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방송 장면

캐릭터가 살아있는 글이란?

드라마 방송 장면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50) 캐릭터 만드는 글쓰기 글 쓴 사람이 보이는 글 “문체가 그 사람이다.” 이런 말 안 믿었다. 이제는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자기 성격을 글에서 숨기려 하는 사람과, 당당하게 내보이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후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의 글에 캐릭터가 생긴다. 캐릭터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분명하고 희미한 것만 있을 뿐이다. 당연히 분명한 게 좋다. 글을 읽으면서 독자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구나.’ 확연히 알수록 좋다. 캐릭터는 숨기지 않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독자를 속일 자신이 있으면 전혀 다른 인물을 창조해도 된다. 그러기는 쉽지 않지만, 소설가는 그런 걸 한다. 그게 고수다. 하지만 그럴 자신 없으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뱉어라. 그게 홈그라운드이고,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독자가 호감과 매력을 느끼는 지점도 바로 그곳이다. 메시지는 메신저가 투명할 때 잘 드러난다. 유시진 캐릭터 한때 가 중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당시 강의를 위해 중국에 갔는데, 호텔 TV를 켜면 연일 재방송 중이었고, 서점에도 ‘송송’ 커플 사진이 곳곳에 걸렸다. 특히 중국 여성들의 송중기 구애 열기는 불에 댈 듯이 뜨거웠다. 와 송중기 인기 비결을 우리 교민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 여성은 유시진 대위가 하는 ‘달달한 대사’를 평생 듣지 못한다. 그것이 ‘태후’에 열광하는 첫 번째 이유다. 다른 하나는 유시진 대위의 애국심이다. 중국 정부는 TV 드라마의 30% 이상을 항일 투쟁을 소재로 만들 것을 강제하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애국적인 남성상에 자신도 모르게 매료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한다. 결국 유시진이라는 캐릭터의 성공이다. 달달함과 투철함, 농담과 진담이라는 양면성을 보여주는 유시진에 빠져든 것이다. 캐릭터의 요건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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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로 행복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9) 행복하려면 글을 쓰세요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무엇인가를 이뤄내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았을 때다. 성취와 인정이 행복으로 가는 두 통로다. 성취할 때 행복 오락 게임이 재밌는 이유는 이뤄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본능적인 짜릿함 뒤에 성취감이 있다. 올라가는 단계가 없는 게임은 없다. 레벨이 없으면 성취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을 사귀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마찬가지다. 즐거움 배후에는 상대의 마음을 빼앗았다는 성취감이 자리하고 있다. 오래 교제하다 보면 시들해지는 이유는 이미 성취했기 때문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스피노자. 인간은 누구나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경향이나 힘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코나투스(conatus)’라고 했다. 코나투스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를 갖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바로 코나투스가 성취욕구다. 모르던 것을 알고, 분명하지 않던 것을 명확하게 깨우치고, 그럼으로써 내 안이 채워지고 스스로 성장하게 하는 그것이다. 이런 성취감을 채우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는 글쓰기다. 글이야말로 인내의 용광로에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주조하여 뽑아낸 특별한 성취물이다. 온전히 내 안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성취이다. 글을 한편 쓰고 나면 뿌듯한 것도 그런 연유다. 인정받을 때 행복 사람은 또한,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때 행복하다. 비범한 사람은 성취만으로 만족할 수 있지만, 보통 사람은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다고 했다. 자기 안에는 두 사람의 내가 존재하는데, 나 스스로 이렇다고 생각하는 ‘나’(주체적인 나)와, 남들이 이렇다고 하는 ‘나’(객체화된 나)가 있다. 객체화된 ‘나’(Me)는 주체인 ‘나’(I)에 항상 못 미친다. 나 스스로 평가하는 내가, 남들이 보는 나보다 늘 우월하다는 ...
