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총도

개발과 보존의 상생 현장,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지금은 거대한 빌딩 숲이 되어 버린 종로는 한양의 상징이었던 거리다. 한양의 행정 구역에서 중부 견평방은 조선시대 최고의 번화가이자 시전의 중심지로 순화궁, 죽동궁 등 왕실 가족의 사가도 많이 있었다. 사법기관에 해당하는 의금부와 의료와 약재를 담당하던 전의감 등의 관청도 있었다. 이렇듯 지금의 종로, 조선시대 견평방은 한양의 중심이면서 시전, 궁가, 관청 등 다양한 시설과 계층이 어울려 살던 조선시대의 숨결이 아직도 느껴지는 살아있는 동네였다. 견평방이 표시된 서울 고지도 '수선총도'  무심코 지나치던 종로의 빌딩 숲 지하에 조선시대 견평방, 근대로 말하면 공평동 유적지가 살아 숨쉬고 있다. 종각역 3-1번 출구에서 바라보는 특이하게 생긴 종로타워 건물 바로 옆 센트로폴리스 지하 1층에 있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바로 그곳이다. 빌딩을 지으면서 감히 지하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되살렸으리라고 짐작조차 힘든 곳에 '개발과 보존의 상생'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큰 행운이다. 이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애쓴 서울시의 노력과 땀방울의 결실이라 느껴진다. 종로 타워 옆 센트로폴리스 지하에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있다 ⓒ최병용 조선시대 견평방이 근대에 넘어오면서 공평동으로 지명이 바뀌어 현재도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평동에 속한다. 2015년 공평동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한양에서 근대 경성에 이르는 서울의 골목길과 건물터가 온전하게 발굴 되었다. 서울시는 도시유적과 기억을 원래 위치에 전면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조성해 역사도시 서울의 보존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도시정책의 모범사례로 남겼다. 이렇게 조성된 도시유적전시관은 도시유적의 역사성, 사실성, 장소성이 유지되어 옛 서울의 변화과정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16세기 조선시대의 건물지와 길을 그대로 보존한 도시박물관 내부 ⓒ최병용 대표적인 전통 큰집은 공평동 유적지에서 발굴된 가장 큰 규모의 건물지로 중인(中人) ...
조선시대 도시유적을 그대로 보존해 놓은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입구

