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만들어 낸 악마를 보았다

최경

발행일 2016.05.26. 16:57

수정일 2016.05.2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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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공간이 마련된 시민청ⓒnews1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공간이 마련된 시민청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5) 결핍의 두 얼굴

부족한 것을 채우고, 넘치는 것을 비우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쩌면 세상의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렇게 성장하며 개인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많은 강력사건과 사고들의 이면을 살펴보고, 사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프로그램으로 담으면서 느낀 공통적인 키워드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결핍’이다. 사전적인 뜻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을 결핍이라고 한다. 강력사건의 피의자들은 많은 경우 어릴 때 가정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다.

특히 세상을 큰 충격에 빠뜨리는 끔찍한 살인범들의 상당수가 부모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랐고, 가난이나 학대 속에 노출된 채 유년시절을 보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따뜻하게 품어주는 보호자나 어른들이 주위에 없을 때, 결핍은 점점 더 큰 수렁을 만들어 한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가게 되는 것 같다. 왜 나만 이렇게 가난해야 하고, 왜 나는 존재감이 없어야 하며, 왜 나만 어른들에게, 사회에 의해 내쳐지고 고통 받아야 하는지 답을 얻지 못하면서 타인을 향한 공격성과 반사회성을 가지게 되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개인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개인의 인성 문제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한 사람의 결핍이 자칫 큰 사회적인 파문과 타인의 무고한 희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데 있다.

꼭 잔혹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해도, 결핍이 가져온 비틀린 욕망 때문에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거나 타인의 감정에 대해 배려하지 않으며 극단적인 이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그렇게 결핍은 부정적인 단어로만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때론 결핍이 한 인간을 성장시키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며 더 나아가 세상을 조금 더 진보하게 만들기도 한다.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이거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유명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최고가 되기까지 오히려 결핍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고, 채찍질하게 만들었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요즘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한 음악인의 경우, 어릴 때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존재감이 전혀 없는 아이였다고 고백한다. 외모도 체격도 볼품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잘한 것도,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사춘기에 이르렀을 때, 나는 왜 이것 밖에 안 되는 건지, 왜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건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됐고, 결핍된 것을 원망하고 한탄만 하고 있다가는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계속 존재감 없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살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때부터 자신이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다녔고 결국 음악에서 답을 얻었다. 제대로 노래하기 위해 목에서 피가 나도록 연습했고, 작사를 잘하기 위해 미친 듯이 책을 찾아 읽었고, 작곡을 잘하기 위해 손가락이 부어터지도록 기타를 쳤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 하면서 그는 결핍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래실력을 갖춘 사랑받는 대중음악인이 됐다.

그런 걸 보면 결핍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모두 개인의 의지에 맡길 수는 없다. 최근 연이어 터지는 분노 범죄의 피의자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범행을 하게 된 동기를 진술하고 있다. 그 이면에도 역시 결핍이 도사리고 있다. 개인의 결핍이든 집단의 결핍이든 혹은 이 사회의 결핍이든지 적어도 독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제는 사회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채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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