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메세지ⓒ뉴시스

못나면 못난 대로 잘나면 잘난 대로…

자신의 못나고 부정적인 면을 사랑하게 되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우선 정신 에너지가 두 배로 강해집니다. 그동안 내면의 부정적인 영역을 억압하는 데 사용되던 정신 에너지가 창조적인 쪽으로 전환됩니다. 몸과 마음이 더욱 활기차게 되고, 업무에서도 더욱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진심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동안은 당위적 덕목으로서 휴머니즘을 실천해왔다면 이제는 공감적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외부로 투사되어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게 했던 그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이 실은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김형경 《천개의 공감》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74 소싯적에 까칠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나는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의 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몇몇 가지 내가 통제하고 조절해서 결과물로 내놓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기를 쓰고 감추어서 용케 숨긴 나의 단점까지 인정하고 사랑하기란 아무래도 힘들었다. 나는 그렇게 못마땅한 자신을, 부끄러운 '진짜 나'를 은밀하고도 열렬하게 미워했다. 후일 많은 상처를 입고 그 상처가 흉터가 되어 아물어가면서 비로소 깨달은 것은, 사랑은 본디 `Doing(행위)`이 아니라 `Being(존재)`에서 비롯되며, 그래야 마땅하다는 사실이다. 나, 혹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러이러한 일을 (잘)해서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못나면 못난 대로 잘나면 잘난 대로 바로 그곳에 (살아)있기 때문에 사랑스럽다는 것! 소설가 김형경의 말대로 "자기를 사랑하라"는 것은 곧 "자기의 긍정적인 면뿐 아니라 부정적인 면까지 모두 사랑하라"는 뜻이기에. 하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우선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Doing(행위)`를 평가하는데 쏟는다. 외모와 성적과 키와 학벌과 직업과 하다못해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행위, 그 중에서도 ...
어린이ⓒ뉴시스

아이에게 배움의 본능을 자극하는 말

아이에게 배움의 본능을 자극하는 말은 '그만 놀아라'가 아니라 '뭐하고 노니? 어떤 놀이야? 이 놀이를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니? 어떤 상상을 하니?'라고 묻는 것이다. 놀이를 부끄럽게 만들면 아이는 놀이와 공부를 이중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재미있는 놀이와 재미없는 공부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재미있는 것을 숨어서 하려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공부 상처의 기원은 사실 어렸을 때 아이의 놀이를 다루는 태도로부터 시작된다. --김현수《공부 상처》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73 어쩌다 보니 강의나 강연, 혹은 '작가와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글로 나를 표현하기에 익숙한 터에 말로 생각을 전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하다 보니 나름대로 재미있고 골방을 나와 세상을 구경한다는 의미도 얻었다. 하지만 어차피 전문 강사가 아니다 보니 그날의 컨디션이나 청중들의 반응에 강의의 수준 아닌 수준이 들쭉날쭉 한다. 반응이 좋으면 나도 많은 이야기를 더 신나게 하고, 반응이 별로면 그저 자료에 기댄 맥 빠진 강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만나고 싶고 만나서 즐거운 청중이 내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이른바 '독자'들이라면, 만나서 가장 힘들고 만나고 돌아오며 생각이 많아지는 대상이 바로 중고등학생(때로는 대학생까지 포함)들이다. 자기 의지로 강의를 신청했거나 문학 동아리나 독서반처럼 애초에 관심 있는 아이들끼리 모인 것이 아니라면, 강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아이들의 절반쯤은 자고 있다. 내 이야기가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아직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이니, 내가 재운 게 아니다! 어떤 내용이든 강사가 누구든 배우는 모든 행위를 '포기'한 것이다. 눈동자에 별을 품고 있지 않은 아이를 바라보는 일은 슬프다. 흐리고 탁한 그의 눈에는 기대가 없고, 희망이 없고, 호기심이 없다. 학교생활과 일상 전반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비율이 청소년 10명 중 7명에 이른다는 조사 통계는 그들의 무력감...
나무ⓒ이재복

