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시나요?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8)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글쓰기도 그렇다. 글은 막상 쓰기 시작하면 쓸 만하다. 시작하기 전이 가장 걱정스럽고 두렵다. 이유가 있다. 글은 정체가 모호하다. 어떻게 써야 잘 쓴 글이고, 어떤 글이 못 쓴 글인지 분명한 기준이 없다. 답을 알지 못한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 피하고 보려는 심리가 있다.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글쓰기도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글쓰기에 관한 어렸을 적 기억도 안 좋다. 쓰기 싫은 글을 강제로 썼다. 초등학생이 무슨 느낌이 그리 충만하다고, 기념일마다 감상문 쓸 것을 강요받았다. 일기도 선생님께 검사받았다. 글쓰기에 관한 거부감이 많다. 그럼에도 글을 쓰려면 시작해야 한다. 악조건을 이겨내고 시작해야 한다. 시작만 해놓으면 한결 편안해진다. 또한 글이 글을 써나간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방법은 많다. 이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골라 써보자. 첫째, 개요를 완벽하게 짜고 시작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방식이다. 설계도 없이 집을 짓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개요 짜기도 어렵지만, 쓰다 보면 개요가 무너진다. 학교 다닐 때 시험공부 계획표 짜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 저술이나 논문, 논술 쓰기이면 모를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둘째, 머릿속으로 정리한 후 일필휘지한다. 이게 가능하면 대단한 분이다. 그러나 안 된다고 주눅들 필요 없다. 일필휘지는 특별한 능력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머릿속 정리가 쉽지 않다. 영감은 누구에게나 마구 떠오르지 않는다. 기다리는 직관, 통찰, 혜안 역시 쉽사리 오지 않는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글을 쓰면 된다. 영감, 통찰, 혜안이야말로 글을 쓰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셋째, 생각나는 것을 일단 뭐라도 쓴다. 내가 쓰는 방식이다. 주제이건, 첫 문장이건, 전하고 싶은 한 줄이건 상관없이 생각나는 것을 쓴다. 물론 쓰다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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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쓸 거리가 생각나지 않을 때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7) 어디 산뜻한 글감 없을까? 발상이 참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고 그런 얘기, 누구나 하는 얘기는 쓰지 말라고 한다. 글쓰기 강조점 중의 하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이미 많은 사람이 제시했다. 큰 틀에서 보면 세 가지 유형이다. 첫 번째는 달리 보기다. 이면을 들추거나, 까칠하게, 낯설게, 비틀어 보는 것이다. 1. 관점을 달리 해서 본다. 대표적인 예가 “잔에 물이 절반밖에 없네.”와 “잔에 물이 절반이나 남았네.”이다. 옆에서 보는 것과 위에서 보는 것, 아래서 보는 것은 다르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보수와 진보의 관점은 확연히 다르다. 다각도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2.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 당연하게 여긴, 상식적인 생각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흐른다.” 공부 못한 사람이 성공하는 이야기,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가는 이야기가 재밌다. 선입견도 대표적인 고정관념이다. 3. 가정과 전제를 바꿔본다. ‘개미와 배짱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모두 부지런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이런 전제와 가정을 부정하고, “부지런한 인생은 불행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때는 부지런 하면 여유가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두 번째는 뒤집기다. 전복적 사고를 하는 것이다. 4. 가장 쉬운 뒤집기 대상은 통념이다. 사회적 통념이 많다. “명문대 나온 사람은 머리가 좋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은 가정형편이 나쁠 것이다.” 통념을 제시하고 그것을 뒤집는 방식으로 쓰는 글이 많다. 누군가 그랬다. 통념을 뒤집으면 통찰이 나온다고. 5. 입장 바꿔 생각하기다. 역지사지 하라는 뜻은 아니다. 시인들이 많이 활용한다. 스스로 연탄재가 되어 보고, 꽃이 돼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새라면, 내가 물이라면. 6. 역발상이다. “아프리카 원주민은 맨발로 다니므로 신을 팔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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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안 써질 때 쓰는 5가지 방법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6) 쓰기 싫은 글에 대처하는 법 쓰다 보면 반드시 막힌다. 