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4.19민주묘지 기념탑

삶에 초록쉼표 찍고 싶을 때, 우이동 북한산 둘레길

국립 4.19민주묘지 기념탑 호호의 유쾌한 여행 (143)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성지 우이동 가끔은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살이가 힘겹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저는 산책을 합니다. 초록이 짙어가는 6월, 북한산 둘레길에 다녀왔습니다. 우이신설경전철 4.19민주묘지역에 내려 4.19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주택가 앞쪽에는 식당과 카페 등이 모여 있습니다. SNS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카페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근현대사기념관 마당에 세워진 독립민주기념비 419 기념탑과 조형물을 지나면 근현대사기념관이 나옵니다. 근현대사기념관 앞마당에는 독립민주기념비가 있어요. 해맑게 웃는 김구 선생의 흉상이 인상적입니다. 비에는 김구선생 어록이 새겨져 있습니다. “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뿐이랴, 대중의 기아가 있고 가정의 이산이 있고, 동족의 사안까지 있게 뙤는 것이다. 마음 속에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 김구선생 어록 독립민주기념비가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시민들의 소중한 정성으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역사정의를 생각하는 네티즌들 626명의 모금과 근현대사기념관 운영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의 후원으로 기념비가 마련되었어요.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작가인 김서경, 김운성씨가 재능기부의 형태로 함께 참여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지요. 이곳을 지난다면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꼭 한 번 자세히 되짚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근현대사기념관 계단에 마련된 인물 배너 근현대사기념관 계단에는 이준, 이시영, 김병로, 신익희 선생의 캐릭터 배너가 세워져 있어요. 이들에겐 ‘최초의 길’ 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세대 검사를 지낸 이준, 초대 부통령 이시영,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제헌국회 초대 부...
터널 미세먼지 제거 차량

심각한 미세먼지, 서울지하철은 어떻게 관리할까

터널 미세먼지 제거 차량 알아두면 도움되는 교통상식 (139) 서울교통공사의 미세먼지 대응 노력 현재 서울시민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미세먼지다. 숨쉬기가 답답한 것은 물론이고 건강까지 해친다고 하니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지하철이 더 걱정된다. 아무래도 환기가 잘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지하철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에서는 지하철 미세먼지 제거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우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지하철에 미세먼지 측정기를 더 많이 설치하는 것이다. 현재는 몇 개 역에만 설치돼 있기 때문에 상세한 정보를 아는 데 한계가 있다. 물론 지금도 이동식 측정기를 이용하여 지하철 전체를 조사하고 있지만 이 방법은 정보를 얻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서울교통공사는 254개의 모든 지하역사에 자동측정망을 설치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측정망을 통해 관제실에서는 지하철 미세먼지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미세먼지가 심한 곳부터 단기적 및 중장기적 대책을 시행할 수 있으므로, 동일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더 많은 미세먼지를 빠르게 줄일 수 있다. 터널에서 미세먼지가 많이 측정되고 있는 관계로 서울교통공사에서는 대규모 터널 물청소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서울교통공사는 매주 일요일마다 두 세 개역에서 종합적인 대청소를 실시중이다. 열차가 운행을 마친 심야에 터널, 역사, 승강장, 벽면 등을 대규모 장비와 인력을 동원하여 청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토목이나 궤도 등의 안전점검도 병행하고 있다. 미세먼지와 안전을 동시에 잡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승강장 선로에서 미세먼지 제거를 위해 물청소 하는 모습 이렇게 청소를 해도 다시 먼지가 생기면 의미가 없는 만큼, 먼지가 많은 곳의 시설 교체도 진행된다. 노후 환기시설을 교체하고, 선로 밑 자갈도 콘크리트로 교체하고 있다. 발생한 먼지를 적극적으로 없애는 작업도 시행 중인데, 특...
창의문