“어쩌면 일보다는 삶이 더 어렵다”

가족이란 개인의 삶을 위한 중심부이자 본거지이자 우리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되는 곳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가정을 가꾼다. 우리는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 '산다'. -- 대니얼 J 레빈슨, 《여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72 '계절의 여왕'이자 이른바 '가족의 달'이라는 5월에는 특별한 날이 많다. 아이와 부모와 성년이 되는 젊은이와 스승을 기념하는 날마다 행사가 연이어진다. 왜 그리 한꺼번에 사랑과 감사를 몰아 바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름다운 날이니 좋은 사람들과 서로 축하하고 축복하라는 뜻이리라 어림한다.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 '산다'는 말의 간결하고도 강렬한 의미처럼, 집은 삶의 근거이자 삶 자체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만나는 가족은 삶을 함께하는 사람이면서 그 역시 삶 자체다. 분명 타인이면서 타인만일 수 없는, 민낯의 나 자신이기도 하다. 가장 가깝고 가장 편안하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내밀하다. 가족이라면 '부모, 자식, 형제 따위 한 혈통으로 맺어진 육친' 즉 혈육(血肉)을 일차적으로 떠올리게 되고, 그것은 우리의 목숨에 비견되는 피와 살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 일한다. 때로는 힘겨워도 참는다. 가족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모욕과 부당한 처사조차 마땅히 견뎌야 할 무엇이 된다. 그것은 지극히 원초적이면서 동시에 거룩한 본능이다. 우리가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와 자매와 자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울컥'하는 것은 그들이 나를 위해, 내가 그들을 위해 감수했던 것들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커튼을 들춰 무대 뒤를 들여다보면 뜻밖의 것들이 드러난다. 가족이라는 그토록 아름다운 이름이 때로 힘이 아니라 짐이 되기도 한다.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 '살기'보다는 '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밖의 일이 너무 경쟁적이고 치열하다 보니 집에서는 모든 긴장을 풀고 널브러지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
비ⓒ포레스트

조심스럽게 염치없이 울고 싶을 때

이 양파 켈러(지하 술집)엔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 가게에서는 양파를 써는 것으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중략) 가슴이 그토록 가득 차면 눈물이 가득 찬다고는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 특히 과거 수십 년 동안이 그랬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세기는 장래 '눈물 없는 세기'라고 명명될 것이다. 눈물의 씨앗이 되는 슬픔은 도처에 수두룩하게 굴러다니는데도, 그래도 슬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 눈물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양파 켈러에서 도마와 식칼을 80페니히로 빌고 밭에서 자라는 보통 양파를 12마르크로 나누어 받고, 그것을 잘게, 다시 잘게 썰었다. 그 즙이 그것을 달성해 줄 때까지 썰었다. 그 즙은 그러면 무엇을 달성해 준 것인가? 그것은 이 세상과 세상의 슬픔이 달성하지 못한 것을 달성했다. 즉 인간의 둥근 눈물을 자아낸 것이다. 이때 일동은 울었다. 마침내 또다시 울었다. 조심스럽게 울었다. 끝없이 울었다. 염치없이 울었다. 눈물은 흘러 떨어져 모든 것을 씻어 내렸다. 비가 왔다. 이슬이 내렸다. -귄터 그라스 (박환덕譯)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71 기기묘묘한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20세기의 문제작 '양철북'을 처음 접한 것은 귄터 그라스의 소설이 아니라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의 영화였다. 주인공 오스카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깨어져 나가던 유리병, 뱀장어를 잡기 위해 던져 넣은 소머리와 끝없이 정어리 통조림을 삼키던 어머니. 발작적으로 울려 퍼지던 양철북 소리... 그 의미를 깨닫기에 앞서 너무도 충격적인 이미지들이 이십여 년이 지나도록 눈앞에 생생하다. 소설 은 캐나다에 머물던 시절 튜터 '조지'와 함께 영문판으로 다시 읽었다. 모국어로 읽어도 만만찮은 작품을 영어 공부 삼아 읽는다는 건 무모한 시도나 다름없었지만, 외국어로 더듬더듬 읽다보니 꼼꼼히 단어와 문장을 뜯어읽는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대학에서 예술학을 가르치다가 은퇴하고 소일로 튜터 과외를 하던 '...
꽃밭ⓒ뉴시스

