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실현, 얼마나 꿈같은 소리인지…

김별아(소설가)

Visit650 Date2016.01.15 13:04

석양ⓒ시민작가 강명훈

여러분은 삶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소중하고 영원하며 진정한 가치를 지니는 것과,
반대로 사소하고 우습고 일시적이고 아무 가치도 지니지 못하는 것을 구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지혜로 둘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소음으로 시끄럽게 만드는 사소하고 일시적인 것들이 아니라
정말로 가치 있는 것들에 매달려야 합니다.
–E. F. 슈마허 《굿 워크(Good Work)》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07

천재적인 경제학자이자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유명한 실천적 사상가 슈마허가 생애 마지막으로 강연한 대상은 ‘노동자’였다. 자본을 가진 극소수를 제외하고, 우리 대부분은 노동자다. 작가라는 직업 또한 ‘지식 노동자’이며, 다만 그 노동의 형태나 내용이 다른 것들과 조금 다를 뿐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자’라는 말이 곧이곧대로 쓰이지 않는다. ‘근로자’라는 이상스럽게 촌스러운 단어로 대체되기도 하고, 홍길동이 홍판서에게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락받고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하고 부르짖었던 옛날 코미디처럼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라고 부르지 못하는(않는) 경우도 숱하다. 막일꾼을 가리키는 ‘노가다’라는 속어와 혼동되어 “신성한 직업인 교사가 어떻게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른단 말인가?!”는 비난을 받는가 하면, 드라마로도 방영된 말처럼 “제가 왜 노동자인가요? 저는 S그룹 들어갈 건데요!”라는 식으로 부정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동한다. 노동자로 산다. 노동은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다. 끊임없이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스를 통해 인간 존재를 보여준 까뮈가 말한 대로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한없이 쉬고 노는 삶을 부러워하곤 하지만 그런 무위도식의 삶은 반드시 타락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까뮈는 이 진리에 한 가지 중요한 덕목을 부언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간다”는.

이것은 철학자 에릭 호퍼의 주장과는 얼마간 상반된다. 에릭 호퍼는 노동에 대해 말하길, “우리는 일이란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 세상에는 모든 이들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내가 하루에 6시간씩 1주일에 5일 이상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일이 끝난 뒤에는 실질적인 생활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에요.”라고 했다. 슈마허가 22세에 컬럼비아대학 교수가 된 사람이고 에릭 호퍼가 평생토록 길거리를 떠돈 사람이었던 차이일까? 나는 에릭 호퍼에게 60퍼센트쯤, 그리고 슈마허에게 40퍼센트쯤 공감한다.

노동은 신성하다면서 노동자를 천대하는 사회에서 일과 삶을 가치와 연관시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상적일 수밖에 없을지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만큼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생계가 아닌 자아실현, 그것이 작금의 시대에 얼마나 꿈같은 소리인지 잘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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