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박민현

진정한 성장은 두려운 그 순간부터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진정한 성장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4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 기숙사로 들어갔다. 입시가 끝난 후 힘들었던 수험생활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겨우내 정신없이 놀아 젖히더니, 떠날 즈음에야 슬금슬금 걱정이 되나 보다. 새로운 삶의 출발점에 선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 '설렘 더하기 불안'이란다. 그럴 것이다. 나 또한 부모님 곁을 떠나 상경한 것이 스무 살, 그때였다. 3월의 서울은 춥고 낯설었다. 낯설어서 더욱 추웠다. 꽃샘잎샘이 매서운 거리를 헤매다 가파른 골목을 기어올라 자취방에 닿으면 긴장으로 굳어진 몸이 무너지듯 풀렸다. 고향집에서 가지고 온 책은 몇 권의 시집과 고3 때 교재로 썼던 이었다. 외로울 때마다 울거나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는 대신 홀로 이불을 들쓰고 수학 문제를 풀었다. 수학은 공식을 좇아 열심히 풀면 딱딱 답이 나왔다. 하지만 삶에는 이런 정답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설렘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기대와 포부에서 비롯된다. 그런가하면 불안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있다. 스무 살의 나는 세상이, 사람들이, 삶이 두려웠다. 세상을, 사람들을, 삶을 몰랐기에 더욱 두려웠다. 또한 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두려웠고, 성인으로서 나의 행동과 선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터무니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웠던 것은, 세상과 사람들과 삶을 알고 그에 대한 내 몫을 감당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까마아득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욕망하고 있는지, 내 힘은 무엇을 어떻게 견딜 만한지,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내놓을 수 있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도 아마 그럴 테다. 앞으로 세상에 홀로 나서면 지금까지 학교에서 치렀던 시험 문제들과 전혀 다른 문제들에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끝없이 오답을 적고 어쩌...
별ⓒShreenivasan Manievannan

조화롭게 빛나는 별들을 봐라

별들을 봐라. 둘 사이에 거리가 있어도 빛나지. 조화롭게 빛나지 않는가? --니체 《즐거운 지식》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3 어린 날, 나는 외톨이였다. 숫기와 붙임성이 없는 외톨이에게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어렵고도 두려운 일이었다. 내 안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어둠과 불안을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데, 그걸 남들에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한없이 외로웠던 내가 누군가에게는 잘난 척하는 건방진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너는 나를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 지레 담장을 치고 벽을 높였으므로. 더구나 계집아이들끼리의 일반적인 친교 방식은 나의 두려움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들은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남김없이 털어놓기를, (실제로 별 것 아니지만 특유의 호들갑으로 한껏 부풀리기 일쑤인) 비밀을 공유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밀착되지 않으면 배척되었다. 친구가 되면 같이 손을 잡고 등하교를 하고 도시락을 먹고 화장실까지 함께 갔다. 그래야 친구, 단짝이나 짝꿍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비밀이 없는 어떤 관계를 꿈꾸지 않는다. 아니, 사람 사이에는 마땅히 비밀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성숙한 관계에서 비밀은 거짓과 달리 서로 존중해야 하는 나만의 (그리고 너만의) 영역이므로, 비밀이 없는 관계는 자아가 발달하지 않은 어린아이들끼리가 아니면 가능치 않다. 비밀을 가져야만 어른이다... 그런 혼자만의 생각을 앓고 있을 때, 우연히 읽은 니체의 말이 뭉근한 위안이 되었다. 생애 자체는 지독한 외톨이처럼 보이지만, 뜻밖에도 니체는 친구를 매우 중요시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애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친구'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위대한 사랑이란 '다만 친구를 아는 일뿐'이라고 놀라운 선언을 한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고도 중요한 점은, 니체에게 친구는 지친 몸을 파묻고 단잠에 곯아떨어지게 만드는 '푹신한 침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분명한 휴식의 공간이되 조금은 ...
책ⓒaandd

“나도 참 구제불능의 책 욕심쟁이다”

