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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 “우리 마누라하고 어떻게 만났냐고?”

“78년도 그때 나는 연기 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어. 그걸로 용돈을 벌어 썼는데 그때 만나던 여친이 나랑 연애만 하고 시집은 안 온대. 아니 왜 안 오냐 그랬더니 가난해서 싫대. 나중에 알고 봤더니 큰 극장의 사장 딸이더라고. 집에 돈이 많은 거야.” “그때는 쇼 같은 거 한 번 하면 돈을 가마니에 담았거든. 그래서 나랑 결혼 안한다는 거지. 그러던 중에 중매가 들어왔어. 그때 당시 연극한다고 하면 돈을 못 버니까 그냥 바로 딱지맞는 시대였거든? 나도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중매 가서 ‘저 연극합니다’ 하고 그냥 돌아왔지.” “근데 다음날 중매해준 사람이 ‘너 그런 여자 요즘 세상에 있는 줄 아냐’면서 나한테 뭐라 그러는 거야. 그 여자가 중매 끝나고 돌아와서는 ‘사람이 돈이라는 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데, 돈이 뭐 중요해요. 성실한 게 중요하지’ 그랬다는 거야. 그 말 듣고는 그때 퇴계로5가에 ‘썬 다방’이라고 있었는데 거기로 그 여자보고 나오라 그랬어. 얘기를 해보니 정말 자기는 그렇게 생각한대. 그러고 선 본지 한 달 만에 결혼했어. 우리 꽃님이랑.” “지금이야 너무 예쁜데, 사실 그때는 꽃님이가 막 예쁜 줄 몰랐어. 근데 그냥 그 다방에 앉아서 얘길 듣는데 ‘이 여자는 내 마누라다’라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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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 “남자친구의 특별 라디오 DJ 데뷔!”

“어느날 남자친구가 ‘이거 들으면서 자라’ 이러면서 mp3파일을 하나 보내줬어요.” “틀어보니까 본인이 직접 라디오 DJ처럼 방송진행을 하고 그걸 녹음해 준 거예요. 보통 라디오에 나오는 효과음도 다 넣고 진짜 라디오처럼요. 오프닝으로는 천사소녀 네티가 깔리면서 남자친구 어렸을 때 있었던 일도 얘기해주고, 노래나올 때마다 ‘이 가수는 언제 이렇게 했는데, 이 노래는 어떻게 해서 나왔고…’ 이러면서 감상평도 덧붙여줘요.” “노래가 나오고, ‘2부에서 뵙죠.’ 이런 멘트를 한 다음 광고까지 끝나면 진짜 2부가 나와요. 심지어 ‘따, 따, 따, 딴! 9시입니다.’ 이런 시보도 있어요. 그 55분짜리 파일을 그날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무한반복으로 틀어놓고 잤어요.” “남자친구가 만들어 준 제 닉네임이 있거든요. ‘콧물먹는작은거인’이라고... 제가 키가 큰데다가 코를 자주 훌쩍거린다면서요. 최근에 이런 카톡이 왔어요. ‘신청곡 있으신가요? ID 콧물먹는작은거인님?’ 시즌2도 곧 나올 것 같아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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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 “저는 노약자석에도 안 앉아요”