도성 안팎 600년 이야기 가득 품은 ‘창의문’을 만나다

창의문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40) 창의문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고려의 도읍이었던 개경을 떠나 한성을 새로운 도읍으로 정했다. 그러면서 경복궁을 비롯해서 한성의 성곽과 성문을 쌓는다. 창의문 역시 이때 같이 지어진 것으로 4개의 대문과 함께 지어진 4개의 소문으로 북소문에 해당되는데 북대문인 숙정문과 서대문인 돈의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의 지명을 따서 자하문이라고도 불린다. 일곱 후궁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칠궁을 지나 위쪽으로 더 올라가면 인왕산과 북악산이 만나는 고갯길에 도달한다. 차와 버스들이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이곳에는 청운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 맞은편에는 창의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계단 초입에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흔적들이 남아있다. 1969년 1월 21일, 김신조가 포함된 북한군 특수부대 31명이 휴전선을 넘어와 청와대의 코앞인 이곳까지 진출한다. 국군 복장을 한 그들을 수상쩍게 여긴 최규식 경무관이 막아서 돌연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졌다. 1.21사태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최규식 경무관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창의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과 정종수 경사의 순직비가 나란히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보이는 창의문은 숭례문처럼 웅장한 대신 작고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사람들의 왕래를 위해 만들어지긴 했지만 태종 때 풍수지리상 왕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문을 닫아버린다. 이 문만 통과하면 바로 경복궁이라는 점도 폐쇄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닫힌 문은 중종 때가 되어서야 다시 열린다. 임진왜란 때 한성을 점령한 일본군에 의해 문루가 불타버렸지만 다른 곳은 무너지거나 허물어지지 않았다. 1623년, 왕족인 능양군이 이끄는 반란군이 문루가 없어진 창의문으로 들어와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반정에 성공한다. 역사의 현장이 된 창의문은 영조 때 다시 문루가 세워지게 된다. 왕래가 별로 없...
세종문화회관 뒤뜰 예술정원에서 열리는 세종예술시장 소소 풍경

골라가는 재미가 있는 서울 도심 속 프리마켓

세종문화회관 뒤뜰 예술정원에서 열리는 세종예술시장 소소 풍경 함께 서울 착한 경제 (126) 광화문 농부의 시장 & 세종예술시장 소소 ​ 주말 서울시청 주변에는 특별한 장이 선다. 때론 농부들이 직접 가져온 농산물을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 ‘농부의 시장’이 열리고, 때론 톡톡 튀는 취향저격 예술 소품들이 가득한 ‘예술시장’이 열린다. 희망을 나누는 ‘재사용나눔장터’,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기업 물품을 판매하는 ‘자활 장터’도 있다. 핸드메이드 관광상품을 만날 수 있는 투어리스트 마켓 ‘밤도깨비야시장’도 열리고, 때론 사회적경제 장터도 열린다. 골라가는 재미가 있는 서울 도심 속 프리마켓, 반짝 시장을 찾아가 보았다. 갓 따온 농작물을 농부에게 직접 산다? 서울시 ‘농부의 시장’​ 전국 각지의 특산물을 직거래로 만날 수 있는 광화문 농부의 시장 햇살 가득한 광화문 광장에는 농부의 시장이 열린다. 농부의 시장은 전국 각지에서 온 농부들이 직접 재배하거나 가공해 만든 특산물을 가져와 도시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직거래 시장이다. 각종 채소나 버섯, 과일, 곡류, 김, 장류나 기름류, 밑반찬과 김치, 각종 즙이나 음료, 즉석밥 등 다양한 농특산물은 물론, 메밀전병과 부꾸미, 묵, 떡볶이 같은 간단한 먹거리도 선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농부 시장은 소비자 입장에선 농부가 밭에서 바로 따온 신선한 농산물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믿고 살 수 있고, 생산자는 과도한 유통마진을 떼지 않고 제값을 받을 수 있어 인기다. ​ 열대작물농장 박철경 씨, 열대작물 대부분을 무농약으로 재배하고 있다 “시중에는 도매상인, 경매장 도매상인, 소매상인 등 많게는 4단계씩 거치다 보니, 유통마진이 곱절 이상 붙고, 최소 2~3일 이상 걸립니다. 그래서 과일의 경우 보통 80% 정도 익었을 때 유통하게 되는데요. 너무 잘 익어버리면 유통 중 상처도 많이 나고 상처에 의해 부패도 빨리 되기 때문이죠. 바나나 같은 경우는 아예 파란 게 수입되어 오는 도중 약품 처리해 후숙시킵니다....
연세대학교 수경원 터

신촌 대학 속에 숨어 있는 ‘사도세자 어머니의 눈물’

