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공개됐던 일본군 위안부 사진과 이번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인물들의 얼굴과 옷차림이 동일했다. ⓒ서울시 서울대인권센터

[The아이엠피터] 멈췄던 위안부기록 발굴, 마침내 서울시가 찾아내다!

서울시 정책 알기 쉽게 풀어드려요 (5)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사업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알릴 수 있는 영상이 73년 만에 최초로 발굴됐습니다. 지난 7월 5일 서울시와 서울대인권센터는 미국 국립문서관리청에 있던 한국인 위안부 영상을 찾아내 공개했습니다. 한국인 위안부의 모습이 담긴 영상은 당시 미·중연합군으로 활동했던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배속 사진병이 1944년 9월 8일 직후 촬영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해왔습니다. 서울시와 서울대인권센터(서울대 정진성 교수 연구팀)는 2년여 간의 끈질긴 발굴 조사 끝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자료를 찾아내, 73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다. 세계 최초로 공개된 위안부 영상 기존에 공개됐던 일본군 위안부 사진과 이번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인물들의 얼굴과 옷차림이 동일했다. 그동안 한국인 위안부 관련 증언과 문서, 사진 등이 공개된 적은 있었지만, 실제 촬영된 영상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입니다. 영상에는 민가 건물과 중국군,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1944년 9월 7일 미·중연합군은 일본군이 점령했던 송산을 점령합니다. 이때 일본군 위안부로 있던 24명 중 10명이 생존해, 미·중연합군의 포로로 잡혔습니다. 영상은 미·중연합군 점령 다음 날인 9월 8일 촬영된 것입니다. 영상 속 여성과 대화하는 군인은 미·중연합군 산하 제8군사령부 참모장교 신카이 대위(중국군 장교)로 추정됩니다. 나머지 여성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상 속 여성이 한국군 위안부라고 입증할 수 있는 근거는 2000년 고(故) 박영심 할머니가 자신이라고 밝혔던 사진과 영상 속 인물들의 얼굴과 옷차림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송산에서 쿤밍 포로수용소로 이동해 작성된 포로 심문 보고서를 보면, 포로 명단 가운데 고(故) 박영심 할머니의 이름도 명확히 표기돼 있었습니다. 위안부 관련 문서가 대부분 일본 정부, 군의 공문서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
광화문 소녀상 ⓒ미스핏츠

“소녀상에서 기억의 터까지” 서울의 아픔을 따라

서울은 깊고도 복잡한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높은 유리건물들이 즐비한 화려하고 발전된 도시 같아 보여도 바로 옆 골목길로 들어서면 수십 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옛부터 서울의 중심지였던 중구 일대는 수많은 문화와 역사가 혼재된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렇게 오랜 중구의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깊고 선명한 흉터를 남긴 시절이 바로 일제 강점기입니다. 광화문 ‘평화의 소녀상’부터 남산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까지 우리의, 서울의 아픈 역사를 따라 여행을 떠나보았습니다. 광화문 소녀상 소녀는 혼자가 아니다 여행의 시작은 광화문 소녀상이다. 광화문의 오른편에는 일본 대사관이 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평화의 소녀상이 앉아있다. 울지도, 화내지도 않는 차분한 시선이 주위를 더욱 경건하게 만든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녀상을 찾아왔다. 학생들 몇 명이 소녀상 앞에 꽃을 두고 가기도 했다. 소녀상의 뒷편에는 서명용지와 모금함이 놓여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인사동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노란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모인 대학생들이 지내는 텐트라고 한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보내는 따뜻한 손길에 꽃샘추위도 한 풀 꺾이는 듯하다. 민간문화재 유출의 항구, 인사동 한국의 전통문화를 느껴보고 싶은 외국 관광객이라면 꼭 들르는 곳이 바로 인사동이다. 이 날도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인사동을 채우고 있었다. 오래된 화방들과 찻집들, 골목에 숨은 골동품들은 인사동을 찾은 사람들에게 한국적인 멋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은은히 들리는 퉁소와 북 소리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평화로운 인사동,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민간유물이 일본으로 유출되던 아픈 역사의 장소이다. 이런 평화로운 인사동 또한 아픈 역사를 피해갈 순 없었다. 조선 시대부터 인사동은 그림을 관리하던 관청인 도화원이 설치되어 문화상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조선을 점령한 일본인들은 인사동의 미술상, 서점 등에서 한...
독립문ⓒ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올해는 특별하게! 3·1절 앞두고 꼭 가봐야 할 곳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2017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죠. 올해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대한민국의 독립 의사를 전 세계에 알린 1919년 3·1 독립운동 제98주년입니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귀한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리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내 손안에 서울에서 삼일절에 가볼 만한 곳들을 모아봤습니다. 그동안 우리 역사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아로새겨보는 건 어떨까요? ※ 파란색 글자를 클릭하시면 관련 정보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  기억의 터 남산 옛 통감관저터에 열린 `기억의 터` 제막식 중 `세상의 배꼽` 조형물 앞에서 기념촬영 기억의 터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계적 인권이슈로 부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내에 그 아픔을 기리고 기억하는 공간조차 없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8월 조성됐다.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두 작품이 기존의 통감관저터 표지석, 거꾸로 세운 동상과 함께 설치돼 있다.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해외 추가신고자 포함)의 성함과 함께 할머니들의 증언을 시기별(끌려가던 순간-위안소에서의 처절한 삶-해방 후 귀국, 귀향하던 때-반세기의 침묵을 깬 그 이후 인권활동가로서의 새로운 삶)로 새겼다. 또한 故김순덕할머니의 작품 ‘끌려감’이 함께 새겨져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세상의 배꼽’에는 윤석남 화가의 작품과 함께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글귀가 한글·일본어·영어·중국어로 함께 새겨졌다. 세상의 배꼽 주변으로 놓이는 자연석들은 전국, 전 세계에서 마음을 모아온 할머니들과 국민들을 뜻한다. 기억의 터에 마련된 `대지의 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역사가 담겼다.(좌) 둥근 언덕으로 둘러싸인 `세상의 배꼽`은 평화를 상징한다....
`대지의 눈`에 새겨진 故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

