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대충 구체적이도록 하라”

김별아(소설가)

Visit777 Date2016.02.12 14:57

공원ⓒ시민작가 남국환

언젠가 계단에서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그가 당신을 바에 초대하여 커피 한 잔을 대접하고,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불쾌하지도 않은 우스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그가 호감을 주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를 매일, 하루에 세 번 계단에서 만나는데, 그때마다 당신에게 커피 한 잔과 우스개 이야기를 강요한다고 상상해 보시라.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그의 목을 조르고 싶을 것이다. 단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움베르토 에코,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1

영어로 쓰인 소설을 더듬더듬 읽어나가다가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다. 막히는 단어마다 일일이 뜻을 찾다 보면 바로 앞에서 찾았던 단어와 같은 뜻이기 일쑤! 이를테면 pretty와 beautiful과 lovely와 gorgeous가 모두 예쁘다, 아름답다는 한 가지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별다른 차별성도 없는 단어들을 왜 이렇게 속속들이 다르게 썼느냐고 투덜거리다 보니, 나 또한 소설을 쓸 때 같은 문장에 절대, 같은 문단에 가능한 한 같은 뜻이라도 다른 단어를 쓰려고 애쓴다는 자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건 언어에 민감해진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언어마다 가지고 있는 빛깔과 향기와 촉감에 예민해져야 한다. 물론 문장은 1차적으로 뜻이 정확하게 통해야 한다. 하지만 문장이 아름다워지고, 그런 문장들이 모여 문체에 개성이 생길 때, 문체가 전달하려는 뜻은 더욱 풍부해진다.

반복되는 단어는 이내 식상해진다. 움베르토 에코의 비유는 참으로 쉽고 명확해서, 그 자신이 뛰어난 작가인 동시에 조사법(措辭法)의 대가라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처음 만난 사람의 친절한 태도와 유머는 호감과 함께 신선한 재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두 번째에는 좀 당황스러워지고, 세 번째 쯤에는 얼마간 지루해지며, 그것이 매일 세 번씩 거듭된다면 거의 폭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처음에 호감과 함께 재미있게 느꼈던 내용이 전혀 달라진 게 아님에도 그러하다. 글쓰기의 내용과 형식은 이처럼 분리될 수 없다.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은 정치, 미디어, 문화 등에 대한 에코의 짧은 통찰을 묶은 칼럼집인데도, 어쩌면 본격적인 작법에 대한 책보다도 배울 만한 비결들이 갈피갈피에서 반짝인다. “말없음표들의… 소화 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든가, “언제나 대충 구체적이도록 하라.”는 장난기어리지만 긴요한 조언이 있는가 하면, “너무 장황하지 않도록 하라. 그렇다고 그보다 덜 말하지 않도록 하라.”는 곱씹을수록 어려워지는 주문도 있다.

단어에 대해 에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단어들을 상상력 없이 사용함으로써 혐오스럽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문장 내에서 지루한 반복을 거듭하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행간을 만들어낼 힘을 잃는 것이다. 이따금 글의 주인은 그것을 쓴 작가가 아니라 그것을 읽는 독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독자들이 글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투영하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최대한 행간을 넓혀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부디 낯선 단어, 뜻 모를 단어를 쓴다고 작가를 욕하지 말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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