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news1

평범이야말로 가장 구하기 힘든 비범

홀로 있을 때는 낡은 거문고를 어루만지고 오래된 책을 펼쳐보며 한가롭게 드러누우면 그뿐이다. 잡생각이 떠오르면 집 밖을 나가 산길을 걸으면 그뿐이고 손님이 찾아오면 술을 내와 시를 읊으면 그뿐이다. 흥이 오르면 휘파람을 불며 노래를 부르면 그뿐이다. 배가 고프면 내 밥을 먹으면 그뿐이고 목이 마르면 내 우물의 물을 먹으면 그뿐이다. 춥거나 더우면 내 옷을 입으면 그뿐이고 해가 저물면 내 집에서 쉬면 그뿐이다. 비 내리는 아침, 눈 오는 한낮, 저물녘의 노을, 새벽의 달빛은 이 그윽한 집의 신비로운 운치이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주기 어렵다. 말해준다 한들 사람들은 또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날마다 스스로 즐기다가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 그것이 내 평생의 소망이다. 이와 같이 살다가 마치면 그뿐이리라. -- 장혼의 <평생지(平生志)> 중에서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9 – 마지막 회몇 해 전 역사에세이 한 권과 그 책을 쓴 저자를 길잡이 삼아 ‘북 트레킹’에 나선 적이 있다. 그동안 역사서와 상상 속에만 있던 ‘한양’을 내 발로 밟아보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조선의 뒷골목 중에서도 서촌(西村), 몇 해 사이 카페와 음식점이 가득 들어차 ‘핫 플레이스’가 된 동네가 우리의 주요 답사지였다.그곳에는 역사가 빼곡했다. 눈 밝은 길잡이는 덤불에 가려진 안평대군의 옛집 비해당, 볼품없는 다세대 주택에 불과한 시인 윤동주의 자취집, 재개발로 흉흉한 친일파 윤덕영의 벽수산장을 용케 찾아 소개했다. 역사는 정녕 알아보는 이에게만 보인다. 해방 후 미 군복을 입고 조선에 돌아온 유일한 여성이자 파란만장한 인생사의 주인공인 앨리스 현의 원적지는 몰랐다면 그냥 스쳐버리고 말았을 흔한 동네 치킨집이 되어있었다.그 중에서도 내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중인문화의 절정인 옥계시사의 배경인 송석원, 그리고 조선시대 서촌의 주인들이 형성한 문화였다. 양반문화에 대응해 자신감에 넘친 중인들은 인왕산 기슭에서 남산을 정면으로 내다보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시문학동인인 ‘송석...
책ⓒ뉴시스

대세와 위기 사이에서…인문학이 대체 뭐길래?

희망이 덧없다는 것, 이는 절망한 이들의 말이 아니라 결코 절망할 수 없는 이들의 말이다. 자신이 사막에 있다는 사실에 압도된 사람들일수록 오아시스에 대한 희망을 빨리 만들어낸다. 그래서 얼마 가지 않고서도 수십 번의 오아시스를 보지만 모두가 신기루다. 희망이란 이상한 것이다. 그것은 미래에 대해 품는 것이지만, 미래로 갈수록 덧없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실질적인 것이 된다. 희망을 내일에 거느니 오늘에 걸고, 희망을 거기에 거느니 여기에 걸겠다. 희망은 지금 사막을 뚜벅뚜벅 걷는 내 다리에 있다. 이 글을 쓰던 날, 나는 대한문 농성촌의 한 의자에 누군가 적어놓은 희망을 보았다.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고병권, 《“살아가겠다”》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8 모 기업으로부터 사원들에게 ‘인문학’ 강연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여성들을 주 소비층으로 하는 유통회사였기에, 내가 그간 소설로 작업해 온 역사 속 여성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담당자는 여성 사원들이 많은 조직이라 주제가 적합할 것 같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통화를 마친지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다시 전화가 왔다. 윗선에서 그것 말고 ‘인문학’ 강의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역사와 문학이 인문학이 아니면 무엇이 그들이 원하는 ‘인문학’일까? 요즘 트랜드인, 재벌이 전도하고 기업이 요구하는, 그런 ‘인문학’의 약을 팔 재주가 없기에 나는 강연을 거절하고 말았다. 무엇이 인문학일까? 정작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과는 취업률이 낮다고 요상한 이름으로 바꾸거나 아예 없어지는 판인데, 텔레비전에는 난데없는 ‘인문학자’들이 설치고 기업에서는 연수 때마다 구색 맞추듯 인문학 강의를 기획한다. 전혀 창조적이지 않은 ‘크리에이티브 워크샵’이나 혁신을 다시금 새롭게 외치는 것이 전부인 ‘혁신 워크샵’ 만큼이나 허황하다. 인문학의 자리가 어디인가를 고민할 때 철학자 고병권의 책은 어둠 속에...
고궁ⓒ시민작가 김규형

