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뉴시스

인공지능은 이런 구절을 쓸 수 있을까?

모닥불은 계속 지펴지는 데다 달빛은 또 그렇게 고와 동네는 밤새껏 매양 황혼녘이었고, 뒷산 등성이 솔수펑이 속에서는 어른들 코골음 같은 부엉이 울음이 마루 밑에서 강아지 꿈꾸는 소리처럼 정겹게 들려오고 있었다. 쇄쇗 쇄쇗... 머리 위에서는 이따금 기러기 떼 지나가는 소리가 유독 컸으며, 낄륵-하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들릴 즈음이면 마당 가장자리에는 가지런한 기러기 떼 그림자가 달빛을 한 옴큼씩 훔치며 달아나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별 하나 주워볼 수 없고 구름 한 조각 묻어 있지 않았으며, 오직 우리 어머니 마음 같은 달덩이만이 가득해 있음을 나는 보았다. 달빛에 밀려 건듯건듯 볼 따귀를 스치며 내리는 무서리 서슬에 옷깃을 여며가며, 개울 건너 과수원 울타리 안에서 남은 능금과 탱자 냄새가 맴돌아, 천지에 생긴다고 생긴 것이란 온통 영글고 농익어 가는 듯 촘촘히 깊어져가던 밤을 지켜본 것이다. -- 이문구 《관촌수필》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9 “우린, 망했어!”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 지껄인 수많은 말들 중 기억나는 건 그 한가지였다. 우리는, 이른바 문학을 한다며 십 수 년 이상을 애면글면해 온 소설가들이다. 서점에 신간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도 이메일조차 확인하지 않는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사람들은 모두 제 손바닥 안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고, 책 비슷한 걸 펼쳐보는 사람들과 마주치면 무슨 책을 읽는가보다 이런 별종은 누군가가 더 궁금하다. “일본에선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다지 않아?!” 몇 번인가 문학상 심사를 해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충분히 그럴 법한 일이다. 인류가 문자언어를 사용하면서부터 남긴 모든 문학의 자료를 업데이트한 인공지능이라면 흥미로운 소재를 가려 뽑고, 적절한 주제를 기저에 두고, 치밀하게 구성하는 측면에서 웬만한 작가는 뺨치고도 남을 것이다. 아무러한 책벌레라도 그보다 더 많은 문학 작품을 소화한 ‘인간’은 없을 테니까. “이젠 대학에...
골목ⓒ시민작가 이상윤

우리에게 부족한 건 ‘노오오오력’이 아닙니다

강한 사람들은 원하는 것은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강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중에서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8누군가는 아파야 젊음이라 하고, 누군가는 아프면 환자지 어찌 젊은이냐고 반박하지만, 유달리 젊음이 고단하고 아픈 시절임은 분명한 듯하다. 인터넷의 망망대해에서 익명의 젊은이들이 내뱉는 생목의 소리를 듣노라면 그것은 비명이거나 절규일수조차 없어 꿍꿍 윽박는 신음이기 일쑤다.세대로 분류한 병적 증상 중에 가장 악명 높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중2병’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자의식이 반항과 허세로 표출되는 질풍노도의 질환이다. 하지만 ‘중2병’이야말로 마땅히 겪어야 할 성장의 통과의례, 성장통이다. 잘 앓고 내성이 생겨야 앞으로의 멀고 긴 삶을 건강하게 살아낼 수 있다.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청소년들은 그조차 제대로 앓아낼 여력이 없다. 입시경쟁에 내몰린 채 학교와 학원에 시달리다 보니 방황이라 해봤자 엄마 몰래 학원 땡땡이 치고 PC방에 가는 수준이다. 그리하여 무균실 아닌 무균실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나서 ‘무사히’ 대학에 안착한 후, 어리보기 같은 신입생 시절을 보내고 나면 ‘대2병’이 찾아온다. 한편으로는 취업을 위해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초조감에 시달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회의감에 빠져드는 모순의 상태다.하지만 취업 ‘스펙’을 쌓느라 죽도록 고통 받는 대학 3학년의 ‘사망년’까지 모두 지나서 마침내 원하던 직장에 입사하고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이른바 ‘직장 3년차 병’을 앓으며 이직과 퇴직을 준비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회사의 네임 벨류(name value), 연봉, 연고지 등의 현실적인 조건에 더하여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뒤늦은 방황을 부추긴다. 일과 직업 자체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계 혹은 돈벌이 앞에서는 가치를 따질 수 ...
양ⓒ뉴시스