이세돌ⓒ뉴시스

인공지능을 이기는 인간의 ‘글쓰기 필살기’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8) 인공지능 시대 글쓰기 운명은 어떻게 될까? 머지않아 인공지능(AI)이 글 쓰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인류의 글쓰기는 종언을 고할 것인가. 인공지능은 지치지 않는다. 밤낮없이 쓸 수 있다. 모든 걸 안다. 좌절하지도 않는다. 평가에 무감각하다. 모든 표현이 가능하다. 설득은 기본이고 감동까지 이끌어낸다. 인간의 마음이 어느 코드에서 감응하는지 완벽하게 읽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빅데이터가 가져온 변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은 개와 고양이도 구분하지 못했다. 그런데 급격한 발전이 이뤄졌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수집한 어머 어마한 데이터 양 덕분이다. 페이스북에만 하루 3억 개 이상의 글이 올라온다고 한다. 트위터에도 하루 4억 건 넘게 포스팅 된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패턴만 분석해도 어떤 글이 인정받는지, 사람들은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 지역별, 성별, 연령별, 관계별로 전수조사가 가능해졌다. 구글의 검색 기록을 분석하면 사람들의 관심사는 물론, 생각의 분석과 함께 향후 행동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이른바 빅데이터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앞으로 뇌를 연구하는 사람, 컴퓨터 전문가,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 빅데이터를 놓고 머리를 맞대면 어떤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매뉴얼로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글 쓰는 원리를 밝혀내고 글쓰기 모형을  창안하여, 모든 글에 적용하고, 누구나 활용 가능한 글쓰기 방법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싱귤래리티와 글쓰기 ‘싱귤래리티’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알파고 이후에 부쩍 많이 회자되는 개념이다. 우리말로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이라고 번역된다.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역사적 분기점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컴퓨터 구조를 처음 생각해낸 천재 수학자 폰 노이만이 1953년 처음 언급한 이후, 2005년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이 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
석촌호수ⓒnews1

글이 쓰기 싫을 때 이렇게 대처하세요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7) ) “글은 쓰기 싫은 게 정상이에요” - 글이 쓰기 싫을 때 대처법글을 쓰려고 하면 나는 느낌이 안 좋다. 마음이 무겁고 약간의 짜증과 스트레스가 온다.왜 글이 쓰기 싫을까 인간은 누구나 일을 앞두고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정보를 일단 부정적으로 해석해야 위험한 자연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적 반응 성향이 유전자에 박혀 있다.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집합무의식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말한 인류의 집합무의식은 전쟁으로 점철된 역사로 인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있다.무엇보다 인간의 뇌는 소극적이다. 뇌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뇌간의 반응 양식은 도망가거나 싸우거나 둘 중의 하나다. 나보다 힘이 셀 것 같으면 도망가고, 약할 것 같으면 싸운다. 그런데 글이라는 대상은 정체가 모호하다. 매우 위험해 보인다. 당연히 도망갈 궁리부터 한다.글은 쓰기 싫은 게 정상 나는 주변에서 글쓰기가 재미있다는 사람을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내 경우에 글을 못 쓰는 이유는 100개라도 댈 수 있지만, 써야 하는 이유는 ‘써야 한다’는 것 하나 뿐이다. 써야하기 때문에 쓸 뿐이다.그런데 세상은 쓰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말한다. 사람들은 마치 쓰고 싶어 쓰는 것처럼, 어려움 없이 쓰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런 괴리감이 강박감을 느끼게 한다. 나도 글쓰기가 재미있고 쉽게 써지는 것처럼 보여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받는다.쓰기 싫을 때 어떻게 할까 미국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Daniel Wegner)는 1987년 대학생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한 그룹에는 흰색 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고, 다른 그룹에는 흰색 곰을 생각해도 좋다고 했다. 결과는 흰색 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한 그룹이 더 많이 흰색 곰을 생각했다. 의도적인 사고 억제가 오히려 생각을 강화한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다. 이를 ‘반동효과’라고 한다. 글을 써...
