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유해물질, 이제 소비자가 직접 챙겨요~

시민기자 이현정

발행일 2016.06.07. 14:50

수정일 2016.10.11. 15:02

조회 1,317

함께 서울 착한 경제 (49) 소비자와 함께 안전한 식탁을 만드는 사람들

‘케미포비아’, ‘노케미족’, 최근 들어 이와 같은 신조어들이 자주 눈에 띈다. 각각 화학물질 공포, 화학제품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란 뜻인데, 생활 속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불신의 시대에도 꿋꿋하게 신뢰를 쌓아온 곳이 있다. 생활 속 유해물질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이들이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꾸린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바로 그곳이다. 소비자들이 직접 안전한 대안상품을 찾아 직거래하며 신뢰를 쌓아온 것. 대표적인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을 찾아, 물품 선정에서부터 생산 점검까지 소비자 조합원들의 참여로 신뢰를 키워온 과정을 자세히 알아보았다.

직접 물품을 선정하고 책임 있게 소비하는 소비자들

지난 5월 한살림연합에서는 새로운 물품에 대한 심의를 하는 가공품 위원회가 열렸다

지난 5월 한살림연합에서는 새로운 물품에 대한 심의를 하는 가공품 위원회가 열렸다

“(밀랍왁스에 소량 함유된) 테라핀유가 호흡기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 주셨는데요. 합성이 아닌, 천연오일만 사용합니다. 소나무 등에서 추출한 것으로,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용해 오던 오일입니다. 문제가 없다는 임상실험 결과도 있었고요.”

“시중의 구두약이나 가죽보호제, 코팅제, 광택제 등은 화학물질이라 찜찜했거든요. 파라핀과 같은 유해물질도 들어있다 하고, 천연 제품조차 바셀린을 넣었더라고요. 그런데 밀랍으로 만들었다면 안심할 수 있겠는데, 환기를 잘 시키도록 주의 문구를 넣는 것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저희 지역은 나무 소품이나 가구를 직접 만들어 쓰는 조합원이 많은데요. 왁스 대용으로 쓰기에 좋은 것 같아요. 그동안 비싼 수입품을 썼거든요. 대신 대용량으로 하면 좋겠다는 의견입니다.”

지난 5월 12일, 한살림연합 가공품 위원회에서는 새로 취급하거나 변경·개선되는 물품에 대한 심의가 있었다. 밀랍 왁스를 비롯해, 연잎밥, 우유또띠아, 채소 만두 및 사양이 일부 변경되는 라면 스프와 떡에 대한 심의가 이어졌는데, 한살림에서는 이렇듯 조합원이 직접 취급할 물품을 선정한다.

직접 맛을 보고, 물건을 만지며 생활에 유해한 물품들을 심의한다

직접 맛을 보고, 물건을 만지며 생활에 유해한 물품들을 심의한다

한살림에서는 매해 사업 평가를 통해 부족하거나 필요한 물품에 대한 개발 계획을 세우는데, 매장이나 조합원 모임, 홈페이지 의견란을 통해 올라온 의견을 일상적으로 취합해 반영한다. 물론, 조합원 의견과 트렌드를 가장 민감하게 점검하는 생산자들의 의견도 충분히 고려된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개발된 물품들은 농산물의 경우 농산물 위원회에서, 가공품은 가공품 위원회에서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한다. 한살림 서울은 전국 22곳 중 20개 지역 한살림이 함께하는 한살림연합 심의를 통해 공동으로 결정하는데, 서울 내 8개 지부의 각 분과에서 심의한 내용을 위원회에서 하나로 모아 지역 의견으로 개진하고 있다.

이날 심의는 큰 이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대부분은 격론이 오간다. 의견은 ‘찬성, 반대, 재심의’ 3가지로 모아지는데, ‘재심의’로 결정되면 요구한 사항대로 보완한 후, 다시 심의가 진행된다. 4~5차례 재심의를 거쳐 취급한 경우도 있지만, 재심의 끝에 취급하지 못하게 된 경우도 있다.

“새로운 원료를 사용하거나, 안전성 논란이 있을 때는 의견이 팽팽해집니다. 예를 들면 립스틱 같은 경우, 코치닐 색소가 논란이 됐었는데요. 안전성 논란이 있긴 하지만, 친환경 화장품은 물론, 일반 식품에도 사용하는 식용색소거든요.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물품인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석유계 타르색소보다는 낫지 않냐는 의견과 엇갈리다 결국 취급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가공품 위원회 위원장 이영임 이사의 설명처럼, 각종 첨가물, 화학성분 등은 더욱 깐깐하게 따지게 된다고 한다. 한살림에서는 이와 같은 안전성 우려 때문에 색조화장품은 여전히 취급하고 있지 않다. 기초화장품과 수분크림, 비비크림 등은 품질과 가격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는 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색조화장품이 없어 무척 아쉬워하는 조합원이 많다. 이렇듯 한살림 심의에서는 안전한 원·부재료를 사용하는지, 가격은 적정한지 등도 꼼꼼하게 따진다. 또, 과포장은 아닌지, 재활용 포장제인지 등 환경적인 문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기업보다는 한살림의 가치에 동의하고 함께하려는 중소기업, 생산 공동체 등을 우선 대상으로 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약속을 지속적으로 ‘자주 점검’

생산지를 직접 방문하여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한살림서울

생산지를 직접 방문하여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한살림서울

심의를 통과해 정식 물품으로 공급하게 된 이후에도, 조합원들은 자주 점검이나 생산지 방문 등을 통해 생산지나 물품에 대한 신뢰를 높여간다. 올해로 30년이 되는 한살림은 국내 친환경 농산물 인증 · 관리 기준이 마련되기 훨씬 전부터 자체 기준을 가지고 먹거리를 공급해왔다. 또한 이중 삼중으로 점검하는 꼼꼼한 관리체계를 통해 신뢰를 이어오고 있다.

