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영화상, 왜 ‘오스카’라 부를까?
최순욱
발행일 2016.03.02. 15:05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20)
지난달 말일, 헐리우드 영화인들의 축제인 제88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번 시상식은 여러 가지 좋은 의미에서의 화제거리를 낳았는데, 우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다섯 번만의 도전 끝에 결국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았고, 같은 영화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역대 세 번째로 2년 연속 감독상을 수상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무려 음향상, 음향 편집상, 편집상, 분장상, 미술상, 의상상의 6개 부문을 휩쓸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남녀 주조연상 후보 20명이 전부 백인으로 채워지면서 이른바 ‘백인잔치’ 논란이 불거지고, 중계방송이 2008년 이래 역대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영화상 자체의 명예에 생채기가 나기도 했다.
이런저런 화제, 논란거리를 모두 아우르는, 아카데미 영화상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모든 수상자들이 받는 트로피, 일명 ‘오스카’일 것이다. 건장한 남성이 명치 부근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카데미 영화상, 한발 더 나아가 헐리우드 영화 전체를 떠올리곤 한다. 대체 이 트로피를 왜 오스카라고 부르는지에 대한 분분한 이야기들은 차치하고 말이다.
헌데, 이 상의 모습을 이집트 신화의 프타(Ptah)와 연결시키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 구글에서 오스카, 또는 아카데미라는 단어를 프타와 함께 넣으면 둘 사이의 유사점이나 연관성을 짚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검색된다. 프타는 고대 이집트 신화의 창조신으로 신·인간·가축 등 모든 생물체는 프타의 심장과 혀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는데, 보통 미라가 된 남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사실 머리에 딱 달라붙는 모자를 쓰고 가짜 수염을 단 채, 긴 지팡이를 든 프타의 모습이 오스카 트로피와 상당히 닮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소장한 프타상은 오스카 트로피가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프타와 오스카 트로피를 연관시키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 건 프타가 창조신임과 동시에 장인과 예술가의 보호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중요한 기술도 프타가 발명했다고 한다. 하 이집트의 수도였던 멤피스 곳곳에 프타의 신전이 세워졌는데, 여기서 매년 화려한 제의가 치러졌다고 하는데, 일부 사람들은 이 행사에서 훌륭한 조각가나 미술가에게 상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매년 열리는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스카 트로피와 프타의 연관성은 지금으로선 호사가들의 이야깃거리에 가깝다. 아카데미 영화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아카데미협회(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 Sciences)의 홈페이지는 오스카 트로피의 디자인이 세워진 큰 칼의 손잡이를 잡은 채 필름 릴 위에 서 있는 십자군 기사의 모습을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프타와 오스카의 이야기가 그저 지어낸 것이거나 억지로 이어 붙인 것이라고 해도 그 안에 이런저런 재미가 쏠쏠하게 숨어 있는 건 사실이다. 좀 고민해 보면 이런데서 괜찮은 영화 스토리가 하나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이런걸 보면 프타는 정말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이지 않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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