남산에 아로새긴 ‘위안부’ 소녀의 눈물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가을은 걷기 좋은 계절이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남산공원은 시민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진다. 남산을 찾는 중국 관광객도 해마다 늘어 수천 명을 훌쩍 넘는다. 최근 서울의 관광 명소, 남산공원 입구에 조금 특별한 공간이 들어섰다. 지난 8월 29일 제막식을 가진 ‘기억의 터’에 다녀왔다. 남산공원 입구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면 `기억의 터`가 보인다. 시민 성금으로 만든 위안부 기억의 공간 기억의 터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기리고, 지난 역사를 기억하자는 뜻에서 서울시와 시민사회가 함께 만들었다. 지난 2015년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기억의 터 디딤돌 쌓기’ 국민 모금운동이 펼쳐졌다. 시민 1만 9,755명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았다. 3억 4,000여만 원의 적지 않은 성금이 주춧돌을 놓았다. 기억의 터 한쪽에는 성의를 건넨 시민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서있다. 충무로역 4번 출구로 나와 5분 남짓 걸으면 남산 입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 기억의 터에 이른다. 맨 처음 눈길을 사로잡는 건 기억의 터 안내문. 기억의 터 지형도와 함께 조형물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에 전체 그림이 그려진다. 죽어서도 눈 감지 못한 할머니들 안내문을 지나면 사람 눈 모양을 본뜬 작품 ‘대지의 눈’이 탐방객을 맞는다. ‘대지의 눈’ 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겪어온 지난 70여 년의 삶이 애절하게 담겼다. 기억의 터에 마련된 `대지의 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역사가 담겼다. "내 나이 12살, 언니와 나물을 뜯는데 차가 오더니 모자 쓴 사람들이 차를 타라고 했다. 둘이 끌어안고 버텼더니 나를 발로 차버리고 언니 머리채를 쥐고 차에 태웠다." ‘대지의 눈’에는 피해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이어진다. 일본군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국에서 여성들을 이런 식으로 잡아다 성노예로 부렸다. 12~16세 사이 어린 소녀들을 말이다. ‘대지의 눈’은 천인공노할 일제...
썸네일_기억의터_지혜영

