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20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최경

발행일 2016.06.02. 15:10

수정일 2016.06.02. 16:17

조회 900

청소년ⓒ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6) 거울 속 일그러진 어른들

그 해 어느 날, 한 아버지가 제작진을 찾아왔다. 아들이 당한 일을 제보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조금 절었다. 뭔가에 쫓기는 듯 표정은 초조해보였고, 수염은 까칠했다. 자신은 원래 지방대도시에 살았었는데 아들 일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왔노라고 했다. 어느 국책연구소에서 인정받는 연구원이었다는 그가 지난 3년 동안 겪은 일이라며 털어놓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집단 따돌림을 심하게 당해왔고,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했던 부모는 그저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가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쯤으로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들이 학교에서 동급생 여러 명에게 놀림을 받고, 맞으며 심지어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성적인 희롱까지 당해왔다는 사실을 부모가 알았을 때는 이미 시간이 꽤 흘러서였다. 학교에 찾아가 가해자들 처벌과 사과를 요구하는 건 피해학생 부모가 할 수 있는 당연한 순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 측의 태도가 예상과 전혀 달랐다고 한다. 가해학생들이 꽤 여럿이었는데, 대부분 모범생들이었고 부모도 엘리트라면서 그럴 아이들이 아니며, 이 학교는 폭력 없는 우수학교로 교육청의 인정을 받을 정도인데 아이가 집단따돌림을 당해왔다는 건 뭔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아들에게 성격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친구들의 장난을 과도하게 받아들인 것이라고도 했다. 이미 아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학교 측은 책임을 지고 가해학생들을 처벌하기보다 문제를 덮는 데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고 한다.

“저는 아이 문제가 이대로 덮이는 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은 학교도 못가고 이미 망가졌는데 가해자들은 버젓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더 활개를 치고 다닙니까? 그것도 올바른 사람으로 길러내야 하는 학교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교육청에 직접 문제를 제기했지요. 그런데 이번엔 가해학생 부모들이 나서기 시작하더라고요. 학생들에게 연판장 돌리면서 자기 자식이 모범생이고 교우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서명하게 하고, 자신들이 얼마나 훌륭한 부모인지 아파트 이웃들과 직장에 서명을 받더라고요. 심지어 제 직장에까지 연락을 해서 이젠 저까지 공격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애 아버지한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요.”

초엘리트인 가해학생들의 부모들은 자식의 허물을 덮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필귀정’일줄 알았던 집단 따돌림 사건은 문제를 최소화시키려는 학교 측과 가해부모들에 의해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 정도로 끝났고, 피해학생은 오히려 학교를 자퇴했다고 한다. 거기다 아버지까지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 피해학생의 동생도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단다. 결국 서울로 이사를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 일을 해결하러 다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 한쪽에 장애를 입기까지 했다.

“어떻게 세상이 이럽니까? 어떻게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엘리트라는 부모들이 이럽니까? 잘못한 학생들이 응당 벌을 받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지, 왜 우리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또 둘째가 전학을 가고, 우리 가족이 그 동네를 떠나야 하는 건가요? 그것도 참기 힘든데, 우리 아들은 완전히 인생이 망가졌어요. 예전에 그 아이가 아니에요.”

아버지는 우리 앞에서 울었다. 아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단, 촬영하고 있다는 걸 모르게 하고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제작진이 아들을 만나러 간 곳은 정신과 병원이었다. 막 스무살 청년이 된 아들은 눈빛부터 일반인과 달랐다.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특히 건장한 남자들 앞에선 유난히 위축됐고 몹시 불안해했다. 그를 치료하고 있는 담당의사는 학교폭력을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당해온 후유증으로 현재 아들이 인지능력까지 손상된 몹시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얼마나 오래 치료받아야 할지, 그래서 예전처럼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노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것이 아니다. 무려 20년 전에 일어난 학교폭력사건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개과정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학교폭력 사건의 피해학생과 부모들을 수도 없이 취재해왔지만 모두 똑같았다. 늘 문제가 터지면 가해부모와 학교 측은 문제가 없고 책임이 없고, 쌍방폭행일 뿐이었다는 식이다. 그리고 늘 피해자들이 뿌리를 들어 그 지역을 떠나야 했다. 해마다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벗어나려했던 학교폭력 문제를 이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근본적인 문제를 아무도 바꾸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의 고통보다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다지만, 사회시스템이 20년 넘게 이지경이라면 과연 어른들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뻔뻔스럽게 교육을 이야기하고 원칙과 상식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20년 전 아이가 학교폭력에 시달리며 일기에 남겼던 글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나는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도 없고 목소리도 이상하지만, 그 아이들은 모범생에 늘 자신에 차있으니까. 선생님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우리 엄마 아빠가 아닌 이상, 세상에 모든 어른들은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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