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끓는 모정 19년, 故조중필씨 어머니

최경

발행일 2016.02.04. 15:17

수정일 2016.02.04. 15:17

조회 908

1월 29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피해자 故조중필 씨 어머니 이복수 여사가 선고가 끝난 후 법원을 나서며 기자들에게 지난 19년의 세월에 대한 소회를 말하고 있다ⓒ뉴시스

1월 29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피해자 故조중필 씨 어머니 이복수 여사가 선고가 끝난 후 법원을 나서며 기자들에게 지난 19년의 세월에 대한 소회를 말하고 있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11)

지난 1월 29일. 19년을 끌어온 살인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97년 4월, 이태원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조중필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패터슨에게 징역20년이 선고된 것이다. 재판을 숨죽여 지켜보던 많은 이들 중에 중필씨의 어머니도 있었다. 재판이 끝나고 난 뒤, 어머닌 19년 만에 비로소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가 어머니를 처음 만났던 건 18년 전인 1998년 가을 무렵이었다.

시작은 의외로 에드워드리 아버지 제보에서부터였다. 자신의 아들은 살인현장의 목격자였을 뿐인데, 살인범으로 기소됐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사건을 아이템으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함께 팀을 이룬 피디들은 긴가민가했었다. 사전 취재를 위해 찾아간 피해자 故조중필씨 집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방에서 찾아낸 머리카락을 작은 상자에 모아놓고서 이 머리카락으로 아들을 복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그 애달픈 모정 때문에 제작진은 이 <이태원 살인사건>을 놓을 수 없었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당시 대학생이던 조중필씨가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흉기에 찔려 무참하게 살해된 사건이다. 범인은 화장실에 함께 있었던 두 사람 중 하나. 10대 후반의 에드워드리와 패터슨이었다. 하지만 용의자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은 범인이 아니고 상대방이 조중필씨를 살해했으며 자신은 목격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후, 주한미군 범죄수사대는 초동수사를 통해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한국 경찰에 신병을 인도했다. 경찰도 패터슨이 범인이라고 판단하고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그런데 검찰에서 에드워드리를 살인범으로 기소했고, 패터슨에 대해서는 흉기를 증거 인멸한 혐의를 적용했다. 그 후, 대법원은 에드워드리에게 무죄취지의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그리고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다시 대법원에서 무죄. 에드워드 리는 살인범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검찰의 재수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재수사 의지를 별로 보이지 않았다.

시사프로그램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이 사건을 집중해서 다루고 99년 가을께, 나는 중필씨의 어머니와 또 한 번 마주쳤다. 인권영화제가 열리는 극장에서 홀로 우두커니 앉아있는 어머니를 본 것이다. 1년 사이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다가가서 아는 체를 했더니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니며 탄원서를 받고 있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 잠시 쉬러 들어왔다고 하셨다. 살인은 있으나 살인범은 없는 기막힌 상황에서 피해자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내는 일 뿐이었다. 어머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다니며 탄원서를 모았다.

“판사가 한 사람이 범인이 아니라고 하면, 나머지 한 사람이 범인이잖아요. 그런데 왜 패터슨을 잡아넣지 않는 거죠? 왜 살인범을 거리에 활보하도록 놔두는 겁니까? 왜 우리 중필이 죽은 범인은 잡아서 처벌하지 않는 겁니까?”

그즈음, 이상한 소문도 들려왔다. 패터슨이 한국을 이미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제작진이 재수사 담당검사에게 확인했을 때 분명히 출국금지 조치가 돼 있다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해외로 나갈 수 있다는 걸까? 알고 보니, 담당검사가 바뀌면서 날짜 착오로 출국금지가 풀린 이틀 사이를 귀신처럼 알고 패터슨이 미국으로 유유히 출국해버렸고, 뒤늦게 이 사실을 파악하고도 검사가 제작진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당시 이 사건을 세 번째로 재조명하면서 이제라도 미국정부에 범죄인 인도요청을 해서 살인용의자 패터슨을 데리고 와 다시 수사를 해 살인범이 누구인지 가려야 한다고, 그것이 땅에 떨어진 공권력의 신뢰를 회복하고, 조중필씨 가족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었지만. 담당기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살인자 없는 살인사건, 이태원 살인사건은 해결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물 밑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2009년 프로그램을 이어받은 또 다른 제작진이 미국으로 직접 패터슨을 찾아 나섰다. 검찰 측에선 패터슨에 대한 신병확보가 어려워 송환이 어렵다는 입장이었지만 정작 제작진은 쉽게 패터슨이 사는 곳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숨어 살지도 않았고, 당당하게 제작진을 만나러 오기까지 했다. 대체 살인사건의 진범을 가리는 일을 주저하는 자는 누구인걸까?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다시 6년여가 흐른 작년 말, 패터슨이 한국을 떠난 지 17년 만에 국내로 송환됐고 여전히 그는 자신은 목격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패터슨이 살인범이라고 판단,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아들을 무참히 잃어버리고 19년, 중필씨의 어머니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범인도 잡지 못한 어미라서 마음 한구석이 늘 미안했다는 어머니는 판결문을 들고 중필이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셨다. 그 애달픈 모정은 내가 어머니를 만난 98년 그때나, 뉴스에서 만나는 2016년 지금이나 한결같기만 하다. 그 모정이 있었기에, 19년 만에 살인자 없는 살인사건이 일단락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안심할 순 없다. 패터슨이 즉각 항소를 했고, 아직 2번의 재판이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조중필씨 어머니가 더 이상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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