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묘지 `14-31` 번호의 주인공
최경
발행일 2016.01.21. 16:32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9)
몇 해 전, 한 국제 구호단체에 아주 특별한 기부자가 나타났다. 굶주림과 병마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리며 기부자가 맡긴 성금은 모두 6,429만 6,358원. 그것은 남자의 전 재산이라고 했다.
구호단체 측은 이 기부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 싶은데, 부산에 사는 58세의 김모씨라는 이름과 주소는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럴수록 그가 어떤 마음으로 전 재산을 기부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취재진은 구호단체가 적어준 주소 하나를 들고 부산을 찾아갔다. 김씨가 살고 있는 집은 주택가의 허름한 옥탑방이었고 문은 잠겨있었다.
집주인은 그가 이 옥탑 방에서 10년을 살았어도 늘 말이 없이 조용히 일터를 오가서 제대로 말 한마디 걸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집주인이 알고 있는 건 김씨가 멀지 않은 동네의 목욕탕에서 일한다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근처 대중목욕탕을 찾아다니며 김씨를 수소문했다. 열군데 넘게 허탕을 치다가 마침내 그가 일하는 목욕탕을 찾아냈다.
“여기서 손님들 구두도 닦고, 탕이랑 탈의실 관리도 하고, 샴푸도 팔고 그랬어요. 그런데 몇 달 전에 갑자기 일을 그만뒀죠. 요새 구두 닦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장사가 잘 안돼서 그런지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목욕탕만 찾으면 김씨를 만날 줄 알았는데, 그가 몇 달 전 그만뒀다는 것이다. 그 목욕탕에서만 10년 가까이 일했다지만, 그의 속사정에 대해 아는 이는 없었다. 다만.
“장애인이었어요. 다리가 성치 않아서 날씨가 안 좋고 그러면 아주 고통스러워했죠. 술이라도 같이 한잔 하면서 속 얘기를 할만도 한데, 그런 걸 일절 안하는 사람이니까 지금 어디 가서 뭘 하고 사는지 우리도 몰라요.”
하지관절장애 4급이었다는 김씨. 시계처럼 정확하게 아침 7시면 골목을 나서 출근을 했고, 저녁 8시면 어김없이 퇴근을 했다던 그를 어느 날 부턴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가 사라진지 20여일 후, 집 주인이 김씨가 살던 옥탑방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평소 문밖으로 잠겨있던 자물통이 안쪽으로 잠겨 있고,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어서였다. 결국 경찰에 도움을 청했고, 옥탑방 문을 따고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있는 김씨를 발견했다고 한다. 시신 옆에는 유서로 보이는 편지가 있었다고 했다.
‘... 삶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남은 재산을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써주세요’
대체 무엇이 그를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남은 전 재산을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일까? 그러나 그를 알기엔 그의 소지품에서 단서가 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그의 낡은 휴대전화엔 1년 가까이 통화기록도, 문자메시지도 거의 없었고, 저장돼 있던 사진들도, 텅빈 옥탑방안과 그가 일하던 목욕탕 한구석을 찍은 것이 전부였다.
취재를 통해 알게 된 김씨는 무척 외로운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 없이 거리를 떠돌다가 보육원에 들어갔고, 5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보육원 기록에 따르면 김씨는 성격이 활달하고 손재주가 좋고, 보육원 동생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의리 있는 형이었다. 성적도 꽤 좋은 편이었지만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론 진학을 못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김씨와 함께 보육원에서 자랐던 한 동생은 그가 모범답안 같은 형이었다고 기억했다.
“보육원 나와서 30년 정도 요리사로 일했어요. 꽤 인정받는 요리사였죠. 돈도 차곡차곡 모으고 무척 성실했거든요. 그래서 우리 모두가 형을 본받고 싶어 했어요.”
그러던 김씨가 언젠가부터 달라지기 시작했고 끝내 하지관절장애까지 얻게 됐단다. 그의 다리를 수술했던 의사는 병의 원인이 술 때문이었다고 했다. 성실하던 요리사가 왜 갑자기 폭음을 하게 된 걸까? 그가 동네에서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이웃할머니는 짐작 가는 것이 있다고 했다.
“노총각한테 여자가 하나 생긴 거야. 방 하나 얻어서 같이 살 거라 그러더라고. 이불사고 뭐 사고 그래야 하니까 여자한테 방 구하고 살림장만 하라고 돈을 줬지. 근데 그 여자가 그 돈을 싹 다 가지고 도망가 버렸어. 15년 동안 일해서 모은 돈인데 2억 5,000만 원 가지고 달아난 거야. 그런 벼락 맞은 인간은 어디 가서도 못살아요. 벌 받아서.”
뒤늦게 찾아온 꿈같았을 사랑, 그러나 그 사랑에게 배신을 당하고 모든 걸 잃은 뒤 김씨는 그만 폭음을 했고 결국 장애까지 얻게 된 것이다.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철저하게 혼자였던 삶. 어릴 때부터 온 생애를 다하도록 고독했던 김씨. 아무리 애를 써도 끝끝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이 그를 벼랑 끝으로 밀어버린 건 아닐까... 지인은 평소 그가 자주하던 이야기를 마지막 가는 길에 실천했다며 울먹였다.
“TV 보면 불쌍한 아프리카 아이들이 나오잖아요. 그걸 보면서 형이 늘 눈시울이 붉어지고 그랬어요. 능력만 되면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마지막에 전 재산을 기부할 수 있었던 거예요.”
고독했던 삶을 고독한 죽음으로 끝낸 김씨. 그의 마지막 기록은 시립공원묘지에 14-31이라는 번호로 남겨졌다. 부산에서 그해 31번째 발견된 무연고자라는 뜻이다. 살아서 그의 고독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고 그의 절망을 막아주지 못했던 우리는 늦었지만 그의 삶을 한번만이라도 되돌아보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그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어서다.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남긴 그의 마지막 편지. 그것은 더 이상 외롭고 아픈 이가 없길 바라며, 그가 세상에 뿌려놓은 마지막 희망의 씨앗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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