자주점검활동 사전학습회를 통해 점검 계획을 세운다

자주점검활동 사전학습회를 통해 점검 계획을 세운다

“경영관리, 사양관리 점검은 저희 셋이 할게요. 사업자등록증, 영업신고증, 품목제조 보고서, 생산 일지 및 작업기록, 물품사양서, 품질검사 시험성적서, 원재료 거래원장 등 서류 점검을 하고, 그 내용이 실제와 같은지 파악하면 되는 거죠?

“포장재관리 점검은 제가 할게요.”

“그럼 저희는 품질관리를 살펴볼게요. 일단, 보관된 완제품 시료, 위생관리 및 상태, 냉장 냉동고 온도, 원부재료 등을 확인하면 되겠네요.”

지난 6월 3일, 한살림 서울 매장 모임방에서는 자주 점검활동 사전학습회가 있었다. ‘자주점검활동’은 그동안 물품만 이용하던 일반조합원들이 직접 생산지를 방문해 제대로 관리 · 점검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활동이다. 평소 관련 활동을 하거나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보니 생산지 방문에 앞서 사전 학습회를 한다. 생산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자주관리점검표를 토대로 산지에서 점검해야 할 내용과 방식 등을 미리 공유한다.

“참 좋은 활동인 거 같아요.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상품들을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습기 사건 같은 것도 안 일어날 테고.”

“실제 어떻게 물품이 생산되고 운영되는지 하는 것은 조합원들이 다 모르잖아요. 그런데,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정말 괜찮은 거 같아요. 한가지 부담되는 건, 저희가 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 지도 모르고, 전문가도 아닌데 참가해서 괜히 잘못했다가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요. 이렇게 사전 학습회를 해보니, 어떻게 봐야 하는지 좀 알게 된 것 같아요.”

신곡 마을지기 우은숙 씨는 마을 모임에서 함께 해온 조합원들과 참가했다고 한다. 조합원 자주점검활동은 소식지나 홈페이지, 매장, 각종 모임들을 통해 안내되는데, 조합원이라면 누구가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한살림에서도 친환경농산물, 햅썹 등 공인기관 인증도 받고, 방사성 물질 정밀 검사도 하며, 그 결과도 공유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생산자 스스로 한살림의 가치를 중요시하며 지키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영임 이사의 설명을 듣자니, 대장균 떡, 썩은 밀가루 등 햅썹 인증을 받은 업체들조차 믿을 수 없다는 지난 뉴스가 떠오른다. 사회 곳곳에서 인증 제도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면, 생산자 스스로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듯싶다.

물품선정부터 점검까지 소비자조합과 함께하는 한살림 매장

물품선정부터 점검까지 소비자조합과 함께하는 한살림 매장

한살림에서는 이처럼 생산자가 생산자 공동체와 함께 스스로 관리하고 점검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한살림과 생산자가 약속한 생산 방식이나 재배 기준에 근거하여 생산자 스스로 점검한 내용을 ‘자주관리점검표’를 작성해 제출하고, 생산자 공동체가 함께 서로 살핀다. 또한, 지역에 상주하는 물품 구매 담당자가 수시로 산지를 방문하면서 생육상태와 재배, 생산 과정을 살피고 있으며, 소비자 조합원들이 활동하는 농산물·가공품 위원회가 수시로 산지를 방문해 생산과정을 점검한다. 물류센터 입고시 재점검 과정도 거친다. 또한 소비자 조합원들의 자주점검활동을 돕는다.

한살림은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친환경 물품을 직거래해왔다. 이는 한살림의 물품 선정에서 점검까지 모든 과정이 단순히 소비자가 깐깐하게 참여한다는데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것을 의미한다. 한살림 조합원들은 실제 자주점검활동이나 위원회 활동을 통해 물품에 대한 애착이 더 커진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만큼 책임 있게 소비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협동조합은 제대로 가치를 찾고 운영한다면, 치열한 경제 구조 속에서도 신뢰망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신뢰가 가장 큰 힘이 되는 조직이다. 어쩌면 현재의 화학물질 공포에서, 불신의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은 소비자협동조합이 아닐까? 소비자들 적극적인 참여로 운영하는 이와 같은 소비자 협동조합이 작지만 큰 주춧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현정 시민기자이현정 시민기자는 '협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라는 기사를 묶어 <지금 여기 협동조합>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협동조합이 서민들의 작은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녀는 끊임없이 협동조합을 찾아다니며 기사를 써왔다. 올해부터는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은 협동조합부터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자활기업에 이르기까지 공익성을 가진 단체들의 사회적 경제 활동을 소개하고 이들에게서 배운 유용한 생활정보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그녀가 정리한 알짜 정보를 통해 '이익'보다는 '사람'이 우선이 되는 대안 경제의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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