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녀의 33년을 뺏어갔나…

최경

Visit476 Date2016.02.25 16:53

화분ⓒ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4) 그녀의 잃어버린 33년

33년이면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다. 33년이면 우리나라 대통령이 7번이나 바뀌는 엄청난 시간이다. 예순 다섯 살 할머니가 된 H씨에겐 그 긴 시간동안 가슴속에 묻어둔 아픔이 있었다. 바로 1980년 행방불명된 막내여동생 때문이었다. 당시 여동생은 취직을 하러 간다며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동생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포기하고 지냈는데 어느 날, 부산의 한 구청으로부터 등기우편 하나가 날아왔다. 소식이 끊겼던 동생이 어느 병원에 행려환자로 입원해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달음에 달려간 그곳엔 정말 막냇동생이 머리가 하얗게 센 채로 앉아있었다. 집을 나갈 때 스물두 살, 꽃같이 예뻤던 동생이 쉰다섯 살이 돼 언니 앞에 나타난 것이다. 동생은 할머니로 변해버린 언니를 단번에 알아봤다고 한다.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고, 왜 행려자가 돼 정신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는 건지, 왜 가족들에겐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막냇동생은 자신에 대해 아무런 기억도,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밥도 떠먹여야 할 정도로 어린아이처럼 돼 버렸다. 언니 H씨는 제작진에게 동생이 어쩌다 33년 만에 돌아온 건지,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다고 했다. 80년 당시, 집을 나간 뒤 몇 달 동안 소식이 없던 동생에게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전화가 온 거예요. 잘 있다고만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전화번호를 가지고 찾아 나섰어요. 전라도 광주였는데, 나지막하고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음침했던 기억이 나요. 아가씨 장사하는 곳 같아보였어요. 방에다 아가씨 여러 명 두고. 근데 남자가 딱 문 앞을 가로막고 서서 내 동생이 나가서 안들어 온다고, 여기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못 만나고 왔어요. 그때만 만났어도…”

동생이 있었던 곳은 광주 시내의 황금동 일대였다. 33년 전, 언니가 찾아갔을 당시 그곳은 대표적인 유흥가였다. 그리고 그 시절은 인신매매범들이 판치던 때였다. 서울에 살던 동생이 광주까지 오게 된 건, 혹시 직업소개소를 사칭한 인신매매단에 걸려든 건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 뒤로 광주엔 5.18 민주화운동으로 많은 이들이 무고하게 희생됐다. 그래서 언니 H씨는 동생이 그 때 사망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단다. 그런데 기억 대부분을 잃어버린 막냇동생이 희미한 몇 가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부산 수정동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30여 년 전 부산 수정동 일대 역시 윤락업소로 꽤 규모가 컸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동생은 광주에서 부산으로 윤락가를 전전했던 것이다. 도망치다 또다시 걸려든 건지, 팔려온 건지 동생이 기억을 못해 알 수는 없지만, 수정동에서 탈출해 거리를 헤매다 경찰에 인계 돼 그 뒤부터 부산의 한 정신요양원에 수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무려 31년 동안 정신요양원에서, 그리고 업종을 바꾸어 개원한 정신병원에서 동생의 실명이 아닌 엉뚱한 이름으로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 시절, 부산의 정신요양원들에선 각종 인권유린 문제가 심각했었고, 동생이 있던 요양원 역시 90년대 중반, 집단 폭행사건과 여성 수용자들에 대한 성폭행 사건, 국가 보조금 횡령 등, 온갖 비리와 인권유린으로 뉴스에 오르내렸던 곳이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동생도 그곳에서 온갖 고초와 인권유린을 당하며 점점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33년 만에 언니에게 돌아온 동생은 매일 정신과 관련 약을 한 움큼씩 먹어야 할 정도가 됐다.

정말 의문스러운 것은, 정신요양원에서 17년, 뿌리가 같은 정신병원에서 14년을 갇혀있는 동안, 왜 단 한 번도 신원파악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대체 관계기관에선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동생이 집을 나간 건 22살 무렵이고, 이미 주민등록증도 발급된 상태였다면 지문조회로 얼마든지 신분조회를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정신요양원 수용자들에 대한 신원조회가 법제화 돼 있었고, 구청에서도 정기적으로 방문해 지문조회들을 해왔지만 그동안은 파악이 안됐다고 한다. 그렇게 동생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채 신원미상 행려자로 입원해있는 동안, 병원에는 동생 몫으로 매달 150만원에서 200만원 정도의 의료비가 국가에서 지원되고 있었다. 혹시 행려자의 신원이 밝혀지는 걸 병원 측에서도 바라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닐까? 33년 만에 가까스로 동생이 언니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이례적으로 경찰 과학수사팀이 나서서 전문적인 방법으로 지문채취를 해 신원확인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국의 정신요양원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신원미상 행려자로 가족들에게 연락도 못한 채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막냇동생의 청춘은 우리 사회에 크나큰 아픔이 있던 역사의 현장, 광주와 부산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갇힌 것이나 다름없는 정신요양원에서 저물어갔다. 33년 동안 아무도 지켜주는 이 없었고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언니 H씨가 가장 가슴 아픈 건, 이런 엄청난 일을 겪었으면서도 정작 동생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송두리째 빼앗겼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이라고 했다. 언니는 이제라도 남은 시간, 동생의 손을 놓지 않겠노라고 했다. 그렇게 동생의 인생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의 빼앗긴 33년은 분명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이토록 허술한 것인지 묻고 고쳐가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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