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근처에 있는 기억의 터

“잊지 않겠습니다” 명동에서 만난 ‘기억의 터’

명동 근처에 있는 기억의 터 ⓒ김진흥 10월 어느 날, 휴대폰에 알림이 울렸다. 서울시 유튜브에서 새로운 동영상이 게재됐다는 내용이었다. ‘기억의 터,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서울영상크리에이터의 게시물을 시청한 필자는 바로 명동 근처에 있는 ‘기억의 터’로 향했다. ☞서울영상크리에이터 영상 보기 : https://youtu.be/EvGZjAuDBXI 명동역 1번 출구 근처에 노랑나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김진흥 기억의 터는 2016년 8월 29일, 서울 중구 남산공원 옛 통감관저 터에 조성된 곳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전세계적 여성 문제로 떠올랐지만 서울 시내에 그 아픔을 기리는 공간이 없다는 지적과 반성에서 설립이 추진됐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의 성욕 해결, 성병 예방, 치안 유지, 강간 방지 등을 위해 일본군 점령지나 주둔지 등 위안소에 배치한 여성들을 말한다. 즉, 일본군이 성노예로 강제 징용한 여성들이었다. 당시 일본군의 반인륜적인 행태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들 중 하나다. 지금도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수많은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김진흥 기억의 터는 통감관저 터에 위치했다. 조선총독부의 전신인 통감관저는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통감이 한일강제병합을 체결한 장소다. 110년 전, 경술국치의 현장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당시 치욕의 역사를 지켜 본 400년 넘은 두 그루의 나무가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동참했다. 반인륜적 전쟁 범죄 피해자였지만 당당히 평화 인권 활동가로 활약한 할머니들의 메시지를 계승하자는 취지에서 2016년 사회단체, 독립운동가 후손 등이 모여 ‘기억의 터’ 조성 국민모금을 시작했다. 시민들도 이에 함께해 19,755명이 후원했다. 대지의 눈 ⓒ김진흥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진흥 기억의 터 조성에 참여한 임옥상 화백은 기존의 억압과 폭...
아늑한 공간이 돋보이는 기억의 터 전경. 남산공원으로 연결되는 돌계단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서 그들을 기억하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후원금 사용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오해를 풀고 시비를 제대로 가리는 일은 간과할 수 없겠으나 결코 위안부 인권운동을 제약하려는 빌미로 악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즉시 성찰하고 흔들림 없이 위안부 인권운동에 매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퍼뜩 떠오른 곳이 있었다. 며칠 전 모처럼 중구 예장동 남산 기슭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를 다시 찾았다. 기억의 터는 일본 제국주의 강점 치하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치욕과 굴욕의 역사를 각인하자는 뜻에서 마련된 공간이다. 지난 2016년 8월 29일 각계의 뜻 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 서울시의 협조로 조성되었다. 기억의 터가 자리한 곳은 일본 통감관저가 있던 곳이고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테라우치 일 통감이 한일병탄조약을 체결한 국치의 장소이기도 하다. 명동역 부근 언덕길 '나비로’에 노란나비 모양 기억의터 안내 표식이 설치되어 있다. ©염승화 기억의 터를 가려고 지하철 명동역 1번 출구로 나왔다. 이곳에서 기억의 터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거리다. 남산 방면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에 이르자 길가 축대에 부착되어 있는 생소한 조형물들이 눈에 띄었다. 노란나비 모양을 한 기억의 터 안내 표지들이다. 길 맞은편 벽면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들이 살아온 역사보다 더 힘들지 않은 오르막’, ‘노란나비는 총 몇 마리일까요?’ 등 화살표 방향 표지에 적힌 문구들과 그림들을 천천히 살펴보며 이른바 ‘나비로’로 불리는 언덕길을 올랐다. '노란나비를 따라서 할머니들을 만나러가요' 소방재난본부 앞 거리 안내 표식©염승화 기억의 터 앞 좌우에는 마치 문지기처럼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노거수가 우뚝 서 있다. ©염승화 남산공원에 들어서면 곧바로 목적지인 기억의 터가 눈앞에 보인다. 공원 초입 좌우에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신록 울창한 이파리로 숲을 가득 이룬 채 우뚝 서 있다. 수령 400년이 훨씬 더 된 보호수들이다. ...
제101주년 3·1절 맞아 의미와 가치 공유를 위해 기획된 꿈새김판 문구

