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리나

오직 꽃이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

한 송이 꽃은 남에게 봉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 오직 꽃이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 사람의 존재 또한, 그가 만일 진정한 인간이라면 온 세상을 기쁘게 하기에 충분하다. --틱낫한(Thich Nhat Hanh)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4 고단한 산행 중 길섶에서 마주치는 꽃은 기쁨이다. 위안이다. 힘겹게 산을 타야 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기실 그들의 외양은 산 아래 사람의 마을에서 사고파는 꽃들의 크고 화려한 모양새와 선명한 빛깔에 비하면 턱없이 미미하고 수수하다. 그럼에도 허위허위 오르막을 오르다가, 허겁지겁 내리막을 내려오다가 문득 그들과 만나면 발걸음이 멈춘다. 흘러내린 땀을 훔치며 들여다보는 사이, 절로 감탄의 말이 터져 나온다. "너 참 곱구나!" 초록에 묻힌 산꽃들은 짐짓 지나쳐버리기 쉽다.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때로 쪼그려 앉아야만 마주할 수 있다. 애초에 사람의 소용에 맞추어 지어진 존재가 아니기에 사람에게 알랑대며 교태를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아름다움은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에서 나온다. 백석의 시구처럼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고 중얼거리며 떠나왔을 때, 한 송이 꽃은 뜻밖의 위로가 된다. 언젠가 우리가 왔고 언젠가 우리가 돌아갈 자연이라는 본원(本源)이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아무리 공중제비를 돌며 뒤채도 아직 세상에는 훼손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진실을 가만가만 다독여 일깨운다. 어지러운 세상사에 지치고 물릴 지경이다. 도대체 뉴스라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하루라도 소식을 구해 듣지 않으면 금세 세상물정 모르는 아둔패기가 될 판국이다. 그런데 바지런을 떨어 챙겨 보자니 사건과 사고로 점철된 그것들이 하나같이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기에는 너무도 모질고 혹독한 짓이라서 뉴스를 듣는 것만으로 공포와 모욕감을 느낀다. 한마디로 사람의 값이 너무 헐하다. 몸값도 헐하...
남산타워ⓒ아디맨

자기를 안다는 것의 ‘고통’

성전이니 경전이니 하는 위대한 것들을 아무리 속속들이 내리꿰고 아무리 고상한 말을 줄줄 지껄일지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그 결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신을 아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아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3 요람에 누워 꼬물거리며 옹알이나 하던 아이가 제 두 발로 걷고 사람의 말을 하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타인과 다른 '자기'를 느끼게 된다. 그때 아이가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은 "내가 할래!", "내 꺼야!" 같이 자기를 내세우는 주장이다. 영어권 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친구의 아이가 "Me, me!"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그 당연한 일이 재미있어 웃었던 기억도 있다. 자기를 앞세우는 말을 하면서부터 아이는 처음으로 '미운 시기'에 접어든다. '내가'라는 말과 더불어 새롭게 외쳐대는 말이 바로 "싫어!"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수용과 한없는 흡수의 시기는 지났다. 남과 다른 내가 있으니 내 취향과 요구가 있는 것이다. 이때가 아이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까닭은 독점욕, 수치심과 함께 자율성과 사회성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섭도록 자기에게 집중하며 이기적으로 자기를 주장하는 이 시기가 지나면 사회가 설정한 '한계'에 좌절하고 타협하면서 점차 자기를 잊거나 잃어간다. 자기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탐구하기보다는 남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에 초조해 한다. 이를 테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 마음의 민낯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심리적 화장(psychological make-up)을 하는 것이다. 주름살과 잡티를 두꺼운 파운데이션을 발라 감추듯, 스스로 약점이나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가리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이려 애쓴다. 개인과 개성에 대한 존중이 약하고 '남들처럼' 문화가 압도적인 사회에서는 이런 화장이 두꺼워지다 못해 가면으로까지 ...
풍경ⓒ깨비

