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억울해요” 누명을 쓴 개 해피 이야기

방송작가 최경의 (45) 의문의 발가락 실종사건 119에는 별 희한한 신고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대부분 허위, 장난전화인 경우가 많다. 어느 여름날 걸려온 전화 역시 그랬다고 한다. “발가락이 없어졌다니 너무 황당하니까 소방관 생활 20년 만에 이런 일이 처음이라 믿을 수가 없었죠.” 긴가민가하며 출동한 집에는 복합장애로 누워서 생활하는 한 중년남자가 정말로 발가락 다섯 개가 뜯긴 채였다고 한다. 남자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런데 CCTV를 살펴봐도 외부침입의 흔적은 없었다. 누군가 남자의 발가락을 고의로 자른 것이라면 범행도구나 잘린 발가락을 버린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나오는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이상한 것은 발에 난 상처였다. 발가락이 잘려나간 모양이 뭔가에 거칠게 뜯겨 나간 듯 했고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손상된 것이 아니라는 검안의의 의견도 심상치 않았다.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일까? 남자의 집에 있는 애완견 세 마리가 용의선상에 올랐고 곧바로 증거확보가 시작됐다. 동물병원에 국과수팀이 출동했고, 개 세 마리에 대한 엑스레이 촬영 결과, 개 한 마리의 대장 쪽에서 뼛조각으로 보이는 물체가 발견됐다. 유력 용의견으로 압축된 개는 닥스훈트 종 ‘해피’였다. 유난히 배가 불룩했다는 해피는 개복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 안에서 수상한 물질이 강제로 꺼내져 정밀감식에 들어갔다. 외국의 연구에 따르면 닥스훈트종은 사냥견종으로 개량돼 무는 힘이 센 공격적인 개라고 한다. 만약 해피의 몸 안에서 꺼낸 물질에서 남자의 DNA가 검출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형사 처벌할 수는 없고, 주인 동의를 받아서 사살이나 안락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피의 운명을 쥐고 있는 개주인은 발가락을 잃은 피해자의 아들 H씨. 그런데 그는 해피가 범인일리 없다며 펄쩍 뛰었다. “우리 해피가 주인 발가락을 왜 물겠어요. 전 우리 강아지 입에 피 묻은 것도 본적 없어요. 안락사요? 법적으로 주인이 동의 안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여행스토리 호호] 사색과 공감이 흐르는 항동철길

구로 오류동과 부천 옥길동을 연결하는 추억의 기찻길, 항동철길 호호의 유쾌한 여행 (16) 구로 항동철길 & 푸른수목원 기차가 멈춘 폐선로를 공원으로 활용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서울 용산선이 다니던 곳이 경의선 숲길로 조성되었고 광주에서도 옛 경전선 철길이 푸른길공원으로 변신하였습니다. 공원이 아니면 레일바이크를 타는 관광지가 되곤 합니다. 도심 속에 새 휴식처와 녹지 공원이 생긴 건 반갑지만 기차가 다니던 철길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 같아 여운이 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로 항동철길은 기찻길을 걷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서울에서 흔하지 않은 곳입니다. ‘항동 철길’ 혹은 ‘항동 기찻길’이라고 알려진 이곳의 정식 명칭은 오류동선. 경인선 오류동역에서 분기하여 부천 소사구 옥길동까지 이어지는 4.5km의 철길입니다. 완전히 폐선된 상태가 아닌, 아직도 가끔 기차가 다니는 길입니다. 본래 용도였던 KG케미칼(옛 경기화학공업주식회사) 화물선은 멈추었지만 군수용품을 수송하는 용도로 아주 비정기적으로 기차가 운행됩니다. 천왕역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주택가 사이에 철길이 나타납니다. 온수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푸른수목원까지 가서 출발하는 방법이 있지만 서울의 끄트머리까지 꽤 긴 시간 지하철을 탔다면 천왕역에서 내려 바로 걷기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한적한 풍경 속 사색과 공감의 항동철길을 알리는 안내판 사색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항동철길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갑니다. 노란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고 코스모스와 들풀들이 가을운치를 더합니다. 주택가를 지나자 ‘사색과 공감의 항동철길’이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여기부터 산골이라 해도 믿을 만큼 고요하고 한적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걸으며 연인들과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 친구들과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중년들이 철로에 오릅니다. 그렇게 앞으로 뒤로 나란히 기찻길을 걸어가는 여행자들도 기차가 되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철길 양 옆으로 숲이 난 길이 미끄럽지 않게 ...