코로나19 극복! 우리에겐 함께 이겨내온 역사가 있습니다

제101주년 3·1절 맞아 의미와 가치 공유를 위해 기획된 꿈새김판 문구 서울시는 2020년 제101주년 3·1절을 맞아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시민들과 함께 되새기고자 서울도서관 꿈새김판을 새롭게 단장했다. “우리에겐 함께 이겨내온 역사가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담은 이번 꿈새김판은 3·1운동 제101주년을 맞아 숫자 ‘101’을 만세를 부르는 사람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이미지를 담아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우리 민족의 기상을 표현했다. 특히 3·1운동에 참여한 민중들의 ‘일상으로의 회복’에 대한 소망과 염원에 착안해 코로나19 등 우리 사회가 마주한 난관과 갈등을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자는 의미를 담았다. 한편, 온라인 매체를 통한 시민참여 캠페인도 진행한다. 온 민족의 단합된 힘을 보여준 101년 전의 3·1운동처럼 시민들이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 서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2월 28일부터 서울시 대표 SNS 채널을 통한 손글씨 인증 릴레이 캠페인 ‘함께 이겨내요 대한민국 만세’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3월 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남산 ‘기억의 터’ 주변에 조명길인 ‘나비로(路)’를 설치하고, 주변 지하철역 및 명동·충무로 일대 홍보물 부착 등을 통해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을 제고할 방침이다. 박진영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은 “코로나19 등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국가적 난제들의 극복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참여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민중의 자발적 참여가 빛난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의: 시민소통담당관 02-2133-6454 ▶ 더 많은 서울 뉴스 보기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하기 ▶ 내 이웃이 전하는 '시민기자 뉴스' 보기 ...
기억하지 않으면 진실은 사라집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진실은 사라집니다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 총리 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한일합방’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명백히 ‘국권피탈(國權被奪)’이었다. 강제조약이 체결됐던 통감 관저는 거의 백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2016년, 바로 그곳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기억의 터’ 공원이 조성되었다. 왜 하필 국치의 현장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인가? 라는 이견도 있었지만, 그 역사의 순간을 되돌아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온 세상에 제대로 알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남산 통감 관저 터에 조성된 ‘기억의 터’ ©이선미 ‘위안부’ 할머니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잊혀져 왔다. 나라도 그들의 문제를 외면했다. 고통으로 삶이 망가졌지만 누구도 위로하거나 책임을 나눠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0년 6월, "일본군은 군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라는 일본 정부의 발표에 고 김학순 할머니가 세상에 나섰다. 1년 후인 1991년 김학순 할머니는 오랜 침묵을 깨고 일본군의 폭력을 증언했다. “내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선미 그날 이후,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는 여전히 너무도 아픈 사실이다. 할머니의 증언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이를 통해 연대하며 진실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할머니들은 또 다른 폭력의 희생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세상에 정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요구했다. 정동길에 서 있는 소녀상에 시민들이 모자와 장갑을 끼워줬지만, 발은 여전히 시리다.©이선미 그리고 2016년, 할머니들의 뜻을 이어가려는 1만9,755명의 국민들이 ‘기억의 터 디딤돌 쌓기’ 운동을 통해 할머니들의 추모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기억의 터에 자리한 '세상의 배꼽'에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문구를 새긴 둥근 돌이 있다. 할머니들이 힘든 개인사를 뒤로 하고 ...
명동역 인근 구두수선점에 부착된 입체홍보 포스터

