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납게 으르렁 으르렁~ '마음속 싸움' 승자는?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6.04.29. 14:28

수정일 2016.04.29. 14:28

조회 595

노을ⓒ뉴시스

어느 저녁, 한 늙은 체로키족의 노인이 그의 손자를 불러 노인의 내면에서 벌어졌던 전쟁에 대해서 말했다. “아가야, 이 전쟁은 늑대 두 마리의 싸움이란다. 하나는 악이라는 이름의 늑대인데, 이 늑대는 화, 질투, 비탄, 후회, 탐욕, 거만, 자기연민, 죄의식, 분노, 열등감, 거짓말, 허풍, 우월감, 자만심을 가지고 있단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선이라는 이름의 늑대인데, 즐거움, 평화, 사랑, 희망, 평온, 겸손, 친절, 자비, 동정, 관용, 진실, 연민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있단다.”

손자는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더니, 할아버지께 물었다.

“어떤 늑대가 이겼나요?”

그 늙은 체로키는 간단히 답했다.

“내가 먹이를 준 늑대가 이겼지.”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2

수학능력평가 모의고사 문제로까지 나온 이 유명한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이 무엇으로,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심오하고도 간단명료한 해답이다. 아무리 흑백논리가 판치는 세상이라도 완벽하게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가슴 속에 두 마리의 늑대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늑대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오고, 누군가의 늑대는 길들여진 개처럼 다정하고 양순한 벗이 된다. 애초에 그들은 닮은꼴의 쌍둥이였다. 그들에게 먹이를 주어 몸집을 키운 건 그들의 주인,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1830년 미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든 ‘인디언 거주법’에 의해 애팔래치아 산맥 남부에서 서부의 오클라호마까지 강제 이주한 체로키 족의 이야기는 작가 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 소설 《내 마음이 따뜻했던 날들》을 통해 전해진다. 체로키 족은 자연과의 조화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지혜롭고 소박한 부족인 동시에 자존심이 강한 일족이었다. 1만 2,000명이 무려 1년에 걸쳐 이동하는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5,000명이 그 ‘눈물의 길’ 위에서 희생당하는 지경에도 체로키 족은 끝내 백인들이 권하는 마차를 타지 않았다. 남은 영혼을 마차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인들이 사흘에 한번 씩만 희생자를 매장할 것을 허락하자 시신조차 싣지 않고 껴안은 채 걸어갔다. 그들에게는 영혼을 지키는 일이 목숨보다 더 귀했던 것이다.

체로키 족이 믿기를, 사람에게는 마음이 두 개 있다고 한다. 하나는 몸의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마음이다. 몸의 마음이 삶의 본능대로 물질적 일상을 꾸려가는 데 쓰이는 마음이라면 영혼의 마음은 그를 넘어선 무엇이다. 몸의 마음이 욕심을 부리며 악이라는 이름의 늑대를 키울수록 선한 영혼의 마음은 쪼그라들어 밤톨보다 작아진다. 하지만 영혼의 마음은 몸이 죽은 뒤에도 영원히 살아있을지니, 분노와 탐욕과 거짓말이 당장에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도 시간이 흘러 남는 것은 평화와 사랑과 희망이라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군침을 흘리며 사납게 으르렁대는 건 악의 늑대 쪽이다. 그놈은 언제나 굶주려 발광한다. 놈이 원하는 대로 생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를 먹일 것인가? 기실 그 날고기야말로 내가 도려낸 내 살점에 다름 아니다. 배가 고파도 보챌 줄 모르는 선의 늑대 또한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그놈은 거친 먹이를 던져준대도 불평하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날 터이다. 황야와 같은 마음속에서 오늘도 전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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