좌회전, 우회전 이젠 헷갈리지 마세요!

버스 삼색등이 설치된 신호등 알아두면 도움되는 교통상식(70) 헷갈리기 쉬운 교차로-1편 우회전법 시내에서 운전을 하다보면 만나는 것이 교차로이다. 교차로에는 대부분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으므로 신호를 따라가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씩 신호만으로는 혼동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여 갈등이 생길 때가 있다. 더구나 이럴 때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면 교통사고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차로에서 헷갈리기 쉬운 좌회전과 우회전을 올바르게 하는 방법을 2회에 걸쳐서 알아보도록 하자 첫 번째는 우회전이다. 일반적으로 직진 신호를 따르는 직진과 좌회전 신호를 따르는 좌회전과 달리, 교차로의 우회전은 신호등이 어떤 색깔이든지 상관없이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가장 큰 논란이 되는 것은 우회전을 하고 난 직후에 “정지선이 없는” 횡단보도가 있고, 그 횡단보도에 보행자용 녹색신호가 켜져 있을 때이다. 일반적으로 보행자용 녹색불이 켜진 횡단보도는 건너가면 안 된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혼란이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우회전을 하기 전의 도로가 좁은 경우이다. 편도 1차선 도로에서 우회전을 하는 상황 말이다. 이 경우 우회전을 하려는 차량은 직진이나 좌회전 차량에 가로막혀서 우회전을 못하고 있었는데, 앞차가 직진이나 좌회전으로 빠져나간 후 드디어 우회전을 하려고 했더니, 녹색신호 횡단보도가 우회전을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뒤에서는 직진이나 좌회전 차들이 빵빵거리고 있으니 식은땀이 절로 난다. 이 때문에 비록 우회전 직후 횡단보도의 신호가 녹색이라도 보행자가 없으면 우회전을 해도 된다는 의견과 횡단보도 녹색신호는 절대적이므로 우회전을 하면 안 된다는 의견으로 나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록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가 녹색이라도 보행자가 없다면 우회전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보행자가 있을 때 무리하게 운전하면 ‘보행자 통행방해 또는 보호 불이행’으로 범칙금과 벌점을 받는다는 점이다. 특히 인명사고 발생 시 형...

밥 딜런의 노벨상 수상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52) 쇼핑, 축구, 노래에서 배우는 글쓰기 세상만사는 닮아 있다. 원리가 같다. 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주변의 모든 것이 글쓰기로 재해석된다. 이런 사람은 무엇에서든 글쓰기를 배울 수 있다. 쇼핑과 글쓰기 글쓰기는 주제를 고르고 소재를 고르고 표현을 고르고 단어를 고르는 과정이다. 일종의 쇼핑이다. 그런데 왜 물건 사는 쇼핑과 달리 재미있지 않을까. 돈이 없으면 물건 사는 쇼핑도 재미없다. 글 쓰는 밑천이 없으면 글 쓰는 게 괴롭다. 쇼핑도 아내나 남편 눈치 보는 그것은 재밌지 않다. 독자를 과도하게 의식하면 글쓰기도 힘들다. 비싼 걸 턱턱 사는 사람과 비교하면 쇼핑하는 자신이 초라하다. 남의 글과 비교하면 글쓰기가 재밌지 않다. 쇼핑하러 돌아다니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들다. 글도 체력이 좋아야 즐겁게 쓸 수 있다. 쇼핑은 여성이 잘한다. 원시시대, 남성이 사냥할 때 여성은 채집했다. 채집을 위해 관찰했다. 채집 나가 동네 여성들과 수다 떨었다. 채집이 쇼핑이다. 여성은 글 잘 쓰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축구와 글쓰기 축구경기를 보면서 늘 확인한다. 글쓰기가 착상-구성-표현의 과정이라면 축구도 작전-드리블과 패스-슛의 과정이다. 축구에서도 슛이 중요하듯이 글쓰기도 결국은 표현, 즉 쓰는 것이다. 수많은 골인이 있지만 똑같은 패턴을 거쳐 들어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글도 결론은 같을지언정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단 하나도 같은 게 없다. 축구가 처음 시작 5분의 기선 제압이 필요하듯이, 글도 첫 시작을 먹고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축구는 선수들이 지쳐 있는 마지막 추가 시간에서 승부가 많이 갈린다. 글쓰기 승부처도 마지막 끝맺음이다. 축구에서 현란한 개인기는 글쓰기의 느끼는 수사와 같다. 잘하는 팀은 몇 번의 패스로 깔끔하게 공을 문전까지 보낸다. 잘 쓴 글도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다. 축구 못하는 팀이 우왕좌왕하듯, 못 쓴 글은 중언부언한다. 세계적인 선수는 슛이나...

