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처럼 길고 오래된 성곽마을 이야기

시민기자 김영옥

Visit1,737 Date2016.06.09 16:30

서울의 울타리 한양도성

서울의 울타리 한양도성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서울에 있는 여러 지역에 대한 궁금증은 늘 설렘으로 다가오곤 한다. ‘어떤 곳일까?, 어떤 역사성을 품고 있을까? 어떤 감동이 그 지역에 숨어 있을까?’하고 말이다.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호. 이하 한양도성)의 일부 구간인 인왕산 구간 길과 오래 전부터 한양도성이 마을의 담장이었던 종로구 행촌성곽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소풍가는 날 아침 아이의 심정처럼 기대 가득했다.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을 가기 위해 지하철 5호선 3번 출구로 나와 ‘돈의문 터’로 나섰다.

도성 따라 걸으며 만난 공간들이 주는 약간의 아쉬움

한양도성은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면(남산), 인왕의 내사산 능선을 따라 쌓은 성이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이 있다. 4대문은 북쪽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이며 4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이다. 이 중 소의문과 도성의 서대문이었던 돈의문은 현존하지 않는다. 1915년 일본은 서대문을 지나는 전차를 개통하면서 도로 확장을 위해 이 문을 해체해 건축 자재로 매각했다 한다. 현재 돈의문 터에는 공공미술품 ‘보이지 않는 문’ 이 설치돼 있다. 나무 계단과 나무 벽으로 된 공공미술품 ‘보이지 않는 문’만이 이곳이 한양도성의 4대문 중 돈의문이 있던 자리임을 알리고 있다.

4대문과 4소문의 위치

4대문과 4소문의 위치

돈의문 터에서 왼쪽 방향으로 올라가면 강북삼성병원의 일부 시설로 쓰이다가 2013년 3월 복원을 거쳐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된 경교장(사적 제 465호)이 보인다. 1945년 임시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열렸던 곳으로,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숨진 장소이기도 하다. 방문객들은 1층 영상실에서 경교장과 김구선생 관련 영상을 본 후 지하 전시실과 1층 응접실, 귀빈식당, 선전부 활동공간과 2층 김구선생의 집무실(서거 현장), 선생의 침실 등을 돌아 볼 수 있다. 복원된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나온 역사를 유물과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사실상의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됐던 곳이 병원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아쉬운 마음이 컸다.

돈의문 터에서부터 경교장을 지나 서울시교육청까지 가는 길목엔 한양도성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는 멸실 구간이었다. 더 속상한 것은 왼편으로 펼쳐진 풍경이었다. 돈의문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서대문 일대는 돈의문뉴타운 지구 재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높은 공사용 가림막이 쳐져 있고 대형 트럭이 빈번하게 지나다니는 것은 물론 대형 기중기와 포크레인 등 건설 장비가 교남동의 불편한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있었다. 평동, 송월동, 홍파동, 교남동, 행촌동 일대에 빽빽이 들어섰던 한옥과 빌라 등은 대부분 철거됐고, 2~3년 뒤면 이곳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될 것이었다.

도성 옆 보석 같은 공간들이 주는 감동

흰 건물이 인상적인 송월동 서울기상청 별관 건물이 있는 언덕에 올라서야 비로소 한양도성의 모습을 조금 볼 수 있었다. 월암근린공원을 만들면서 서울기상청 별관 건물 담장 축대 아래 묻혀 있던 성벽의 일부가 드러났고, 최근 성벽을 새로 쌓아 한양도성의 멋진 성곽라인을 복원한 곳 중 하나다.

행촌동지역재생활동가 김정민씨

행촌동지역재생활동가 김정민씨

“월암근린공원과 이곳 한양도성 성곽이 지금은 깔끔하게 복원됐지만 사실 성곽 주변과 공원이 만들어진 이 자리는 산자락 전체가 쪽방 수백채가 있던 곳입니다. 성곽을 복원 하느라 다 밀어버린거죠.” 행촌동에 50년 넘게 살고 있는 행촌동 지역재생 활동가 김정민씨의 설명엔 아쉬움이 묻어났다.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한양도성은 과거 성곽 자체 보전에만 집중해 성곽 가까운 지역 마을을 철거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성곽 주변 마을과 함께 한 주민들의 생활과 이야기들까지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개념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한양도성 인근 9개 권역 22개 성곽마을들은 그 지역에 맞는 특성을 살린 문화를 개발하고 있다.

홍파동에 위치한 홍난파가옥

홍파동에 위치한 홍난파가옥

월암 근린공원을 가로 질러 조금 내려가자 아담한 붉은 벽돌집이 나타났다. 이 집은 유명한 작곡가 홍난파의 가옥(등록문화재 제 90호)으로 봉선화, 고향의 봄 등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들이 모두 이곳에서 작곡됐다고 한다. 마당엔 홍난파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녹색 담쟁이넝쿨이 붉은 벽돌집의 반을 덮고 있는가 하면 색깔 고운 꽃들도 피어 있었다. 2007년 개보수 공사를 끝내고 소공연장으로 재탄생했다. 1930년대 서양식 주택의 특성이 잘 보전돼 있기 때문에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해 2004년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 보호를 받고 있다.

홍난파가옥을 나와 주택가를 조금 올라가면 큰 은행나무가 있다.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장군의 집에 있던 은행나무로 수령 450년이 넘었다 한다. 행촌동이란 지명도 이 나무에서 유래됐다. 그 은행나무 옆엔 아치형 창문이 있는 범상치 않은 빨간 벽돌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3·1운동 독립선언서,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외신으로 처음 보도한 UPI통신사의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행촌동 가옥 딜쿠샤다. ‘희망의 궁전’이란 뜻의 딜쿠샤는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 건축했고 당시 방이 10개도 넘는 저택이었다. 1942년 일본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될 때까지 약 20년간 아내 메리와 함께 살았던 곳이다.

