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한시적으로 개방한 `고종의 길`

미리 걸어본 ‘고종의 길’…결코 짧지 않은 120미터

지난 8월 한시적으로 개방한 `고종의 길`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2) 고종의 길 ‘길’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 자동차 등이 다닐 수 있는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뜻한다. 길을 통해 사람들과 상품들이 오가면서 새로운 문물이 전파된다. 그 밖에도 길은 누가 언제 걸었고,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따라서 기억되거나 되살아나기도 한다. 서울시가 8월에 한시적으로 개방한 ‘고종의 길’이 그렇다. 이 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걸었던 길이다. 그리고 고종이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대한제국을 둘러싼 정세와 일본의 야심 때문이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고종은 개인적으로도 큰 아픔을 겪었는데 1895년,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으로 쳐들어와서 부인인 명성왕후를 시해한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고종은 다음해인 1896년, 경복궁을 탈출해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다. 당시 러시아를 아라사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 사건은 아관파천이라고 불린다. 1년의 피신 기간이 끝나고 고종은 환궁을 하면서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하지만 고종이 돌아간 곳은 경복궁이 아니라 당시에는 경운궁으로 불린 덕수궁이었다. 고종에게 경복궁은 너무 커서 지키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내가 피살되었다는 고통의 장소였다. 반면 덕수궁은 주변인 정동 일대에 외국 공사관과 학교, 교회 등이 밀집해 있어서 일본이 섣불리 손을 쓸 수 없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덕수궁과 정동은 대한제국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탑만 남아 있는 러시아공사관 지금은 탑 밖에 남지 않은 구 러시아 공사관은 덕수궁의 선원전과 붙어있었고, 작은 길이 중간에 있었다. 선원전은 임금의 어전과 신주를 보관하던 곳으로 지금의 신문로를 가로질러 경희궁과 연결된 홍교로 연결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길 중간에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탑만 남은 러시아 공사관의 본관 뒤편에는 비밀 통로가 난 흔적이 남아있다고 전해진다. 아마 고...
122년 만에 열린 고종의 길(King’s road), 이 길을 통해 고종은 당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하는 아관파천을 한다.

아관파천 ‘고종의 길’ 걸어봤어요~

122년 만에 열린 고종의 길, 이 길을 통해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하는 아관파천을 한다. 1896년 2월 11일 새벽 여명이 밝아 오기 전 고종과 왕세자였던 순종은 경복궁에서 궁녀로 변장한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가마에 올랐다. 또 하나의 가마에는 엄상궁(영친왕의 생모)이 대기하고 있었다. 두 대의 가마에 나누어 탄 이들 일행은 경복궁 영추문을 바람같이 빠져 나와 미리 연락하여 준비하고 있던 러시아 공관(아관)으로의 탈출에 성공한다. 이른바 '아관파천(俄館播遷)'이다. 어떻게 서릿발 같은 일제감시망을 피해 탈출할 수 있었을까? 엄상궁은 두 채의 가마로 궁을 상시 드나들며 일제의 살벌한 감시를 누그러뜨렸다. 최대의 볼모였던 고종과 왕세자가 아관으로 탈출해버리자 일본은 당황했고 조선을 두고 강대국들이 벌이던 치열한 쟁탈전에서 고종을 품은 러시아와 미국이 힘을 갖게 된다. 고종의 아관파천은 러일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주말임에도 많은 관람객이 ‘고종의 길’을 찾고 있다. 아관파천의 길 중 이번에 복원된 ‘고종의 길’은 덕수궁 서북쪽 구세군 서울제일교회앞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총 120m의 좁은 길이다. 덕수궁 선원전 부지가 2011년 미국과 토지교환을 통해 우리나라 소유의 토지가 되면서 그 경계에 석축과 담장을 쌓아 복원, 122년 만에 열린 것이다. 8월 한 달간은 시범 공개 기간이며, 정식 개방은 10월이다. 복원 공사가 시작되기 전엔 물탱크가 놓여있는 120m 오솔길에 불과했던 길이었다. 남아있는 담장과 당시 영국공사관에서 찍은 사진 등을 토대로 2년간의 공사로 복원이 완료됐다. 이 길의 이름은 대한제국기 미국공사관에서 제작된 지도 (정확히는 미국 대리공사 Allen의 스케치)에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된 데서 비롯되었다. 정동공원입구에 ‘대한제국의 길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 역사적 의미를 더했다. 역사적으로도 이 길은 러시아공사관과 덕수궁을 연결하는 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
덕수궁 돌담길ⓒnews1

60년간 끊겼던 덕수궁 돌담길 100m 내년 개방

덕수궁 돌담길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길을 꼽으라면 덕수궁 돌담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가을에는 단풍이 어우러져 운치 있는 풍경을 자아냅니다. 덕수궁 돌담길 1.1km 온전히 걸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일부 구간은 영국대사관으로 막혀 통행이 제한됐는데요, 이번에 서울시와 영국대사관의 합의를 통해 60여년간 단절됐던 덕수궁 돌담길이 내년 8월 시민에게 개방됩니다. 낭만 가득한 풍경만큼이나 오래된 역사와 문화의 현장이 즐비한 이 길을 더 길고 깊게 걸을 수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요, 자세한 내용 내 손안에 서울에서 전해드립니다. 1959년 영국대사관 점유 이후부터 단절됐던 덕수궁 돌담길 170m 중 시 소유 100m 구간이 시민에게 개방된다. 내년 8월 개방이 목표다. 통행구간(☞ 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서울시는 영국대사관과의 수개월에 걸친 검토와 협의를 통해 대사관 경내 돌담길 100m 구간 개방에 합의했다고 14일 밝혔다. 단절된 돌담길 170m는 영국대사관 정문부터 후문까지다. 이중 70m(정문~직원숙소)는 1883년 4월 19일 영국이 매입한 대사관 소유다. 나머지 100m(후문~직원숙소)는 서울시 소유로 1959년 대사관이 점용허가를 받아 지금까지 점유해왔다. 시가 내년 8월 개방을 추진 중인 구간이 바로 이 대사관 직원숙소부터 후문까지 100m 구간이다. 서울시는 2014년 10월 덕수궁 돌담길 회복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추진할 것을 영국대사관에 제안했고, 같은 해 11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사관을 방문해 스콧 와이트먼(Scott Wightman) 전 주한영국대사와 함께 단절된 돌담길을 둘러본 바 있다. 이후 개방의 필요성과 역사적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같이한 결과, 개방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양해각서를 2015년 5월 체결했다. 양해각서 체결를 계기로 서울시와 영국대사관은 개방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영국대사관은 이 지역이 한국 국민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공감했지만 보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