아예 처음부터 막히기도 한다. 막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나는 글이 안 써질 때 몇 가지 방법을 쓴다. 첫 번째 방법은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글이 안 써질 때는 절대 붙들고 있지 않는다. 그런다고 써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을 하나? 산책을 하거나, 누군가와 얘기를 하거나, 써야 할 글과 관련된 책이나 칼럼을 읽는다. 자극이 필요해서다.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읽으면, 즉 오감을 자극해야 한다. 이런 자극을 받으면 머릿속 저 아래에 잠겨 있던 생각이 떠오르고 나 스스로 길을 찾는다. 그때 다시 쓰기 시작한다. 두 번째 방법은 시간과 공간을 달리 하는 것이다. 오전에 안 써지던 글이 오후에는 술술 써진다. 집에서는 꽉 막혀 안 써지던 글이 집 앞 카페에 가서 쓰면 뻥 뚫린다. 장소와 시간을 바꿔가며 돌파구를 모색해보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궁하면 반드시 통한다. 세 번째 방법은 몰입이다. 몰입을 일으키려면 공포감이 필요하다. 사람은 위기감을 느끼거나 두려울 때 집중한다. 초인적인 능력을 끌어올린다. 공포감은 어떻게 불러오는가. 글을 못 썼을 때 내가 짊어져야 할 부담과 나쁜 상황을 떠올린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내게 글 쓸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뇌에서는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나온다. 안정감을 주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호르몬이다. 그때 집중해서 쓴다. 네 번째는 보상이다. 글쓰기는 힘든 작업이다. 어려운 일이다. 당연히 하기 싫다.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나는 동기부여 방법으로 보상을 한다. 를 쓸 때는 매일 낮에 막걸리를 한 통씩 마셨다. 오전에는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는 기대로 글을 썼다. 오후에는 알딸딸한 느낌으로 썼다. 고된 일을 하는 농부들이 새참을 먹는 것과 같다. 술이 아니더라도 보상할 방법은 많다. 글 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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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에서 출발하는 글쓰기의 5단계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5) 관찰한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쓸 수 있다 해외여행을 가면 그 지역 미술관에 들러보는 걸 즐긴다. 하지만 아내는 지루해 하는 편이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처음에는 누가 그렸는지, 제목이 뭔지, 무슨 내용인지만 궁금했다. 그러다 작가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어느 시대, 어떤 배경에서 그림이 탄생 했는지까지 눈길이 갔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도 알고 싶어졌다. 시기별 화풍과 작가의 기법에 관해 공부하고 싶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든가. 대학을 졸업하고 ‘유공’이란 회사에 원서를 냈다. 당시 주유소를 가장 많이 가진 정유회사였다. 원서를 내기 전까지는 그 회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정도였다. 차도 없고 면허증도 없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원서를 접수하고 나니 새로운 세상이 내 앞에 펼쳐졌다. 면접을 하고 그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온 세상이 유공 천지였던 것이다. 사거리마다 보이는 것은 온통 유공 주유소였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공 간판만 눈에 들어왔다. 이 세상에는 몇 개의 세계가 있을까. 나는 쉰 중반까지 홍보, 연설, 출판의 세계를 경험했다. 몸담고 있던 조직을 기준으로는 증권사, 청와대, 대기업 비서실 등을 다녀봤다. 고작 열 개 미만의 세계를 경험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천, 수만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택시운전, 편의점 운영, 화가, 은행원 등 직업의 세계에서부터 낚시, 등산 등 취미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세계는 각각이 하나의 우주다. 그 안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어마어마한 세계가 있다. 우리는 세상 살면서 몇 안 되는 세계를 체험한다. 나머지는 자신이 경험한 세계로 유추할 뿐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려다 보니 구체적이지 않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편견과 오해, 선입견, 고정관념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아는 길은 관찰뿐이다.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야 한다. 들여다보면 거기에 오묘한 세계가 ...