방학에 아이 손잡고 떠나는 600년 전 서울 여행

조선시대 도시유적을 그대로 보존해 놓은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입구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600년 전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지난 9월 문을 연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그것. 종각역 3-1번 출구에서 내려 100미터 정도를 걸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된다. 입장료는 없다. 무료이기에 뭔가 뻔한 식상함을 예상한다면 오산이다. 입구부터 남다르다. 통유리로 된 바닥 아래는 집터의 유적들이 전시돼, 처음 몇 발자국을 걸을 때는 발목에 힘이 들어갈 수도 있다. 조선시대 건물터. 전시관 중간 중간 천으로 된 스크린에서 시청각 자료가 상영돼 이해를 돕는다. 전시관 초입에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공평동의 개발 과정부터 전시관 조성까지의 역사를 볼 수 있다. 과거 조선 한성의 행정구역이었던 공평동은 시전, 궁가, 관청 등 다양한 시설과 계층이 혼재된 곳이었다. 곳곳에 시청각 자료를 만들어 자동으로 설명이 나오는데, 이건 마치 영화 속 미래의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림이다. 뿐만 아니다. 조선의 골목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전시관 내부를 조성해 현장감이 굉장하다. 공평동 유적에서 발굴된 가장 큰 규모의 건물지인 ‘전동 큰집’을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 공평동 유적에서 발굴된 가장 큰 규모의 건물지인 ‘전동 큰집’은 실제의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 공평동의 관청 부속시설로 추정되는 당시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한 눈에 보는 조선의 가옥은 남다른 선이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이다. 조선의 골목길도 걸을 수 있다. 42m의 골목길을 그 폭부터 길가의 모습까지 세심하게 구현해 냈다. 그 길을 걸으면 실제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에 온 듯 상상해 볼 수 있다. 다양한 생활유물도 인상적이다. 옹기종기 자리한 집터들 사이로 손때 묻은 장기판이나 화로, 도자기 등 유물들이 가득하다. 한 유구에서 다량 출토된 ‘참조기 이석’ 등 생선 유체를 통해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는지까지 알 수 있다. ...
공평도시유적전시관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공평동 26층 빌딩 아래, ‘600년 한양이 깨어나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조용한 지하도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시끌벅적한 공평동 지상과 달리, 그 아래에는 지금까지 600여 년 간 서울의 모습을 묵묵히 간직하고 있었다. 9월 12일, 종로구 공평동에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개관했다고 하여 찾았다. 아직 건물이 공사 중인 관계로 주변에 공사 표시가 많아 유심히 찾아야 한다. 종각역 3-1 출구에서 종로타워 빌딩을 지나, 안국동 사거리 방면으로 가면 전시관 간판이 눈에 띈다. 종각역 3-1 출구로 나와 종로타워빌딩을 지나 안국동 사거리 방면으로 찾아가자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자, 예상보다 큰 규모의 지하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공평빌딩을 철거하며 발견된 현장이다. 이 전시관은 도심정비사업에서 발굴된 매장 문화재를 최대한 원위치에 전면 보존한다는 ‘공평동 룰’을 처음 적용한 곳이다. 전시관은 ▲개발과 보존의 상생 ▲조선시대 견평방 ▲근대 공평동 ▲도시유적 아카이브, 크게 4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전시관 전경, 건물 신축 과정에서 발굴한 모습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 입구로 들어서자 우선 거대한 현장에 놀라웠고, 이어 발밑이 유리로 돼있는 사실에 주춤했다. 하지만 안으로 더 들어가 보니, 내부는 연령을 넘어 재미를 느끼기 충분해 보였다. 특히 단순한 전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곳곳마다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정교한 블록을 맞춰보고, VR체험을 해볼 수 있으며, 순라꾼이 돼 조족등(손전등)을 비춰 찾아볼 수 있다. 발밑이 유리로 돼있어 걸으면서 전시물을 들여다볼 수 있다(좌), 골목길 ㅁ자 집 VR체험 모형기와를 쌓아보며 자연스럽게 건축법과 암키와와 수키와를 익히며, 다양한 크기의 석측(돌로 쌓은 축대)을 나르며 배워볼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네 가지 미션을 할 수 있는 게임 또한 스토리가 입혀져 흥미를 더한다. ▲엄마와 추석상 차리기 ▲누나의 시집가는 날 ▲설레는 성균관 입학 ▲안방마님의 심부름 등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면서,...
12일 서울 최대 규모 유적전시관인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개관했다.

