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로 자전거 여행, 당연 '여기'부터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6.03.09. 15:05

수정일 2016.03.09. 15:05

조회 1,011

북악스카이웨이를 달리는 자전거 애호가들의 기착지 창의문

북악스카이웨이를 달리는 자전거 애호가들의 기착지 창의문

서울 한양도성에 있는 4개의 소문(四小門) 가운데 하나인 창의문(彰義門)은 자전거 애호가들에게 친숙한 문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좀 탄다는 이들의 필수 라이딩 코스 가운데 하나인 북악스카이웨이(북악산로)의 들머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경복궁을 품은 진산 북악산에 난 길로, 종로구 부암동과 성북구 종암동을 잇는 도로다.

주로 차들이 다니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지만, 자전거 라이더들에게도 사랑받는 길이다. 경치도 좋고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이 라이더에게 모험심과 도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도로의 정점에 전망대이자 쉼터인 팔각정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 성곽길이 지나는 북악산과 인왕산길 사이에 있어 성곽길을 걷는 시민들에게도 익숙한 곳이다.

창의문으로 통하는 옛길 풍경(1910년), 창의문 관광안내소 사진 촬영

창의문으로 통하는 옛길 풍경(1910년), 창의문 관광안내소 사진 촬영

세종대로를 지나 경복궁과 청와대를 바라보며 부암동 언덕길을 오르다보면 북악스카이웨이 진입로에 있는 창의문이 잠시 쉬어가라며 여행자를 반긴다. 창의문은 주민들에게 자하문(紫霞門)이라고도 불린다. 가까이에 골이 깊고 물과 바위가 아름다웠던 자하골이라는 마을에서 따온 이름이다. 역사적 가치가 높아 국가 지정 사적지였던 이 문은 지난해 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제1881호)이 되었다.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서울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 총 8개의 문이 있다. 창의문은 돈의문(서대문)과 숙정문(북대문) 사이에 위치한 북소문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란 뜻을 품고 있다. 서울성곽이 처음 축성된 태조 5년(1396년)에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문이다.

북대문인 숙정문이 있었음에도 실질적으로 북문(北門) 역할을 했던 건 바로 창의문이었다. 북악산의 험한 지형 위에 세워진 숙정문은 사람의 발길이 뜸했기 때문이다. 일반인과 상인이 주로 드나들었던 다른 도성문과 달리 창의문은 군사시설의 관료와 군인, 조지서(조선시대 종이를 만들던 곳)의 관료와 장인, 제지업과 포백업에 종사하는 주민들 등이 많이 드나들던, 18세기 도성방어를 위한 요충지기도 했다.

문루 지붕에 있는 아름다운 기와와 익살스러운 잡상

문루 지붕에 있는 아름다운 기와와 익살스러운 잡상

그래서였을까 창의문엔 유독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많다. 이 문은 조선왕조 500년 역사동안 수많은 개폐를 반복하면서, 각종 전란과 반란, 근현대사에 들어서는 간첩 침투, 군사 쿠데타와 같은 국가 위기까지 가까이에서 목도한 역사의 증인이다.

창의문이 처음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게 된 건 인조반정 때다. 1623년(광해군 14년) 3월 12일 밤 홍제원에 집결한 인조(당시 능양군)를 비롯한 반정군들이 세검정을 지나 창의문을 부수고 궁 안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폐위하고 정권을 잡았던 사건이다.

인조반정을 일으키고 벼슬을 받은 공신들을 기록한 현판

인조반정을 일으키고 벼슬을 받은 공신들을 기록한 현판

이밖에도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창의문 옆 도로를 넘어 청와대로 돌진한 사건, 1980년 대 5공화국을 연 군인들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킬 때도 이 문을 지났다.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라는 본래의 뜻과 어긋난 ‘비운의 문’이기도 하다.

창의문을 지날 때 잠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 오래된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천장 벽화에 웬 봉황새를 닮은 닭이 들어가 있다.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산세가 흡사 지네를 닮아 지네의 독기가 문을 넘어 궁궐에 이른다 하여, 창의문 천장에 지네의 천적인 닭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닭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지, 창의문 앞 안내소에서 일하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봉황이라고 알려주면서 관악산의 화기를 누른다고 광화문 앞에 해태상을 만든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창의문 천장에 그려져 있는 봉황을 닮은 닭

창의문 천장에 그려져 있는 봉황을 닮은 닭

문을 지나면 두툼한 옛 돌계단을 걸어올라 이층에 있는 문루(門樓)에 꼭 올라 가봐야 한다. 문루는 성문 위에 지은 다락집 같은 공간이다. 북악산과 인왕산이 보이는 전망도 좋고, 무엇보다 창의문 곳곳의 옛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현재의 문루는 임진왜란 때 불 타 사라진 것을 영조 때(1740년) 건립한 것으로, 2008년 숭례문이 전소된 이후에는 창의문 문루가 도성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문루에 서니 앞으로 청와대를 품은 백악(白岳, 북악산의 옛 이름)이, 뒤로는 커다란 바위돌이 인상적인 인왕산이 문루 기둥을 액자삼아 운치 있게 펼쳐졌다. 태조 이성계가 천도한 한양 땅에 경복궁을 지을 때 무학대사는 인왕산 자락에, 정도전은 북악산 자락에 궁궐을 짓자고 주장했다 한다. 결국 정도전의 뜻대로 되었으나 후일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으니 인생사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창의문 문루에서 보이는 북악산

창의문 문루에서 보이는 북악산

○ 교통편: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나와 버스(7212번, 1020번, 7022번) 환승 → 윤동주 문학관 하차 도보 3분

○ 문의: 종로구청 문화과 02-2148-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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