80년 만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게 된 할머니

방송작가 최경의 (44)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 파출소에 다급한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누군가 자동차 전용도로를 위험하게 걷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보니 정말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갓길을 위험하게 걷고 있는 한 할머니가 있었다. 승복차림에 털모자까지 쓰고 있어 처음엔 노스님인줄 알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절에 불공드리러 가는 길에 청년들이 차를 태워준다고 해서 올라탔다가 건네는 음료수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 도로가에 버려져 있었고, 돈이 든 통장과 신분증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경찰은 할머니를 파출소로 데려와 신원조회부터 했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를 말하지 못했고, 지문조회를 해봤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자신에겐 주민등록증이 틀림없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자식들이 있긴 하지만 외국에 살고 있어 연락이 안 된다고도 말했다. 할머니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스스로 밝힌 권○○라는 이름과 78세라는 나이, 그리고 고향이 경북 안동이라는 것뿐, 결국 임시로 노인보호시설로 가게 됐지만 담당 구청에서도 시설에서도 신원을 알 수 없어 기초생활 수급대상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대체 할머니는 누구이고 왜 대한민국 행정기록에도 없는 걸까. 그런데 정작 권할머니는 자신에 대한 기록이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는 기색이 없어보였다. 혹시 몰라 치매검사도 해봤지만 인지, 판단능력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내가 매일 절에서 기도하면서 돌계단을 닦아서 지문이 다 닳아서 안 나오는 거예요. 주민등록번호는 그게 잘 안 외워지대요. 그런 건 신경도 안 쓰고 살아서 그런가...” 뭔가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 할머니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선 발견당시 입고 있던 승복에서부터 단서를 찾아야 했다. “내 법명은 보현스님이에요. 스님되기 전엔 행진보살이었지요.“ 제작진은 할머니가 가려고 했었다는 사찰로 가서 할머니사진을 보여줬다. 스님은 가끔 오는 분이라며 단번에 알아봤다....

[여행스토리 호호] 조금 색다른 동대문 여행

동대문 옥상낙원에서 바라본 동대문 풍경 호호의 유쾌한 여행 (15) 동대문 계절이 달라지면 제일 먼저 신발장을 열어봅니다. 작년에는 맨발로 다녔나 싶을 정도로 신고 나갈 신발이 없습니다.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라 더 이상 쇼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더 이상 쇼핑을 미루다 가는 큰일 나겠습니다. 아웃렛, 백화점, 인터넷 쇼핑몰 대신 오늘은 동대문으로 향해보려고 합니다. 한때는 옷을 사러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동대문으로 가야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시절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쉽게 쇼핑하기 위해서 밀리오레나 두타 같은 소매 전문 쇼핑몰로 가는 것이 편하지만, 오늘은 좀 더 색다른 동대문 쇼핑 여행을 위해 창신동으로 먼저 향합니다. 청계천이 흐르는 창신동은 근현대 역사가 곳곳에 숨어있는 곳입니다. 청계천 주변에 있던 의류공장과 신발공장은 70년대 상공업 시대를 이끌며 대한민국의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70년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던 까닭에 선거 유세 등의 이벤트도 심심치 않게 이루어졌었습니다. 최근의 동대문은 혁신적인 디자인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DDP, 갤러리, 야시장 등으로 바뀌어 다양한 즐거움을 주는 공간으로 점점 더 진화하고 있습니다. 오늘 만날 창신동에서는 1960년대부터 있었던 장난감 거리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도 사고, 도매 상가에서는 마음에 쏙 드는 신발도 찾아보려 합니다. 쇼핑하다 지치면 동대문 옥상에 올라가 남다른 서울의 전망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휴식도 취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장난감으로 가득한 동대문 문구 완구 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한가득...동대문 문구 완구 거리 옛날 추억의 장난감부터 최근 유행하는 터닝메카드 신제품까지 장난감, 문구에 관해서는 없는 것이 없는 거리입니다. 동대문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골목 전체가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생일 파티부터 10월 31일의 핼러윈데이를 준비할 수 있는 파티 용품 전문 숍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생일이나 크리스...