애처로운 청춘들의 달큰함을 빌며

황씨는 메밀을 많이 재배하는 지역에 살다 온 사람이었다. 그 메밀밭에서 어느 날 마을 처녀가 삽날에 발이 찍혔다. 삽날이 발을 파고들어도 예전 처녀들은 주저앉아 엉엉 울지 않았나보다. 울기는커녕 아픔보다 놀라움과 수줍음이 더 커서 아연실색한 채 삽날만 우두커니 쳐다보며 그 자리에 먹먹하게 서 있더란다. 황씨는 젊어서 딴 사람보다 신중했던 모양이다. 남들 앞에 나서기보다 혼자 있기를 좋아했으니 그 내성이 침착함을 키웠나 보다. 쩔쩔매는 처녀 앞에 척 나서서 삽날을 빼내고 삽날을 빼내자 생각난 듯 솟아나는 피를 처녀의 치마 한 켠을 찢어내 단단히 처매는 응급처치를 해줬던 모양이다. 그 짧은 순간, 이건 순전히 내 짐작인데, 처녀와 황씨는 소위 말하는 큐피드의 화살을 맞았던 것 같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제법 여러 유형의 남녀상열지사들을 지켜봐 왔다. 나 또한 사안을 곰곰이 들여다보기를 즐기는 사람, 그러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큐피드의 화살이란 대단히 신비한 무엇이 아니더라는 거다. 하늘이 내린 운명이나 해명할 수 없는 이끌림이 아니라 그저 순진한 청년과 무구한 처녀가, 단순히 몸을 밀착해서 신체접촉을 하게 되면 그게 곧 큐피드의 화살이 되기 십상이라는 거다. 물론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우연히 몸을 접촉하는 바로 그 일 자체가 일종의 운명일 수도 있겠지만. "메밀밭 그 처녀 예뻤니껴?" "얼굴이 이삔 거는 잘 몰래도 애기씨요, 그 아는 입술이 메밀대궁 같이 발갓드래요, 낯빛은 메밀꽃같이 희고... 치마에서는 메밀 꿀 같은 내음새가 났드랬소... 애처롭고 달큰했소." --김서령 산문집 《참외는 참 외롭다》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70 조금은 길지만 내용이 곱고 말맛이 좋아 그대로 옮겨본다. 짐짓 소심해 보이지만 치밀하고 진중한 청년과 엄벙덤벙 순진한 말괄량이 처녀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지는 것만 같다. 우연인 듯 필연이다. 발등을 찍어버린 삽날이 가슴까지 파고들고, 솟아오르는 붉은 피가 한순간 운명을 물들인다. ...
4.16ⓒ뉴시스

해마다 거듭 잔인해질 4월이 서럽다

우리는 최초의 구타를 당했다.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 우리가 말을 해도 그들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설사 들어준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이름마저 빼앗아갈 것이다. 우리가 만일 그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할 터였다. 그 이름 뒤에 우리의 무엇인가가, 우리였던 존재의 무엇인가가 남아 있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했다. --프리모 레비(Primo Levi) 《이것이 인간인가》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9 그곳의 이름은 소박하다. 편안할 안(安)에 뫼 산(山), 고려 초부터 순하고 아늑한 형세를 이름으로 인정받았던 그곳은, 이제 누구도 편안한 마음으로 쉽게 부를 수 없는 뜨거운 기억이 되었다. 작년 4월 16일에 우리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쉬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눈앞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실은 배가 검푸른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았던 것은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최초의 '경이로움'에 가까웠다. 왜, 그들을, 구하지, 않는...않았단, 말인가?! 그런데 더욱 놀랍고 끔찍한 일은 그 다음부터였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고 애도가 외면으로 전도되는 과정은 말이 말이 아니고 이해가 이해가 아닌 불통의 참경이었다. 어쩌면 의혹을 풀어달라는 이들에게 떼를 쓴다고 삿대질을 할까? 어떻게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지겹다고 진저리칠까? 우리가 이른바 원시인이라고 부르는 네안데르탈인조차 꽃가루와 조개보석들을 뿌려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의식을 가졌다. 세월호 침몰과 그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문명과 이성의 펜으로 쓴 우리의 이름을 단번에 지워버렸다. 일반인 희생자들의 사연도 기막히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찢은 건 무고한 '아이들'...
시내ⓒyoofoto

