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외국인 독립유공자가 잠들어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최용수

‘호머 헐버트’ 우리가 광복절에 기억해야 할 이름

다수의 외국인 독립유공자가 잠들어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중앙 로비로 들어가면 우뚝 솟은 10층 석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907년, 다나카 미쓰아키가 황태자 순종 결혼식 축하사절로 왔다가 개성에 있던 경천사십층석탑을 무단으로 가져간다. 이를 알게 된 미국인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는 즉시 현장을 확인하고 관련 사실을 언론에 기고한다. 이후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까지 가서 이 사실을 폭로한다. 호머 헐버트의 이러한 노력으로 1918년 경천사십층석탑(국보 86호)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을 사랑한 이방인, 호머 헐버트 1863년 미국 버몬트에서 출생한 그는 1886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학교인 육영공원에 파견되었다. 이후 YMCA를 창설하는 과정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하여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청년 계몽운동에 앞장선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1905년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한일협상 조약)을 체결하자, 호머 헐버트는 고종 밀서를 가지고 워싱턴으로 날아가 일제 만행을 알리며 대한제국을 도울 것을 호소한다. 또한,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세계인에게 알리고자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등 밀사 3인 파견을 후원하고, 창간에도 기여한다. 그는 독립을 위한 노력을 평가받아 1950년 건국훈장 독립장 수상하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경천사십층석탑, 호머 헐버트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 노력으로 일본에 무단반출됐던 탑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는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에 살면서 대한제국과 관련한 다양한 기록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장에서 지켜본 대한제국 멸망과정을 서술한 책에는 당시 시대 상황이 잘 기술되어 있다. 서양인이 기술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특유의 정(情) 문화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 밥과 잠자리를 청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으니, 어떻게 숙박업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