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은 신부납치에서 기원됐다?

최순욱

발행일 2016.03.23. 13:51

수정일 2016.03.23. 16:53

조회 1,227

게르드를 빼앗아와 허니문을 만끽한 프레이르. 1901년 Johannes Gehrts 작품(출처 : Wikipedia)

게르드를 빼앗아와 허니문을 만끽한 프레이르. 1901년 Johannes Gehrts 작품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23) : 아름다운 허니문?

봄이 왔다고 확신하게 되는 신호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주말 일정이다. 지인들, 선후배의 결혼식으로 주말 일정이 이전보다 빡빡해지면 생각하게 된다. ‘봄이 오긴 온 모양이군.’

바로 얼마 전에도 얼마 후 지인이 결혼해 해외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몇 년 간 여행이란 건 꿈도 못 꾸고 일에만 치어 산 양반이라는 걸 알았기에, 기왕지사 외국 간 김에 여기저기 좀 둘러보고 많이 놀고 오라고 했더니, 허니문 기간 중 아무 계획이 없단다. 설명이 좀 거시기하다. “나도 그렇고 신부도 몇 달 동안 결혼준비 때문에 여기저기 시달리고 직장은 직장대로 일이 쏟아져서 너무 피곤하다. 둘 다 숙소에서 잠자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이 없어. 일주일간 한국이랑 완전히 연 끊고 쉬기만 하다 올 거다.”

하기야 요새 사람들 생활이 다 팍팍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허니문의 기원도 원래는 아무에게도 머무르는 곳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숨어서 지내는, 낭만하고는 거리가 먼 거라고 하지 않나.

1970년대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과학 주간이었던 찰스 패너티가 쓴 ‘모든 것의 기원(The Origin of Everything)’에 따르면, 2세기 북유럽 고트족 사이엔 결혼 적령기의 남자가 다른 마을로 가서 여자를 납치해 오는 약탈혼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 약탈에 동참했던 남자의 동료들이 초기의 들러리다. 허니문은 여자의 가족이 쫓아와서 여자를 도로 데려가지 못하도록 들러리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가 머무르던 것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북유럽 신화에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프레이, 혹은 프레이르는 풍요의 신인데, 어느 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볼 수 있는 의자에 앉았다가 저 멀리 거인의 나라에 있는 미녀 게르드에게 홀딱 반해버리고 만다. 프레이르가 상사병에 걸려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자 그의 종자인 스키르니르가 게르드에게 대신 청혼을 하러 간다. 우여곡절 끝에, 심지어 게르드의 동생까지 죽이고 나서 스키르니르는 게르드의 앞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게르드는 프레이르의 높은 이름을 듣고도, 스키르니르가 지참금조로 내민 황금과 보석을 보고도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스키르니르는 그녀가 결코 결혼할 수 없도록 저주의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결국 게르드는 두려움에 떨면서 저주를 거둬두는 조건으로 프레이르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한다. 결국 프레이르는 아홉 밤이 지난 후에 ‘바리’라고 하는 숲에서 게르드와 만나 한동안 지내면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뜯어보면 프레이르는 신랑이요, 스키르니르는 신랑 들러리, 게르드는 약탈당한 신부다. 그리고 프레이르와 게르드가 만난 숲이 바로 신혼여행지가 아닌가.

프레이르는 거인들이 게르드를 되찾으려 숲으로 들이닥칠까 걱정깨나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신혼여행중일 지인도 영 편하게만 쉬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신혼여행만 끝나면 바쁜 일상 때문에 알콩달콩 깨가 쏟아져야 할 신혼생활 자체가 없어질까 걱정하고 있진 않을까. 신부를 빼앗기는 거나, 부부로서의 즐거운 시간이 없어지는 거나 매한가지 아닌가. 꼭 지인뿐만 아니라 결혼하는 모든 사람들의 허니문이 이후에도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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