‘기억의 터’에서 그들을 기억하다

‘내 나이 12살, 언니와 나물을 뜯는데 차가 오더니 모자 쓴 군인들이 차 타라고 했다. 둘이 끌어안고 버텼더니 나를 발로 차버리고 언니 머리채를 쥐고 차에 태웠다. 내가 울어대니 나까지 주워 올려 한꺼번에 잡혀 갔다. 대만에서 다른 차에 실린 언니와 헤어져 생사도 모른다.’ ‘도망가다 붙들려 총끝으로 엉덩이를 세대나 얻어맞고 고꾸라졌다. 푹 패인 엉덩이 상처는 곪아서 똑바로 눕지도 못하는데 열은 펄펄났다. 그래도 손님(군인)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망가진 우리몸 꼴을 보고 군인들이 오히려 도망갔다.’ '대지의 눈' 벽면에 새겨진 위안부의 증언을 살펴보는 가족관람객 ⓒ조시승 위안부의 눈을 상징한 조형물 ‘대지의 눈’ 맞은 편에 새겨진 위안부들의 증언 중 일부다. ‘기억의 터’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는 공간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전세계적 여성 문제로 떠올랐는데도 서울에 그 아픔을 기리는 공간이 없다는 지적에서 추진되었다. 생각하면 국권을 찬탈당한 시발점인 수치스러운 곳에서 그들에게 당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는게 부조화의 극치이다. 어쩌면 의표를 찌르는 역발상으로 통감관저와 기억의 터는 대척적 관계로 더욱 통렬히 기억되는 형상물로 연출될 것이다. 국치 터, 한국통감관저 터에 거꾸로 세운 비석이 있다 ⓒ조시승 ‘기억의 터’는 어떤 장소인가? 대부분 국민들은 조선총독부가 광화문 뒤쪽에 위치했다고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조선총독부가 그곳에 위치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남산에 위치했다가 1926년 경복궁 내 새로 총독부를 짓고 이전한 것이다. 또 남산에는 일제의 통감관저, 일본신사와 일본군 주력부대가 주둔했다. 명동에는 일본인 거주지가 있고, 을지로는 일본인 금융센터였다. 그런즉 남산과 그 일대는 식민지배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기억의 터’는 치욕스러운 역사의 장소를 잊지 않는 장소로 만들고자 이 위치에 만들어졌다. '기억의 터'가 조성된 2016년 8월 29일도 의미있다. 1910년 8월 29일, 일제가 한일병합조약을 맺고 한국을...
명동역 1번 출구에서 볼 수 있는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 “기억하지 않으면 진실은 사라집니다”

불편해도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광장과 공원, 학교와 버스, 지하철역 등 곳곳에서 마주하는 아픈 역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녀상도 그 중 하나다. 국내는 물론 미국과 독일, 캐나다와 중국에까지 자리하며 뼈아픈 역사를 응시하라고 한다. 서울 한성대입구역에 세워진 한중 소녀상. 단발의 한국인 소녀와 머리를 땋은 중국 소녀상을 한중 합작으로 만들었다 ⓒ박은영 2011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진 소녀상이 지난 8월, 일본 공공미술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시와 중단 그리고 다시 전시가 이어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가만히 지켜보며 무엇보다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소녀상의 전시가 갖는 의미는 남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소녀상은 조금씩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박은영 세월이 흘러 소녀는 할머니가 됐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은 모습 그대로다. 현실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녀상의 모습은 그런 세상을 향해 조금씩 다른 형상으로 존재한다. 의자에 앉은 모습부터 곧게 서거나 살짝 들린 발, 소녀의 어깨 위로 내려앉은 새의 형상, 머리를 길게 땋은 소녀상이 우리 소녀상 옆에 앉아 있는 모습까지... 그러나 다양한 형상과 달리 세상을 향한 소녀의 눈빛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흰저고리와 검은치마를 입은 소녀상 ⓒ박은영 서울시는 그 소녀상을 또 다른 방법으로 제작해 세상에 알리고 있다. 바로 포스터다. 지난 12월 11일, 지하철 4호선 명동역과 충무로역 일대에 등장한 소녀상 포스터는 렌즈에 의해 영상이 서로 다르게 굴절되는 '렌티큘라 방식'을 사용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띄는데, 방향을 달리해 바라볼 때마다 소녀상이 흐릿해지고,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면 빈 의자와 ‘기억하지 않으면 진실은 사라집니다’라는 문구만 남는다. 따스한 모자와 목도리를 두른 소녀상 ⓒ박은영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소녀상 포스터는 2016년 8월, 서울시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피해 ...
일제 당시의 통감관저터

이완용이 빼앗은 옥새 들고 간 경술국치 현장은?