연세대학교 수경원 터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39) 연세대학교 수경원 터와 광혜원 신촌 연세대학교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1987년 민주화 항쟁 당시 희생된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뒤편에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이 있는데 이곳 로비의 창문 너머로 두 채의 한옥이 보인다. 오른편은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일자형 한옥이고 왼편은 왕릉에서 볼 수 있는 정자각이다. 두 한옥이 있는 잔디밭에는 석탑을 비롯한 각종 석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연세 역사의 뜰이라는 공간으로 단청이 없는 일자형 한옥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의료 기관이자, 연세대학교의 시초라고 일컬어지는 광혜원을 1987년에 복원한 것이고, 왼편의 정자각은 수경원 터에 세운 전시공간이다. 현재 정자각이 있는 공간 뒤편에 있는 연세대학교회 자리에는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무덤인 수경원이 있었다. 영조와의 사이에서 1남 6녀를 낳은 그녀는 특히 늦은 나이에 낳은 아들을 애지중지했다. 아버지 영조 역시 어린 시절의 아들을 끔찍하게 아꼈다. 하지만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애정이 독이 되었는지 아들은 날이 갈수록 엇나갔다. 결국 영빈 이씨는 피눈물을 참으며 며느리와 손자를 살리기 위해 남편에게 아들을 처벌해달라고 요청한다. 결국 영빈 이씨의 아들은 뒤주에 갇혀서 죽고 말았는데 죽은 이후 사도세자라고 불렸다. 아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고통 때문인지 영빈 이씨 역시 2년 후에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무덤은 한성 바깥인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의 야트막한 산자락에 마련되었다. 왕비가 아니라 후궁이었기 때문에 의열이라는 시호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무덤 역시 의열묘라고 불렸다. 대한제국 시기,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조상인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하면서 의열묘도 수경원으로 위상이 높아진다. 그녀의 위패를 모신 곳은 선희궁이었는데 한성에 있다가 1908년, 현재의 청와대 옆에 있는 육상궁에 모셔지면서 현재까지 그곳에 자리 잡고 ...
서울거리예술축제를 직접 준비한 시민 자원활동가들. 올해도 자원활동가 ‘길동이’를 모집 중이다.

‘서울거리예술축제’ 제대로 즐기려면…자원활동가 도전!

서울거리예술축제를 직접 준비한 시민 자원활동가들. 올해도 자원활동가 ‘길동이’를 모집 중이다. 서울의 주인은 바로 나 (8) 서울거리예술축제 자원활동가 길동이 10월 첫 주 서울 거리는 거대한 복합 예술공연장이 된다.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세종대로, 청계천, 덕수궁 돌담길, 무교로 등 서울 도심 속 거리 곳곳에서 예술 공연이 펼쳐진다. 잘 짜인 극장 무대가 아닌 삶의 공간에서 배우도, 관객도, 거리도 무한 상상력으로 빛나는 예술이 된다. 이렇듯 서울 거리가 예술로 거듭나는 화려한 변신이 가능한 것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리예술축제. ‘서울거리예술축제 2019’가 열리기 때문이다. 국내외 거리 예술가와 축제 기획자, 스태프, 그리고 무엇보다 자원활동가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원활동가가 뭐 그리 중요한 일을 하겠나 싶겠지만, 서울거리예술축제 자원활동가는 축제 홍보부터 준비 진행까지 함께한다. 진정한 축제의 숨은 주역인 셈인데, 지난 참가자들을 만나 활동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자원활동을 통해 자신의 꿈도, 일도 찾았다며 적극 추천한다는데, 현재 모집 중인 ‘서울거리예술축제 2019 자원활동가 길동이’ 참여 방법도 알아보았다.​ 매년 10월 첫째 주, 서울 도심 곳곳에서 '서울거리예술축제'가 열린다. 거리를 예술로 물들이는 자원활동가 길동이​ ‘길동이’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리예술축제 ‘서울거리예술축제’ 자원활동가의 애칭이다. ‘길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축제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서울거리예술축제 길동이는 행사 당일 단순 보조활동만 하거나 부대행사 정도만 맡아 하는 여느 자원활동가와 다르다. 행사 홍보부터 준비, 진행까지 실제 축제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하며 ‘서울거리예술축제’를 만들어간다. 팟캐스트를 만들어 축제를 알리고, 사전행사 및 축제 현장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아 공유하며, SNS 및 각종 온·​오프라인 홍보 콘텐츠를 만든다. 예술가들이 공연에 집중할 수 있도...
서울 책보고의 상징적인 책꽂이