내 집에 좋은 물건이라고는 《맹자》 일곱 책뿐이오. 나는 오랫동안 굶주리다 못해 기어이 그걸 돈 이백 닢에 팔았소이다 그려. 그래 그걸로 밥을 잘 먹고 희희낙락하여 영재(유득공의 호)에게 가서는 크게 자랑했다고. 그런데 영재 역시 굶주린 지 이미 오래된 터라 내 말을 듣더니만 곧바로 《좌씨전》을 팔아서 그 남은 돈으로 술을 사다 내게 마시라 하질 않겠소. 이는 맹자가 친히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이 손수 술을 따라 나에게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래서 우리는 맹씨와 좌씨를 천천만만 번이나 칭송했는데 만약 우리들이 한 해가 끝나도록 이 두 책을 읽기만 했다면 어떻게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겠소. 글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이 다 요행을 바라는 술책일 뿐이므로 당장에 팔아 한때의 취함과 배부름을 꾀하는 게 더 진실 되고 꾸밈이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소. 슬픕니다! 슬픕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이덕무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2 넓은 집에서 좁은 집으로 이사를 하며 짐을 줄일 때 가구며 집물들을 모두 정리하고 마지막 남은 것이 책이었다. 초등학교 때 10살 생일선물로 부모님께 받은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부터 대학 시절에 몰래 읽던 (지금 보면 아무래도 별 것 아닌) 금서들, 용돈을 모으고 생활비를 쪼개 한 권 두 권 사 모은 책들로 방 하나가 가득 찼다. 한때는 그것이 내 가장 큰 재산이었다. 책 한 권에 하나의 추억, 배움, 그리고 환희였다. 하지만 몇 십 년 간 수차례 이사를 하면서도 버리지 못해 굳이 끌고 다녔던 그것들이 언제부터인가 미련, 집착, 욕심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읽은 것을 다시 읽는 일은 생각만큼 흔치 않고, 읽지 않은 것을 뒤늦게 읽는 일도 마음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그때 다시 사거나 빌려보면 될 것을, 부질없는 집착으로 끝내 소유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책을 머리에 이고 사는 꼴이 되어서야 책을 정리하기로 마음...
ⓒkichune

나를 아는 가장 아프지만 좋은 방법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대단히 과장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45퍼센트와 이번에는 그 두려움이 무색하게 되리라는 광적인 희망 45퍼센트, 거기에 소박하게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여린 감각 10퍼센트를 더하여 이루어진다. --페터 회(Peter Hoeg)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1 한겨울에 읽기에 적합한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뒤적이노라면 한여름에도 서늘해진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북구(北歐), 그 이름만으로 신비로운 그린란드의 냉기와 차가운 이성이 추리라는 장르와 기묘하게 어우러져 긴장을 더한다.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주인공 스밀라는 이지(理智)와 열정을 동시에 지닌 수수께끼 같이 독특한 여성 캐릭터이다. 북구도 모르고 추리도 좋아하지 않는 남성 독자들이 유독 그녀에게 매혹되어 이끌리는 모습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역시 남자에게 여자는 영원히 비밀스런 판타지여야 마땅한 것일까?! 스밀라의 말로 정의된 사랑 또한 눈과 얼음처럼 명징하다. 그녀는 사랑의 허풍과 과장과 현학을 비웃는다. 그건 작열하는 햇볕 아래 뜨겁게 달구어진 땅을 맨발로 딛고 선 사람들에게나 어울린다. 몸속의 피가 온천수처럼 끓어오르고 머리가 열기구처럼 둥실 떠오를 때에야 폭발하듯 사랑의 낭만과 격정을 토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린란드 식'은 좀 다르다. 우울을 다룰 때에도 유럽식으로 행동을 통해 문제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라기보다는, 가만히 어둠 속에 침잠하여 자신의 패배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익숙하다. 그러니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타인과의 관계에 몰두하기 이전에 자신부터 들여다본다. 더 내밀히, 더 자세히. 누군가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할 때의 상태는 말만큼 단순치 않다. 무수한 욕망과 불안이 급작스럽게 분출한다. 아무런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남김없이 솔직해진다면 상대는 나를 받아줄 수 있을까? 어둡고 더럽고 무서운 영혼...
성당ⓒ투수

