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진 나무 사이로 오솔길을 만들어 산책로를 조성한 개운산

우리동네 개운산 공원이 사랑받는 이유

우거진 나무 사이로 오솔길을 만들어 산책로를 조성한 개운산성북구의 중심에는 안암동과 종암동, 그리고 돈암동을 잇는 ‘개운산’이 있다. 정릉을 끼고 돌아 아리랑고개와 미아리고개로 이어지며 봉우리를 형성하는 개운산은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의 ‘개운사’에서 붙여진 이름이다.개운산 남쪽 기슭, 안암동5가 뒷산에 위치한 절인 개운사의 역사는 태조 5년(1396)부터 시작된다. 왕사 무학이 안암산 기슭에 절을 창건하여 영도사라 했지만, 정조 3년(1779) 원빈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그 부근에 묘소를 정하고 영명원이라고 했는데, 절이 원묘에서 가깝다 하여 북쪽으로 옮겨 짓고 이름도 개운사라고 고쳤다 전해진다.개운산은 성북구내 학교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남쪽으로 고려대학교, 서쪽으로 성신여자대학교, 북쪽으로 개운초·개운중·성신여고가 위치해 있어 인재를 양성하는 땅의 기운을 지녔다는 말이 있다.그런 산이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다. 높이 134m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즐겨 찾았고, 현재도 근방의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교통편이 더 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공기가 좋다는 장점이 있다. 개운산을 향해 계단을 오르다 보면 화사하게 핀 봄꽃들을 볼 수 있다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군데지만, 길음역 부근의 아파트로 오르는 길이 가장 쉽고 안전하다. 때문에 산에 오르는 계단 길에는 산책을 나오는 주민들, 특히 어르신들과 쉽게 마주할 수 있다.광복 이전, 이 일대의 야산은 울창한 산림으로 이뤄져 인근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거나 땔감으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광복과 더불어 월남민들이 산비탈에 정착하면서부터 나무를 마구 베어내기도 했다.6·25 한국전쟁 시절 개운산은 미아리~종암동을 잇는 국군의 서울 방어 저지선이었고, 포격전에 의해 많은 나무가 불타 민둥산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개운산 길에는 아직 전쟁 중의 흔적이 남아있기도 하다.하지만, 1960년대 말 식목사업으로 개운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지금은 50~60년 된 나무들이 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