“6.25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왔지요. 맨주먹으로 서울 와서 나는 성공했다고 봐요. 내가 배고프고 고생해봐서 자식들 배고프게는 안하려고 지독한 생활을 했죠. 공사장 인부부터 시작해서 미군기지 근처에 살던 때엔 정화조 청소도 했어요. 돈만 주면 못 할게 없었죠. 정화조에 손만 집어넣어도 되는데 팬티바람으로 풍덩 들어간 적도 있어요. 돈 받는 만큼 더 열심히 일하려고... 이제는 일은 안 하고 그저 검소하게살고 있어요.” “사치하고 싶으신 적은 없으셨나요?” “왜 사치를 안 하고 싶겠어요. 참는 거지. 저는 제 쓸 돈보다 많이 있으면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일로 사치하고 싶어요. 사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 등하교 때 안전하게 건너게 해주는 수호천사 봉사활동을 해요. 근데 그걸 한다고 하니까 돈을 20만원이나 준다는 거예요. 그 때 느꼈죠. ‘아 세상이 변했구나.’” “이제 여든일곱인데, 예순일곱에 식도암 수술을 했어요. 위를 잘라내서 지금도 여섯끼로 나눠서 조금씩 먹어야 해요. 당시에 이제 좋아하던 술도 못 먹고 담배도 못 피게 되었으니 ‘내 인생 어떻게 재미있게 풀까?’ 싶었죠. 사람이 낙이 있어야 사니까, 칠십에 처음으로 춤을 배웠어요. 한 10년 췄어요. 지금은 안 가요.” “왜요?” “늙은사람이 같이 놀자하면 추할까봐서요. 한 칠십대 젊은 사람들 놀기에 내 나이가 너무 많다 싶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유세하지 말아야 하죠.” “그래서 저는 지하철에서 노인석에도 안 앉아요. 나보다 젊은 사람들 앉으라고. 그래도 늙으면 실수를 하지요. 자연히 동작이 느려져서 실수를 하고, 말실수도 하죠. 어린 사람 보면 습관적으로 첫마디에 반말이 나와요. ‘아이고 내가 잘못했구나,’ 그러고 나선 다시 말을 높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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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 “기다리는 것만큼 단순한 게 어디 있어?”

“서울에서 사회운동하면서 정말 너무 바쁘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지쳐서 느린 사회를 체험한다고, 안식년을 맞아 인도에 갔어요. 마치 한국의 70년대 같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며 그곳에 갔죠.” “가보니까 한 두 시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닌 거예요. 한 번은 은행에 가서 4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새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욱해서 지금 바로 일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은행원이 ‘Wait, wait, just wait. It’s simple!’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경험을 인도의 친구 가족한테 말하니까 그 사람들 또 하는 말이 ‘오늘 못 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못 하면 모레 하면 되고, 금년에 못 하면 내년에 하면 되고, 이 생에 못 하면 다음 생에 하면 되고’ 라는 하는 거예요.” “그 점이 참 인상 깊었어요. 우리는 보통 ‘해야 돼. 해야 돼’ 하지만, 그 사람들은 ‘지금 안 해도 돼. 조금 늦어도 괜찮아’하는 말로 마음을 보듬어 주고 있었죠. 조금 지나고 보니 잘 알겠더라고요. ‘기다리는 것만큼 단순한 게 어디 있어? 이 세상에 어려운 게 얼마나 많은데…’ 하고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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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

“저희 부모님이 자원봉사처럼 하시는 일이 있으세요. 매주 고아원에 가시는데, 한 달에 두세 번씩은 저희 집에 그 친구들이 와서 자고 가요. 이 일을 하신지 15년쯤 됐네요.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그 친구들한테 훨씬 좋은 거 사주고 먹여주고 하니까 질투 같은 감정도 생기고요.” “근데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 너가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근데 여긴 내 집이다. 너가 하고 싶은 일 있으면 나가서 해라.’ 여쭤보니 그냥 어릴 적부터 이런 일들이 하고 싶으셨대요. 근데 오히려 그런 엄마의 태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고 살 수 있다는 걸 배운 것 같아요. 저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유학을 떠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서 경영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작곡을 하고 있네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안 갔으면 작곡을 안 했을 거예요. 생활방식이 한국이랑 달라서 시간이 많았거든요. 피아노도 치고, 음악도 많이 듣고, 여가시간을 그렇게 보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작곡을 생각하게 됐죠. 한국에 온 지 5년 정도 됐는데, 여기선 어쩔 수 없이 바쁘게 살게 돼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유 있게 살려고 노력해요.”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그냥 하루 잡아서 쉬어 버리고 그러는데, 쉬는 게 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쉬는 지가 중요한 거죠. 아무 생각 없이 쉬면서 할 수 있는 것들, 내가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서 하는 거예요. 게임이 취미인 사람은 게임을 하는 거고요. 저 같은 경우는, 옥탑에 사는데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밖으로 나와요. 강아지랑 같이 의자에 머리 대고 누워있으면 그게 저한테는 쉬는 거예요. 보통 쉬는 날 친구들을 많이 만나지만 친구들을 만나는 게 힘든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그들만의 어떤 것들이 있을 거예요. 분명히 누구든 있는데,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내가 쉬는 법을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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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 “노량진에서 싹트는 사랑”