글ⓒ뉴시스

글이 써지는 순간은 언제 오나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6) 축적, 몰입, 융합많은 글을 썼다. 청와대와 기업에서 천 편 가까운 연설문과 기고 글을 쓰고 다듬었다. 쓰기 시작할 땐 매번 두려웠다. 단 한 번도 자신 있게 시작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한 번도 못 쓴 적은 없다. 못 쓰면 안 되니까. 써야하니까.분명하게 경험한 것이 하나 있다. 쓰다 보면 써진다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지만 깜깜하던 방이 훤해지는 순간이 온다. 왜 이제야 이런 게 찾아온 거야 생각하며 정신없이 쓰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온다.양을 쌓는다 양의 증가는 반드시 질의 변화를 가져온다. 어느 지점까지는 양이 쌓여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다가 양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질이 바뀐다. 어느 순간 비약적 발전이 이뤄진다. 글을 많이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에 글쓰기 패턴이 생긴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깨우치는 순간이 온다. 무엇을 어떻게 깨우쳤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그 이전과 다른 상태가 된다. 글쓰기 양질전화가 일어난다.참고 기다리며 꾸준히 쓰는 게 어렵다. 조급증과 답답함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대나무는 씨를 뿌리고 한 해, 두 해 기다려도 싹 조차 보이지 않는다. 죽지 않았나 의심할 무렵, 30cm 죽순이 고개를 내민다. 참고 기다리며 물과 거름을 준 결과다. 그러나 또다시 그대로다. 도무지 더 이상 자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가 5년째에 하루 1m씩 자라 불과 달포 만에 15m 넘게 훌쩍 큰다. 폭발적인 성장, 퀀텀 리프(quantum leap)를 한다.<고도원의 아침편지>는 2007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올리고 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묻는 분에게 추천하는 사이트다. 여기서 글 쓰는 방법을 배우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10년 가까이 매일 쓰는 꾸준함을 배우라는 뜻이다.봄풀은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 자란다. 글쓰기 실력도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매일 자라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깊이 뿌리를 내리며 ​퀀텀리프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 확신만 있으면, 그리고...
도서관ⓒ뉴시스

영문법 공부하듯 국어를 공부했다면…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5) 영문법 공부한 것 1/100만 하면 잘 쓸 수 있다 - 글쓰기, 문법에 답이 있다글을 잘 쓰는 방법 중의 하나는 문법에 맞게 쓰는 것이다. 하지만 학창시절, 영어에 비해 국어 문법은 소홀히 했다. 글을 잘 쓰는 데 필요한 문법은 아예 배우지 못했다. 국어시간에는 글을 읽고 분석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작문 시간이 있었지만 유명무실했다.비문을 쓰지 않는 방법 3가지 문법에 맞는 글, 다시 말해 비문(非文)을 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세 가지다.첫째, 주어와 서술어가 한 번씩만 등장하는 홑문장으로 쓰는 것이다. 문장이 복잡해지면 비문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둘째, 내용을 잘 이해하고 쓰는 것이다. 잘 모르는 내용을 쓰면 문장이 꼬여 비문이 된다. 내용을 완전하게 파악할수록 일필휘지가 가능해지고 이해하기 쉬운 글이 나온다.셋째, 말하듯이 쓰는 것이다. 왜 말은 잘하는데 글 쓰는 데에는 애로를 겪는가. 욕심을 내기 때문이다. 그런 욕심이 과다한 수식어와 수사법을 사용하게 하고, 결국 비문을 만든다.세 가지 어울림 점검 주어와 서술어, 와/과, ~고/~며 전후, 수식어와 피수식어. 이 세 가지가 잘 어울리면 좋은 글이 된다. 그렇지 못하고 불협화음하면 비문이 된다.첫째,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해야 한다. 주술관계가 어긋나지만 않게 써도 비문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다. 우리글의 문장형식은 세 가지 뿐이다. 주어+서술어, 주어+목적어+서술어, 주어+보어+서술어이다. 주술관계를 확인한 후, 목적어와 서술어, 보어와 서술어 관계도 맞춰본다.둘째, 와/과, ~고/~며 전후의 문구를 대등하게 쓰는 것이다. “꿩과 호랑이와 파충류가 공존한다.”는 대등하지 않다. “조류와 포유류와 파충류가 공존한다.”라고 하거나, “꿩과 호랑이와 악어가 공존한다.”라고 해야 대등하다. “철수는 수학을 잘하고, 영희는 농구를 잘한다.” 역시 대등하지 않다. 