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역 앞 육교, 철거 그 후

시민기자 방윤희

Visit1,219 Date2016.02.12 15:05

깊어가는 밤, 횡단보도가 개설된 노량진역

깊어가는 밤, 횡단보도가 개설된 노량진역

오랜만에 노량진역을 찾았다. 한파 속에도 걸음을 재촉하는 수험생들은 추위를 잊은 듯하다. 쉼 없이 움직이는 발걸음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하마터면 이곳에 육교가 있었던 사실을 잊을 뻔 했다. 35년간 노랑진역 앞을 지켰던 육교가 철거된다고 했을 때, 허전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육교 철거 후에 찾은 노량진에서의 허전함은 이내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육교가 사라진 자리에 개설된 횡단보도를 건너는 발걸음

육교가 사라진 자리에 개설된 횡단보도를 건너는 발걸음

노량진역 앞 보도육교는 1980년 9월 23일 준공되어 그동안 노량진역과 학원가를 연결해왔다. 9호선이 개설되기 전까지 나는 이 육교를 건너 학원에 다녔다. 퇴근 후 학원 수업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육교 계단을 단숨에 오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던 기억. 겨울이면 계단이 얼어 계단 난간을 잡고 살금살금 발을 올려놓던 기억. 그렇게 한 계단 한 계단을 밟으며 내 꿈도 같이 키웠었다. 이 계단만 넘으면 꿈을 이룰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했던 육교를 건너며 마주치는 사람들도 좋았다. 종종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는 어르신의 짐을 들어주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노량진 육교 철거 직전 모습 ⓒ박장식

노량진 육교 철거 직전 모습

육교를 오고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육교에 터를 잡은 노점 상인들도 있었다. 좌판에 시계, 도장, 떡과 김밥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은 육교와 함께 늙어갔다. 수험생에게 육교가 꿈의 다리였다면 상인들에게 육교는 생계수단이었다. 이곳을 오르는 이들에게 육교는 각기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모두의 삶을 짊어지고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 삶 속에 누군가는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좌절의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장사가 잘 되는 날도 또 잘되지 않는 날도 있었겠지. 하지만 괜찮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그 모든 것들이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니까.

육교가 철거된 자리에는 횡단보도가 생겼다. 사람이고 사물이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겠지만 그만큼 견문이 넓어지고 성숙하는 일일 것이니, 노량진 육교를 기억하며 현재를 다져갈 수 있을 것이다. 도심의 미관을 해치고, 시설이 노후화해 쓰임새를 다한 육교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지만, 사연을 짊어진 육교의 아련함은 더욱 짙어진다. 35년을 버텨낸 육교의 힘이 오늘도 바삐 움직이는 청춘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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