“(남자) 저희는 노량진에서 공부하고 있는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에요.친구가 밥이나 같이 먹으라고 소개시켜 줬는데,어쩌다보니 눈이 맞아서 사귀고 있어요. 비밀로요.” “(남자) 공시생이면서 사귄다 하면 공부에 방해 된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활력소가 되고, 이 안에서 생기는 일에 대해서 마음 편히 얘기할 사람도 있고, 같은 공부를 하니까 서로 모르는 걸 알려주기도 하고요.” “그런데 왜 비밀로 만나세요?” “(여자) 노량진에서 연애하고 다니면 한심하게 보는 눈초리가 있거든요. 저희도 그렇게 보일까봐요.” “(여자) 사실 저도 처음에는 공부하러 와서 연애하는 애들보면 한심해 보였는데…” “남자분이 적극적으로 대쉬하셨군요?” “(여자) 아니요.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데 남자친구가 엄청 똑똑하거든요.쉬는 시간에 오목을 둘 때도 5수 앞을 내다보고, 세자리 수 곱셈도 암산으로 1초만에 하고요.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마음에 든다고 했어요. 앞 뒤가 안 맞죠?”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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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 “55년 전 그 자리에서 인생을 회고하며”

“55년 전에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니던 학교가 여기 근처에 있었어요. 그때 서울시 미술대회가 열렸는데, 형님하고 같이 여기 왔던 기억이 나네요. 회사를 37년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이제 여기 앉아 있어요. 55년 전 그때 바로 이 의자에 앉아서 석조전을 그렸었는데, 제가 잘 못 그려가지고 형님이 저를 도와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주 오랜만에 왔어요.” “그때 행복한 기억이 많으셨겠네요?”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는데, 저 초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신 거예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아직 충격에 휩쓸려 있던 때에 여기서 형님하고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어머님도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당시 연금이나 그런 게 없었고, 4학년 2학기 때쯤 아버지 고향인 경기도 파주에 땅이 조금 있어서 낙향을 했죠. 2남2녀 중에 막내인 저하고 어머니만 같이 살았고, 형제들은 외삼촌하고 살게 됐어요. 제 가족이 해체가 된 거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55년 간 제가 살아왔던 날들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 자리에서 집사람을 기다리면서 계속 회상하고 있었어요. 55년이란 시간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 다양했던 것 같아요. 지나고 보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죠. 공부밖엔 길이 없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 좋은 회사에 취직했어요. 임원까지 했고, 회사에서 박사 유학 가라고 절 영국으로 보내주기도 했고요. 어찌 보면 세상 모르고 열심히만 살았죠.” “회사생활 하시면서 고비는 없으셨어요?” “경쟁적인 곳이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고 전 회사에서 좋은 대우를 받은 편이었어요. 해외에 법인장으로 8년 나가있었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근무하다가 나이가 들어 작년에 그만두었죠.” “은퇴하시고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은퇴한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데, 편한 이야기들을 못하고 회사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래요. 회사만을 위해, 회사만을 생각하고 살았으니까 후유증이 남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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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 “한국에 ‘아무것도 몰라서’ 왔어요”