작은 시냇물의 이 명징한 `얕음`

나는 작은 시냇물과 같다. 깊지 않기 때문에 맑다. --볼테르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8 온갖 어렵고 무거운 관념어를 총동원한 문장이라고 해도 모두 그만큼 중요한 뜻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때로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고 무거운 의미가 전혀 없음에도 곱씹을수록 어려워지고 돌이킬수록 무거워지기도 한다. 볼테르의 이런 말과 같은 것들이다. 듣는 순간 한번 쿵, 곱새기면서 다시금 쾅, 가슴을 치고 머리를 울린다. 근대 철학이나 문학을 읽노라면 너무도 빈번히 그의 이름을 만난다.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라는 본명 대신 필명인 볼테르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철학자이자... 희대의 트러블메이커! 그는 책을 발행하고 성명을 발표했다가 누군가의 분노를 사서 투옥되거나 망명하는 좌충우돌의 일생을 반복해 살았다. 주로 타락한 종교와 부패한 권력,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으로 가득 찬 비관용이 공격 대상이었지만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훑어보노라면 요즘 식 유머로 '모두까기 인형'이라고도 불릴 만하다. 죽기 직전에 성직자가 "악마를 부정하라!"고 주문하자, "이보게, 지금은 새로운 적을 만들 때가 아닐세!"라고 대답했다는 블랙코미디의 대사 같은 유언이 전해오긴 하지만, 살아생전 그에게는 열렬한 추종자만큼이나 사방에 적이 많았다. 이른바 '명언'이라고 알려진 것들이 좋게 말하자면 유머와 풍자, 나쁘게 말하자면 조롱과 비아냥거림으로 가득 찬 것이기에 '적'으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볼테르는 밉기에 앞서 얄미워 죽을 지경인 상대였을 것이다. 그는 권위를 혐오했기에 스스로 권위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짐짓 경박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짧은 말 한마디로 가벼움과 얕음의 연유를 단번에 해명해버린다.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사람들이 권위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그가 가진(혹은 가졌다고 믿어지는) 무엇의 깊이와 무게 때문이다. 그리고 깊고 무거울수록 공정하고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볼테르의 비유대로라면, 깊은 물은 그 속...
한글ⓒ포레스트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씁니까?”

"매일 큼직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는 매일매일 알아 깨우친 갖가지 형태의 비정형의 잡동사니 속에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JOURNAL EXTIME)》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7 "비결이 뭡니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씁니까?"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질문에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답하곤 했다. "그 비결을 알게 되면 제게도 꼭 알려주세요!" 애초에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자기만의 뛰어난 방법', 비결은 없다. 다만 모호하고도 신비로운 상상과, 지루하고도 꾸준한 습작과,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속삭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비밀을 형성하는 데 우선되는 것이 재주나 기술보다 상처와 열망이기에, 무릇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자세하고도 끈질기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미묘한, 그래서 설명하기 어렵고 자기 자신도 미처 모르는 내면을 묘사하기에 천착하기보다는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글로 적어보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쉽고, 생각보다 어렵다! 어떤 사람에 대해 쓰기 위해서는 평소에 흘려보았던 그의 몸피와 옷차림, 표정과 습관적 행동들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어떤 동물에 대해 쓰기 위해서는 외양과 행동뿐만 아니라 무심코 지나치던...
동상ⓒ리나

