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공포에서 탈출하는 방법 10가지

강원국

발행일 2016.02.15. 15:41

수정일 2016.02.15. 16:42

조회 1,750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18)

누군가 그랬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일은 영하 30도 시베리아 벌판에서 몇 달씩 묵혀둔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것과 같다. 손은 꽁꽁 얼어 굳어 있고, 차창 밖에서는 시베리아 북극곰이 덮칠 기세로 달려들고 있다.”
그만큼 첫 문장, 첫 문단 쓰기는 어렵다.
머릿속은 굳어 있고, 과연 내가 쓸 수 있을지 공포감이 엄습한다.
그런 점에서 첫 문장을 쓰는 것은 두려움이자 용기이고 설렘이다.

글쓰기는 시작이 절반이 아니다. 거의 전부다.
시작을 해야 글을 쓸 수 있다.
글에 말을 걸어야 글이 대답한다.
또한 시작이 좋지 않으면 독자는 떠난다.
글의 시작은 유혹이어야 한다.
치명적일수록 좋다.

글 좀 쓰는 사람은 시작하는 방법을 10여 개 갖고 있다.
돌려막기 하듯 이번에는 이것, 다음에는 저것으로 돌려가며 쓴다.이들의 시작 방식을 유형 별로 나눠 기억해뒀다 써먹어보자.어차피 그들도 처음엔 누군가를 모방했고, 그것들은 그들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흔한 방식이지만, 글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글을 쓰게 된 동기, 쓰는 목적, 취지를 설명한다.
배경 설명으로 시작하면 쓰는 사람이 마음 편하게 시동을 걸 수 있다.
독자를 예열시키는 효과도 있다.

주제에 집중해서 시작할 수도 있다.
하고자 하는 얘기의 요점과 주제를 명확히 밝힌다.
논문이나 딱딱한 글에 적합하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일화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이 서른만 넘으면 주제와 관련한 기억이 뭐라도 한두 가지는 떠오른다.
내가 모신 두 대통령은 늘 여기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가장 좋은 소재는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예를 들어, 돈 문제에 관한 글을 쓸 때 도둑질한 일을 고백하는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여야 하지만, 내 이야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로 확장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는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과거 회상도 좋지만 미래 상상도 재미있다.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고 이것은 상상이라고 밝히는 것이다.

핵심 개념의 정의를 내리는 것으로 출발할 수도 있다.
개념이나 용어의 뜻을 정의하거나, 관련 이론과 트렌드를 소개한다.
국어사전에서 찾은 사전적 정의로 시작할 수도 있다.
정의를 내려놓고 시작하면 글의 실마리가 풀리기도 한다.
정의는 또한 글을 어떤 방향으로 어느 수준까지 다룰 것인지 정하는 역할도 한다.
정의하기에 따라 글의 방향이 정해지고 논의 수준이 한정된다.

뜬금없는 시작, 예상 밖의 시작도 좋다.
독자가 예상하는 시작은 피할수록 바람직하다.
“엄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로 시작하는 자기소개서는 휴지통 직행이다.

하고자 하는 말의 복선 깔기도 괜찮다.
독자에게 질문하거나, 대화 내용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무슨 내용이 전개될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흔히 쓰는 방식으로 ‘인용’도 있다.
고사성어, 경구, 격언, 속담, 명언, 사례, 통계를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진부하지만, ​할 얘기가 없으면 써먹기 좋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최근 사건이나 뉴스로 시작할 수도 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도 옆집 개와 육종사 등 당시 사회적으로 관심 있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작과 끝을 일거에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바로 수미상관이다.
시작에서 암시만 하고 끝에서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고, 시작에서 쓴 말을 끝에서 다시 반복함으로써 강조하기도 한다.
시작과 끝의 대구이다.
수미상관은 영화에서도 자주 쓰인다.
수미상관을 잘 활용하면 독자에게 잔잔한 미소와 여운을 선물할 수 있고, 메시지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평범하고 담백한 시작도 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중 가장 감동적인 연설인 ‘한일관계 입장 발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진부함이 오히려 진정성으로 다가온다.

첫 문장을 공부하기 좋은 것은 소설이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소설의 첫 문단만 이것저것 읽어보자.
명작 소설의 첫 문장만 모아놓은 책도 있다.
‘나도 이렇게 한번 써봐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공부해보자.
자기만의 시작 필살기를 갖춰야 글쓰기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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