삶의 군살을 빼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

목이 마를 때, 당신은 바다를 통째로 마셔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당신이 충분토록 마시는 것은 고작 한두 잔이 전부다.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2 다이어트 성공률이 암 완치율보다 낮다는, 믿기도 웃기도 어려운 이야기가 있다. 비만의 완치율(5년 후 치료 성공률)이 암보다도 떨어진다는 통계에 바탕을 둔 것인데, 어쨌거나 다이어트는 건강과 미용 양면에서 현대인의 큰 과제인 게 분명하다. 원 푸드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덴마크 다이어트, 한방 다이어트, 레몬 디톡스... 이름만 주워섬기기도 벅찬 수많은 방법들 중에 이른바 간헐적 단식, 혹은 1일 1식이라는 새로운 식사법이 있다. 하루에 16시간 이상을 공복으로 두다가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날 때 원하는 만큼 식사를 하면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될뿐더러 노화를 막고 장수까지 할 수 있다는데... '다이어트'라는 말 자체가 낯설던, 여전히 안 먹기보다는 못 먹는 일이 흔했던 이십여 년 전,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 '1일 1식'을 시도했던 선구자를 알고 있다. 그는 내가 미쳐 있던 문학만큼이나 먹고살기에 녹녹치 않기가 자명한 '순수미술'에 미쳐 있던 친구였다. 그나마 글쓰기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수 있지만 그림을 그리려면 물감이며 종이며 반드시 필요한 재료들이 많아, 친구를 만나면 밥은 항상 내가 사야 했다. 그런 지경에 친구가 시작한 것이 바로 하루에 한 끼 먹기, 지금 식으로 1일 1식이었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려면 남들처럼 하루에 세 끼를 먹는 것은 포기하겠다!"는 비장하고도 처절한 각오에서 비롯된 궁여지책이었다. 하루에 밥 세 끼는 다만 상징적인 것이다. 한국사회는 최소한 절대 빈곤에서 벗어난 상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점점 가난해짐을 느낀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distinction)' 이론에 따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별 짓기란 ...
야경ⓒ작은소망

본디 우리에게는 ‘경쟁’이라는 말이 없었다

인생은 그저 피해자보다는 가해자가 되기 위한 경쟁이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1 현관문에 전단이 붙어 있다. 얼마 전 새로 생긴 H마트에서 '폭탄 세일'을 한단다. 어제는 C마켓에서 '대박 세일'을 한다고 전단을 돌렸던데, 이른바 '맞불 작전'인 모양이다. 덩달아 한 블록 지나 있는 A마트도 '명품 세일'을 한다고 하고, 좀처럼 자체 할인 행사를 하지 않는 L슈퍼도 '미친 데이'를 선전하기에 바쁘다. 추석 직전 H마트의 개점과 함께 시작된 이 세일 열풍으로 동네 슈퍼마켓들의 식자재 가격은 점점 내려가 한동안 천 원짜리 한 장으로 호박 3개, 가지 5개, 팽이버섯 5봉을 살 수 있었다. 덕분에 밥상이 풍성해지고 식비를 절약할 수 있어 마냥 좋으냐 하면, 아무래도 그렇지만은 않다. '폭탄'이나 '대박'이나 '명품' 세일을 할 수 없는 G마트는 거의 파리만 날리고 있다. 이전까지 G마트는 규모는 작지만 싱싱하고 맛있는 과일로 단골들을 모으던 곳이다. 요란스레 세일을 선전하는 H마트와 C마켓과 A마트도 그다지 실속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결국은 제 살을 깎는 출혈 경쟁이다 보니 경쟁자가 먼저 나가떨어지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우리 동네 골목의 상권을 둘러싼 이 '작은 전쟁'은 지금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전쟁의 축소판이다. 무한 경쟁 속에 승자는 없다. 패자이거나, 아직 되지 않은 패자일 뿐이다. 본디 우리에게는 '경쟁'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중국식 한자어도 조선식 한자어도 아닌 이것은 영어 'competition'을 번역한 일본식 한자어였다. 말이 없으니 뜻도 없었다. 물론 땅과 그로부터 나오는 생산물의 소유에 대한 갈등, 이른바 계급투쟁은 어느 시대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최소한 만인이 만인에 대한 경쟁자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1883년 이라는 글을 통해 최초로 조선에 '경쟁'이란 말을 도입한 사람은 으로 유명한 유길준이었다. 백 년 전 신조어였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