공정무역제품으로 만들어본 가을날의 브런치

`공정무역 시민대학`이 진행한 요리 워크숍에서 공정무역 브런치를 만들고 있는 참가자들 함께 서울 착한 경제 (58) 2016 공정무역 시민대학에서 배우는 '건강한 브런치' 근사한 카페에서의 브런치,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 하지만 가격을 보면 사악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집에서도 실속 있게 브런치를 즐길 수 있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데다, 재료 또한 건강에도 좋고 세상에도 이로운 공정무역 제품으로 선택할 수 있다. 지난 12일, '2016 공정무역 시민대학’을 찾아가 공정무역의 의의와 가능날의 브런치 요리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달콤한 망고 속에 숨겨진 씁쓸한 비밀? 망고나무가 지천으로 널려있어도 수확할 생각조차 못하는 저개발 국가의 가난한 농민들. 혹시 게을러서가 아닐까 싶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품삯에도 못 미치는 헐값으로 팔아야 하기에 수확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문맹인데다 오지에서 소규모로 재배하고, 운반할 트럭조차 갖고 있지 않아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소수 부족 원주민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실제 공정무역을 시작하기 전, 필리핀 소수민족 아에타 원주민들은 산 아랫마을 시장까지 가져가 팔아도 망고 1킬로당 4~5페소(한화로 약 100~120원)밖에 받을 수 없었다. 지역 중간 상인들은 이를 시장에 40페소에 되파는데, 이들은 담합과 속임수로 10배에 가까운 이익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며칠 전 서울에서 산 망고 가격이 킬로당 만원선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산 망고 가격 중 단 1%만이 생산자들에게 돌아간단 얘기 아닌가? 커피나 초콜릿과 같은 제품의 판매금액 중 생산농가의 몫은 채 5%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과장은 아니었나 보다. 공정무역 페스티벌 현장에서 망고 공정무역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시민들 커피나 차, 초콜릿, 설탕, 면화와 같은 저개발국가에서 생산되고 선진국에서 주로 소비되는 상품의 경우, 대부분 소수의 다국적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하며 폭...

글은 장소 투정을 한다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51) 장소에 따라 써지기도 안 써지기도 하는 글 글은 장소를 가린다. 집에서 안 써지던 글이 카페에선 술술 써진다. 회사 사무실에서 온종일 엉켜 있던 글이 퇴근길 지하철에서 실마리가 풀린다. 글을 지속적으로 쓰기 위해서 시간과 함께 장소 선정이 중요하다. 장소가 글을 부른다. 글이 좋아하는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 공간에 자신을 자주 노출해야 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했던 구양수. 그는 세 군데에서 좋은 생각이 나고 글이 잘 써진다고 했다. 말 위, 침상 위, 화장실 변기 위이다.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은 이런 비밀장소가 있다. 또한 그런 장소가 있는 사람이 글을 잘 쓸 수 있다. 장소 선정 중요 세계적인 소설가들의 인터뷰를 모아 펴낸 을 보면 작가마다 글을 쓰는 특정한 장소가 있다. 누구는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앞에 놓고 메모지에 쓰면 글이 술술 써진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다락방에 가면 자기 몸이 글 쓰는 모드로 전환한다고 한다. 누구는 새벽 침대 위에서 잘 써지고, 또 누군가는 골방에 들어가면 몸이 글 쓰는 모드로 바뀐다고 한다. 어디든 좋다. 그곳에 가면 왠지 글이 잘 써질 것 같은 자기만의 장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글 쓰는 장소를 만들어놓으면, 그 장소에서는 뇌가 으레 글을 써야 하는 걸로 알고 순응한다. 나는 지하철에 가면 생각이 잘 난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있는 나는 버스를 타면 불안하다. 도로가 정체되면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지하철은 막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역마다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편안하다. 그래서인지 지하철을 타면 마음이 편안하고 상념에 잠긴다. 뇌에 그런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멍 때리는 모드에 들어가면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온전히 생각에 빠져든다. 완벽한 집중과 몰입이 이뤄진다. 내릴 곳을 지나치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때 글 소재를 하나씩 얻기도 한다. 글 쓸 일이 ...