경술국치일에 만난 ‘기억의 터’…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서울미디어메이트 지혜영 여러분은 8월 29일이 어떤 날인지 아시나요?​바로, 지난 1910년 8월 29일은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한일합병조약을 공포하고 우리의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 '경술국치(庚戌國恥)일'입니다. 서울 남산공원에는 일제의 한일합병 조약이 강제 체결되며 식민시대가 시작된 바로 그 곳, 통감관저터가 자리잡고 있는데요, 106년전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추모공간 '기억의 터'가 조성되어 시민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 제막식 현장을 제가 직접 찾아보았는데요, 우리 역사 치욕의 공간이 뜻깊은 역사의 현장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마저 먹먹해졌습니다.이날 행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해 그 뜻을 함께 했는데요,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다시는 이런 가슴 아프고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나라의 힘을 길러야 한다"며 "일본의 금전적인 배상에 앞서 진심어린 사죄가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는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두 작품이 설치되고, 기존의 ‘통감관저터 표지석’ 과 ‘거꾸로 세운 동상’이 함께 어우러져 역사적 의미를 더했는데요,특히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의 성함과 함께 할머니들의 증언을 시기별(끌려가던 순간-위안소에서의 처절한 삶-해방 후 귀국, 귀향하던 때-반세기의 침묵을 깬 그 이후 인권활동가로서의 새로운 삶)이 새겨져 있고 故김순덕할머니의 작품 “끌려감” 이 함께 새겨져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이번 기억의 터 조성에는 범국민 모금운동 ‘기억의 터 디딤돌 쌓기’를 통해 초등학생부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단체 등에 이르기까지 1만 9,755명이 모금에 참여해 힘을 실었다고 하는데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라는 글귀처럼 우리 모두가 가슴 속 깊이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김서희_썸네일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제막식

 서울미디어메이트 김서희      경술국치일인 8월 29일, 서울시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는 남산 통감관저터에서 '기억의 터' 제막식을 열었습니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서울미디어메이트가 함께 했습니다. '치욕의 공간'이 2만 여 시민 참여를 통해 새로운 역사의 공간 '기억의 터'로 거듭나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감도> 8월 29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지금으로부터 90여년 전인 1910년 8월 29일은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한일합병 조약을 공포하여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일'입니다. 그리고 한일합병 조약이 체결된 곳은 현재 남산공원 통감관저터입니다. 이러한 치욕의 공간을 새로운 역사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한 행사가 지난 월요일에 개최되었습니다. 바로 서울시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에서 협력하여 조성한 '기억의 터' 제막식입니다.제막식 행사에는 김복동, 김원옥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박원순 서울시장, 양준옥 서울시의회의장, 기억의 터 최영희 추진위원장과 추진위원, 모금 참여자들 등 많은 분들이 참석했습니다.먼저 최영희 기억의 터 추진위원장의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추진위원장은 "기억의 터가 진정한 해방을 위해, 또한 지금도 전쟁에서 희생당하는 아동과 여성을 위해 인권 평화운동을 전개하시는 할머니들의 삶과 뜻을 국민들이 기억하고 이어가겠다는 약속의 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며 '기억의 터' 제막에 대한 소감을 밝혔습니다. 또한 "소녀상은 이미 그 자리에서 20여년 싸운 할머니들의 고통과 함성이 담긴 것"이라며 위안부 소녀상의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언급했습니다.이어서 김복동 할머니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님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안부 합의에 의한 위로금이 아닌 과거 잘못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성과 사죄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피해자 할머니들의 용서가 없는 위로금이 의미가 있을까요. 단순히 돈으로 할머니들의 아픈 기억이 치유될 수 있을까요. △ 故김순덕할머니의 작품...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감도

“잊어선 안 될 역사” 위안부 피해 추모공간 생긴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감도 일제의 한일합병 조약이 강제 체결되며 식민시대가 시작된 바로 그 곳, 남산공원 통감관저터가 ‘기억의 터’로 다시 태어납니다. ‘기억의 터’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공간으로 조성되는데요. 이제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은 40명. ‘기억의 터’가 할머니들에게는 위로가 되고,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는 역사의 현장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 파란색 글자를 클릭하시면 관련 정보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는 경술국치일인 8월 29일 오후 1시 남산 통감관저터에서 민·관 협력으로 조성한 ‘기억의 터’ 제막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1910년 8월 29일은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소위 한일합병조약(한국병합늑약)을 공포·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이다. 이런 의미를 담아 경술국치(庚戌國恥)일로 불린다. 행사에는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박원순 서울시장, 양준욱 서울시의회 의장, 기억의 터 최영희 추진위원장과 추진위원, 모금 참여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치욕의 공간’이 한 세기 만에, 시민 참여를 통해 ‘새로운 역사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일합병 조약 이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경제적 착취, 정치적 탄압 뿐 아니라 군 위안부라는 여성 인권유린까지 자행됐다는 점에서 강제적 한일합병 조약은 아픈 역사의 시작점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는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두 작품이 설치되고, 기존의 ‘통감관저터 표지석’과 ‘거꾸로 세운 동상’이 함께 어우러져 역사적 의미를 더하게 된다.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해외 추가신고자 포함)의 성함과 함께 할머니들의 증언을 시기별(끌려가던 순간-위안소에서의 처절한 삶-해방 후 귀국, 귀향하던 때-반세기의 침묵을 깬 그 이후 인권활동가로서의 새로운 삶)로 새겼다. 또한 故김순덕할머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