 역사와 함께하는 ‘남산-남영동 올레길’ 걸어요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외관, 빨갛게 표시한 공간이 고문을 자행한 5층 취조실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1일은 의병의 날, 6일은 현충일, 10일은 6·10 민주항쟁 기념일, 25일은 6·25 한국전쟁일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시민으로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여느 때보다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남산-남영동 올레길’을 찾았다. ‘남산-남영동 올레길’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는 걷기 코스로, 암울하고 엄혹했던 역사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2001년 6월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 조성, 민주화운동 기념행사 및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다. ‘남산-남영동 올레길’은 약 3시간 일정으로, 남산한옥마을부터 서울시청 남산1별관, 서울유스호스텔, 서울종합방재센터, 통감관저 터, 백범광장을 거쳐 후암동·용산 미군기지,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까지 이어진다. 그 중 특히 인상 깊었던 장소 몇 곳으로 소개해 본다. 옛 중앙정보부 제5별관 지하 취조실로 통하는 ‘소릿길’ 터널 입구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남산·남영동 올레길’은 1961년 6월 1일 창설된 수도방위사령부 터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곧바로 길이만 무려 84미터의 ‘소릿길’로 연결된다. 현재는 서울시청 남산별관의 입구인 이곳은, 굴로 만들어진 굴길(터널)로 옛 중앙정보부 제5별관(대공수사국)으로 통하는 곳이다. 당시에는 입구의 철문소리를 듣고 악명 높은 ‘남산’으로 끌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곧바로 건물 뒤편의 지하 4~5평의 취조실로 직행해 고초를 겪었다. 현재는 고문실의 형태가 남아 있지 않으며, 전체가 하나의 공간으로 트인 빈 공간이다. 이어서 현재 서울유스호스텔로 사용되고 있는 옛 중앙정보부 본관을 찾았다. 옛 중앙정보부 본관은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기습 미수사건인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남산터널 3곳을 연결하여 30만 명 이상의 초대...
박종철 열사 31주기 헌화 행사, 헌화 장소는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박종철 열사가 숨진 곳이었다. ⓒ김진흥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바치는 꽃 한 송이

박종철 열사 31주기 헌화 행사. 헌화 장소는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박종철 열사가 숨진 곳이었다 ◈ 남영동 대공분실-지도에서 보기◈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 이 말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가 고 박종철 열사일 것이다. 박종철 열사 사인을 쇼크사로 조작해 당시 경찰총수인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할 때 사용한 말이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려다가 국민 분노만 더 크게 만든 셈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최근 영화 로 제작돼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월 14일 오후, 많은 사람들이 1호선 남영역 근처 건물로 모여들었다. 그곳은 평범한 벽돌로 지은 경찰인권센터 건물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청년들이 희생된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박종철 열사가 숨진 곳이기도 하다. 이날 오전에는 마석 모란공원에서 박종철 31주기 추모식이 열렸고 오후에는 박종철 열사가 마지막을 보냈던 남영동 건물에서 헌화 행사가 개최됐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학생 등 시민 200여명이 모였다. 현재 경찰이 운영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 공간을 시민이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꾸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시민들 헌화 행사에 앞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이 고통스러웠던 체험을 증언했다. 의저자 유동우 씨는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수많은 고문을 당했다. 당시 경찰들이 저를 빨갱이 취급하려고 온갖 애를 쓰며 고통을 주었다. 정말 무지막지한 아픔이었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며 참았다”라고 전했다. 이덕희 씨는 “남영동에서 고문을 당하는 하루하루가 정말 끔찍했다.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 나왔지만 그곳에서 일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 가족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말이 더 안 나왔다. 트라우마를 견디느라 매우 고생했다”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헌화 장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