우리의 기쁨은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는가

우리의 기쁨은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는가. 우리의 기쁨이 타인의 원망과 슬픔을 한층 배가시키거나 모욕을 안겨주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정말 기뻐해야 할 것을 기뻐하고 있는가. 타인의 불행과 재앙을 기뻐하고 있지는 않은가. 복수심과 경멸, 차별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기쁨은 아닌가. -- 니체 『권력에의 의지』 중에서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7연이은 막말로 구설수에 올라 방송 퇴출 압박까지 받는 개그맨이 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말마따나 끼가 넘치는 타고난 개그맨이다. 언젠가 사람들은 그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의 재치 있는 말과 우스꽝스런 표정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유쾌하게 폭소를 터뜨리기는커녕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가 ‘웃음거리’로 삼은 대상 때문이다.웃음은 섬세하고 미묘한 작용이다. 사람을 울리는 일은 어느 정도 쉽지만 웃기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간지러워 웃는 게 아닌 바에야 웃음은 억지로 지어내기 어려운 것이며 자칫하면 쓴웃음을 짓게 하거나 비웃음을 사게 된다. 그래서 웃음은 어려운 만큼 귀한 것이기도 하다. 웃음이 마음을 치료하는 한 방식으로 등장할 정도로 중요해진 것은 생존의 고통과 경쟁의 스트레스에 짓눌려 웃지 못하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기 때문이다.웃음은 기쁜 마음에서 빚어져 나온다.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즐거움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연구자들은 웃음의 구조를 ‘전제-긴장-반전-안심’이라는 도식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핵심은 긴장과 반전 사이, 반전과 안심에 있다. 긴장은 두려움과 초조함을 동반하지만 반전에 의해 통렬히 부서진다. 이때 주로 폭소가 터진다. 폭소는 감쪽같이 긴장에 속았던 자신이 자기도 모르게 터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마지막까지 미심쩍은 한 가지가 해결되어야 진정한 웃음이 된다. 반전 뒤에 안전이 확인된다는 전제가 있을 때, 비로소 허리끈을 풀고 안심하며 웃는다.그런데 모든 이들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기쁨이 아니라면 그...
엄마와딸ⓒ시민작가 이택근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대와 내가 분리된 존재임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상대가 내 속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분리된 아주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그에게 어찌 감사한 마음이 안 들겠는가. -- 김혜남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중에서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6거칠고 모진 세상에서는 상처 입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 치명상이 아니더라도 찰과상을 입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내상을 입는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말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 입힌다.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는, 사랑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가족들끼리도 마찬가지다.부모에게서 학대와 방임을 당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와 반대로 자식에게서 상처 입는 부모들도 있다. 흔히들 한국보다 10년쯤 앞선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는 일본 사회에서는 이미 몇 해 전부터 ‘가정 폭력’이라는 용어가 남편이 아내에게가 아닌, 자식이 부모에게 행하는 폭력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한다. 언론의 뉴스거리가 될 만큼 대단한 사건 사고가 아닐지라도 평범한 사람들도 비밀히 아프다.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서 아프다. 사랑해서 아프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괴롭다.명절이면 고속버스터미널에는 귀향할 때의 짐보다 더 많은 꾸러미들을 주렁주렁 매단 사람들과 그들을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언젠가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보이는 두 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 때문에 큰 소리를 내서 싸우진 못했지만 분명 심각하게 다투고 있었다. 특히 딸이 어머니에게 무언가 크게 화가 난 듯 입술을 깨물며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다가 갑자기 짐 보따리를 낚아채 자리를 떠나버렸다. 어머니는, 그 늙은 몸과 낡은 표정의 여자는 딸이 떠난 자리에 빈손으로 선 채 울었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던 서울행 버스에 승차했을 때, 젊은 몸을 가졌으나 낡은 ...
학생ⓒ뉴시스