난 아무 소용없는 인간인가…

인간으로서 가장 슬픈 일은 병이나 빈곤이 아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아무 소용없는 인간이라고 체념하는 일이다. 그리고 최대의 악은, 그런 사람을 보살펴줄 이들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마더 테레사 《넘치는 사랑》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0 애초에 행복이나 불행은 비교해 순위를 매길 수 없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비교는 흔히 욕심에서 비롯된다. 내가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한 무엇을 가진 사람은 분명 행복하리라고 넘겨짚어 버리는 것이다. 돈이 많으면, 부모가 든든하면, 자식이 잘 되면, 좋은 직업을 가지면... 행복의 조건이 곧 욕심의 목록이 된다. 욕심은 결핍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고, 진통도 없이 질투를 낳는다. 그런가 하면 불행에 대한 비교는 비관이 되기 십상이다. 불행조차도 비교하다보면 경쟁이 되고, 그 서글픈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더 불행해지는 것뿐이다. 비관은 우울과 분노 등등을 난산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것은 절망이다. 포기다. 그리고 체념이다. '빈자의 성녀'로 불리는 가톨릭 수녀 마더 테레사의 생의 자취를 따라 읽노라면 문득문득 독실한 무신론자(!)의 가슴마저 뻐근해진다. 그것은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영성을 가진 수도자였는가를 강조하는 대목에서보다 얼마나 솔직한 인간이었나를 고백하는 대목에서 비롯된다. 평생을 이방인 인도에서 빈자와 병자들을 돌보며 철저히 낮은 자리에서 살고도 그녀는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나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거두고 살펴도 끊이지 않는 죄와 악과 질병과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외친다. "저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까?" 모두가 성모 마리아의 그것으로 비견하는 자신의 미소를 '모든 것을 감추려는 가면'이라고 부른다거나, 다들 감동하여 칭송하는 자신의 선행을 '위선'으로 부르는 대목에서는 그 날선 자기응시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종교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비판한다지만, 마더 테레사의 고뇌야말로 그녀의 가장 열렬한 신앙고백에 다름...
ⓒ김용대(2014빛공해사진UCC공모전수상작)

행할 수 없어 오늘도 불행으로 스스로를 들볶는다

불행이란 병을 고칠 수 있는데 왜 불행에 빠져 있는가? 불행이란 병을 고칠 수 없는데 무엇을 위해 불행해하는가? --적천의 《보리비결(菩提翡潔)》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9 수험생 엄마 노릇을 한다는 핑계로 5년이 넘도록 연재했던 신문 칼럼을 중단했다. 아무리 거대담론이 아닌 일상다반사를 깜냥깜냥 쓴대도 지면이 지면인지라 시사에 촉수를 세우게 되고, 그러다보니 절로 분통에 울화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기 전에 내가 화병으로 죽을 듯하여 졸필이나마 꺾고 말았지만 울울한 심정은 여전하기만 하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전쟁, 테러, 독재, 불황, 빈곤, 고령화, 실업, 입시지옥, 빈익빈 부익부, 차별, 편견... 끊임없는 사건과 사고 속에 끝내 젊은 여주인은 '갑질'을 하며 비행기를 돌리고, 어린이집 교사는 네 살배기 어린애를 후려쳐 날리고, 히키고모리 소년은 과격파 조직을 기웃거린다. 불행의 징후들이 창궐하면서 행복은 불 속에 던져진 종잇장처럼 오그라들었다. 이제 더 이상 누구도 그 종이 위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읽지 못한다. 행복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한 세상에서 혼자만 행복하다면 어쩔 수 없이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행 속에 한데 엉켜 누가 더 불행한가를 경쟁할 수도 없다. 그때 적천(寂天: 695-730)의 짧고 간명한 진언은 뜻밖의 출구를 제시한다. 샨티데바 보살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적천은 불교 중관학파를 계승한 인도의 학승으로, 석가모니처럼 본래 서인도의 나라 사우라스뜨라의 왕자였다가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다. 세속의 기준으로 충분히 행복했으나 더 큰 행복을 찾아 작은 행복을 미련 없이 버린 것이다. 먹물 옷과 탁발을 위한 바가지 하나만 달랑 지닌 채로 적천은 행복과 불행에 대한 고언들을 쏟아낸다. 그의 말대로 불행이라는 병이 난치일지나 불치는 아니라면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치료에 힘써야 할 것이다. 불행의 요인이 바깥에 있다...
조형물ⓒaroma4j