일제 당시의 통감관저 터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55) 통감관저 터 우리가 조선총독부는 경복궁 앞을 흉물스럽게 차지하고 있다가 1996년 철거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장소에 조선총독부가 있기 이전 일본은 남산 자락에 총독부와 통감부를 가지고 있었다.개항 이후 한성에 들어온 일본 세력은 남산 자락에 모여들었다. 조선시대 내내 진고개라고 불리면서 가난하고 자존심 강한 선비들이 모여 살던 남산은 삽시간에 일본공사관을 비롯해서 일본인들의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별천지로 바뀌었다.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일본은 대한제국의 내정에 본격적으로 간섭할 통감부를 지금의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자리에 세웠다. 그리고 기존에 있던 공사관은 통감부를 책임지는 통감의 관저로 사용한다.이곳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1910년 8월 22일, 순종을 윽박질러서 반 강제로 옥새를 빼앗은 총리대신 이완용이 통감관저로 와서 제2대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대한제국의 주권을 넘기는 조약을 체결했다는 점이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이 잘 보존되고 알려져 있던 반면, 더 치욕스러운 경술국치의 현장은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져버린 셈이다.충무로역이나 명동역에서 내려서 걸으면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는 이곳이 잊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광복 후에 남산 일대에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서슬퍼런 독재가 이어지던 시기에는 남산은 불길하고 쳐다보지도 말아야 할 곳이었다. 통감부를 비롯한 통감관저도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통감관저의 위치가 확인되면서 기억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작업들이 이뤄진다. 통감관저 터 비석(좌) 거꾸로 세워진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 잔해(우)가장 먼저 생긴 것은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이해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세운 비석이었다. 그리고 조선을 집어삼킨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외교관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 잔해들을 모아서 거꾸로 박아버렸다. 그 다음에 생긴 것은 일본에게 희생당한 위안부를 기리는 공간으로 조성된 기억의 터였다. ...
안중근의사 동상을 비롯해 남산 곳곳에는 독립운동가의 동상 및 시비 등을 만날 수 있다

가슴 뭉클!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안중근의사 동상을 비롯해 남산 곳곳에는 근현대사의 기억을 만날 수 있다 함께 서울 착한 경제 (106) 광복절 맞이 남산 일대 역사여행 8월 15일은? 광복절! 그렇다면 8월 29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광복절이야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29일이 경술국치일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29일은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 또 영구히 일본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는 한일병합조약을 공포한 날이다.​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나라를 되찾은 것일까, 나라를 빼앗겼던 치욕스런 과거일까? 일제의 잔혹한 만행일까? 독립을 위한 의지일까? 진정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서울 남산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았다.​ 잊혀진 경술국치의 현장을 찾아서... 역대급 폭염이라지만, 남산의 짙은 녹음 아래로 들어서니 더위가 조금 가시는 듯하다. 서울유스호스텔로 향하는 굽은 길을 따라 오르자니, 저만치 커다란 은행나무 뒤로 강렬한 여름 햇살을 가득 품은 조형물들이 보인다.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곳, 통감관저가 있던 곳이다.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은 이곳 통감관저 2층에서 당시 통감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다. 앞서 창덕궁에서 조약안을 순종 황제에게 보이고 각 조항을 설명하고 가결하는 어전회의를 거치긴 했지만, 형식적인 회의일 뿐이었다. 조약 조인 사실은 일주일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29일 국원양여에 대한 순종의 칙유와 함께 반포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통감관저는 1890년대 후반 일본공사관 용도로 지어졌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주둔했던 왜성대라 하여 이곳에 자리 잡았다는데, 1885년 맺은 한성조약에 따라 일본공사관 부지로 내준 것이다. 일본공사관으로 쓰이던 건물은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 체결로 통감부가 되었다. 일본인 통감이 외교 사무를 대행한다는 것인데, 통감부는 실제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설치한 감독 기관...
지난 8월 29일 남산 옛 통감관저터에 열린 `기억의 터` 제막식 중 `세상의 배꼽` 조형물 앞에서 기념촬영ⓒ뉴시스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와 함께해요 ‘기억의 터’ 1주년