땅 속 600년 역사가 깨어났다…‘공평동 현장박물관’ 개관

12일 서울 최대 규모 유적전시관인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개관했다. 종로에 들어선 26층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옛 서울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12일 3년 준비 끝에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개관했습니다. 전시관에서는 건물 신축 과정에서 발굴된 건물지 일부와 1000여 점이 넘는 생활유물을 만날 수 있는데요. 유구‧유물을 원 위치에 고스란히 보존한 살아있는 ‘현장 박물관(on-site museum)’이라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조상들의 삶을 엿보고 싶다면 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올 가을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 시간여행을 떠나보세요. 땅 속에 묻혀 있던 조선 초기~일제 강점기 600년 역사가 서울 종로 한복판인 공평동에서 깨어났다. 건물 신축 과정에서 발굴된 108개 동 건물지 일부, 골목길 등 유구와 1,000여 점이 넘는 생활유물을 전면 보존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3년 준비 끝에 12일 개관했다. 연면적 3,817㎡로, 서울 최대 규모 유적전시관이다. 이 건물 지하 1층 전체가 조선 한양부터 근대 경성에 이르는 역사의 흔적과 유구‧유물을 원 위치에 고스란히 보존한 살아있는 ‘현장 박물관(on-site museum)’에 해당한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골목길 ㅁ자 집 서울역사박물관은 발굴조사가 완료된 2015년 10월부터 전기 기본계획 수립~전시 콘텐츠 구축~전시관 조성‧개관에 이르는 전 과정을 주도했다. 특히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개발과 보존의 공존을 유도한 민관 협력 보존형 정비사업 모델의 첫 사례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 사대문 안에 위치한 공평동 1, 2, 4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건물지, 골목길 등 유구, 유물을 발굴하고, 문화재청, 사업시행자와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협의를 거쳐 전면보전하기로 합의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서울시에 기부채납돼 한양도성박물관, 청계천박물관, 백인...
숯불에 초벌구이구워서 나오는 공평동꼼장어

[정동현·한끼서울] 공평동 꼼장어 구이

◈ 꼼장어 구이-지도에서 보기 ◈ 숯불에 초벌구이 해서 나오는 공평동꼼장어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⑨ 종로구 공평동꼼장어 중간이 없는 나라다. 뭐든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전국에 폭염 경보가 떨어진 날, 멈출 줄 모르는 태양의 기세는 땅을 뜨겁게 달궜다.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은 본인 인격이란 가변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날 불판 앞에 앉겠다는 생각은 자학과 극기 둘 중 하나에 속한다. 하지만 뜨거운 날씨보다 더 필요했던 것은 뜨겁고 매콤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입 속에서 꿈틀댄다면 더욱 좋았다. 그리고 독주 한 잔을 목구멍으로 넘긴다면 더위 따위, 소리 한 번 크게 내지르면 끝나고 말 것 같았다. 종로로 향했다. 이제는 사라진 지번 주소인 공평동에 음식명이 붙으면 이곳 이름이 완성된다. ‘공평동 꼼장어’다. 오피스 빌딩들이 줄을 선 이 곳에 바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다. 날이 선선해지면 백이면 백 줄을 서야 간신히 드럼통 앞 낮은 의자에 엉덩이를 뉘일 수 있다. 그러나 날은 삼복더위, 숯불 앞에 앉아서 꼼장어를 굽겠다는 기백을 가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섰다. 여름에도 줄이 서 있는 공평동꼼장어 그 계산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퇴근 하자마자 간 ‘공평동 꼼장어’에는 우리를 위한 단 하나 자리가 있었다. 우리 뒤로 온 사람들은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듯한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줄을 서야 했다. 사실 이 집에서 꼼장어를 굽는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모두 다 구워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모든 메뉴는 안쪽 주방에서 계량이 되어 식당 밖으로 향한다. 그곳에 이 생물을 굽는 사내들이 있다. 얼굴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고 온 몸에서는 땀이 흘렀다. 이 식당 성공 비결이란 이 사내들 땀에서 비롯된다. 저 메뉴들을 일일이 불판 앞에서 굽다보면 시간은 오래 걸리고 수고는 수고대로 들기 마련이다. 술잔을 앞에 두고 하염없이 집게를 들고 꼼장어를 뒤척이는 것도 일, 게다가 이런 무더위 속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공평동 도시환경정비사업 중 발굴된 조선시대-일제강점기 골목터 ⓒ뉴시스