수학은 공부 과목이고, 농구는 운동 종목이란 점에서 그렇다. “철수는 수학을 잘하고, 영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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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약보다 강하다”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4) 정신적 변비에서 탈출하자 - 글쓰기로 정신건강 유지하기 “펜은 약보다 강하다.” 1932년 일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버러 대너(Deborah Danner)는 노트르담 교육 수도회에 소속된 수녀 180명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진술서를 쓰게 한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1990년 초에 이를 분석해봤다. ‘사랑’, ‘즐거움’, ‘만족’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쓴 상위 25%의 10명 중 9명이 85세까지 장수한 반면, 긍정적인 단어를 적게 쓴 하위 25%는 10명 가운데 3명 정도만 생존해 있었다. 긍정적인 단어 사용이 장수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2004년 미국 텍사스 대학 제임스 페니베이커(James Pennebaker) 교수는 이런 실험을 했다. 두 그룹에게 일기를 쓰게 했는데, 한 그룹은 고통스럽고 자신을 괴롭힌 이야기를, 다른 그룹은 일상의 일을 쓰게 했다. 단,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쓰도록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부정적인 내용을 쓴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다. 심지어 관절염, 천식과 같이 스트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는 병이 호전되기까지 했다. 글쓰기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배출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함으로써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이다. 글쓰기는 치유의 힘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힘들 때마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한쪽에는 지금 나를 괴롭히는 어려운 일, 다른 한쪽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일을 적었다. 막상 써보면 아무리 힘들 때에도 어려운 일 보다는 감사할 일이 많았다고 한다.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할 날만 기다리고 있던 때에도 그랬다. 언제나 글을 쓰고 나면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나 역시 글을 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친구에게 고민을 말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처럼. 큰일을 당하면 이전에 걱정했던 일들이 사소하게 느껴지듯 말이다. 내 안에서 솟아나는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절제가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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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흐름에 올라타자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3) 즐거운 글쓰기, 행복한 인생 -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흐름에 올라타자글 잘 쓰는 방법으로 학창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 있다. 구양수의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나는 구양수가 말한 읽기, 쓰기에다 말하기, 듣기를 더하고 싶다.쓰기는 말하기, 듣기, 읽기와 함께 해야 완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쓸 뿐만 아니라 많이 말하고 많이 들어야 한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는 한 몸이다. 이들은 별개로 작동하지 않는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를 부추긴다.읽으면 말하고 싶고, 말하면 쓰고 싶어진다. 말을 잘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다. 들으면 쓸거리가 생각나고, 말하면 쓸거리가 정리된다. 말을 잘하고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들어야 한다. 또한 듣고 읽은 것은 말하고 썼을 때 확실하게 자기 것이 된다.읽기와 듣기는 입력이다. 쓰기와 말하기는 출력이다. 우리 몸이 먹은 것은 배출해야 탈이 나지 않듯이 입력한 것은 출력해야 한다.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읽기와 듣기는 콘텐츠의 소비다. 쓰기와 말하기는 콘텐츠의 생산이다. 신체가 먹어야 생명활동을 유지하듯 소비하기 위해서는 생산해야 한다.결국 우리의 정신도 몸과 마찬가지로 섭취와 배설이 균형을 이뤄야 건강하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가 활발하게 순환하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는 함께 할 때 완전해진다.행복한 인생에 이르는 길 말하고, 듣고, 읽는 것은 단지 글쓰기에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나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통해 ‘교양’을 닦고 쌓는다.