오롯이 나를 채우는 시간, 혼자 가고 싶은 서울 이곳

서울 책보고의 상징적인 책꽂이 호호의 유쾌한 여행 (142) 서울책보고 불현듯 아침에 일어나 허탈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나는 점점 사라지고, 해야 할 일들은 많기만 합니다. 그럴 때 나를 채우기 위해 나 홀로 아트 데이트를 떠납니다. 전시회도 살펴보고, 그동안 보고 싶었던 책도 찾아봅니다. 그렇게 나 홀로 아트 데이트를 반나절 정도 즐기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면, 그전과는 달라진 나를 느낍니다. 코스의 핵심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집중해서 하는 것’. 그런 시간을 찾아 떠난 곳이 바로 서울 책보고, 롯데 뮤지엄, 에비뉴엘 아트홀 코스입니다. 서울책보고 내부 서울책보고는 서울시가 헌책방을 모아 새롭게 만든 공공 헌책방입니다. 최근에는 김서룡 디자이너의 서울 365패션쇼가 열린 곳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동글동글 마치 달팽이집을 연상시키는 책꽂이에는 청계천을 거닐며 봤음직한 서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박혀 있습니다. 서울 책보고 안에는 보유한 중고책을 검색해서 찾아볼 수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헌책방의 묘미는 보물찾기 아니겠어요? 찬찬히 책 제목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즐거움이 일품입니다. 우연히 시선이 닿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책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종종 거리며 돌아다녀도 맘에 드는 책을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그런 시간들의 합이 서울책보고 경험을 쌓아갑니다. 책 관련 전시회나 독서 모임도 자주 열리고 있었는데요. 책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강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맞는 책은 어떤 책일까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책 처방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감명 깊게 읽은 책 5권을 가져가면, 북 큐레이터가 책 진단과 함께 책 처방을 해줍니다. 서울책보고 ‘잡지展’ 전시 헌책방에서 오랫동안 수집한 잡지만을 모아 전시회도 열렸습니다. 어릴 적 엄마 따라 미용실 가면 볼 수 있었던 예전 잡지들이 한데 모여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엿보다'라는 부제에 맞게 그...
서울지하철 9호선. 9호선과 인천국제공항철도 간 직결운행 사업을 추진 중이다.

9호선 타고 인천공항까지! 9호선-공항철도 직결운행

서울지하철 9호선. 9호선과 인천국제공항철도 간 직결운행 사업을 추진 중이다. 알아두면 도움되는 교통상식 (138) 9호선과 공항철도의 직결운행 서울지하철 9호선과 인천국제공항철도는 각각 2009년과 2007년에 첫 개통하였다. 사업시기가 비슷했던 만큼 두 노선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는데 서로 간에 연결운행이 고려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직결(直結)운행’이라고 한다. 직결운행은 서로 다른 노선 간을 열차가 연속해서 달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대전까지는 경부선으로 달리다가 대전에서 호남선으로 진입하여 목포까지 운행하는 것도 크게 보면 직결운행이다. 일반철도에서는 이런 사례가 무척 많아서 큰 감흥은 없다. 하지만 복잡한 도심지하철에서 소속 회사가 다른 노선들 사이를 열차가 달리는 것이 직결운행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직결운행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서울지하철 1·3·4호선이다. 각각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경부-경원선, 일산선, 과천-안산선과 직결운행을 하여 한 노선처럼 운행하고 있다. 만약 직결운행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안산과 과천에서 전철을 타고 온 승객들은 사당역에서 일단 모두 내린 후, 다시 서울지하철 열차로 갈아타고 도심에 진입해야 했을 것이다. 직결운행은 열차운영사 입장에서도 유리하다. 열차를 반대 방향으로 되돌리는 회차(回車)를 하려면 일단 모든 승객을 내리게 해야 하는데 여기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한 회차선에 들어갔다 나오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이 시간들은 승객이 실제 이동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는 일종의 낭비시간이다. 하지만 직결운행을 할 경우, 회차 자체가 생략되므로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다. 수송력을 그 만큼 높일 수 있으므로 혼잡도 줄어든다. 서울지하철 9호선과 공항철도도 이와 같은 직결운행을 고려해 시공했다. 직결운행 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노선 간의 연결선이다. 1·3·4호선은 그냥 양 노선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형태라 간단하였다. 하지만 9호선과 공항철도의 직결은, 공...
10년 전 궁산 자락에서 발견된 땅굴을 최근 ‘궁산 땅굴 전시관’으로 개방하였다.