생각할 시간조차 앗아버린 그 헛된 시간들

학생들이나 학문을 접한 사람들은 어느 시대의 누구나 할 것 없이 통찰력 대신 정보력을 갈구한다. 그들은 모든 것에 대한 정보 소유를 영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정보란 통찰력을 얻기 위한 단순한 수단이며 그 자체로는 거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런 좋은 정보력을 갖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를 확인할 때면, 나는 종종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이런, 저렇게 읽는 것에 시간을 많이 들여왔으니, 생각하는데 써야 할 시간은 얼마나 남을까?!” -- 쇼펜하우어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5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1788년에 태어나 1860년에 죽었다. 1788년이라면 영국인들이 호주에 이주하기 시작하고, 미국의 초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가 시작된 해다. 1860년은 베이징 조약의 체결로 제2차 아편전쟁이 종식되고,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조선에서는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한 해다.그때도 그랬다. 지금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사람들은 경박하고 탐욕스러웠으며, 무엇보다 어리석었다. 자기가 남들보다 얼마나 많이 아는가를 내세우기에 급급해 도대체 그것을 어디에 써먹어야 하는지를 잊곤 했다. 백 년 후쯤이면 기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해버릴 자료를 달달 외우고, 그것을 얼마나 완벽하게 기억하는가를 시험하느라 일생을 몽땅 써버리기도 했다. 먼저 아는 것이, 조금 더 아는 것이 지성의 척도이기도 했다. 오직 지혜를 사랑했던, 사랑하며 갈구했던 철학자의 눈에만 그 어리석음이 보였다.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 태어났다 죽은 사람들이 모두 지난 역사가 되어버린 후에도 정보와 지성을 혼동하고 산다. 많이 안다는 것과 지혜로움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른바 정보량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나는데,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편리한 도구인 컴퓨터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누가 얼마나 더 많이 머릿속에 꾸역꾸역 정보를 밀어 넣었는가를 시험하기에 바쁘다.지난해 대학에 들어간 아이가...
말ⓒ뉴시스

침묵, 최고의 애정이자 최선의 예의

남의 작은 허물을 꾸짖지 말고 남의 은밀한 비밀을 발설하지 말며 남의 지난 잘못을 마음에 두지 말라. 이 세 가지면 덕을 기르고 해를 멀리할 수 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너무 엄격하게 하지 말라. 그가 감당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남에게 선을 가르칠 때는 너무 높게 말하지 말라. 그가 따를 수 있을 만큼 해야 한다. -- 홍자성의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4 남의 허물을 집어내 가리킬 때도 격식이 있다.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 자잘한 것까지 들추지 말 것이며, 굳이 숨기고 싶은 비밀이나 지난 일까지 캐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상대가 감당하며 따를 수 없을 만큼 폭로하고 까발릴 때, 그것은 고스란히 ‘지적질’이 되어버린다. 애초에 ‘-질’은 단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에 불과하지만, 특정한 단어 뒤에서 그 어감이 사뭇 비하와 부정의 편으로 기울어진다. ‘지적’과 ‘지적질’ 사이에는 작은 듯 큰 간극이 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하는 방식과 태도에 따라 당하는 이의 반발을 사게 되며 원한만 키울 수 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애정이 없는 비판은 비난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채근담』에서는 지적의 태도가 잘못 되었을 때 도리어 지적당하는 사람보다 지적하는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남을 덧붙여 밝힌다. 이를테면 남의 소소한 잘못까지 지적하는 사람은 마음이 좀스러운 사람이라고 한다. 좁쌀눈으로 바라보기에 쪼잔한 것들만 보이는 게다. 또한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남의 감추고 싶은 속사정을 함부로 떠벌리는 사람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인생에는 공짜와 정답, 그리고 영원한 비밀이 없지만, 어른에게는 비밀이 있다. 아이가 아닌 이상, 있어야 마땅하다. 이때의 비밀은 범죄성의 꿍꿍이나 흑막이라기보다 들키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은신처 같은 것이다. 벌을 받을 게 두려워서라기보다 자기가 한 일의 문제점을 알고 있기에 부끄러워 숨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비밀은 행여 알게 ...
정자ⓒ뉴시스

세상의 영화 대신 택한 ‘열 가지 즐거움’