“잠보에게 마땅히 경의를 표합니다”

잠을 잔다는 것은 결코 보잘 것 없는 기술이 아니다. 다음날 깨어있으려면 잠을 자야 한다. 낮에 열 번, 그대는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적당히 피곤해지며 영혼은 그에 마취된다. 낮에 열 번, 그대는 자신과 다시 화해해야 한다. 자기 극복은 혹독한 일이기에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자들은 단잠을 이루지 못한다. 낮에 열 가지 진리를 그대는 찾아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대는 밤에도 진리를 찾게 되고, 그로 인해 영혼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낮에 열 번, 그대는 웃어야 하고 쾌활하게 지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밤 동안 슬픔의 아버지인 위장이 그대를 괴롭힌다. 숙면하기 위해서는 모든 덕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을 아는 자는 드물다. 내가 위증을 하게 된다면? 내가 간음을 한다면? 내가 이웃 하녀에게 욕정을 품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모든 것들이 단잠을 방해한다. 그리고 모든 덕을 갖춘다 할지라도 우리는 또 하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덕들도 올바른 시간에 잠재워야 한다는 사실을.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7니체는 잠을 잘 잔다는 것을 일종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잠보에게는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하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은 스스로 무능력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그리하여 나는 급속도로 무능해졌다. 애당초 어딘가에 머리만 기대면 잠드는 강철 신경의 행운아는 아니긴 했지만, 말뜻 그대로 시절을 다시 고치기(更年) 위한 호르몬의 작용 때문인지 전에 없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잠자리에 들고서 시간이 갈수록 눈이 말똥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부쩍 얕아진 잠 때문에 하룻밤에도 몇 번씩 깨어나 뒤척이는 게 더 큰 고통이다. 기어이 수면제 처방을 받아야 하나, 민간요법을 써 볼까나... 이런저런 궁리로 뿌덕뿌덕한 새벽을 맞는다.불면의 밤에는 소화되지 않은 지난 시간이 물밀어든다. 충분히 극복하지 못한 일, 화해하지 못해 부대낀 기억, 명랑하고 활기차게 보내지 못한 일...
꽃봉우리ⓒ뉴시스

애쓰지 않아도 절로 시를 쓰는 아이들

아이들이야말로 지극히 문학적인 존재다. 아이들은 자기 느낌 그대로를 말하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방식을 따라하지 않기 때문이다. (...) “울고 싶어요.”하지 않았다. 그건 바보들이나 하는 말이다. 대신 아이는 “눈물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서》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6 지금 스무 살이 된 아들아이가 걸음마가 서툴러 등에 업혀 다닐 무렵, 가을날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후두두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고사리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비, 노란 비다!” 그때의 신비롭고 뭉클했던 감동은 엄마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지만, 모든 아이들은 내 아이가 그러했듯 타고난 시인이다. 물고 빨고 쥐어뜯고 흩어놓아서라도 세상을 낱낱이 알고픈 공부벌레다. 지금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한때 우리는 그렇게 시인이자 공부벌레였다. 언젠가 그 아이들과 삼십여 년을 함께 생활한 초등학교 교사 출신 김용택 시인의 강연을 들었는데, 시인이 읽어주는 아이들의 시가 무척 재미있었다. 아버지의 회사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줄넘기 두 개가 꼬이면/ 풀기 어려운 거’에 빗대어 이해하는 아이, ‘이제/ 눈이 안 온다/ 여름이니까’라는 간명한 통찰로 계절의 변화를 전하는 아이, 거미줄에 동글동글 이슬이 맺혀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을 보고 ‘가만히/ 들어보면/ 음악이 들릴까?’ 궁금해 하는 아이... 아이들이 시를 쓰고자 애쓰지 않아도 절로 시를 쓰는 건 그들이 솔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멋있는지, 대단한지, 시가 될 수 있는지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르난도 페소아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이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을 흉내 내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의 눈치를 보며 따라하는 순간 시의 재능은 사라지고 진부하고 얄팍한 재주만 남는다. 남들처럼 느끼고 남들처럼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이 천부적인 시인을 바보로 만든다. 자기의 느낌을 숨기다 보니 서서히 잊어버린다. 느낌 자체가 사라진...
거울ⓒ뉴시스

