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는 법

김별아(소설가)

Visit561 Date2016.04.15 13:23

새ⓒ뉴시스

우리는 모두 시궁창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중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
— 오스카 와일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0

‘현시창’이라는 신조어가 나온 것이 벌써 서너 해 전의 일이다. 이른바 ‘현실은 시궁창’의 줄임말이랬다. ‘현시창’ 앞에는 ‘꿈높’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꿈은 높은데’의 줄임말이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 그나마 그때는 꿈은 높다고 했다. 꿈이라도 있다고 했다.

꿈이라는 말을 발음하는 것이 약간은 쑥스럽고 낯간지러웠지만, 몇 해 전까지는 나도 이따금 꿈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꿈을 환상과 혼동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꿈을 직업에 국한시키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의사든 변호사든 교사든 사업가든, 특정한 직업을 갖는 것이 꿈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일례로 의사가 되어 어떤 의술을 펼칠 것인가만 놓고 보아도, 누군가는 돈이 되지 않는 치료라면 철저히 기피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모두가 외면한 험지와 오지로 스스로 찾아들기도 한다. 양쪽이 똑같이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의술을 통해 구현하는 가치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꿈은 직업이 아니라 가치라고 주장하곤 했다. 꿈이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을 하며, 무엇을 하든,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런데 다시 서너 해가 지나 이제는 꿈이라는 말 자체를 입 밖으로 내기가 어렵다. 차마 발설하기조차 두렵다. 말(言)은 시대와 함께 나고 살고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헬조선’이라는 무시무시한 신조어에서 보이는 것처럼 현실은 시궁창을 넘어 지옥(hell)으로 치닫고 있는 모양이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우울한 뉴스들이 쏟아지고, 날로 숨 가빠지는 무한경쟁의 압박 속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은 아무래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니 언감생심 꿈이며 가치며 떠벌일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이 더욱 혹렬하고 척박해질수록, 꿈의 의미는 중요해진다. 모두가 시궁창 속에 빠져 있다면, 아니 그보다 더한 불지옥 속에 있다면, 그래도 빠져나갈 방도가 없다면, 그 속에서 악취를 지우고 열기를 이길 무언가를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경쟁의 의자놀이에서 기필코 승리해 몇 남지 않은 안정된 자리를 차지하기에 골몰할 것이다. 누군가는 ‘탈(脫)조선’을 위해 이민과 해외취업 정보를 열심히 모을 수도 있다. 죽음으로 이생을 영원히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쨌거나 시궁창 속에서도 삶은 권리이자 의무이자 살아나가는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꿈을 믿지 않았던 나는 꿈을 말하는 사람들을 남몰래 비웃었다. 코앞의 허방도 헤아릴 수 없는 깜깜절벽에 그 얼마나 헛된 더듬이질이란 말인가?! 하지만 다시, 극단과 극단이 서로 만나듯, 절망이 일상화된 시절에 꿈을 말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꿈을 가진 사람들은 구정물에 발을 빠뜨린 채로도 머리 위의 별을 바라보길 포기하지 않으리니, 그것은 시궁창에서 뒹굴지라도 스스로 더러운 오물은 될 수 없다는 자존의 선언이다. 진흙에서 피는 연꽃처럼 그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 물들 수 없는, 꿈꾸는 이를 꿈꾸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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