한글ⓒ토토로다

말하듯이 쓰고 소리내서 읽어보라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 말하듯이 쓰자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가 그랬다. “말하듯이 써라” 말은 잘 하는데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있다. 글은 잘 쓰는데 말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묻는다. 이유가 뭐죠? 답은 간단하다. 말과 글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다르다. 순발력 있는 사람은 글보다 말에 능숙하다. 깊이 사고하는 사람은 말하는 것보다 글쓰기를 잘한다. 말과 글은 기본적으로 다르다. 글은 말과 달리 고쳐 쓸 수 있다. 남의 의견을 들어 수정할 수도 있다. 무엇을 쓸지 생각할 시간도 주어진다. 이런 점은 글쓰기가 말하기보다 수월한 점이다. 그러나 이것뿐이다. 글쓰기가 훨씬 어렵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말은 듣는 사람이 있다. 듣는 사람의 반응을 확인하며 말할 수 있다. 글쓰기는 벽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읽는 사람을 볼 수 없다. 독자 반응을 상상하며 써야 한다. 당연히 말하기에 비해 글쓰기가 어렵다. 둘째, 글에는 표정이 없다. 메리비안 법칙에 따르면, 메시지 전달에서 말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말소리 크기, 빠르기, 억양 등 청각 정보가 38%, 시선, 태도 등 시각 정보가 55%를 담당한다. 언어보다 비언어 요소가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이처럼 말은 손짓, 눈빛, 억양, 자세의 도움을 받는다. 글은 온전히 문자로만 의사 전달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말보다 어렵다. 문자 메시지나 SNS에서 ‘ㅠㅠ’, ‘ㅎㅎ’ 등을 사용하는 것도 글의 한계를 벗어나 말과 같이 표현하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셋째, 말은 생각할 틈이 없다. 욕심 낼 시간이 없다. 즉흥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오히려 쉽다. 물에 빠지면 ‘사람 살려’, 불이 나면 ‘불이야’ 한다. 그에 반해 글은 시간이 주어진다. 마감시간이란 게 있다. 욕심이 생기고 군더더기가 붙는다. 그래서 쓰기 어렵다. 말에 비해 핵심에서 벗어난다. 말하기처럼 좀 더 수월하게 글 쓸 ...
책ⓒaandd

다섯가지만 잘하면 누구나 글쓰기 달인!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3) 글쓰기 핵심 도구 다섯 가지 글쓰기는 무엇인가. 생각과 느낌을 쓰는 것이다. 글은 생각과 느낌의 표현이다. 좋은 생각과 느낌을 잘 드러내야 잘 쓴 글이다. 글은 의견, 입장이 있어야 하고, 정서와 감정이 넉넉해야 한다. 의견, 입장이 생각이고, 정서와 감정이 느낌이다. 고상하게 얘기하면 생각은 관점, 시각, 해석이다. 느낌은 소감, 감회, 감상이다. 관점, 시각, 해석이 분명하고, 소감, 감회, 감상이 풍부하면 글을 잘 썼다고 한다. 생각은 이해와 설득이 목표다. 느낌은 자극과 감동이 목적이다. 글쓰기는 생각과 느낌,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내 경험으로는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 독서, 토론, 학습, 관찰, 메모다.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독서, 토론, 학습이 필수적이다. 느낌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관찰이 필요하다. 독서, 토론, 학습, 관찰을 잘해야 글을 잘 쓴다. 여기서 하나 더 추가할 게 메모다. 메모가 빠지면 생각과 느낌은 공허하다. 우선, 독서는 글 쓴 사람의 생각을 알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 한다. 책을 한 권 읽고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헛일이다. 독서하지 않은 것과 같다. 독서 후에는 반드시 점검해봐야 한다. 이 책을 읽고 새롭게 만들어진 생각은 무엇인가. 만들어진 게 없으면 시간 들인 게 분해서라고 밤새도록 찾아봐야 한다. 토론 역시 생각을 만드는 필수 도구다. 대화, 수다, 논쟁, 발표,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말하고 듣는 것은 모두 해당한다. 말을 하면 생각이 정리된다.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생각이 일목요연해진다. 또한 생각이 발전한다. 없던 생각도 만들어진다. 언제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샘솟는다. 학습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주입식 학습은 생각을 만들지 못한다. 까칠하게 듣고 주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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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2) 글쓰기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글쓰기를 잘하려면 기초체력이 필요하다. 