“거울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고 생각해 봐”

당신이 거울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고 생각해 봐. 당신은 당신 얼굴을 꿈꾸었겠지. 아마 당신은 그 얼굴을 당신 내면의 외적 반영으로 상상했을 거야. 그러다가 마흔 살쯤 되었을 때, 사람들이 당신에게 유리 거울을 비춰 주었다고 가정해 봐. 얼마나 놀랄까. 아마 당신은 전혀 낯선 얼굴을 보게 될 거야. 그 때 당신은 분명히 알게 되겠지. 당신 얼굴이 곧 당신인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야. -- 밀란 쿤데라 《불멸》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5 지난 명절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정식 제작 전에 맛보기로 선보이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보았다. 젊은 출연자가 시간 여행자가 되어 30년, 40년 후로 떠나 70대, 80대의 나이로 생활하는 내용인데, 이미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유사한 형식을 선보인 바 있음에도 ‘타임리프(Time Leap)’의 상상은 여전히 흥미로웠다.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특수 분장으로 노인의 모습이 된 자신을 처음으로 맞대면하는 대목인데, 꼭 밀란 쿤데라의 소설 속 한 대목과 같다. 평생토록 거울 없는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처럼, 출연자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물을 흘린다. 사전에 받은 대본대로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엄연히 알면서도 진심으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여러 번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해도 눈앞에 나타난 주름투성이에 등이 굽은 노인이 낯설기는 매한가지다. 그 모습으로 바깥에 나가 만나는 세상과 사람들은 더욱 당혹스럽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생각에 비슷한 말을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말의 나이’를 가려듣지 않는다. 겹겹이 늘어진 주름과 백발이 소통의 가능성을 막아버린 탓이다. 아름답고 건강했기에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던 ‘진짜 자기’를 잃은 출연자들은 절망감과 무력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진짜 자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쿤데라는 유머러스하지만 날카롭게, 정작 기억되는 것은 존재 자체가 아...
손ⓒ뉴시스

약한 자들의 보호처가 감옥으로 되는 순간

그녀는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우린 벌 받는 거야, 그뿐이야.” “무엇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에 그가 증오하는 톤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방어적으로 물었다.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헛소리!” 그가 말했다. 그는 화가 났다. 이런 해리엇이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이건 우연이야. 누구나 벤 같은 애를 가질 수 있어. 그건 우연히 나타난 유전자일 뿐이야.”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녀가 완고하게 주장했다. “우린 행복해지려고 했어!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니, 나는 결코 행복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려고 했지. 그래서 바로 벼락이 떨어진 거야!” --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중에서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4문득, 확신에 가까운 예감에 사로잡힌다. 여자, 노인, 장애인, 유색인종, 성소수자...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많은 그룹 중에서도 가장 최종의 ‘식민지’는 바로 ‘어린아이들’일 거라고. 그들은 단체를 구성하지 못하고 투표권도 갖지 못하며 경제적으로 완전한 예속 상태에 있다. 게다가 경우에 따라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옹성에 분리되어 있다. 물론 사회는 그것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장치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보호자’가 혈연관계를 위계로 해석하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순간 가족은 아이들에게 세상의 어디보다 위험한 곳이 된다.아동 학대와 관련된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경악한다. 짐승 같은, 짐승만도 못한, 이라는 표현으로 그들을 ‘인간’의 무리에서 분리시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사고는 우리가 본능과 욕망을 숨기고 고귀한 ‘인간’을 시늉할 때 터져 나온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 《다섯째 아이》에서 데이비드와 해리엇이 다섯째로 낳은 아이 벤 앞에서 스스로 폭로하는 본능과 욕망의 실체가 그러하다.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지극히 ...
노을ⓒ시민작가 이도은