“(오른쪽) 학교를 마치고 대화하다가 더 바빠지기 전에 여행을 가보자는 말이 나왔어요. 둘 다 유럽을 떠나본 적이 없어서 아시아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아시아를 간다고 하면 다들 중국이나 일본을 갈 거라고 생각하잖아요.하지만 저희는 한국에 오기로 결정했어요.”“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왼쪽) 사실 같이 여행가기로 한 것도 처음이었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더라고요. ‘한국 어때?’ ‘우리 한국 가자!’라면서요. 저희는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아무것도 모르니까 왔다구요?”“(오른쪽) 네, 뭔가 좀 다른 걸 원했거든요.”“(왼쪽) 정말 신기했던 점이 새벽에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독일 하노버에서는 새벽에도 지하철이 다니거든요. 그래서 어제 새벽 4시까지 놀다가 홍대에서 숙소가 있는 종로까지 7km를 걸어왔어요.”"그 새벽에 7km나 걸었다고요?““(오른쪽) 별로 어렵지 않던데요. 뭐... 같이 있던 한국인들은 택시 타고 가라며저희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저희는 그냥 ‘걸을 수 있잖아!’ 하면서 걷기 시작했죠.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지도 보면서 큰 길을 따라 걸으니 되던 걸요.”“한 시간만 더 있었으면 새벽 5시쯤부터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던 거 아세요?”“(왼쪽) 저희는 몰랐죠! 사실 버스가 지나가는 걸 보고는 혼란스럽긴 했어요.”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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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 “행복은 꽃과 같은 것”

“1년 전부터 매주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에 대해 묻고 있어요. 그 중에 ‘행복은 꽃’이라는 대답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꽃이 살아 있다가 시드는 것처럼, 행복도 그 순간에는 즐겁다가 나중에 감정이 사그라들잖아요.” “하지만 동시에 꽃을 말려 두고두고 볼 수 있는 것처럼 행복도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거라고 했어요. 지금까지 사람들을 만나 질문을 던졌지만 아직 저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어요. 그저 매주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웃는 시간들이 행복해요. 그래서 하는 거예요.” “저는 사진기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모든 순간에 제가 참여하죠. 저는 그 활동에서 행복을 찾고 있어요. 예전 같았으면 집에서 컴퓨터나 하고 있었을 텐데… 밖으로 나와서 직접 경험한 순간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록으로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게, 저라는 사람이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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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 “알고 보면 다 같은 사람이야”

“내가 젊었을 때 소위 말하는 깡패들을 많이 만났어. 가끔 고스톱이나 포커를 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알고 보니 깡패인 경우가 많았지.” “그런 사람들을 나쁘게만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다 같은 사람이야. 오히려 고아거나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마음에 상처를 갖고 살아왔기 때문에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많지. 몸에 무기를 지니고 다니거나 문신을 한 깡패들 있지? 그 사람들은 특히 더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야. 자신이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위화감을 주려는 거지.” “내가 혜화동에서 오토바이 상회를 운영했었는데 한 번은 사고난 오토바이를 수습해서 보관하고 있었어. 그런데 깡패들이 막 우르르 찾아 온 거야. 그 오토바이 내놓으라고. 그런데 주인은 병원에 있었거든. 못 준다니까 웃통을 벗으면서 문신을 막 보여주면서 위협하는 거야. 내가 그걸 안 겪어봤으면 모르겠는데 난 알잖아. 그래서 ‘야 이 놈아. 나한테 겁주려고 그러냐? 너 마음 약한 놈인 거 다 알아. 2000년도에 70년대 먹히던 수법을 쓰냐’ 하면서 경찰에 전화를 걸었지. ‘경찰서죠? 강력반이죠? 빨리 오세요.’ 하니까 도망가 버리더라고. 전화도 끊기 전에 말야. 그런 애들이라니까? 참 귀엽지.” 이 글은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ofseoul.net)이 쓴 기사입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듣는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에 의한, 서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휴먼스 오브 서울이 길거리 섭외를 통해 시민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