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한방이면 인생 쫙 피는 건데...”

최경

발행일 2016.03.24. 14:21

수정일 2016.03.31. 14:41

조회 834

로또ⓒ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8) 돈벼락의 저주

요즘처럼 살기 힘들 때, 누구나 한번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한다.

“로또 한방이면 인생 쫙 피는 건데. 로또 밖에 길이 없어.”

박봉으로 집을 마련하기는 요원하고, 전세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대출금에 이자 갚기에 매달 허덕여 허리띠를 조르다 못해 허리가 끊어질 지경인데, 이대로라면 내일에 대한 희망은커녕 1년 뒤나, 10년 뒤나 뻔한 날들이 계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어디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허황된 마음이 생기곤 한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적다는 우스개 같은 이야기도 나만은 예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 한 30대 초반의 남자 S씨가 있다. 그는 지방도시에서 휴대전화 매장에 들어가 지역 조직폭력배 이름을 들먹이며 최신 스마트폰을 주문하고는 가게주인이 잠시 방심하는 사이, 그대로 들고 달아나는 수법으로 1년 동안 130여대의 휴대전화를 훔쳐오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그런데 경찰 조사에서 그는 이상한 말을 했다고 한다.

“로또가 안됐으면 내 인생이 이렇게 안됐을 텐데 하면서 후회를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S씨는 10년 전, 로또 1등에 당첨된 행운의 사나이였다. 당첨금만 18억 원. 세금을 제하고 나면 13억 원이라는 돈벼락이 20대였던 그에게 떨어진 것이다. 하루아침에 거액을 손에 쥔 그는 10년 만에 어쩌다 도둑신세가 돼 나타난 것일까? 10년 전, 그가 살던 곳은 한 서민아파트였다. 할머니와 형, 아버지와 함께 살던 S씨가 거머쥔 행운은 가족들에게도 역전의 기회였을 것이다. 모두 집 한 채, 가게 하나씩을 장만해줬다는 S씨. 그런데 그를 잘 아는 동네 사람들은 그가 절도범으로 수배 중인 상태에서 로또에 당첨된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좋은 변호사를 선임해 6개월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S씨, 죗값을 치렀으니 당첨금으로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로또에 당첨된 행운의 사나이가 휴대전화 절도범으로 검거됐다는 뉴스를 보고 S씨를 알아본 경찰들이 여럿이었다. 알고 보니, 10년 만에 절도범이 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로또에 당첨된 지 2년도 안 돼 금은방털이범으로 경찰에 잡힌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많은 돈을 도박으로 날리고, 나중엔 가족들에게 해준 집과 가게까지 모두 저당 잡힌 상태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로또의 저주’란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S씨 역시 경찰에 잡힐 때마다 로또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는 그가 로또 당첨될 당시 삶의 태도가 어떠했는지가 그의 인생을 결정했을 것이라고 했다. 손쉽게 돈을 버는 것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돈벼락을 맞았을 때, 행동이나 삶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돈벼락의 경험이 적은 돈에 만족감을 느낄 수 없는 불행을 가져오게 된다고 했다.

S씨는 철창신세를 지기 전까지 일주일에 수 만 원 어치의 로또를 사는데 몰두했다고 전해진다. 또 한 번의 돈벼락, 인생 한방을 꿈꾸었던 것이다. 돈은 분명 많은 것을 바꿀 수 있고, 역전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돈벼락이 삶의 방식을 바꾸진 못한다. 땀 흘리는 삶의 소중함을 깨우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은 돈벼락은 그야말로 저주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래도 좋으니, 돈벼락 한번 맞아봤으면 좋겠다.”

“난 잘 살 수 있는데, 가치 있게 쓸 수 있는데, 로또의 저주 따윈 물리칠 수 있다고!”

참 살기 팍팍한 세상인 건 맞는가보다.

#로또 #최경 #사람기억 #세상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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