공평동 지하 600년 역사, 전면 보존한다

공평동 도시환경정비사업 중 발굴된 조선시대-일제강점기 골목터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종로구 공평동 지하에 숨어있던 600년 역사를 전면 보존한 ‘공평동 유구 전시관’이 2018년 상반기에 개관할 예정입니다. 서울시는 사대문 안에 위치한 공평동 1,2,4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대단위로 발굴된 도로와 골목, 15~16세기 다양한 신분별 집터, 청와백자편, 기와편, 분청사기편 등을 원 위치에 전면 보존하여 전시공간을 조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에 조성되는 ‘공평동 유구 전시관’은 높이 6m, 총면적 3,818㎡(약 1,154평) 규모로 서울 최대 유구 전시관입니다. 시는 문화재청·사업시행자와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협의과정을 통해 문화재 전면 보존을 원칙으로, 유구가 발굴된 원 위치인 신축건물 지하1층 전체에 전시공간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정비사업구역에서 발굴된 매장문화재를 전면 보존하는 것은 이번이 최초로, 시는 앞으로도 사대문 안 정비사업 구역에서 발굴되는 매장문화재는 최대한 ‘원 위치 전면보존’을 원칙으로 보존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16C 집터(좌), 조선시대 백자, 기와, 분청사기 등(우) 공평 1,2,4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은 당초 높이 113.8m, 용적률 999%이었으나, 이번 전시시설 조성으로 당초 높이를 유지하는 범위에서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 받아 1,199%(A동 26층, B동 26층)로 건축하게 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서울시는 사업시행자와의 추가 협의를 거쳐 정비계획 변경을 추진하고, 문화재 관련 부서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TF(Task Force)팀을 구성해 설계 및 시공의 뼈대가 될 전시 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시공에 들어가 2018년 4월에 준공 예정입니다. 사업지 위치도 전시관은 사업시행자가 조성해 서울시에 기부채납한 후, 향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운영할 예정입니다. 시는 조선시대~일제강점기까지의 도시조직과 생활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규모 현장 박물관이 조성되면 인근 인...
종로구 공평동 동헌필방

느림을 파는 곳, 인사동 ‘필방’

☞ 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서울의 오래된 것들 (2) 글방의 네 벗, 문방사우를 만나다 인사동에는 조선 초부터 그림을 관리하던 ‘도화서(圖畵署)’라는 곳이 있었다. 이 때문에 오늘날 화랑이 즐비한 전통문화거리의 대명사가 되었는가도 싶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유서 깊은 까닭은 아니고 더욱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근대화로 인한 신분 사회 붕괴가 그 원인이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북촌 양반들이 집에 전해 내려오던 물건들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게 되면서 가까운 인사동에 골동품 가게들이 늘어났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부근에 한국불교의 대표 종파의 원찰인 조계사와 한옥마을을 지척에 둔 지금의 인사동은 오래된 가게들이 포진되어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이번 호에는 그 가게들 사이에서 붓자루 가득한 오래된 필방을 찾았다. 컴퓨터를 위시한 디지털 문명이 발달하면서 필기구를 손에 들고 글씨를 쓸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참 아쉬운 일이다. 하물며 붓을 쥐어 볼 일은 더욱 요원한 것이 사실이다. 학문을 숭상하던 조선시대 유교사회에서는 문방사우(文房四友)라 하여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를 항상 곁에 두어야 할 네 벗’이라 여겼다. 선조들의 학문에 대한 열의와 더불어 감성적인 표현이 멋스럽다. 이렇게 글을 읽고 쓰는 장소인 ‘문방(文房)’에서 사용한 용품들을 문방구(文房具)라 했다. 오늘날까지도 으레 학교 앞에 몇 개씩 늘어서 갖가지 학용품들을 파는 장소로 이어져왔지만 이제는 그나마도 없어져 가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문방구 가운데 특히 붓을 만들어 파는 가게를 ‘필방(筆房)’이라 불렀다. 옛말에 ‘방(房)’자를 붙이면 한쪽에서 제조도 하고 판매도 겸했던 곳을 일컬었다. 최근에는 붓뿐만 아니라 서화(書畵)에 관련된 모든 것을 팔고 있지만, 중국에서 만들어진 값싼 제품에 밀려 국산제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신세가 되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필방들은 인사동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동헌필방의 주인 이동하 씨는 1966년 이 자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