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강요받는 이 땅의 청춘들

최경

Visit401 Date2016.06.16 15:49

야경ⓒ시민작가 신문식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8) 청춘에게 아픔은 당연한가?

아까운 청춘들이 자꾸만 저물고 있다. 꽃 같은 청춘들이 피어보기도 전에 꺾이고 있다. 물론 전에도 그랬었다. 집에서, 차에서, 건물에서 혹은 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놓아버린 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명이다. 그중 몇몇은 뉴스에서 단신으로 등장했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런데 요즘 뭔가 심상치 않다. 출구를 찾아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애를 쓰다 끝내 절망 끝에 서버린 젊은이들의 몸부림이 단신 뉴스 이면에서 꽤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20대 청년들이 취직을 못해서, 실연의 아픔을 견딜 수 없어 목숨을 끊는 경우는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전과는 다르다. 개인의 의지, 처한 환경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뭔가 단단하고 두껍고도 잔인한 장벽이 그들 앞에 놓여있는 것 같다.

바로 얼마 전, 서울의 한 주택가에서 때 아닌 물난리가 났다. 집주인은 처음엔 수도관이 터진 줄 알고 급한 대로 물을 퍼냈지만 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물이 새어나오는 곳은 반지하 월세방. 그러나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그곳엔 20대 후반의 쌍둥이 형제가 두 달 전 이사와 살고 있었다. 집주인이 문을 따고 들어갔을 때 집안은 물이 발목까지 차있었고, 그 속에서 쌍둥이 형제가 숨져 있었다. 형제는 늘 붙어 다닐 정도로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경찰조사 결과, 외부침입의 흔적은 없었고, 형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됐다. 스물아홉 살 청년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살아갈 숱한 날들에 대한 미련을 접어버린 것일까.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형제는 내성적이었고, 주변에 왕래하는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고 했다. 어릴 때 아버지를 먼저 여의었고, 어머니와 두 아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었는데 어머니마저 병으로 2년 전 세상을 떠난 뒤 세상엔 형제만 남겨졌다. 지인은 형제의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병든 어머니를 쌍둥이 형제가 부양해왔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옥탑방에서 살던 형제가 마지막으로 반지하 월세방으로 이사를 왔다는 것으로 가난이 점점 형제를 잠식했을 것이라 추정할 뿐이다.

사실 형제는 사망 전까지 전기기술자로 일을 하면서 많지는 않아도 생계를 꾸려 가는 게 힘들 만큼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날이 창창한 청년들이 삶을 놓아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당장의 배고픔 보다는 미래에 대한 암담함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기를 쓰고 열심히 일해도 지금보다 나은 날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사는 평범한 꿈조차 사치가 돼버린 현실이 자신들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빠져버린 블랙홀 같았을지도 모른다.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는 그렇게 세상에 둘만 남겨져 서로를 의지하며 꿈도 잊은 채 살다가 서로에 기대어 한날 한시에 죽어갔다.

그리고 며칠 뒤, 또 한명의 청년이 한 임대 아파트 베란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건 온통 출구를 찾고자 한 흔적들이었다. 얼마 전, 병을 앓던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임대아파트에서 퇴거하라는 통지를 받은 스물여섯살 청년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는 그곳을 떠날 처지가 못됐기에 여기저기 탄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좌절됐다. 그에게도 미래는 암담함뿐이었을 것이다. 이 스물여섯 살 청년 역시 가난을 대물림 받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절벽 끝으로 내몰렸다. 끝까지 희망을 찾고 싶어 애를 썼지만 돌아온 건 절망의 답뿐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는 일일까.

아프니까 청춘인가? 청춘이면 다 아파야 하나? 아프지 않아도 되는 것들까지 개개인이 떠안아야 하는 것이 청춘인가? 더 이상 이렇게 내몰아선 안 된다. 지금 청년들은 벼랑 끝에 서있다. 희망의 출구가 절실하다.

적어도 청년들이 10년 뒤 자신의 20대를 회고할 때, ‘그 때 나는 청춘이었고,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에, 닿을 듯 닿지 않는 열망에 뜨겁게 아팠었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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