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은 가브리엘일까, 헤르메스일까?

최순욱

Visit380 Date2016.01.06 15:45

가톨릭 외교관의 수호성인 가브리엘-티치아노의 그림(좌), 그리스 신화 외교의 신 헤르메스-우발도 간돌피의 그림(우)

가톨릭 외교관의 수호성인 가브리엘-티치아노의 그림(좌), 그리스 신화 외교의 신 헤르메스-우발도 간돌피의 그림(우)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13) 외교의 얼굴들

카톨릭교회나 정교회 같은 기독교 교파에는 수호성인(守護聖人)이라고 하는, 어떤 개인이나 장소, 직업, 국가 등을 특별히 보호해 주는 성인에 대한 개념이 있다. 사람들은 특정한 성인을 자기 자신이나 본인이 속한 집단의 보호자로 생각해 존경하고, 이 성인을 통해 하느님에게 청원하고 보호받는다. 특정한 날을 어떤 수호성인을 기념하는 축일로 삼기도 한다. 순교자의 무덤 위에 성당을 세우고, 이 순교자를 건립한 성당에서 모시던 초기 기독교 시기의 관습으로부터 수호성인에 대한 의례가 생겨났다고 한다.

수호성인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직업이나 단체에 대한 수호성인이다. ‘누구를 어떤 집단의 수호성인으로 삼을 것인가’를, 성인의 삶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일과 그의 성격, 보호받을 직업이나 단체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교황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이나 집단의 수호성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무리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래야만 한다’라는, 과거 사람들의 이상을 읽어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외교관의 수호성인은 대천사(大天使, Archangel) 가브리엘이다. 가브리엘이 누구인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선지자 스가랴에게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세례 요한)을 낳을 것이라고 알려준 그 천사가 아닌가. 게다가 6개월 후에는 성모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했다는 것을 알렸다. 즉,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진정한 뜻을 전달하는, 아주 직접적이고도 진실된 전령사(傳令使, messenger)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전 사람들이 그렸던, 여러 나라를 넘나들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국민(과거에는 왕)의 진정한 뜻을 전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는 외교관의 이상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다른 종교에서는 외교관의 모습을 다르게 봤던 모양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외교의 신은 헤르메스인데, 신들의 왕 제우스의 심부름꾼인 동시에 거짓말과 사기의 신이자 도둑들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헤르메스는 워낙 꾀가 많고 말재주가 좋은 걸로 유명한데, 심지어 태어난 바로 그날 태양신 아폴론의 소 50마리를 훔쳐내고 리라라는 악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들의 왕 제우스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아기일 때 제우스가 부인 헤라 사이에서 낳은 자식인척 헤라의 젖을 먹으면서 정을 붙여 헤라의 미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귀여움을 독차지했다고도 전해진다. 제우스가 자기 심부름을 할 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자 “거짓말을 하지 않겠지만 가끔 진실을 덜 말할 수도 있다”고 한 적도 있다니 아마도 교활함과 약삭빠름을 무기로 모략과 암투, (합법적인) 거짓말을 일삼는 외교관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가브리엘과 같은 외교의 이상과 냉엄한 현실 간의 괴리를 반영한 것이던지.

최근 한일 정부 간에 진행됐던 위안부 할머니 관련 협상에 대한 논란이 들끓고 있다. ‘묵은 앙금을 털어낸 외교적 성과’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체감하기로는 ‘성과가 아니라 외교적 굴욕’이라고 보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이 협상에 관여했던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이상은 누구였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가브리엘일까 헤르메스일까, 그것도 아니면 심지어 밖이 아닌 안을 향해 거짓말을 하는 헤르메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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