“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 문학에 끝은 없습니다. 우리의 예술은 끝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울며 외쳐도 끝나지 않습니다. 결코, 우리의 읽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리고 말하는, 이 무한한 행동은 끝날 수 없습니다. 그 자체가 우리의 의미고 인류가 살아남는 것 자체니까요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3 전염병이거나 풍토병이거나 고질병처럼, 주변의 작가들이 깊은 우울을 앓고 있다. 이미 오래된 ‘문학의 종말’에 대한 예감에 더하여 날로 척박해지는 출판 환경과 독서 인구의 감소, 우연이자 필연으로 만천하에 드러난 문단의 치부에 대한 모멸과 자괴감 등이 병인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세상이 문학을 비웃는다. 예술을 조롱한다. 작가들은 초라해지고 예술가들은 광대처럼 슬프고도 우스꽝스러워진다. 독자들의 외면하는 문학은 허공을 향해 외치는 비명 같다. 피맺힌 절규에도 일말의 의미가 있겠지만 공허함은 어쩔 수 없다. 세상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부지런히 자신의 글밭을 일구던 작가들마저 망연히 펜을 놓아버리면서 서점에는 신간이 부쩍 줄어들었다. 읽어야 할 책들을 읽지 않았기에 읽으려고 해도 읽을 만한 책이 없어지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독서를 ‘특수 행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땅히 취미가 아니라 특기로 ‘독서’를 써야 할 날이 머지않은 듯만 하다. 고민은 깊어지고 마음은 무거워지고 펜 끝은 무뎌졌다. 그런 난국에 처한 채로 들춰보는 사사키 아타루의 책은 복잡 미묘한 마음을 더한다. ‘일본의 니체’라고 불리는 이 자의식 강한 젊은 비평가의 외침은 기실 지난봄의 꽃노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읽는 것,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건,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힘의 근원”이라고 그는 힘주어 주장한다. 철학이 끝났다거나 문학이 끝났다는 세간의 주장이 낭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장구한 인류사 속에서 기록의 도구로 쓰이는 문자는 고작 5000년의 역사를...
노을ⓒ시민작가 남윤창

진정으로 여행을 잘하고 싶다면

런던에 사는 나의 에이전트가 말하길, 만약 그것이 정말 ‘뉴욕 영화’라면, 모든 ‘뉴욕 영화’는 근사하고 멋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마치 여행기와 같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호로비츠 (Israel Horovitz)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2방학을 맞은 아이와 함께 조금 긴 여행을 다녀왔다. 때마침 한반도는 폭한(暴寒)의 습격을 받아 연일 최저기온을 갱신하는데, 머리 위로 끓는 해를 이고 방울땀을 흘리는 일이 비현실적이기 그지없었다. 예상치 않게 피한(避寒) 여행을 하던 중 점심을 먹고 호숫가를 산책하다가 결국 비어있던 집의 수도가 동파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미리 옆집에 부탁하고 온 덕분에 신속히 계량기를 교체해 피해는 줄였지만 이웃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 마음이 편편찮았다. 공항 세탁소에 겨울 외투를 맡겨둔 채 반바지에 맨발로 거리를 걷고, 맹렬한 추위에 얼어터진 수도를 걱정하며 열대과일을 먹었다. 내 몸은 여행지에 있지만 마음은 그곳까지 따라오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정녕 떠나온 것일까, 떠난 시늉만을 하고 있는 것일까?여러 차례 고백한 바 있지만, 나는 그다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둔하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여행을 시작하지만 떠나는 순간부터 다시금 여행 체질이 아님을 깨닫는다. 여행은 무릇 낯선 것들과의 조우다. 낯선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낯선 거리를 걸으며 낯선 풍물을 보고 낯선 음식을 먹는다. 여행은 우리 곁을 빠르게 스쳐 지나는 시간을 잠시 붙들어 잡는다. 여행지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르고 아무리 느긋하게 움직이려 애써도 여행자의 다리는 고단하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새롭고 특이한 사건보다는 일상의 도저한 힘의 신봉자, 여행이 손해날 일일 리는 없지만 큰 이득을 얻을 것도 없는 일인 것이다.여행 중에 나는 아무 것도 쓰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Writing is thinking!”의 원칙에 비춰보아도 여행에서 영감을 받지 못하는 자는 여행기를 쓸 수 없다. 예정된 여행지에 대한 사실적 정보 이상의 여행기를 미...
공원ⓒ시민작가 남국환