운동선수가 근력과 지구력을 키우듯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자신감, 끈기, 호기심, 절제력 등이 있어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과 절제력이다. 우선, 자신감이란 무엇인가.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내 안에 글감이 있다.’ ‘나는 나만의 글쓰기 방식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자신을 믿는 사람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자기 생각을 잘 길어 올린다. 자기 안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탐색하는 걸 즐긴다. 그리고 기어코 끄집어낸다. 누구에게나 생각과 느낌이 있다. 하루에도 오만 가지를 생각하는 게 사람이다. 이러한 생각과 느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많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안 읽은 사람이나 똑같다. 오히려 책상물림보다는 경험으로, 오감으로 체득한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더 풍부하고 생생하다. 둘째, 자신을 믿는 사람은 일단 쓴다. 눈치 보지 않는다. 자기 검열을 하지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글이란 것은 쓰면 써지는 것이라고 믿고 쓴다. 자신을 못 믿는 사람은 썼다 지웠다만 반복한다. 종이에 쓰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쓴다. 이렇게 쓰면 남들이 뭐라 할지 과도하게 의식한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셋째, 자신을 믿는 사람은 보여준다. 자신 있게 보여준다. 호평이나 혹평에 흔들리지 않는다. 호평을 받았다고 우쭐하지도, 혹평에 의지소침하지도 않는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받아들인 건 받아들이고 무시할 건 무시한다. 받아들일 건 흔쾌하게, 무시할 것은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내 생각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글은 보여주려고 쓰는 것이다. 보여주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다. 많이 보여줄수록,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글...
세종대왕ⓒ뉴시스

왜 한국인은 좋은 한글을 잘 쓰지 못할까?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어 합니다. 늘 '쓰는 게' 일인 편집실도 마찬가지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글을 좀 잘 써보고 싶다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특별한 칼럼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이 란 제목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그의 글쓰기 비법을 쫓다보면 언젠간 나만의 글쓰기 필살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1) 2006년 10월 한글날 직전. 한글날 기념식 대통령 연설문을 준비하기 위해 광화문에 있는 한글학회를 찾았다. 입구에 이런 말이 새겨져 있었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나라가 내리면 말이 내린다.” 주시경 선생이 하신 말씀이다. 전 세계에 40여개 문자가 있다. 그 가운데 반포한 날과 만든 사람이 있는 문자는 한글이 유일하다. 1443년 12월, 세종대왕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글은 푸대접 받아 왔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85년 전인 1930년 당시, 우리 국민 2,000만 명 가운데 78%인 1,600만 명이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한글’이란 명칭도 1910년에 와서야 주시경 선생이 붙였다. 1990년까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쓰기를 했다. 글을 쓰는 오른손이 이미 쓴 글을 가리게 되고 손에 먹이 묻어 가로쓰기로 바꾸게 됐다. 1900년대 이전까지는 띄어쓰기도 하지 않았다. 종이가 귀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1896년 비로소 독립신문이 띄어쓰기를 시작했다. 한글은 글 쓰는 사람에게 축복이다. 한글은 현존하는 글자 중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다. 한글은 8,800자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지만, 중국은 400자, 일본은 300자가 고작이다. 개 짖은 소리를 들었을 때, 중국어, 일본어, 영어에 비해 한글이 가장 원음에 가까운 소리로 표기한다. 한글은 초성과 중성, 받침을 조합해 1만 1,172자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이론적으로 가능한 수치이고, 실제로 사용하는 글자 수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