여전히 바보들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사랑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걸까요, 아니면 바보들만 사랑에 빠지는 걸까요?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8 어쩌다, 본의 아니게, 우연한 기회에 타인의 개별적이고 은밀한 삶을 엿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승객들이 엉성드뭇한 플랫폼에서 막차를 기다리다가, 지금껏 하나같은 둘이었다가 마침내 각자의 거처로 헤어져가야 하는 시간을 맞은 젊은 연인들을 바라보는 일 같은 것. 초대받거나 허락되지 않은 타인의 시공간에 틈입하는 것은 결례가 분명하지만, 이때는 어쩔 수 없다. 모른 척 외면하기에는 그들이 온몸으로 뿜어내는 열과 빛이 너무 뜨겁고 눈부시다. 그들 또한 누군가 자신들을 힐끗거린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할 만큼 서로에게 몰두해 있다. 그들의 눈에는 만화처럼 '하트'가 뿅뿅 떠올라 있다. 아마도 만난 지 백일이 채 되지 않았거나 갓 넘었을 것이다. 흔하고 비싸지 않은, 그러나 그들에게만은 의미 깊고 값진 커플 반지를 낀 손가락을 깍지 껴 마주잡고, 곧 다가올 헤어짐이 안타까워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른다. 드디어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오자 서운함과 안타까움에 압도당한 연인들은 말마따나 아예 영화 한 편을 찍는다.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닿은 손끝을 거두지 못하고 문이 닫힌 후에도 열차가 터널 안으로 빠져들어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전까지 하염없이 손을 흔든다. 나는 남자를 플랫폼에 남겨두고 돌아선 여자와 함께 열차를 탄 덕분에 그들이 헤어지고도 헤어지지 못했음을 낱낱이 목도한다. 헤어지자마자 남자가 보내온 스마트폰 메시지를 확인하자, 울음기가 섞였던 그녀의 얼굴에 금세 웃음기가 번진다. 그토록 간명한 슬픔과 기쁨, 확연한 좋고 싫음이 가능한 조건은... 어리석음뿐이다!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바보처럼 계산하지 못하고,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치밀하게 이해득실을 따지고, 전후좌우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리분별이 확실하다면 절대 하지 못할 일들...
야경ⓒjet96

‘부동산’은 더 이상 살터가 아니다

열흘 만에 버리는 집이 누에고치이고, 여섯 달 만에 버리는 집이 제비집이며, 한 해 만에 버리는 집은 까치둥지이다. 그렇지만 그 집을 지을 때 어떤 것은 창자에서 실을 뽑아내고, 어떤 것은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며, 어떤 것은 풀과 볏짚을 물어 나르느라 입이 헐고 꼬리가 모지라져도 지칠 줄 모른다. 이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러한 짐승들의 지혜를 얕보아서 그 삶을 안타깝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붉은 정자와 푸른 누각도 손가락 한 번 튀길 사이에 먼지가 되고 마는 것이니, 우리 인간들의 집짓기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정약용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7 이사를 준비 중이다. 진학하는 아이를 좇아 말마따나 삼천지교(三遷之敎)를 했다가 졸업과 함께 떠난다. 전세 대란(大亂)이라는 말이 무색치 않은 요즘의 형편에 살고픈 곳을 선택하는 것마저 사치라 떠나왔던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것도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옮길 집을 얻지 못해 기한을 맞춰 나가느니 못 나가느니 또 한바탕 난리다. 거처를 옮길 일이 불분명하니 심란하고 어수선하다. 발밑에 바스러지기 쉬운 땅을 아슬아슬 딛고 선 것만 같다. 영어에서 하우스(house)와 홈(home)으로 나뉘는 말이 우리에게는 '집'으로 하나다. 집은 추위나 더위,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기도 하고, 가족들이 모여 생활하는 집안이기도 하다. 너른 의미에서 사람이 살아나가는 터전, 즉 '살터'이자 '삶터'이다. 집이 없으면 고스란히 길바닥에 나앉게 된다. 집이 없으면 가족들이 모여 살 수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이 절박한 삶의 근거지에 언제부터인가 또 하나의 막중한 의미가 덧붙여졌으니, 바로 '부동산'이다. 집이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재산, 그러니까 지진이나 화산으로 땅이 뒤집혀버리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는 확고부동하고 영구적인 재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원시인들은 여러 채의 동굴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깊고 따뜻한 동굴이라도 하룻밤에 두 곳, 세 ...
조명ⓒ뉴시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깐