깊은 절에서 한 해가 저무는 날, 눈보라는 골짝에 흩뿌리고 차가운 밤기운에 스님은 잠들었을 때 홀로 앉아 책을 읽는 일. 봄과 가을 한가로운 날 높은 산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몸과 마음은 가뿐하고 시상이 솟아오르는 일. 굳게 닫힌 문에 꽃은 떨어지고 주렴 밖에선 새가 우는데, 술동이를 열자 그 정취가 읊고 있던 시구와 맞아떨어지는 일. 굽이도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어른과 젊은이 한자리에 모여 한 잔 마시면 한번 읊는데 어느새 시집 한 권이 만들어지는 일. 아름다운 밤 고요하고 맑은데, 밝은 달빛이 마루로 새어들고 부채 소리에 맞춰 글을 읽으니 소리 기운이 씩씩하고 힘 있는 일. 산과 시내를 돌아다녀 말도 고달프고 하인도 지치는데, 안장 위에서 쉬엄쉬엄 읊은 구절이 작품이 되어 호주머니 가득하게 되는 일. 산 속에 들어가 책을 읽어 목표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마음 가득 기쁘고 기운이 넘쳐나 붓놀림이 신들린 듯하는 일. 멀리 살던 좋은 친구를 뜻하지 않게 만나 그간의 공부를 자세히 묻고 새로 지은 작품을 외워 보라고 권하는 일. 좋은 글과 구하기 힘든 책을 친구가 갖고 있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빌려와 허겁지겁 포장을 풀어 여는 일. 숲과 시내 건너편에 친한 친구가 살고 있는데 새로 빚은 술이 익었다고 알려 오며 시를 부쳐 화답하기를 요청하는 일. -- 김창흡의 《삼연집(三淵集)》 중 전문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3 조선 후기의 문장가 김창흡은 아버지 김수항이 기사환국(己巳換局)에 연루되어 사사되자 서울을 떠나 포천 영평으로 가서 영평팔경 중 하나인 금수정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고 500여 편의 시를 짓는다. 좌의정 할아버지에 영의정 아버지를 둔, 말마따나 원조 ‘금수저’였던 그가 화려한 만큼 위험한 세상의 영화 대신 택한 ‘열 가지 즐거움’은 하나같이 소박하나 예스럽다. 쫓기듯 전쟁처럼 살아내느라 별달리 즐거울 것이 없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될까, 인용이 좀 길기는 하지만 ...
노을ⓒ뉴시스

사납게 으르렁 으르렁~ ‘마음속 싸움’ 승자는?

어느 저녁, 한 늙은 체로키족의 노인이 그의 손자를 불러 노인의 내면에서 벌어졌던 전쟁에 대해서 말했다. “아가야, 이 전쟁은 늑대 두 마리의 싸움이란다. 하나는 악이라는 이름의 늑대인데, 이 늑대는 화, 질투, 비탄, 후회, 탐욕, 거만, 자기연민, 죄의식, 분노, 열등감, 거짓말, 허풍, 우월감, 자만심을 가지고 있단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선이라는 이름의 늑대인데, 즐거움, 평화, 사랑, 희망, 평온, 겸손, 친절, 자비, 동정, 관용, 진실, 연민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있단다.” 손자는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더니, 할아버지께 물었다. “어떤 늑대가 이겼나요?” 그 늙은 체로키는 간단히 답했다. “내가 먹이를 준 늑대가 이겼지.”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2수학능력평가 모의고사 문제로까지 나온 이 유명한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이 무엇으로,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심오하고도 간단명료한 해답이다. 아무리 흑백논리가 판치는 세상이라도 완벽하게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가슴 속에 두 마리의 늑대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늑대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오고, 누군가의 늑대는 길들여진 개처럼 다정하고 양순한 벗이 된다. 애초에 그들은 닮은꼴의 쌍둥이였다. 그들에게 먹이를 주어 몸집을 키운 건 그들의 주인,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1830년 미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든 ‘인디언 거주법’에 의해 애팔래치아 산맥 남부에서 서부의 오클라호마까지 강제 이주한 체로키 족의 이야기는 작가 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 소설 《내 마음이 따뜻했던 날들》을 통해 전해진다. 체로키 족은 자연과의 조화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지혜롭고 소박한 부족인 동시에 자존심이 강한 일족이었다. 1만 2,000명이 무려 1년에 걸쳐 이동하는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5,000명이 그 ‘눈물의 길’ 위에서 희생당하는 지경에도 체로키 족은 끝내 백인들이 권하는 마차를 타지 않았다. 남은 영혼을 마차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인...
꿈새김판ⓒ서울시

