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시, 이게 최선입니까?”

정석

발행일 2015.12.29. 14:15

수정일 2015.12.29. 14:15

조회 1,595

ⓒ시민작가 이혜주

정석 교수의 서울 곁으로 (6) 회색도시와 무지개떡 건축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4년 전쯤이었을까? 아주 인기가 많았던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주인공 현빈이 자주 했던 대사로 당시 최고의 유행어가 되었던 말이다. 최선을 다했는지를 묻는 이 질문은 기획안을 써온 부하 직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 우리들도 스스로 물어보고 서로에게 물어야 할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이 도시, 이게 최선입니까? 나와 우리 아이들이 매일매일 오가며 살고 있는 우리 마을, 이게 최선입니까”

최선이라면 되었다. 그러나 아니라면 생각해봐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바지 한 벌을 사도 우리는 몸에 맞게 수선해서 입는다. 너무 길면 바짓단도 줄이고, 통도 줄여 핏을 살려 입는다. 자동차도 튜닝을 하고, 오래된 물건들도 리싸이클과 업싸이클해서 잘 쓴다. 뭐든 다 맞춤과 수선을 하고, 리폼과 튜닝과 스타일링을 해서 쓰는데 마을과 도시만큼은 예외인 것 같다. 문제가 있어도 그냥그냥 살고, 좀처럼 고치려 하지 않는다. 30년만 되어도 고칠 게 아니라 전부 철거해버린 뒤 새로 지어야 하는 걸로 굳게 믿고 산다. 집도 동네도 도시도 내 삶에 잘 맞게 고쳐가며 살 수는 없을까? 서울이 내게 주는 불편이 많다면 그걸 고칠 수는 없을까?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최선일까? 아니면 더 나은 대안은 없을까?

건축가 황두진 소장이 아주 재미있는 책을 냈다. 2015년 12월 25일 초판 1쇄가 발행되었으니 아주 따끈따끈한 책이다. 제목이 흥미롭다. <무지개떡 건축>이 제목이고 부제는 ‘회색도시의 미래’다. <무지개떡 건축>은 우리가 아주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 우리 도시 서울이 과연 최선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흥미로운 자극제가 될 것이다.

떡을 좋아하는지 황두진 소장은 우리 도시의 건물들을 <시루떡 건축>과 <무지개떡 건축>으로 구분한다. 저층이건 고층이건 건물 전체를 한 가지 용도로 지은 건축을 시루떡 건축이라 부른다. 똑같은 떡을 여러 층으로 쌓아놓은 것과 같다는 뜻이겠다. 반면에 알록달록 무지개떡처럼 층층이 용도가 다른 건물을 무지개떡 건축이라 부르며, 무지개떡 같은 건물들이 많아져야 우리 도시가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1층에는 가게가 있고, 2층과 3층에는 사무실이나 병원이 있으며, 그 위에는 살림집이 있는 복합용도 건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옥상도 놀리지 말고 적극 활용하잔다. 서울시 전체 건물의 옥상면적은 여의도의 60배 정도가 될 만큼 크고 이를 서울시 거주 가구수로 나누면 한 가구당 14평씩 나누어줄 만큼 많단다. 이처럼 풍부한 옥상을 단순한 녹화에 머물지 말고 ‘옥상마당’으로 적극 활용하자는 얘기다.

서울에 무지개떡 건축이 많아지면, 특히 직장들이 몰려있는 도심부와 그 가까이에 도심주거를 품은 무지개떡 건축이 많아지면 직장인들의 출퇴근 이동거리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황소장 본인이 그렇게 살고 있다. 경복궁이 바라다 보이는 통인동에 무지개떡 건물을 짓고 1층은 사무실로, 2층은 집으로 쓰고 있다. 한층만 걸어 내려오면 출근이고, 올라가면 퇴근이니 출퇴근 교통지옥에서 해방된 아주 부러운 직장인이다.

무지개떡 건축은 ‘밀도’의 관점에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에는 집이건 사무실이건 대부분 ‘저층고밀’의 형태로 건물을 지었다. 층은 낮아도 건물의 1층 바닥면적이 커 상당한 밀도(용적률)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지어지는 아파트나 사무실 건물들은 대부분 층수를 높이고 1층 바닥면적을 줄인다.

각 변의 길이가 다른 직육면체를 가정해보자. 성냥갑도 좋고 명함통이나 작은 보석상자여도 좋겠다. 같은 체적을 갖는 직육면체를 키가 커지게 세울 것인지, 키가 작아지도록 눕힐 것인지에 따라 건물의 배치는 달라진다. 옛날에는 대부분 높이를 낮추는 방식으로 건물을 배치했다면 요즘은 키를 세우는 방식으로 배치하고 있다. 종로나 인사동 그리고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무교동 같은 곳이 전자라면, 재개발이 완료된 을지로와 청진동 같은 곳이 후자다. 무조건 세우는 게 능사가 아니다. 장단점을 따져보며 해야 한다.

직장은 도심부에 있고 집은 멀리 외곽에 있어야만 할까? 집은 꼭 아파트여야만 할까? 그것도 고층이어야만 할까? 도심부의 골목길과 작은 건물들을 몽땅 쓸어내고 거대한 빌딩을 지어야만 할까? 작은 건물들을 고쳐 쓰면서 오래된 길과 집들과 가게들을 남기는 방법은 없을까? <무지개떡 건축>을 읽으며 생각이 또 많아진다. 지금 우리 도시, 이게 과연 최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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