램프를 만들어낸 것은 어둠이었고, 나침반을 만들어낸 것은 안개였으며, 탐험을 하게 만든 것은 배고픔이었다.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6 서울로 외출할 때 이용하는 광역버스가 지나는 길가의 교회 벽면에 언젠가부터 '그래도 살아냅시다'는 입간판이 커다랗게 걸려 있다. '그래서'도 아니고 '그러니까'도 아니다. '그래도'라는 접속사가 묘하다. '그리하여도'의 줄임말인 그것은, 살아내기 버거운 현실에 대한 힘겨운 저항의 뜻이리라. 경기도 위성도시에 살며 서울에 일터를 둔 많은 사람들이 아침 출근길에 그 문구를 볼 것이다. 그들은 과연 어떤 기분을 느낄까? 무슨 생각을 할까? '희망'이라는 말을 쓰기가 두려운 즈음이다. 한 해가 저물고 다시 한 해가 시작되었지만 좀처럼 새로운 기대와 바람을 품기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외로운 사람은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황소걸음이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끼면 견딜 만하련만, 좀처럼 눈앞을 가리는 어둠과 안개, 팍팍한 살림살이의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그리하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것이 삶 그 자체의 목적이자 의미라면, 기어이 희망을 찾아야 할 밖에. "발전과 진보를 위해서는 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한 빅토르 위고는 환한 빛을 뿌리는 램프에서 캄캄한 어둠을 보았다. 방향을 알려주는 유용한 나침반에서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를 보았다. 두려움을 이기고 낯선 곳을 향해 전진하는 탐험가들에게서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굶주림을 보았다. 실로 그러하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지 않았다면, 희뿌연 안개에 갇혀 헤매지 않았다면, 주린 배를 움켜잡고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방도를 구하기 위해 그토록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간절함은 결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모자라고 충족되지 않은 결핍의 상태는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결핍은 원하는 것들을 포기하게 하...
감과 까치ⓒ연합뉴스

인간은 약하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다

가난과 미천함은 근면과 검소함을 낳고 근면과 검소함은 부유함과 귀함을 낳고 부유함과 귀함은 교만과 사치를 낳고 교만과 사치는 가난과 미천함을 낳네. --홍만종 《순오지(旬五志)》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5 인간은 약하다. 그래서 변한다. 인간은 약하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다. 처한 환경에 따라, 그 지위와 신분이 달라지면, 사람은 변한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일하며 허투루 낭비하지 않으니 점차로 부유해진다. 미천함에서 비롯되었던 검소함이 귀함의 표징이 되어 더욱 빛난다. 하지만 동시에, 환경이 바뀌어도 본디 타고난 바탕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부귀영화의 달콤한 맛에 흠뻑 빠지면 절로 사치스럽고 교만해지기 마련이고, 결국 돈과 명예를 모두 잃어 다시 가난하고 미천한 상태로 돌아가 버린다. '낳다'는 동사에 주목해 보면 이 변하되 변하지 않는 속성을 세대의 순환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가난하고 미천한 부모는 자식들에게 그것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피땀 흘려 노동한다. 그리하여 자식 세대에서는 희생의 대가로 부유함과 귀함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스스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무상으로 제공받은 부유함과 귀함은 독이 되기 십상이다. 자신이 누리는 풍족한 재산과 높은 지위를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얻기까지의 과정에 깡그리 모르쇠를 잡는다. 그리하여 무지의 교만, 무지의 사치는 마침내 부와 명예의 상실로 이어진다. 무릇 오르막에 오를 때 2시간이 걸렸다면 내리막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얻기는 어려웠으나 잃는 것은 순간이다. 삼대(三代) 부자 없다는 말은 이와 같은 어리석은 순환에 대한 오래된 통찰이다. 뉴스를 연일 장식하는 어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의 폭주와 탈선을 바라보며, 새삼 옛사람의 진언을 떠올린다. 1억 짜리 코트를 걸치고 1천만 원짜리 목도리를 두른다 해도 다만 죄인의 몰골이다. 지나치게 많은 돈이 아니었다면 그는 좁은 좌석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