밥조차 먹여주지 못하는 소설에 매달리는 이유

마이클 벤투라는 유명한 에세이 에서 이렇게 묻는다. “그 방에 얼마나 머물 수 있는가? 하루에 몇 시간 머물 수 있는가? 그 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얼마나 자주 들어갈 수 있는가? 혼자 견딜 수 있는 두려움은 (혹은 자만심은) 어느 정도인가? 어떤 방에서 몇 ‘년’ 동안 혼자 있을 수 있는가?” 그는 혼자 방에서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재능이 글재주나 문체, 기교, 예술성보다 더 중요하다고 전제하는 셈이다. 방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나머지도 다룰 수 없다. -- 바버라 애버크롬비 《작가의 시작》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1 지금까지의 내 삶에서 가장 게으른 한 시절이 지나고 있다. 거룩하고도 참혹하게도 문학으로 밥벌이를 한 이후 거의 처음으로 소설을 쓰지 않고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나는 작가로서 몹시 부지런한 편이었다. 누군가는 매년 신간을 펴내는 나를 글 찍어내는 ‘공장’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펜을 멈추었다. 펜이 멈추었다. 농담처럼 진담으로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는 이유야말로 “쓰지 않으면 쓰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말이 씨앗이 되어버렸다. 쓰지 못하는 나는 초조하고 불안함을 넘어서 얼마간 삶을 인지하거나 체감하지 못하는 듯 멍하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잠 속에서 꿈을 꾸는 듯도 하고 나를 꼭 닮은 사람이 무대에 오른 연극을 보고 있는 듯도 하다. 어쨌거나 ‘제대로’ 살아있는 상태는 아닌 것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가라고, 주저앉아 멀찍이서 바라보니 내가 얼마나 일중독자로 살았는지가 분명하다. 생활인들이 누리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은 언감생심 꿈꾸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쓰고 있거나 쓰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잘 간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새가 우는 걸 듣노라니 한 계절이 간다. 그러다보니 문득 의문이 생겼다. 나는 지금껏 무엇 때문에 노력 대비 보상이 터무니없는 소설에 애면...
새ⓒ뉴시스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는 법

우리는 모두 시궁창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중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 -- 오스카 와일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0 ‘현시창’이라는 신조어가 나온 것이 벌써 서너 해 전의 일이다. 이른바 ‘현실은 시궁창’의 줄임말이랬다. ‘현시창’ 앞에는 ‘꿈높’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꿈은 높은데’의 줄임말이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 그나마 그때는 꿈은 높다고 했다. 꿈이라도 있다고 했다. 꿈이라는 말을 발음하는 것이 약간은 쑥스럽고 낯간지러웠지만, 몇 해 전까지는 나도 이따금 꿈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꿈을 환상과 혼동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꿈을 직업에 국한시키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의사든 변호사든 교사든 사업가든, 특정한 직업을 갖는 것이 꿈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일례로 의사가 되어 어떤 의술을 펼칠 것인가만 놓고 보아도, 누군가는 돈이 되지 않는 치료라면 철저히 기피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모두가 외면한 험지와 오지로 스스로 찾아들기도 한다. 양쪽이 똑같이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의술을 통해 구현하는 가치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꿈은 직업이 아니라 가치라고 주장하곤 했다. 꿈이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을 하며, 무엇을 하든,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런데 다시 서너 해가 지나 이제는 꿈이라는 말 자체를 입 밖으로 내기가 어렵다. 차마 발설하기조차 두렵다. 말(言)은 시대와 함께 나고 살고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헬조선’이라는 무시무시한 신조어에서 보이는 것처럼 현실은 시궁창을 넘어 지옥(hell)으로 치닫고 있는 모양이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우울한 뉴스들이 쏟아지고, 날로 숨 가빠지는 무한경쟁의 압박 속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은 아무래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니 언감생심 꿈이며 가치며 떠벌일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이 더욱 혹렬하고 척박해질수록, 꿈의 의미는 중요해진다. 모두가 시궁창 속에 빠져 있다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