서울에 땅굴이 있다? 봉인된 시공간에서 만난 역사

궁산 땅굴 전시관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38) 궁산 땅굴역사전시관 겸재 정선 미술관 뒤편 궁산 자락에는 궁산 땅굴역사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각종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를 썼던 경험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 시간을 내서 들려보기로 했다. 다소 뜬금없는 장소에 이상한 전시관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부에 들어가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나선형 계단으로 내려가면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파놓은 땅굴의 입구가 보인다. 안전 문제 때문에 철골을 덧댄 형태이긴 하지만 원형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땅굴은 높이와 폭이 2미터가 넘고, 길이는 거의 70미터에 달한다. 제주도나 지방에서는 일본군이 파놓은 땅굴이 종종 발견되고, 와인창고 등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경희궁이 있던 지역에 만들어놓은 대규모 지하군사시설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땅굴은 없었다. 물론 백인제 가옥에서 볼 수 있듯 태평양 전쟁이 길어지면서 미군의 공습을 우려해서 지하에 방공호를 파놓기는 했다. 하지만 궁산 자락의 땅굴은 단순한 방공호가 아니다. 일본은 1930년대 후반 지금의 김포공항 위치에 육군 항공대가 운영하는 비행장을 건설한다. 비슷한 시기 제주도의 알뜨르에는 해군이 주둔할 비행장이 만들어졌다. 중국에 대한 침략을 준비하던 일본은 조선을 발판으로 삼기 위해 각종 군사시설들을 세웠고, 김포의 비행장도 그 중 하나였다. 궁산 땅굴의 위치나 규모로 봐서는 무기와 유류를 보관하는 것은 물론 공습을 받게 되면 지휘부가 피신하는 용도로 사용할 예정으로 보인다. 궁산 땅굴 내부 특히 땅굴이 있는 궁산은 행주산성의 대각선에 위치한 곳으로 한강을 관측하기 유리한 곳이라 삼국시대부터 성을 쌓아두었던 지리적 요충지다. 따라서 관측소 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중일전쟁에 이어서 태평양전쟁을 벌이면서 조선을 급속도로 군사기지화 한다. 그러면서 미군이 상륙할...
전태일 기념관 전면은 전태일 열사가 직접 쓴 자필편지로 장식되어 있다

청계천 가볍게 거닐며 한 번쯤 가볼만한 4곳

전태일 기념관 전면은 전태일 열사가 직접 쓴 자필편지로 장식되어 있다 호호의 유쾌한 여행 (141) 청계천 주변 가볼만한 곳 걷고 싶은 길, 청계천. 2005년 청계천복원공사 이후 서울시민의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녹음이 짙어가는 5월, 종로 3가부터 동대문까지 거닐며 청계천 주변 가볼만한 곳을 살펴봤습니다. 종로 3가 삼일교에서 수표교로 향하는 길 전태일 기념관이 있습니다. 건물 전면에 전태일이 쓴 편지를 옮겨 놓았습니다.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자 근로 감독관에게 썼던 자필 편지입니다. 전태일 기념관 내부 전시관 모습 전태일은 노동 운동가입니다. 그는 봉제노동자로 일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힘썼어요.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자살을 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은 1층에서 3층까지 열려 있습니다. 1층 로비, 2층 공연장, 3층 전시관으로 구성되었으며 노동허브, 서울노동권익센터 등도 이 건물에 자리했습니다. 전시관에서는 전태일 열사의 유품과 전시품 480여 점을 전시하며, 노동 문화와 관련된 기획 전시도 열립니다. 1970년 당시 노동현장을 재현한 ‘다락방 속 하루’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전태일 기념관은 그의 생애와 당시 노동현장을 담고 있습니다. 햇볕이 들지 않는 높이 1.5m의 좁은 다락방에서 허리조차 펴지 못하고 하루 12시간 이상 일 했던 당시 노동자들의 공간을 재현했습니다. 전시를 둘러보며 노동과 인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당시 ‘시다’라고 불리던 보조원들은 10대 소녀들이 대부분이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폐질환 등에 시달렸습니다. 눈부신 경제발전 뒤에는 이러한 노동 현장이 뒷받침 되었죠. 청년노동자로서 스스로 불꽃이 된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봅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그 말은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메카였던 세운전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