“언제나 대충 구체적이도록 하라”

언젠가 계단에서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그가 당신을 바에 초대하여 커피 한 잔을 대접하고,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불쾌하지도 않은 우스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그가 호감을 주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를 매일, 하루에 세 번 계단에서 만나는데, 그때마다 당신에게 커피 한 잔과 우스개 이야기를 강요한다고 상상해 보시라.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그의 목을 조르고 싶을 것이다. 단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움베르토 에코,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1 영어로 쓰인 소설을 더듬더듬 읽어나가다가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다. 막히는 단어마다 일일이 뜻을 찾다 보면 바로 앞에서 찾았던 단어와 같은 뜻이기 일쑤! 이를테면 pretty와 beautiful과 lovely와 gorgeous가 모두 예쁘다, 아름답다는 한 가지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별다른 차별성도 없는 단어들을 왜 이렇게 속속들이 다르게 썼느냐고 투덜거리다 보니, 나 또한 소설을 쓸 때 같은 문장에 절대, 같은 문단에 가능한 한 같은 뜻이라도 다른 단어를 쓰려고 애쓴다는 자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건 언어에 민감해진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언어마다 가지고 있는 빛깔과 향기와 촉감에 예민해져야 한다. 물론 문장은 1차적으로 뜻이 정확하게 통해야 한다. 하지만 문장이 아름다워지고, 그런 문장들이 모여 문체에 개성이 생길 때, 문체가 전달하려는 뜻은 더욱 풍부해진다. 반복되는 단어는 이내 식상해진다. 움베르토 에코의 비유는 참으로 쉽고 명확해서, 그 자신이 뛰어난 작가인 동시에 조사법(措辭法)의 대가라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처음 만난 사람의 친절한 태도와 유머는 호감과 함께 신선한 재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두 번째에는 좀 당황스러워지고, 세 번째 쯤에는 얼마간 지루해지며, 그것이 매일 세 번씩 거듭된다면 거의 폭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처음에 호감과 함께 재미있게 느...
고드름ⓒ연합뉴스

마음에 그 많은 가시를 지니고 살아질까?

눈에 티가 들어가면 견딜 수 없고, 이(齒) 사이에 조그만 것이 끼어도 참을 수 없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마음속에 그 많은 가시를 지니고도 오히려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여곤, 《신음어(呻吟語)》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0 신음어, 책 제목부터 묘하다. “신음이란 병자의 앓는 소리다. 신음어란 병이 들었을 때 아파서 하는 말이다. 병중의 아픔은 병자만이 알고 남은 몰라준다. 그 아픔은 병들었을 때에만 느끼고 병이 나으면 곧 잊어버린다. 사람이 병들어 앓을 때의 고통을 안다면 모든 일에 조심하여 다시는 괴로움에 시달리는 시련을 겪는 일이 없을 것이다”는 서문을 읽으면 비로소 싸한 감동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끙끙, 아파서 앓으면 절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앓는다는 것은 가장 약한 상태, 따라서 가장 민감한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배를 앓으면서는 함부로 먹은 것을 반성하며 앞으로 자극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것을 골라먹겠다고 결심한다. 다리를 앓으면서는 발밑을 살피지 않고 부주의하게 헛디딘 것을 후회하며 앞으로 발걸음을 조심하겠다고 다짐한다. 손끝의 상처나 난치병이나 내가 걸리면 경증과 중증을 헤아릴 필요 없는 고통이다. 고통은 나쁜 애인처럼 일상을 잠식하고 오직 자기에게만 집중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 애인과 결별하는 순간, 후유증이 좀 남긴 하겠지만 그럭저럭 살 만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니, 시간이라는 만병통치약 덕택으로 금세 까무룩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처럼 어리석게 잊을 수 있어서, 사람은 언제고 살아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명나라 말기의 문신 여곤의 책 《신음어》에는 ‘중국의 목민심서’라는 별명이 붙어 있지만, 국가 경영의 길을 밝히고 관리들을 경계하는 가르침 외에도 썩어빠진 세상을 견디는 수양의 방도가 올올이 들어차 있다. 명말의 타락한 세상을 끙끙 앓으며 여곤은 스스로의 환부에 메스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