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김별아(소설가)

Visit388 Date2016.02.26 15:30

노을ⓒ시민작가 이도은

우리 문학에 끝은 없습니다.
우리의 예술은 끝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울며 외쳐도 끝나지 않습니다.
결코, 우리의 읽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리고 말하는, 이 무한한 행동은 끝날 수 없습니다.
그 자체가 우리의 의미고 인류가 살아남는 것 자체니까요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3

전염병이거나 풍토병이거나 고질병처럼, 주변의 작가들이 깊은 우울을 앓고 있다. 이미 오래된 ‘문학의 종말’에 대한 예감에 더하여 날로 척박해지는 출판 환경과 독서 인구의 감소, 우연이자 필연으로 만천하에 드러난 문단의 치부에 대한 모멸과 자괴감 등이 병인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세상이 문학을 비웃는다. 예술을 조롱한다. 작가들은 초라해지고 예술가들은 광대처럼 슬프고도 우스꽝스러워진다. 독자들의 외면하는 문학은 허공을 향해 외치는 비명 같다. 피맺힌 절규에도 일말의 의미가 있겠지만 공허함은 어쩔 수 없다. 세상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부지런히 자신의 글밭을 일구던 작가들마저 망연히 펜을 놓아버리면서 서점에는 신간이 부쩍 줄어들었다. 읽어야 할 책들을 읽지 않았기에 읽으려고 해도 읽을 만한 책이 없어지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독서를 ‘특수 행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땅히 취미가 아니라 특기로 ‘독서’를 써야 할 날이 머지않은 듯만 하다. 고민은 깊어지고 마음은 무거워지고 펜 끝은 무뎌졌다. 그런 난국에 처한 채로 들춰보는 사사키 아타루의 책은 복잡 미묘한 마음을 더한다. ‘일본의 니체’라고 불리는 이 자의식 강한 젊은 비평가의 외침은 기실 지난봄의 꽃노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읽는 것,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건,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힘의 근원”이라고 그는 힘주어 주장한다. 철학이 끝났다거나 문학이 끝났다는 세간의 주장이 낭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장구한 인류사 속에서 기록의 도구로 쓰이는 문자는 고작 5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간명하게 이어지는 그의 메시지 속에서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문자와, 문학과, 예술의 역사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그리고 무엇도 끝날 수 없다. 읽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고 말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우리의 삶, 그 자체이므로.

이태 전 한국을 찾은 사사키 아타루의 모습은 고답적인 책상물림이 아닌 힙합 뮤지션 같았다. 그래서 그를 만난 독자들은 더욱 열광하며 이 지긋지긋한 사상적, 문화적, 정서적 퇴행의 세계가 문학을 통해 혁명적으로 전복되기를 꿈꾸었다. 사사키의 말을 뜨겁게 느끼는 젊은이들이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선전선동(?!)이 얼마간의 명분을 갖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어느덧 증명이 아닌 믿음의 영역으로 이행하고 있으므로.

지하철에서 모두가 가벼운 손바닥 안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홀로 무거운 책장을 넘기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 전에 신기하다. 반가운 후엔 짠하다. 나도 사사키를 믿고 싶지만, 아무리 냉소와 무기력의 포즈를 취해 보여도 비밀스런 나만의 사당에선 그와 같은 것을 신봉하고 있지만, 이 확신의 함정이 과연 마지막 구원처일지 감옥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을 처음 만났던 삼십 년 전의 그때처럼, 다시 한 번 내게 물어봐야 할 일이다.

“문학은, 예술은 과연 나에게, 우리에게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고, 무엇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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