얼마나 많이 가져야, 얼마나 높이 올라야

스스로를 승리자와 패배자로 가르는 이분법적 판단을 멈추면, 인생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가꿔나가야 할 선물로 바뀐다. --대니얼 고틀립(Danial Gottlieb) 《마음에게 말 걸기》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6 정확한 출전을 찾다가 실패한 구절이 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이 어느 인터뷰에선가 했다는, "조언은 충고의 형태가 아니라, 고백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말이다. 조언이랍시고 폭언에 가까운 충고를 하는 '멘토'들과, 흡사 피학적 성향을 지닌 맹신도 같은 '멘티'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그 말은 풀죽은 고백밖에 할 수 없는 내게 적잖은 위로가 된다. 강력하고 강렬한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부디 속지 마시길, 진정으로 삶과 사람을 이해하는 이라면 결코 남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하고 개입하지 않는다. 충고가 수직적이라면 고백은 수평적이다. 나보다 '높은 곳'을 선점한 이의 교훈, 설득, 훈계는 고스란히 받아들이느냐 저항하며 거부하느냐 선택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무릇 대화란 교훈과 설득과 훈계가 끝난 지점으로부터 시작된다지 않는가?! 엄밀히 말해 충고는 대화의 방식이 아니다. 반면 고백하는 이는 나와 같은 자리에서 눈을 맞추거나 심지어 나보다 더 '낮은 곳'에서 호소한다. 충고의 주어(主語)가 '너'라면, 고백의 주어는 '나'다. 그래서 고백은 이해하느냐 이해하지 못하느냐, 그것을 내 삶 속으로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된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철퍼덕 엎어져 충고의 세례를 받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를 터무니없이 낮추는 이유는 자신이 '루저', 즉 패배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가혹한 전쟁에서 무력하게 패배했기에, 엉망이 되어버린 인생을 누군가에게 의탁하거나 누군가가 짜준 계획표에 따라 관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누군가는 바로 승리한 사람들! 내가 갖고자 했으나 갖지 못한 것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져야 승리한 것...
연인ⓒ호호

“어떻게 그런 인간이 이런 글을 썼을까?”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에는 진실이 없다. 선한 사람은 변명을 하지 않고, 변명하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고,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하다. --노자 도덕경 제81장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5 책장을 정리하다가 문득 얄따란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저자에게 증정 받은 뒤 읽지 않고 던져두었던 것인데, 손에 잡힌 김에 뒤적이다가 내처 한 권을 끝까지 읽어버렸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저자와의 짧은 만남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하여 책을 읽으며 내내 감탄했다. "어떻게 그런 인간이 이런 글을 썼을까?!" 미려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소박하고 정갈하다. 겸손한 어투였지만 지성과 교양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삶에 대한 통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도 있다. 직업적인 작가가 아닌 이가 썼다기에 '이런 글'은 매우 훌륭한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런 인간'을 직접, 생생하게 겪었다는 것이었다. 작가라는 직업이 가진 몇 되지 않는 장점 중에 '정말 하기 싫은 일은 안 해도 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있다.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면 지위와 역할에 따라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이를 악물고 만날 수밖에 없을 테다. 하지만 소설가 이외수 선생의 말마따나 '쓰면 작가, 안 쓰면 백수'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조건상, 작가는 배고프고 외롭기만 각오하면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서 의외로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조심조심 무겁지 않고 나쁘지 않은 관계로만 사람들을 만나려 애써왔다. 그런데, 우연히 일 때문에 만난 그는 시쳇말로 하자면 나를 '멘붕' 시켰다. 그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자기가 쓴 글과는 눈곱만큼도 닮지 않은, 무례하고 오만하고 괴팍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금껏 내가 접하지 못했던 극악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글과 글을 쓴 이가 같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작가들끼리도 서로 만나지 않고 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