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혁명을 일으킬 ‘서울의 로빈후드’는 누구?

정석

발행일 2016.03.22. 16:47

수정일 2016.03.22. 17:37

조회 1,632

남산ⓒ뉴시스

정석 교수의 서울 곁으로 (11) 서울 도시공간의 재편 – 사람의 도시로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김민기 작사 작곡, 양희은 노래 <작은 연못>. 옛날에는 꽤 유명한 노래였고 자주 불리던 노래였다. 사이좋던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어느 맑은 여름날 서로 싸웠다. 결국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올랐고 죽은 붕어 살이 썩어가자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결국 연못 속엔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슬픈 노래다.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마다 나는 <마을>과 <도시>가 떠오른다. 똑같지 않은가? 연못이 벗어날 수 없는 붕어들의 삶터인 것처럼 마을과 도시 역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삶터다.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윈스턴 처칠은 이런 말도 남겼다.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사람이 만든 책이 사람을 키우듯, 사람이 만든 도시 역시 그 안에 살아가는 시민들을 돌보고 자라게 한다. 연못을 깨끗이 유지해야 붕어들이 오래오래 살 수 있듯 우리도 마을과 도시를 잘 돌봐야 한다. 물이 썩어버렸다면 제 아무리 박태환을 키워도 소용없다. 썩은 물에서 수영을 할 수 없을 테니까. 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도 아이가 살아갈 우리 마을과 도시를 맑고 깨끗하게, 안전하고 쾌적하게 만들어야 한다.

서울은 어떠한가? 안전한가? 쾌적한가? 맑고 깨끗한가?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 서울의 대기오염과 교통사고 실태는 부끄럽게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보행자의 피해가 심각하고 그 중에서도 노인과 어린이 같은 약자들의 피해가 더욱 심각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보행혁명>말고는 답이 없다. 서울의 마을공간 도시공간을 자동차가 아닌 사람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더 미루지 말고. 보행혁명이 <걷는 도시 서울>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다행히 벗들이 많다.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오래전부터 보행혁명의 꿈을 꾸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다. 브라질의 작은 도시 꾸리찌바 이야기를 처음 우리에게 들려준 박용남 선생께서 2014년에 펴낸 책 <도시의 로빈 후드>에 보행혁명의 꿈을 이루고 있는 세계도시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담겨있다. 창의적인 능력을 갖춘 혁명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도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신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도시의 로빈 후드는 누구일까? 11세기 잉글랜드 셔우드 숲을 근거지로 삼아 귀족과 성직자들이 부당하게 빼앗은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준 의적 로빈 후드처럼, 자동차에게 지나치게 편중된 도시공간을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이 시대의 의적을 도시의 로빈 후드, 돈키호테라고 부른다.

뉴욕의 로빈 후드라 불린 이가 있다. 뉴욕시 교통국장을 역임했던 자넷 사딕-칸이다. 자전거 슈퍼스타, 거리의 조련사라는 별명까지 가졌던 칸 국장은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과 함께 자동차 도시 맨해튼을 보행과 자전거 도시로 바꾼 주인공이다. 2009년 여름, 버려진 고가철도를 거대한 보행공간 <하이라인>으로 바꾼 뒤, 야심차게 <브로드웨이 대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바둑판같은 맨해튼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의 차도를 보행공간으로 바꾼 뒤 보행자 교통사고는 35%나 감소하였다. 드세던 반대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한겨울 눈이 내리면 뉴요커들이 브로드웨이에서 눈싸움을 할 만큼 바뀐 도시공간에서 사람들의 삶과 행태 또한 크게 변화했다.

2013년에는 <시티바이크>라는 이름의 공용자전거 시스템도 도입되었다. 600개 무인대여소에서 자유롭게 빌려 타는 1만대 공용자전거들이 뉴욕거리를 활보하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도시공간도 쓰기 나름이다. 시민들 하기 나름이다. 같은 해 뉴욕시는 내친 김에 <섬머 스트리트>라는 선물을 시민들에게 내놓았다. 여름 한 달 동안 파리 세느강변 조르주 퐁피두 고속도로를 폐쇄하고 도로 위에 모래와 야자수를 설치해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했던 <파리 플라주>처럼, 여름철 주말기간 동안 맨해튼의 주요 가로의 차량통행을 막고 자전거와 보행자에게 온전히 돌려주고 있다.

돈키호테 같은 열정으로 절망의 도시를 탁월한 비전의 도시로 바꾼 또 한 사람의 혁명가가 있다. 콜롬비아 보고타의 엔리케 페냐로사 시장이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짧은 재임기간 중에 페냐로사 시장은 보고타를 혁명적으로 바꾸었다. 1982년부터 시작되었던 <시클로비아>의 전통을 이어받아 일요일마다 간선도로의 자동차 통행을 막고 보행자에게 돌려주었고, <트랜스밀레니오>라고 불리는 간선급행버스BRT) 체계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왜가리 다큐멘터리>를 이용한 페냐로사 시장의 시민 설득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브라질 습지에서 비행훈련을 하던 어린 왜가리가 물에 떨어지면 즉시 달려와 낚아채는 악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동차의 위험성 앞에 노출된 어린이들의 위기를 강렬하게 보여주면서 결단을 촉구했다.

뉴욕처럼 파리처럼 보고타처럼 서울도 보행혁명을 꿈꾸고 실현했으면 좋겠다. 서울시장과 서울시경찰청장이 기자들을 불러 서울시내 모든 교차로의 횡단보도를 전면 복원하겠다고 선언하고, 도심부를 시작으로 차량 주행속도도 큰 폭으로 낮추자. 대중교통은 더욱 편하고 유익하게, 자동차 이용은 더욱 불편하고 불리하게 하자. 주말 차 없는 거리도 더 자주 더 많이 하고, 여름철 주말에는 올림픽대로나 강북강변도로도 한번쯤 사람에게 내어주면 좋겠다. 지하철이 촘촘한 도심부에는 종로와 청계천을 한 바퀴 도는 무료 셔틀도 운영하고, 공용자전거의 수와 자전거도로도 점차 확대하면 좋겠다.

서울의 보행혁명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세계최고 수준의 대기오염과 교통사고 사상자를 줄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것이고, 에너지절약 도시로 성큼 다가서게 할 것이다. 소수의 강자들에게 부당하게 편중된 도시공간을 제대로 되잡는 사회정의의 구현도 이룰 것이다.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도시를 약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보편도시(universal design)>, <포용도시>, <장애 없는 도시(barrier-free city)>로 바꿀 것이다. 보행혁명의 꿈을 꾸는 일은 서울시보다 시민들이 먼저 시작하고 요구했으면 좋겠다. 가수 김창환과 장기하가 노래로 운동을 이끌어도 좋겠다. “그래 걷자, 발길 닿는 대로”, “우리는 느리게 걷자”

보행혁명의 유일한 걸림돌이 있다. 시민이다. 바로 우리다. 자동차에 중독된 우리. 그러하니 혁명의 출발은 소통일지 모른다. 우리끼리 묻자. 이대로 좋은가? 자동차 도시에서 결국 다함께 서서히 죽어갈 것인가, 사람의 도시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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