빨간 벽돌집으로 유명한 행촌동 딜쿠샤

빨간 벽돌집으로 유명한 행촌동 딜쿠샤

오랫동안 귀신 나오는 집으로 불렸던 이 빨간 벽돌집이 딜쿠샤라는 이름을 되찾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6년 테일러 부부의 아들 브루스가 한국을 방문해 딜쿠샤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관련 자료들을 서울시에 기증하면서부터다. 행촌동 가옥 딜쿠샤는 70년 만에 원형이 복원돼,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에 전면 개방한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진다.

한양도성 안길과 바깥길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무한 감동

행촌동 딜쿠샤와 권율도원수집터 옆 개인 주택의 파란 대문이 있는 집의 작은 정원을 가로 지르자 마술처럼 한양도성이 눈앞에 나타났다. 행촌동 주민들은 자신의 사유지도 마을에 찾아온 이들에게 기꺼이 개방하고 있었다. 은행동, 은행나무골, 개미마을로 불렸던 이곳은 성벽 코앞이 바로 주택가다. 주민들은 한양도성을 자신들의 집 울타리 삼아 살아가고 있었고, 성벽 밑으로 주민들이 가꾸는 한 뼘 텃밭들이 성벽을 따라 올망졸망 만들어져 있었다.

행촌성곽마을 한뼘텃밭

행촌성곽마을 한뼘텃밭

본격적으로 한양도성을 볼 수 있는 인왕산로 1가길 부터는 성곽 바깥쪽을 따라 행촌권역 성곽마을 주민추진위원회에서 심어 놓은 청보리밭 200여 미터 구간과 흰 마가렛 화단이 길게 펼쳐져 있다. 한양도성이 더 잘 보이게 성곽 안길을 따라 인왕산 쪽으로 올라갈수록 서울을 감싸고 있는 한양도성의 위용은 인상적이었다. 성곽 안쪽은 사직근린공원 힐링 숲으로 잘 조성돼 있어 걷기 편했다.

약 20여분 정도 올라 전망대에서 시가지를 바라봤다. 멀리 경복궁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했다. 조금 더 인왕산 쪽으로 올라가 육묘장 있는 곳에서 이번에는 성곽 바깥 길을 따라 밑으로 내려 왔다. 성곽 안길을 걸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안길이 성곽의 위쪽으로 걸어 본거라면 바깥길은 성곽의 높이를 실감하며 성곽 바로 밑을 지나갈 수 있었다. 더 가까이 성곽을 볼 수 있었는데 성벽에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손보아 고친 역사가 고스란히 있어 성곽의 성돌의 크기가 다 달랐다. 태조, 세종, 숙종, 순조 그리고 그 이후에 쌓은 성들이 공존하는 성곽 구간을 보며 600여 년 동안 도성으로서 의무를 다한 한양도성의 모습이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한양도성에 기댄 행촌성곽마을은 지금 소박한 변화 중

행촌성곽마을 한뼘텃밭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600년된 성벽

성곽의 암문(성벽에 만들어진 작은 비밀 문)이 있는 곳에서 행촌동의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성곽을 담장 삼아 살고 있는 ‘행촌성곽마을’의 속살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신축빌라와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공존하고 있었고 골목들은 가팔랐다. 주택가 골목은 담이 낮고 좁아 오히려 정겨웠다. 주민들은 한 평 땅만 있어도 채소를 정성껏 키웠고 골목길엔 평상도 놓여 있었다. 집이 헐린 비탈진 공터와 대문만 남아있는 집터는 마을의 공동 텃밭이 되어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싱싱한 채소 반찬을 제공하는 곳이 됐다.

주택 앞에 아기자기한 화분을 내놓고 예쁘게 꾸며진 행촌동 골목

주택 앞에 아기자기한 화분을 내놓고 예쁘게 꾸며진 행촌동 골목

대문을 열면 한양도성이 보이는 이 마을에서는 자신들이 집에서 키우던 화초를 화분 째로 대문 앞에, 마을 골목길에 내놓고 있었다. “화분을 대문 밖에 내놓는다는 것은 가져가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일행 중 누군가의 말이 맞는 듯 했다. 마을의 담엔 앙증맞은 벽화도 그려져 있고 골목길 양옆으론 종로구가 제공한 상자 텃밭 안에 화초도 자라고 쌈채소도 자라나 골목길을 싱그럽게 했다. ‘걷고 싶은 도시’라는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마을 골목의 유휴공간을 한 평 공원으로 만들었고, 마을의 아이들은 미술 수업에서 만든 물고기 모양의 조형물을 마을경로당에 걸기도 했다.

물론 주인이 살지 않는 폐가도, 정돈되지 않은 비탈진 곳의 공터와 낡은 주택들도 여전이 남아 있었다. 행촌동의 주도로인 행촌길엔 세월이 앉은 회색 건물들도 많았다. 낙후한 도시를 새롭게 단장하려면 건물을 모조리 철거해 마을의 역사를 지워버리는 재개발 방식이 대세였지만 최근엔 마을을 고치고 가꿔서 마을을 재생시키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곽 자체 보전에만 집중해 성곽 가까운 지역 마을을 모두 철거했던 것과 달리 주민들이 원래의 삶터에 재정착할 수 있도록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마을 공동체를 조성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면 철거와 재개발 대신 도시 재생을 선택한 행촌동은 느리지만 지역에 맞게 조금씩 바뀌어 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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