그 남자의 이상한 실종

방송작가 최경의 (43) 한 도시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30대 후반의 A씨가 지난해 가을 갑자기 사라졌다. 가게 운영이 힘든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빚에 시달린 것도 아니었으며, 없어지던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아내와 점심시간에 교대를 하고 집으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나와야 할 시간에 남편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어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서 집으로 간 아내가 본 것은 뭔가 이상한 남편의 흔적이었다. 집은 비어있었고, 식탁 위에 A씨의 휴대전화와 자동차 열쇠 그리고 금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휴대전화와 함께 넣어 다니던 신분증과 카드도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목걸이는 결혼할 때 예물로 해준 거예요. 씻을 때조차 풀어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휴대전화에 통화목록이랑 문자메시지, 카톡 메시지도 다 지워져 있었어요. 가져간 거라고는 냉장고에서 맥주 캔 하나랑 랜턴이 다예요.” 전화 속 지난 기록을 모드 지워버리고 사라진 남편. 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어디로 간 것일까? 부부는 6년 연애 끝에 2년 전 결혼한 신혼이었다. 아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편이 사라진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평소 조용한 성격에 말이 없는 편이었지만 남편과 딱히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연애 시절에도 늘 아내의 의견을 잘 맞춰주던 남편이었다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도 전혀 연락이 닿지 않자 아내는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경찰은 CCTV 등을 통해 A씨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가 오후 3시경, 모자를 눌러쓰고 비닐봉투를 들고 아파트를 나서는 모습이 확인됐고 8Km 정도 떨어진 도로로 걸어가는 모습을 본 목격자도 찾아냈다. 그런데 그 길은 A씨의 아버지 산소로 가는 길이었다. 혹시나 싶어 A씨 부친의 산소로 간 경찰은 그곳에서 집에서 들고 나간 것을 추정되는 맥주캔과 담배꽁초들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더 이상의 행적은 나오지 않았다. “전부 수색을 했죠. 산이랑 저수지를 몇 번 씩 수색했지만...

[여행스토리 호호] 가을 감성 충만! 남도 미술관 여행

의재미술관 호호의 유쾌한 여행 (14) 남도 미술관 가을이 한창입니다. 아침저녁 쌀쌀한 느낌까지 가을 한 가운데로 푹 들어와 있어요. 자연이 그리는 색채의 마술이 더욱 화려해지는 때입니다. 오늘은 가을에 가면 더 좋은 남도미술관으로 떠나봅니다. 멋진 자연과 조각 작품들도 있는 정원이 함께 펼쳐져 있어 가을의 정취 속으로 한껏 빠져들기 좋은 곳입니다. 다음에는 가을에 떠나기 좋은 서울의 미술관도 소개해드릴게요. 광주 의재미술관 - “그림은 그냥 그리는 것” 등산로와 하나 되는 미술관 무등산 증심사 아래 위치한 의재미술관은 산속에 위치한 미술관입니다.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빼곡히 오가는 등산로 한켠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굳이 의식하지 않으면 눈에 띠지 않을 것 같은 건물이지만 조금 눈여겨보면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건물이 눈길을 끕니다. 의재미술관의 주인은 의재 허백련 화백(1891~1977)입니다. 의재는 광주는 물론 남도를 상징하는 화가입니다. 진도에서 태어나 운림산방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공재 윤두서, 강진의 다산 정약용, 진도의 소치 허련 등의 영향을 받아 남종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의재를 수식할 때면 항상 ‘남종화의 거장’, ‘전통회화 최후의 거장’ 같은 수식어가 붙습니다. 의재는 무등산 자락에서 삶의 3분의 1 이상을 보냈습니다. 한국 전쟁 후 ‘사람들이 잘 살아야만 예술도 있다’는 생각으로 선진 농업기술을 가르치는 농업기술학교를 증심사 옆에 세웠습니다. 농업학교 건너 계곡 너머 작은 집 춘설헌에 거주하면서 작업실로 삼았습니다. 농업에 이어 차문화 운동 등 사회 운동에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림은 그냥 그렸을 뿐입니다. 미술관을 열라는 주위의 성화에도 연연해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그림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사람들과 남도를 사랑하며 그의 그림을 완성해갔습니다. 가장 한국적이며 호남적인 그의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의재미술관은 의재가 세운 농업기술학교 자리에 그의 사후 20년이 지나고 세워졌습니다. 의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