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를 풍미했던 ‘최후의 시민아파트’

시민기자 박장식

발행일 2016.01.22. 16:06

수정일 2016.01.22. 16:13

조회 5,503

회현 시민아파트 구름다리 위에 옛날의 글씨체로 적힌 `빨래를 널지 마시오` 푯말

회현 시민아파트 구름다리 위에 옛날의 글씨체로 적힌 `빨래를 널지 마시오` 푯말

1960년대, 무한질주했던 경제개발에 경종을 울린 사건인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33명의 주민이 사망한 이 사고는 부실시공과 업계의 관행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초대형 사고였다. 사고 이후 조사결과 건설된 447동의 시민아파트 중 약 80%에 이르는 349동이 추후 붕괴위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서민들에게 아파트를 공급하는 시민아파트 계획은 좌초된다. 이후 시범아파트단지 사업으로 이어진 현대식 아파트 사업은 지금의 서울 주거 문화를 낳게 되었다.

금화 시범아파트, 녹번 시민아파트 등 많은 시민아파트가 철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1970년 마지막으로 지어진 회현 시민아파트만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지어진 시민아파트가 마지막으로 남은 시민아파트가 됐다.

회현 시민아파트로 들어가는 길. 1970년대의 `시범` 명칭에 따라, 시범상회라 이름 붙여진 수퍼가 눈에 띈다.

회현 시민아파트로 들어가는 길. 1970년대의 `시범` 명칭에 따라, 시범상회라 이름 붙여진 수퍼가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지어진 만큼 튼튼하고, 훨씬 더 실험적인 건설방식이 도입되었다. 회현동에서 남산도서관으로 가는 가파른 골목길에 건축된 아파트답지 않게 튼튼했다. 자연스러운 언덕을 건축양식에 활용하기도 했다. 아파트의 출입구가 1층과 6층 두 곳에 나 있는 것이다. 현재는 아파트와 주상복합, 그리고 백화점 건물 등에서 매우 흔한 구름다리 건축이 46년 전 남산에서 처음 시도된 것이었다.

구름다리가 지어진 이유가 따로 있는데, 무려 10층의 높이로 지어진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비탈진 지형을 십분 활용한 것이었다. 고급 호텔, 사무용 건물에만 설치되고 주거용 건물에서는 흔하지 않았던 데다가 가격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10층의 아파트를 모두 계단으로 오르기는 힘들어 1층 출입구를 통해 1층과 4층 사이를, 6층 구름다리를 통해 5층과 10층 사이를 오르내릴 수 있도록 구름다리를 설치한 것인데, 이는 엘리베이터보다 더 값진 국내 건축의 최초 역사를 세우게 되었다.

6층의 출입구로 통하는 구름다리. 많은 이들이 매일 이 곳을 밟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다.

6층의 출입구로 통하는 구름다리. 많은 이들이 매일 이 곳을 밟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다.

건물이 ‘ㄷ’자 모양으로 생겨서 처음 보는 사람은 마치 세 동의 별도의 아파트로 보일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아파트와 옹벽에 가로막힌 정 중앙의 빈 공간에는 중앙정원과 놀이터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던 아파트인 충정아파트를 비롯해, 오래 전 건축된 콘크리트 건물에서 볼 수 있었던 정원구조의 최종판을 보는 느낌이다.

내부의 아파트 구조도 지금까지의 서민아파트와는 다르게 많은 면에서의 개선점을 보였다. 이전에는 각 가정에 화장실과 수도시설이 없어 각 층별로 하나의 화장실과 세면실을 썼다고 하고, 개별 연탄 난방구조에 방의 크기도 커봐야 33제곱미터(약 11평)였다. 하지만 회현 시민아파트는 중앙난방에 개별화장실, 두 칸의 독립된 개별 방, 38.3제곱미터(약 11.5평)에 이르는 당시로써는 꽤 넓은 방의 크기를 자랑했으니, 놀라운 발전이었다.

남산시민아파트의 복도. 아파트 현관문이 나무문으로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산시민아파트의 복도. 아파트 현관문이 나무문으로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최신 건축방식 때문에 서민을 비롯한 원주민들이 살기에는 입주권의 가격이 너무나도 비쌌다. 주변에 남대문시장이 있었고, 명동에 백화점이 즐비한데다가 서울의 가장 큰 관광지였던 남산이 있었으니, 비쌌던 것은 당연지사.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30만 원의 입주권을 사 15년 동안 매년 2만 원씩 상환하는 조건이었는데, 당시 시내버스 요금이 15원, 좌석버스 요금이 25원이었고, 당시의 강남 땅 1평을 100원~200원에 살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서민들에게는 너무 가혹했던 조건이었다.

회현시민아파트는 도심지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시의 심장이 눈앞에 보인다.

회현시민아파트는 도심지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시의 심장이 눈앞에 보인다.

그래서였을까. 대부분의 서민들이 입주권을 팔았고, 이 때문에 회현 시민아파트에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본 목적에 맞게 서민들이 살기 시작했던 것은 강남과 여의도에 주공아파트를 위시한 또 다른 고급아파트 붐이 일기 시작한 때였다고 하니, 시민아파트가 정말 이름에 걸맞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렇게 40년의 역사가 흐르고 흘러, 지금은 놀이터가 텃밭이 되고, 다시 그 텃밭이 옹벽의 붕괴위험 때문에 출입금지구역이 되었다. 살아가는 사람의 수도 현재는 많지 않다.

2000년대에 들어서 안전등급 D등급의 위험시설로 분류되어 철거를 앞두고 있었으나, 여러 미디어와 사진작가들이 찾으며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임이 알려져 있다. 게다가 서울시가 10대 미래유산 아파트 후보를 선정했는데, 그 중 회현 시범아파트가 후보로 선정되었기도 하다. 다만 현대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46년의 격동의 역사를 지닌 현대건물의 대부분이 미디어에서 보이는 모습은 “낡았고, 어두운 운치가 있는 하나의 공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건물의 역사를 살피고, 주변의 모습과 어우러지는 당시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외관만을 작품에 씌우는 단순한 관찰에 불과하다.

아파트 뒤로 남산케이블카가 지나간다.

아파트 뒤로 남산케이블카가 지나간다.

60년대에서 70년대의 경제개발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인 회현 시민아파트가 우리의 옆에 하나의 유산으로써 기록되고, 지금 모습 그대로 보존할 수 있으면 한다. ‘음침한’ 건물이 아닌, 서울시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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