교양(敎養)의 의미는 세 가지가 아닌가 싶다. 첫째, 인성, 품성이다. ‘교양이 있다’고 할 때 의미다. 교양이 있는 사람은 된 사람이다. 둘째, 지식, 식견이다. ‘교양을 쌓다’고 할 때 의미다. 교양을 쌓은 사람은 든 사람이다. 셋째, 품위, 품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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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연애편지’ 쓰듯이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2) 바로 그 한 사람을 위해 써라군대 훈련소에 입소한 첫날, 집에 옷가지를 부치면서 편지를 쓰게 한다. 이 편지를 받은 대다수 어머니 눈에 눈물이 고인다.초등학교 다닐 적, 위문편지를 많이 썼다. 이 편지를 받은 국군 장병 아저씨가 우는 경우는 없다.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훈련병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가 아니라 자기 ‘엄마’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고, 초등학생은 이 땅의 모든 국군장병 아저씨에게 썼기 때문이다. 훈련병은 특별한 한 사람을 독자로 하고 있고, 초등학생은 불특정 다수가 독자다.대상이 분명할 때, 할 말이 구체화되고, 진심이 담긴다. 임자가 없는, 번지수가 불분명한 글은 감동을 주기 어렵다.연애편지는 늘 감동적이다. 대상이 명확하고, 간절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상관없다.누구를 독자로 상정하고 쓰는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누구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썼느냐고 물어봤다. 저학년은 담임선생님을 독자로 상정하고 썼다고 대답했다. 고학년은 특정인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답했다.대부분 사람이 독자를 명료하게 떠올리며 글을 쓰지 않는다. 상대를 꼭 집어놓고 쓰지 않으면 글이 공허해진다. 누구에게도 의미 없는, 아무도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글이 된다. 일반론으로 흐르거나 추상적인 글이 나온다.더 큰 문제는 무엇을 써야 할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상이 명확하지 않으니, 그에게 무엇을 줘야 할지도 막연한 것이다.물론, 회사에서 보고서를 쓸 때는 독자가 분명하다. 보고서를 읽게 될 상사가 독자다. 이 경우에도 상사의 성향과 취향 등을 속속들이 알수록 잘 쓸 수 있다.글쓰기는 독자와의 대화 “글을 쓰기 전에는 항상 마주 앉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라 상상하라. 그 사람이 지루해 자리를 뜨지 않도록 하라.” 전 세계 작가 중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미국 소설가 제임스 패터슨의 말이다.독자를 시야에서 놓치지만 않아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글재주를 타고나지 못하고, 독서량과 어휘실력이 부...
책ⓒnews1

내 글에 디테일을 살리는 요령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1) 잘 쓰는 사람의 소소한 특징 12가지글을 잘 쓰는 사람은 어휘력이 풍부하고 논리적이다. 생각과 느낌이 남다르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사소한 것에 철저하다. 그 사소한 차이로 빛을 발한다.디테일이 좋다고 모두 좋은 글은 아니지만, 좋은 글은 반드시 디테일이 좋다. 그런 디테일 12가지를 소개한다.1. 단어의 뉘앙스 차이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 자리에 딱 맞는 단어는 하나뿐이다. 글쓰기는 그 단어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단어를 쓰지 않고 다른 단어를 쓰면 다른 뜻이 된다.아래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자. 보존과 보전, 운영과 운용, 참가와 참여, 부문과 부분, 공통과 공동, 참고와 참조 파장과 파문, 양성과 육성, 통지와 통보, 폐기와 파기, 곤혹과 곤욕. 비판과 비난2. 짝을 맞춰 쓴다. 우리말에는 짝이 있는 말이 있다. ‘비록’ 뒤에는 ‘~일지라도’가 와야 한다. 결코 ~하지 않겠다, 하물며 ~이랴, 왜냐하면 ~때문이다, 만일 ~라면도 마찬가지다. 이밖에도, ‘제발’ 뒤에는 청원, ‘아마’에는 추측, ‘설마’ 에는 의문, ‘너무’에는 부정의 의미가 와야 한다.주어, 목적어와 서술어가 따로 놀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공부를 안 한 학생은 벌을 준다.” 주술이 맞지 않는 비문(非文)이다. 벌을 주는 사람은 선생님이지 학생이 아니다.3. 대등 관계를 지킨다. 접속조사 ‘와/과’, ‘~고’, ‘~랑’으로 연결돼 있는 앞뒤 말이 대등하다.아래는 대등을 지키지 못한 경우다. 밀림을 지배하는 동물은 호랑이와 사자와 파충류다. ☞ 포유류와 파충류가 동급이다. 아들은 우등생이고 딸은 노래를 잘한다. ☞ 우등생과 노래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에너지 절약이랑 근무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힘써 ☞ 절약은 향상시킬 수 없다.4. 문장을 쓸데없이 자르지 않는다. ‘을, 를, 이, 가’를 습관으로 추가하지 않는다. ‘생각을 한다’는 ‘생각한다. ‘공부를 한다’는 공부한다. ‘부각이 되다’는 부각되다. ‘문제가 되다’는 문제되다.소유격 ‘의’,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