지난해 8월 29일 남산 옛 통감관저터에 열린 `기억의 터`제막식 일제의 한일합병 강제조약이 체결된 남산공원 통감관저터에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가 조성된 지 1년. 그동안 문화해설 프로그램 및 개인‧단체 방문 등으로 약 2,000명의 시민들이 찾아와 돌아가신 피해 할머니를 기리고 ‘위안부’에 대한 역사를 배웠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는 경술국치일을 앞두고 8월 26일 오후 5시, 기억의 터에서 1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행사에는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박원순 서울시장, 기억의 터 최영희 추진위원장,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서울시의회 박양숙 보건복지위원장, 한명희 여성특별위원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시민 홍보대사인 ‘기억하는 사람들’ 239명과 홍보대사인 배우 한지민도 참석한다. 이번 1주년 기념행사는 ‘위안부’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며, 잊지 않고 기억해야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과 다짐으로 이뤄진다. 우선 10개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 바로알기 체험부스에서 ‘나만의 소녀상’ 만들기, ‘희망돌탑 쌓기’ 등을 운영한다. 또한 기념식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축사와 함께 ‘미래세대 위촉장 전달식’, ‘할머니와의 약속’ 낭독을 진행한다. 이어서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배우 한지민과 함께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고향의 봄’을 제창한다. 길원옥 할머니는 13세에 만주로 끌려가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가 최근 음반을 발매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 7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관리사업을 통해 세계 최초로 한국인 `위안부` 동영상을 발굴하여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종합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추후 시민들이 ‘위안부’ 역사를 쉽게 접하고 기억할 수 있는 대중 콘텐츠 제작도 추진할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제 생존해 있는...
남산총독관저 ⓒ부산박물관

‘ㄱ’해줄래? 남산 1.7km ‘국치길’ 조성

남산총독관저(좌), 현재 기억의 터(우) 일제는 조선 얼굴에 해당하는 남산에 가장 격이 높은 조선신궁을 세우고 메이지 천황을 제신으로 숭배하게 했다. 조선 통치 중추인 통감부를 세우고,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조성한 곳도 남산이었다. 남산은 나라를 잃고 국토, 주권을 내 주어야 했던 치욕의 장소이면서, 해방 이후에는 중앙정보부가 설치되어 100년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장소였다. 서울시는 이처럼 우리 민족과 격리된 채 역사적 흉터처럼 가려져 온 남산 예장자락 속 현장을 2018년 8월까지 1.7Km 구간 역사탐방길로 잇는다. 쓰라린 국권상실 역사 현장을 시민이 직접 걸으며 치욕의 순간을 기억하고 상처를 치유하자는 의미로 ‘국치길’이라 이름 붙였다. `ㄱ`자 로고와 바닥 설치 예시 국치길 1.7Km는 ‘ㄱ’자 모양 로고를 따라 이어진다. 코스는 병탄조약이 체결된 ‘한국통감관저터’를 시작으로 김익상 의사가 폭탄을 던진 ‘조선총독부’, 청일전쟁 승전기념으로 일제가 세운 ‘갑오역기념비’, 일제가 조선에 들여온 종교 시설 ‘신사’와 ‘조선신궁’까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자체로 시대 감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국치길 로고 디자인은 ‘길’의 ‘ㄱ’을 표현한 것으로 ‘ㄱ’은 한글 첫 자음이자 이 역사를 ‘기억’(ㄱ)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보도블럭 모듈로 설치할 예정이다. 국치길 각 기점에는 표지석이 세워진다. 표지석 재료는 국세청 별관을 허물며 나온 일제 총독부 산하 체신사업회관 건물지 폐콘크리트 기둥이 쓰일 예정이다. 우선 한국통감부이자 조선총독부가 위치했던 서울애니메이션 부지에 설치된다. 탐방로 조성 후에는 역사문화해설사가 동행해 남산 역사, 문화, 인물에 대해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국치길 코스 서울시는 107년 전 병탄조약이 체결된 국치의 날이기도 한 22일 오후 3시, 이 같은 역사탐방로 ‘국치길’ 조성계획을 발표하고 국치 현장 역사탐방 행사도 개최한다. 역사탐방 행사에는 김구, 이회영, 윤봉길, 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