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선비가 무슨 소용인가?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6.01.22. 10:05

수정일 2016.01.22. 10:09

조회 892

도서관ⓒ뉴시스

학업을 위한 공부든 참된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든, 그것이 기쁨이 되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지요? 정말 기쁨 속에서 공부하고 책을 읽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반성하고 그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 답을 알고 있나요? 저는 《논어》에 나오는 세 번째 구절, 그러니까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나지 않으면 군자”라는 말에서 깨달을 바가 많다고 봅니다.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는 사람은 누가 알아주길 바라지 않습니다. 성낼 일이 없는 것이지요.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라야 기쁨이 됩니다. 사회에서 가라고 해 억지로 선택했다면 짐이 되고 말겠지요. 그 길은 가시밭길일 터이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봐 안달을 부릴 가능성이 큽니다.

- 이권우,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08

나 역시 책을 쓰고 펴내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서 갓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을 증정 받고 이상스럽게 뭉클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 그것에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을수록, 제목이며 표지가 주인을 닮아 소박하고 담담할수록, 공으로 받는 손이 부끄러운 마당에 주는 사람이 먼저 얼굴을 붉힐수록 그렇다. 어찌어찌한 인연으로 이따금 여럿이 만나 찬술 한 잔씩 기울이는 사이가 된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생의 신간을 받았을 때 꼭 그랬다. 그는 한사코 축하를 받으려 하지 않았고, 표지에 적힌 “무엇을 읽고, 어떻게 쓸 것인가?”가 요즘 내 고민거리였는데 열심히 읽어보겠다고 ‘진심으로’ 말했는데도 변변찮은 글을 그리 여길 필요 없다며 화들짝 손사래를 쳤다.

나는 그것이 의례적인 겸양의 제스처가 아님을 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다. 옛적 어느 한적한 시절에 태어났으면 일평생 초야에 파묻혀 책을 읽으며 백면서생으로 살기를 마다하지 않았을 사람이 어쩌다 천한 시절에 누항에 끌려나와 곤혹을 치르고 있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 그의 글에는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묻어난다. 진심으로 책을 읽지 않는 시대와 세대를 걱정하고, 책처럼 귀한 보물을 자기 혼자만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한다. 그러다보니 생계의 방편 겸 교도와 유세의 방법으로 수년간 다양한 이들에게 책읽기와 글쓰기를 가르쳐온 결과물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이다.

왜 그리도 책을 좋아하는가? 이처럼 척박하고 천박한 세상에 군자가 어디 있고 선비가 무슨 소용인가? 그 우문에 대한 현답이 책 속에서 그의 중저음으로 읽힌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즐겁고 기쁘다고, 남이 알아주거나 알아주지 않거나와 상관없이 오롯이 내가 선택한 길을 걸으며 매일 새롭게 배우는 일이 행복하다고. 분명 내가 선택한 것 같은데도 여전히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을 내고 고단함을 생색내기에 바쁜 한낱 소인의 어깨에는 그 단순하여 선명한 말이 죽비처럼 내리꽂힌다. 끌려가는 길이 어찌 비단길일 수 있으며, 기쁨으로 걷는 길이 어찌 가시밭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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