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시빌 워>를 꿈꾸며...

최순욱

발행일 2016.05.04. 14:36

수정일 2016.05.04. 17:38

조회 546

시빌 워ⓒ뉴시스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27) 한국의 영웅 스토리를 찾아서 - 문희매몽설화

최근 마블코믹스의 영화 ‘시빌 워’가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역대 최단기간에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하는데, 이번 주 황금연휴가 있는데다 관객 수가 늘어나는 기세를 보아하니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시빌 워’는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다. 보통 인간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맞닥뜨린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뭇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스포일러 때문에 줄거리를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들의 팬으로서 이번 영화도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헌데,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저런 멋진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최근에는 만화 등을 통해 여러 시도가 일어나고 있지만 아쉽게도 저만한 상업성을 확보한 강점과 약점, 장점과 단점을 고루 갖춘 국산 캐릭터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런 때 필자는 우리나라의 신화나 전설로 눈을 돌리곤 한다. 옛날 이야기에서 현대에 새로 태어날 수 있을만한 캐릭터나 캐릭터성이 부각되는 설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옛날 이야기들에 영웅신화의 모습이 훨씬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신라의 장수 김유신金庾信의 여동생이 김춘추金春秋와 혼인하게 된 이야기도 그렇다.

김춘추는 후에 삼국을 통일한 태종무열왕이 되는 인물이다. 《삼국유사》권1, <태종춘추공조>에는 이렇게 전한다.

김유신에게 보희와 문희라는 두 누이동생이 있었다. 하루는 언니인 보희가 서산에 올라 오줌을 누었는데, 양이 워낙 많아 신라 금성의 온 장안이 오줌에 잠겨버리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은 원래 왕후가 될 꿈이었는데, 보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다음 날 아침, 동생 문희에게 꿈의 내용을 말해줬다. 문희는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가 그 꿈을 사겠다고 했다. 보희는 이를 허락했고 문희는 비단 치마 한 벌을 주고 꿈을 사들였다.

얼마 후, 김유신은 김춘추와 같이 정월 오기명절에 자기 집 앞에서 공놀이인 축국을 하게 되었다. 김유신은 놀이 도중 일부러 김춘추의 옷을 밟아 옷끈을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김춘추에게 자기 집에 들어가 옷끈을 다시 달자고 말했다. 김유신은 먼저 보희에게 옷끈을 꿰매라고 했지만 보희는 이를 거절했다. 김유신이 다시 문희에게 부탁하니 문희는 그 뜻을 알고 말없이 옷끈을 꿰맸다. 그 뒤부터 김춘추는 문희를 마음에 두고 김유신의 집에 오가게 되었다.

결국 문희는 김춘추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김유신은 부정하게 임신한 문희를 꾸짖었다. 그는 선덕여왕이 행차하는 때에 맞추어 마당에 장작더미를 쌓고 불을 질러 문희를 태워 죽이려고 했다. 선덕여왕은 이를 보고 문희가 애를 갖게 한 자가 누구인지 신하들을 다그쳤는데, 김춘추의 안색이 돌변하는 걸 보고 그가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선덕여왕은 문희를 구하고 김춘추와 혼인하도록 했으며, 문희는 후에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비인 문명왕후가 된다. 왕후가 될 꿈을 치마 한 벌에 팔았던 보희는 이를 한탄하다가 나중에 태종무열왕의 후궁이 되었다.

‘문희가 꿈을 샀다’는 뜻의 ‘문희매몽설화’라고 불리는 이 이야기는 어찌 보면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오줌으로 홍수를 일으키는 꿈으로 김춘추를 일종의 영웅으로 만든다. 김춘추의 부인이 꾼 또는 사들인 꿈은 김춘추 자신이 꾼 것과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김춘추에게 세상을 창조하거나 지형이나 자연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웅의 능력과 속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재미도 있거니와 은근하면서도 은근히 호쾌한 영웅의 이야기다. 이렇게 찾아보면 우리나라에도 영웅과 관련된 이야깃거리들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멋진 영웅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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